• "사랑은 유죄, 경쟁은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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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2월 06일 09: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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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간의 농성을 마치고 내려와 병원에서 쓴 트윗 하나를 기억한다. “병원에서 연극치료를 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동작을 해보라 해서 팔을 활짝 벌려 흔들었습니다. 올해 가장 많이 한 말을 해보라는데 ‘고맙습니다’하며 목이 메었습니다.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 묻는데 ‘감옥에 있습니다’ 그 말을 미처 못 끝내고 울었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습니다"

    곽노현, 송경동, 정진우, 정봉주, 박정근까지. 최근 몇 달 사이에 수많은 사람들이 ‘상식적이지 않은 이유’로 감옥에 가는 것을 우리는 지켜보았다. 이 중 송경동, 정진우는 사람을 살린 이유로 감옥에 간 독특한 경우가 되었다. 동료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삶에 대한 기약 없이 크레인에 올라간 사람과 그리고 그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아낌없이 희생하며 달려간 사람들이 전부 범죄자가 되었다.

    지난 1월 17일 송경동 시인과 박래군 활동가에 대한 첫 공판이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렸다. 검사가 읽은 공소장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희망버스라는 ‘불법 범죄행위’를 기획, 계획, 참가비를 받고, 주도했다는 것이다.

    홀로 싸우는 외로운 노동자를 응원하러 가자고 제안한 것,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한 것, 담을 넘어 들어가 ‘사랑해요’라는 피켓을 든 것, 노래하고 춤춘 것, 크레인에 바람개비를 붙인 것, 팀을 짠 것, 기자회견을 한 것, ‘폭력경찰 물러나라’ 구호를 외친 것, 풍등을 날린 것, ‘너희는 고립되었다’라는 피켓을 들고 경찰청 앞에서 인간띠를 이은 것, 줄을 서서 CT85 모양으로 글자를 만들어 보인 것이 전부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집시법 위반, 일반교통방해죄, 야간옥외집회금지법 위반, 건조물 침입죄 등을 차례로 지적했다. 마치 무시무시한 범죄행위를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계획한 것 같다.

    공판 중간에 두 피고인에게 발언 기회가 주어졌다. 송경동 시인은 ‘희망버스를 출발시킨 건 조남호 회장’이라며 부당한 정리해고로 사람들의 삶의 권리를 빼앗은 사회적 잘못을 지적했다. 이어서 경찰이 집회의 합법적 신고를 받아주지 않음으로써 모든 시위를 불법으로 만들었다는 것도 지적했다. 그리고 “소수 기업인들의 무한 이익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이 조금 더 안전하고 평화로이 살 수 있기를….”이라는 말로 끝맺었다. 박래군 활동가는 자신이 희망버스에 계좌를 빌려준 것 외에 단순 참가밖에는 달리 한 것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송경동과 함께 법정에 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첫 공판은 모두 진술, 두 사람의 발언과 변호사의 모두의견진술로 짧게 끝났다.

    그리고 1월 31일 열린, 크레인 농성자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공판에서 검찰은 1년 6개월의 징역형을 구형했다. 혐의는 ‘업무방해와 회사 이미지 실추’이다. 혐의사실은 모두 인정되었다.(참고로 ‘피해자’인 한진중공업은 노사 합의 과정에서 김진숙에 대한 고소고발을 모두 취하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2003년 회사가 노동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아 협약을 어겨 두 사람이 죽음으로밖에 저항할 수 없었던 일, 또한 그간에도 노동자들이 해고로 자살을 택했던 일, 그리고 정리해고의 결과로 한 사업장에서 스무 명이 세상을 떠난 일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크레인 농성의 사유를 밝히는 최후진술을 하였다.

    법의 수수께끼

    결과가 어떻듯, 이 두 재판은 법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어떻게 이렇게 ‘불법적인 범죄행위’는 김진숙으로 하여금 ‘고맙습니다’란 말을 수도 없이 하게 했고, 또 목이 메게 했을까. 어떻게 이 범죄행위는 막막한 생활 그리고 억울함에 우울증에 걸려 죽음까지 생각했던, 한 한진중공업 해고자의 아내가 살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되찾게 했을까.

    결국 이 ‘범죄행위’는 삶에 대한 기약 없이 크레인 위에 오른 사람이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삶을 택하게 했고 결국 살아 내려오게 했다. 또한 열심히 일하고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들 모두에게 힘이 없지만 해낼 수 있다는,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끔 했다.

    여기서 우리는 큰 수수께끼에 직면한다. 어째서 인권을 위해 뛰어다닌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옥에 갔으며 자신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살리고자 한 사람들은 늘 탄압을 받았는가 하는 것이다. 법이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나는 법률 전문가가 아니다. 하지만 일반인의 눈으로 보았을 때 이해할 수 있는 부분만을 가지고 감히 말하려 한다. 하나하나 짚어 가며 그 수수께끼를 풀어 보자.

    각자의 법은 그 법이 보호하는 가치들이 있다. 그 가치들은 때로는 상반되거나 상충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법은 사람들이 밤에 조용히 잠을 잘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기도 하고(야간시위금지), 차가 막히는 불편을 겪지 않게 해주기도 하고(일반교통방해죄), 사람의 개인 사유재산을 보호해주기도 한다(건조물 침입죄). 그리고 회사나 기업, 국가가 방해 받지 않고 업무를 수행하는 것을 보호해주기도 한다(업무방해죄). 물론, 이 업무의 목적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인권이나 사람의 생명과 같은 큰 가치를 보호하는 법도 있다. 그것은 헌법이라고 한다. 사실 형법 재판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작은 가치를 보호하는 법을 가지고 큰 가치를 지키려 한 행위에 대해 얼마든지 처벌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의도와 결과가 선하다 해도 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집에서 누군가 부당한 폭력을 당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 누군가 살려 달라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 집 문을 부수고 들어가 사람을 구했다 한들, 그 사람은 기소 당하고 처벌받을 수 있다. 남의 집에 허락 없이 침입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1차 희망버스 참가자들에게 적용되었던 ‘건조물 침입죄’다.

    검사를 이기기 힘든 이유

    사실상 법정은 피고인이 도덕적으로 잘했느냐 못했느냐를 판단하는 곳이 아니라 단지 그 재판에서 검찰이 기소한 법률에 관해 판단하는 곳이다. 한 법대생의 말을 인용하면 재판이란 이렇다.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은 웬만해서는 검사를 이길 수 없다. 형사재판은 검사가 공소장에 기재한 내용을 근거로 다투는 것이고 검사는 반드시 이길 만한 핵심증거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열 가지 증거 중 아홉 가지가 피고인에게 유리해도, 공소장의 쟁점을 만족시키는 검사의 증거 하나면 유죄 판결이 나기 때문이다.” 작은 법률들을 가지고 사회의 부당함에 맞서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그래서 ‘아주 쉽다.

    결국 법정에서는 ‘불법’ 여부는 판가름해주어도 그들이 진정 옳은 일을 했는가, 아닌가는 판단해주지 않는 것이다. 판사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가 더 도덕적이었는가는 오히려 머리가 아닌 직관으로, 혹은 그저 현실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당한 일을 정당한 일처럼 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비싼 돈이 필요하다. 용역을 고용하는 데에도, 언론과 기자를 사는 일에도,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공직자들에 뒷돈을 대는 일에도. 그러나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은 아무 것도 갖지 않았다. 한진 조합원들도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저기서 돈을 나누었고,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돈을 들여서 왔다. 사람들이 그것이 옳은 일이라는 것을 직관으로 알고, 마음으로 알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죽어야 겨우 기계가 아닌 인간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었다는 현실, 그리고 어느 사업장에서 정리해고 결과로 스무 명이 죽어가도 아무것도 고쳐지지 않는 현실, 다시는 이와 똑같은 죽음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막아야 하는 일이 옳다는 것은 그냥 아는 것이지 법으로 아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크레인과 그 아래 그곳에선 누구 하나 제 몸 챙기지 않고 같이 나누고 베풀고 갔다. 거기서 자기 이익을 위해 있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김진숙은 죽은 동료가 목숨으로 지킨 협약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고 다른 해고자들의 복직을 위해서, 다른 조합원들은 김진숙을 살려내기 위해서, 거기 있었다. 희망버스 참가자들은 조합원도 아니었고, 스스로를 위한 이익과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홀로 크레인 위에서 외롭게 싸우는 노동자를 돕기 위해서 갔다. 그래서 많은 돈으로만 할 수 있는 일들이 한 푼 없이 이루어졌다. 이것은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이라는 이념을 좇은 사람들은 기소되었고, 혐의가 씌워지고, 감옥에 가고 법정에 섰다. 이들이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권력은 늘 그렇게 해왔고 단지 역사만 처벌된 그들을 뒤늦게 높이 평가해왔을 뿐이다. 사랑이나 인권이라는 가치가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우리가 늘 놓치고 미끄러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추구하는 다른 어떤 가치 때문이다. 그것은 경쟁과 승리다.

    사랑과 경쟁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버는 뛰어난 능력을 갖고 싶어 하고, 기업이 확장되고 발전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더 계급이 나누어지고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가면 더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을 정당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똑같이 행복하자 하면 절대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실은 대부분이 경쟁으로 인한 승리를 무엇보다 신봉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랑은 경쟁과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사랑이라는 가치는 모든 사람을 다 품자 하고, 가진 사람은 나누자 하고, 다친 사람은 품고 보듬고 함께 가자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경쟁과 취득과 소유를 방해한다. 계급을 깨고 더 가진 사람이 더 누려야 하는 그 시스템을 뒤흔든다. 따라서 사랑을 외치는 자는 형벌을 받는다. 인류역사상 가장 슬프게 처형당한 그 성자가 바로 그랬지 않는가.

    위의 법정에서 명시된, 업무 방해죄와 건조물 침입죄 모두 시장 경쟁 시스템과 사유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보다 우선시된다. 만약 그렇게 사람들이 절박하게 생존을, 인권을 위해 ‘업무방해’를 하고 ‘건조물 침입’을 하거나 ‘교통방해’를 해야 한다면, 그것은 지금 이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시스템이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방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꼭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검찰이나 재판이 지금처럼 현 시스템이 가진 가치를 보호하려 한다면, 무엇을 포기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99%의 국민의 인권, 바로 대한민국 헌법이 수호하는 가치다.

    때론 법적인 판단으로는 선하고 옳은 사람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법이 경쟁 시스템만의 편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에겐 아주 훌륭하고 아름다운 조항, 헌법이 있다. 다음의 조항을 살펴보자.

    헌법 제 21조
    1항 – 모든 국민은 언론 출판의 자유와 집회 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2항 – 언론 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제 23조
    2항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

    제 32조
    2항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한다.

    제 34조
    1항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제 119조
    2항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헌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을 처벌하라

    헌법은 경쟁사회가 미덕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민주국가라고는 명시해도 자본주의 국가라고는 말하고 있지 않다. 중소기업과 농어민과 사회적 약자는 보호해도 대기업과 재벌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고는 말하고 있지 않다.

    헌법은 다른 모든 법들의 기준이 되는 법이다. 헌법이 다른 법률들보다 상위에 위치하는 이유는, 이 나라에서 헌법이 잘 지켜지면 다른 법률을 어길 일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이 보장되고, 고용이 안정적이고, 정치가 국민의 뜻을 잘 따르고, 누구도 억울하지 않다면 사람들이 시위하러 거리로 나설 일이 없다. 밤에 자는 사람을 방해하거나, 교통을 방해하거나, 기물 점거나 건조물 침입을 할 일도 없다. 누군가 억울하게 생존을 위협받지 않는다면 그를 도우러 남의 집 담을 넘을 일도 없다는 이야기다.

    위의 사유로 감옥에 간 사람들은 국가가 지켜주지 못한 헌법의 가치들을 수호하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이다. 이 점이 법정에서 부디 분명해지길 바란다. 더는 경쟁 시스템의 폐해로 인해 스무 명이 죽음을 택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사람을 살릴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억울하다 말할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감히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를 품고 사랑할 자유가 있기를 바란다.

    감히, 법정에 말한다. 헌법을 지키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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