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장난 전철, 공포 추위의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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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2월 02일 02: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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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12일, 오전 7시 40분 군포역.

    서울역 급행 전철이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 방송에 일반 전철을 탔다. 이른 출근시간인지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영하 20도의 맹추위가 몰아닥쳤지만 따뜻하고 안전한 전철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갑자기 전철이 멈춰 섰다. 서울역에서 전철이 고장을 일으켜 지연 운행되고 있다는 여성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다행히 수리가 끝났지만 열차 간격이 좁혀져 늦어지고 있다고 친절하게 전한다.

    2010년 1월 4일 폭설로 인해 1호선 전철 운행이 중단돼 전철역에 갇혔던 악몽이 떠올랐지만, 전철을 고쳤다는 소식에 안도하며 기다렸다.(폭설로 인한 지각보다 더 서글픈 전철역 풍경)

    같은 내용의 안내 방송이 이어지고, 전철은 계속 철로 위에 서 있었다. 불안감이 엄습해지기 시작했다. 15분이 지나서야 다음역인 금정역에 도착했다. 금정역은 환승역. 4호선으로 갈아탈까 망설였지만 곧 출발한다는 기관사의 안내가 들려왔다.

    금정역을 출발한 전철은 명학역과 안양역을 거쳐 관악역까지 가는 데 40분이 걸렸다. 평소엔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다. 전철을 탄 승객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직장으로 전화를 걸고, 카톡을 날리고, 문자를 보내고…. 고장 난 전철 수리가 다 끝났다는데 이렇게 지연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사진=박점규

    8시 50분 석수역.

    기관사의 안내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고장으로 전철을 더 이상 운행할 수 없다며 모두 내리라고 말한다. 전철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한꺼번에 전철 플랫폼으로 쏟아졌다. 안내판을 보니, 다행히 다음 전철이 전 역에 도착해 있었다.

    10분 쯤 지나고 전철이 들어왔지만 절반밖에 태우지 못하고 떠난다. 암담하다. 내려서 버스를 찾아볼까 망설이다 아득해져서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 다들 비슷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곳곳에 전화를 걸고 인터넷을 뒤적인다.

    한참을 기다려 다시 들어온 전철을 짐짝처럼 포개져 간신히 탔다. 금정구청역에 도착한 전철이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기관사의 안내 방송이 나온다. 구로역까지 모든 전철역에 있는 전철이 움직일 수 없어 열차를 더 이상 운행하지 못한다는 내용이다.

    9시 10분 금천구청역.

    금천구청역은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수천 명의 승객들이 좁은 승강장을 지나 전철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수시로 오가는 KTX에 치일 정도로 플렛폼은 미어터졌고, 열차에 주의하라는 다급한 안내 방송이 이어졌다.

    금정역으로 돌아가서 4호선 전철을 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헛수고였다. 내려오는 전철도 다니지 않았다. 곳곳에서 아우성이 터졌고, 비명소리가 들여왔다. 짐을 든 한 할머니가 가본 적도 없는 전철역 계단에 위태롭게 서서 사람들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계셨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었지만 전철역에는 단 두 명의 역무원뿐이었다. 그들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사람들의 질문과 비난의 화살을 받아내고 있었고, 위태로운 할머니를 도울 손길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종로3가에서 철로 탈선 사고가 일어났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사고가 어디서 어떻게 발생했고, 언제쯤 정상화될 수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지 않느냐는 항의가 계속 이어졌다. 뒤늦게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라는 방송이 승객들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한파에 대비해 철로를 보수하고, 전동차를 꼼꼼하게 점검해야 할 많은 지하철, 철도 정비노동자들은 어디에 있을까? 위급한 상황에서 승객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안내해야 할 역무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명박 정부와 철도공사가 ‘철도 선진화’라며 5,115명의 직원들을 내쫓은 이후 철도, 전철 사고가 계속되는 건 우연의 일치일까? 철도공사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 한나라당으로 출마한다는 허준영 전 사장은 ‘지옥철’을 타보기나 했을까?

    금천구청역 바깥은 마을버스와 택시를 타려는 승객들의 전쟁터로 돌변했다. 휘황찬란한 금천구청 건물 주변이 아수라장으로 변했지만 그 흔한 경찰차 한 대도, 경찰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버스도 타지 못한 사람들이 7호선과 연결된 가산디지털단지역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2월 2일 아침, 끔찍했던 4시간 전쟁은 끝났지만 공포의 악몽은 깊이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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