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경, 민주통합당으로 가야 한다정당 활동가 말고 평조합원 눈으로
    By
        2012년 02월 01일 01:07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조합원으로서 회비를 납부하는 것이 활동의 전부였지만, 청년유니온 창립 초기부터 최근 비례대표 출마와 관련된 논의를 곁에서 지켜본 사람의 입장에서 김영경 청년유니온 위원장의 비례대표 출마에 대해 몇 가지 견해를 밝히려 한다.

    민주통합당 후보냐 불출마냐

    김영경의 정치 참여에 대해 판단하려면 다소 거창한 주제들을 피해갈 수 없다. 진보정당 운동의 실질적 종말과 한국 정당정치의 미래,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현황 등등. 글을 쓰는 나는 물론, 청년유니온의 활동가들도 이미 이러한 주제들에 대해 토론하고 나름의 판단을 내리고 있다. 당연히 출마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각각의 정치적 견해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굳이 이런 큰 이야기들까지 한꺼번에 다룰 필요는 없다. 이 글에서는 다소 기계적이지만, 효과적인 토론을 위해 김영경과 청년유니온에게 가능한 두 가지 선택지를 서로 비교하며 검토하는 방식을 택하도록 하겠다. 즉,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 혹은 불출마.

    선택지를 두 가지로 줄인 것은,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 출마는 애초에 가능한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진보정당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첫 번째 과제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민주통합당보다는 진보신당이나 통합진보당을 택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얼마 전 노회찬 대변인이 청년유니온에게 한 조언처럼). 충분히 합리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 먼저 논의의 전제로 삼아야 하는 것은, 판단의 주체는 진보정당 활동가가 아니라 청년유니온과 김영경이며, 그 판단은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정당 활동가들이 자신의 입장과 청년유니온의 입장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애써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민중의 보편적 이해를 대표한다’는 오래된 착각의 반복일 뿐이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은 당연히 두 가지 입장의 일치를 자신의 이상으로 삼을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와 진보정당의 입장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온갖 훈수와 훈계들이 쏟아져 나온다.

    통합진보당, 민주통합당에 비해 뭐가 낫나

    김영경의 진보신당 출마는 사실상 의회 진입을 포기하고 외부에서 활동하겠다는 의미인데, 그럴 바에는 굳이 정당에 들어가지 않고 청년유니온 활동을 이어가는 편이 낫다. 그리고 가장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건 통합진보당의 경우인데, 청년유니온의 입장에서 보면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요소를 전혀 발견할 수가 없다.

    두 정당의 정책은 대동소이한 반면, 통합진보당의 실천력이나 의지는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편의점 알바로 등록금을 벌고 있는 대학생에게, 무슨 근거로 민주통합당이 아니라 통합진보당이 당신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통합진보당의 정파 활동가들은 결국 ‘진보정당의 정통성’ 말고는 별로 할 말이 없는 모양인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분당, 그리고 재통합 무산 이후에도 여전히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 뻔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진보정당의 정통성’이 아니라 그저 ‘정파의 정통성’일 뿐이다. 당은 부숴지고 찢겨져도 정파는 건재한 이 비극적 상황! 특히 지난 경향신문 보도 이후, 당원도 아닌 김영경에게 통합진보당 인사들이 쏟아놓은 험한 말들은 그들의 한심한 의식 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그들의 신경질적인 반응 역시 오랜 정파 질서의 결과물인데, ‘감히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냐’는 가부장의 기괴한 피해의식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김영경 위원장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민주통합당 출마 혹은 불출마.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리고 둘 모두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동시에, 상당한 위험 부담도 감수해야 한다. 그럼에도 나는 두 가지 경우를 신중히 검토한 결과,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출마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사람들의 우려에 대해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김영경 출마에 대한 일반적인 우려를 먼저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김영경 출마에 대해 떠올리는 이미지는 몇 가지로 좁혀진다. 먼저 서른 한 살의 나이로 15대 국회에 진출했지만,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김민석. ‘능력있고 참신한 인물이 어린 나이에 정치에 입문했다가 결국 변절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흔한 레퍼토리의 전형이다. 16대 총선의 최연소 당선자인 임종석도 비슷한 사례로 지목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는 노동운동 지도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사람들도 있다. 멀리는 이재오, 김문수부터 최근에는 한국노총 출신으로 한나라당 의원으로 당선된 몇몇 인물들까지. 그러나 이런 경우들을 아무리 분석해보아도, 4년제 대학 지방 캠퍼스를 졸업하고 비정규직 학원강사를 하다가 노조를 만들어, 가난한 청년 세대의 상징이 된 삼십대 초반의 여성 김영경에게 적용할만한 전례는 찾을 수가 없다.

    386 정치인들은 정치에 입문했기 때문에 기성 제도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 학생운동 시절부터 이미 사회의 엘리트 집단을 구성하고 있었다. 김민석, 임종석 같은 인물들의 정치 입문은 386 세대가 자유주의와 시장주의를 충실히 구현하며 사회의 주류 세대로 성장했던 과정과 맥을 같이한다. ‘변절’한 것은 개별 정치인들이 아니라 세대 전체인 것이다.

    정치에 입문한 노동운동 지도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대부분 대기업 정규직 노조 출신들로 이미 충분한 인맥과 자금을 확보했던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변절’이라는 이미지로 떠올리는 사례들 대부분은, 사실상 기득권 집단 내부의 이동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런 경험들을 가지고 김영경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통속적인 정치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청년유니온을 바라보는 또 다른 조악한 시선은, 이들을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어린 활동가’들로 보는 것이다. 청년 유니온은 단지 시기를 잘 만나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정치적 감각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능숙하고 예민하며, 기존의 정당 활동가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수준의 기획력도 가지고 있다.

    ‘나이 어린 활동가’ 걱정 접어두시라

    의회 정치를 오랜 시간 경험한 활동가들이 주변에 충분히 포진해있으며, 다양한 싱크탱크들과 밀접한 연계를 가지고 있다. 그 동안 청년유니온이 보여준 성과는 이런 바탕 위에서 만들어져왔다. 그러니 ‘나이 어린 활동가’들에 대한 걱정은 그만 접어두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나는 이러한 일반적 우려들에 타당한 근거가 결여되어있다고 생각하지만, 보수야당 진입의 위험성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난관과 위험이 매순간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매우 분명히 의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영경의 민주통합당 출마를 주장하는 것은, 청년유니온과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출마가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판단의 기초에는 김영경과 청년유니온을 둘러싼 기본적인 조건들이 이미 고정되어 있다는 사실이 놓여있다.

    청년유니온은 기본적인 성격은 물론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그 활동 방식이나 조직 형태는 기존의 노동조합과 다를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도 매우 다른 과정을 밟아 지금에 이르렀다. 엄밀히 말하자면 청년유니온은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를 위한 프로젝트 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그들은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주목받을 수 있는 이슈를 찾아내고, 주어진 법적 제도적 조건을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 반드시 실물적인 성과를 얻어낸다. 청년유니온의 핵심 요소는 활동가들의 참신한 발상과 뛰어난 기획력이다. 지금의 성공은 그러한 기획력과 한국 사회의 요구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청년유니온이 소를 키울 수 있게 되려면

    하지만 냉정히 예상해보면, 이런 방식의 한계도 명확하다. 새로운 기획의 생산이 중단되는 순간, 활동도 정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프로젝트 집단에게 정체란 곧 퇴보다. 그렇다고 조합원 확장에 주력하면서 안정적인 활동 패턴을 수립하려고 한다면, 기존의 노동조합 모델로 회귀하게 될 것이 뻔하다.

    지금 청년유니온은 활동의 정점에 이르렀지만, 이 말은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경이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정책 생산과 입안’이라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의회에 진출하는 것이 청년유니온에게는 가장 훌륭한 돌파구이자,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다.(얼마 전 김동춘 교수는 창비 논평에서 모두가 정치하러 가면 소는 누가 키우냐고 했지만, 김영경이 정치를 하러 나가야 남은 청년유니온이 소를 키울 수 있다)

    김영경의 의회 활동은 이미 그 기본적인 형식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가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와 실업자를 위한 정책 입안자’라는 역할에서 급격하게 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그 관성을 유지하면서 의정활동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청년유니온과 청년세대의 입장에서 보자면, 청년정책 입안자가 의회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김영경의 의회 진출은 더 나은 선택이 된다. 앞으로의 정치 상황이 김영경의 활동을 크게 제한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 역시 소폭 전진이지 결코 후퇴는 아니다.

    이 글은 ‘도대체 왜 청년유니온의 김영경이 보수 정당인 민주통합당으로 들어가야만 하는가?‘라는, 모두가 생각하고 있을 법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내가 제시한 핵심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청년 정책 입안자 정체성 큰 의미

    먼저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을 제외하고, 민주통합당 출마와 불출마라는 두 가지 선택지만 고려할 것. 그리고 통속적인 정치 레퍼토리에서 벗어나 김영경 출마를 평가할 것. 마지막으로 청년 실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면, 민주통합당 출마가 불출마보다 어떤 경우에도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김영경이 ‘청년 정책 입안자’라는 기본 정체성만 버리지 않고 4년을 활동한다면,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출마의 근거는 충분하다. 설사 그녀가 임기 후에 결국 기존 체제에 포섭된다고 해도 말이다. 도대체 지금이 아니라면,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이 의회에 진출해 자신이 기획한 정책을 입법할 수 있는 때는 언제란 말인가? 울타리 넘어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새로운 길이 열려 있고, 모든 경우의 수와 위험을 고려해도 잃을 것보다 얻을 것이 많은데, 그 울타리를 넘지 말아야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