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권은 온건하게, 변화는 급진적으로21세기 사회주의, 다른 것과 배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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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31일 06: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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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실정과 조건에 맞게 정치적으로는 민중참여, 경제적으로는 혼합경제, 사회적으로는 서민복지, 문화적으로는 민족정체성, 대외적으로는 대미자주를 강력히 추진하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정부의 담론과 정책을 평가한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 진보세력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논문이기에 독자들께서 ‘귤화위지(橘化爲枳)’(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의 지혜로 일독하시길 권한다. 이 글의 필자는 스티브 엘러 베네수엘라 오리엔테 대학 교수이며, 진보적인 매체 <Latin American Prospective>에 최근 실린 것이다. – 번역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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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진화 과정

    첫 번째 대통령 당선을 위한 차베스, 모랄레스, 코레아의 선거 공약은 장기적인 사회경제적 변화를 덜 강조하고 보다 온건한 목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들의 주요 캠페인 제안은 민중 참여에 기초한 민주주의의 재구성을 위한 제헌의회 소집이었다. 예를 들어 차베스는 1998년 대선에서 외채문제에 대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주문해 일방적 파산선언에 대한 국민들의 두려움을 가라앉혔다.

    모랄레스는 2005년 대선 이전 시기-사회주의운동당(MAS)이 등장해 자신의 지역기반인 북부 코차밤바에서 벗어나 세력을 확대할 시기-1990년대 사회운동이 공식화했던 코카 재배와 탄화수소 국유화라는 급진적 요구를 내세웠다. 그러나 대통령 모랄레스와 부통령 가르시아 리네라가 "공동체 사회주의"를 표방하기 전에는 "안데스 사람들의 자본주의"를 옹호했다.

       
      ▲왼쪽부터 차베스, 코레아, 모랄레스 대통령. 

    코레아도 마찬가지였다. 2006년 콜롬비아의 인권침해를 비판했지만 콜롬비아 혁명 게릴라의 체포와 그 나라 당국으로의 인계를 약속했다. 비록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친구이지만 차베스의 볼리비안 운동에 대한 추종을 부인하기도 했다. 그리고 에콰도르 경제의 달러화를 비판했지만, 시스템의 변화를 실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같이 세 대통령은 점진적이지만 꾸준한 급진주의를 추구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합의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결합시킨 일종의 양보와 타협으로 결코 회귀하지 않았다. 세 대통령이 모두 권력의 통합과 정치적 경제적 혁신을 위한 초기 헌법 제정을 광범위한 민중의 판단에 맡겼다.

    선거 승리를 급진화의 계기로

    일반적으로 대통령들은 매개 정치적 승리로 창출되는 계기를 이용하여 변화 과정을 심화시키고,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그들 역시 선거 승리를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민중들의 명령으로 해석했다.

    베네수엘라에서 2001년 차베스의 토지개혁, 석유산업 국가 통제와 관련된 입법화, 2005년 개인 재산에 대한 재정의, 2007~2008년 전략 부문의 기업 몰수는 더 급진적인 단계를 위한 무대를 깔아놓은 것이다.

    모랄레스는 취임한 지 불과 몇 개월 안에 놀라운 대립 상황에서도 새로운 국유화 법률을 받아들이도록 외국인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56개 천연가스 시설과 2개 주요 정유기관을 인수하라고 군대에 명령했다. 코레아는 대선 이후 몇 개월 안에 의회 해산을 주장하고 전통적 정치엘리트를 대표하는 의회 다수파와 충돌하게 됨으로써 제헌의회 제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급진화했다.

    초기 온건주의가 점차 급진주의로 이동하는 동력은, 공산당이 맑스주의 이념에 기초하여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목표를 가지고 집권했던 소련, 중국과 다르다. 또 급진주의가 혁명 초기 3년 동안 가속도로 일어났던 쿠바와도 다르다.

    진보집권세력은 반신자유주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권력의 미래가 과거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를 불식할 잘 정돈된 프로그램을 갖지 못한 보수 야당에 비해 유리한 위치에 섰다. 정부와 그 반대파인 보수 세력을 차별화하는 가장 큰 이슈는 민영화 관련이었다. 진보집권세력은 민영화 계획을 대대적으로 중단하여 반신자유주의를 입증하는데, 반대파 주요 야당들은 이 주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하거나 전혀 입장이 없었다.

    좌우 구별의 요체는 민영화에 대한 태도

    진보정권의 우측에 있는 모든 정당들은 민영화 철회를 사실상 비판하는 데 집중했고 이로 인해 조성된 정치적 양극화는 국유화 조치에 대한 비판적 지지, 중도 좌파적 시각을 배제했다. 정치적 다양성 가운데 좌측 공간을 축소해 야당 측에 상처를 준 것이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에서 MAS, Causa R, Podemos 같은 이전 좌파정당들은 반 차베스 진영 안에 나머지 중도 및 보수 야당들과 뒤섞여 뚜렷한 독자노선을 포기했다. 이와 비슷하게 에콰도르에서도, 2006년 대통령 결선투표에서 코레아를 지지했던 사민주의 성향의 ‘좌파민주당(ID)은 그의 연임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야당들과 같은 입장을 취했다.

    세 정부가 추구하는 사회주의로의 점진적 접근은 국가를 부르주아의 도구로 간주하고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을 추구하는 극좌파 정치 활동가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세 정부와 그 좌쪽 비판세력 사이의 충돌은 새로운 진보집권의 특성을 보여준다.

    세 정부의 지지자들은 진보세력의 늘어나는 공공 일자리를 근거로 그람시의 ‘진지전’에 따른 국가의 점진적 변화를 생각하고 있다. 이 전략에 의해 진보세력은 공공행동의 활동가들 존재와 국가에 끊임없이 붙어 다니는 내부 모순을 이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트로츠키 신봉자 등 교조적인 맑스주의자들은 은행, 대토지, 독점기업을 몰수한 시점에 ‘국가의 소멸’의 필요성을 제기한 레닌의 교시를 거론한다. 또한 공산주의자들과 다른 전통적 좌파들은 이전 세기 좌파들의 투쟁의 전취물을 무시하는 "21세기 사회주의" 개념에 비판적이다.

    관료주의 특권을 뿌리 뽑는 ‘혁명 안의 혁명’

    또한 세 정부의 좌측에 있는 일부 비평가들은 무정부주의적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자발적인 사회운동과 일반 서민들로 구성되어 있는 제헌 권력은, ‘정치적 계급’만이 아니라 그대로 국가 관료를 상징하는 ‘구성 권력’과 불가피하게 충돌하게 된다. 이는 관료주의 특권을 뿌리 뽑는 ‘혁명 안의 혁명’을 요구한다.

    이 입장은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옹호하는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의 토착 원주민운동에서 그 예를 찾는데, 이들 원주민운동은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대규모 광산 개발을 추진하는 모랄레스와 코레아의 시도에 저항했다.

    또 일부 사회운동은 집권 좌파의 선거 전략과 배치되는 ‘정체성 정치’를 강조한다. 문화적 정체성을 포함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원주민 지도자들 중에는, 모랄레스의 코카 생산 제한 조치를 맹렬히 반대했고 자격을 제대로 갖춘 국유화를 주장했던 볼리비아 대통령 후보, 펠리페 퀴스페도 있다.

    교조적인 맑스주의자, 신 무정부주의자들이 새로운 사회운동의 왼쪽에 있어 세 대통령과 그들의 지지자들의 독특하고 이색적인 특징이 더 잘 입증된다. 변화를 거부하는 관료들이 국가영역을 대표하는 현실을 잘 알고 있으나, 더 왼쪽에 있는 정치 활동가들이 주창하는 중국 문화대혁명 노선 같은 대대적인 숙정작업에 돌입하지는 않는다. 세 대통령의 지도력은 매우 폭넓고 다양한 운동을 생성시키고 있음에도 그 전체의 통일단결과 수평적, 수직적 소통을 잘 하고 있다.

    외교관계

    ‘다극화세계’를 지향하는 세 정부의 전략은 여러 가지 점에서 비슷하고 20세기 사회주의 정부들의 대외정책과는 다르다. 다극화세계라는 문구는 차베스가 대통령을 시작하면서 반제국주의와 미국 지배 반대의 완곡한 어법으로 주창했다.

    이 개념은, 베네수엘라와 에콰도르의 OPEC(석유수출기구), 코레아가 2009년 이 기구 창립 이후 대통령이 되었던 UNASUR(남미국가연합) 같은, 상호 이익을 위한 또 다른 국가연합을 강화하자는 의미다. 이와 같이 다양성에 기초한 단결 전략은, 남반구 국가들을 공통의 목표와 요구를 중심으로 묶어내기 위해 민족, 종교, 정치의 차이를 초월해 1960년대 초 시작된 티토, 네루, 나세르, 은크루마 주도의 비동맹운동을 복원하고 있다.

    ALBA와 CELAC ; 진보 블록과 중남미 통합의 이중 접근

    본질적으로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는 ‘아메리카 인민을 위한 볼리비안 대안(ALBA)’으로 자기 나라들을 스스로 단결시키는 동시에 넓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의 통합에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중 접근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나라의 전략은, 가장 가까운 공산주의 동맹국들과 ‘민족해방’을 표방하는 반제 민족주의 성향의 제3세계를 구별했던 냉전시대 소련의 대외정책과 구별된다.

    또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대통령들은 자신들을 반자본주의자로 규정해 미국과 자주 충돌하지만,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파라과이 등의 온건 정부와 함께 행동한다. 21세기 초반은 냉전시대의 첨예한 대치상황과 다르고 중남미의 대미 자주성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그래서 급진적인 중남미 나라들도 1960년대 쿠바의 고립적 상황과는 다르게 온건 국가들과 긴밀한 유대를 가질 수 있다. 차베스가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르과이, 파라과이의 지도자들 같은 온건주의자들에 대해 증언했듯이, 60년대 쿠바는 중남미 전역의 게릴라 전쟁노선을 지지해 아르헨티나의 아르투로 프론디시 같은 온건 대통령들을 제압하거나 중립화시킬 가능성을 잃었다. 이렇게 지난 세기 라틴아메리카는 최근 몇 년처럼 통합되지 못했다.

    다극화시대 대외전략 ; 자주성에 기초한 다양성

    첫째, 온건 정부들은 급진 국가들의 불안정과 고립을 함께 극복하기 위해 비교적 적극적인 태도를 취했다. 예를 들어 브라질,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이 위협받더라도 2006년 모랄레스의 탄화수소 산업 국유화로 인한 첨예한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중재에 나섰다. 그 후, 남미국가연합(UNASUR)의 모든 회원국들이 통화협정에 서명했고, 이 통화선언은 2008년 볼리비아의 모랄레스 정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막아냈으며, 2년 후 에콰도르가 쿠데타 시도에 직면해서도 비슷한 역할을 했다.

    둘째, 급진적 입장은 오히려 온건한 입장의 단점을 보완했다. 예를 들어 2009년 6월의 온두라스 쿠데타 이후 1년 6개월 동안, 남미국가연합(UNASUR)의 온건 국가와 급진 국가는 이 새로운 정권의 미주기구(OAS) 가입을 막았다. 온건 국가들이 가입 조건을 내걸고, 급진 국가들이 새 정권의 합법성을 물었다.

    셋째, 라틴아메리카 통합 움직임은 급진 대통령들과 온건 대통령들로 하여금 남미국가연합과 그의 더 폭넓은 계승인 ‘라틴아메리카, 카리브 국가들의 공동체‘(CELAC)에서 공동 관심사를 둘러싸고 중도 대통령들과 함께 하도록 만들었다.

    세 대통령의 외교정책 담론과 내용은 세계화 추세 속에서 다듬어졌다. 그들은 반세기 전의 모택동주의의 특징인 절대적인 자급자족과 자립경제의 목표에서 벗어나 있다. ‘우리 아메리카 인민을 위한 볼리바르 대안’(ALBA)과 ‘뻬뜨로까리베'(Petrocaribe=베네수엘라 석유를 카리브와 중앙아메리카 나라들에 값싸게 제공하는 조약) 프로그램은 바로 이러한 노선에 따른 것이다.

    더구나 세 대통령은 국유화를 열렬히 주장했음에도 세계화 압력으로 국제정책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예를 들어 차베스는 외채 상환 중지나 국제통화기금(IMF) 탈퇴를 감행하지 못했으며, 최근 라틴아메리카 좌파 연구 편집자에 의하면, 모랄레스도 미국시장 접근정책을 유지했다. 이러한 전략, 정책, 담론의 추진력은 스탈린시대 소련의 지도력으로 옹호되었던 ‘일국사회주의’ 이론과는 배치된다.

    담론과 비전

    2005년 이후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지도자들은 자본주의의 대안으로서 21세기 사회주의라는 공통적인 개념을 주창했다. 2009년 1월 볼리비아 신헌법의 비준에 따라 모랄레스는 지역자율성을 명문화한 ‘공동체 사회주의’의 탄생을 선포했다.

    모랄레스, 차베스, 코레아는 서구의 통념으로 볼 때 이미 죽은 모델로 치부되는 사회주의를 라틴아메리카의 구체적인 실정과 조건에 맞게 추진한 것이다.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과정은, 1959년 이후 쿠바 사회주의의 궤적과는 아주 대조적으로 자본주의 생산관계가 경제활동의 지배적인 양식으로 된 부르주아 민주주의 사회의 변수 속에서 이뤄지고 있다.

    예를 들어 볼리비아 부통령 가르시아 리네라는 사회주의가 시장경제의 존재를 배제하지 않으며, 좌파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목표에 동의하지 않는 자본가들과도 대화하길 원한다고 말했다. 차베스는 정부가 이를 비즈니스 부문과 밀접히 결합된 ‘전략적 동맹’이라 말했다.

    국영기업과 민간기업의 혼합

    베네수엘라의 혼합경제는, 생활필수품의 부족과 인플레를 피하는 수단으로 특정 부문에 허용된 민간기업과, 이들과 경쟁하지만 이들로 대체하지 않는 국영기업들로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나라의 경제는 몇 가지 상품의 미국시장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또한 사회문화적 변화도 정치적 급진주의와 아직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화려한 소비, 개인주의 등의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 소비자 중심의 사회를 유지하고 있으며, 개인 재산이 아직 높게 평가되고 있다. 세 나라의 보수정당들은 민간 언론, 성당, 미국의 역할을 포함하는 총체적인 동맹에 의지하고 있다.

    짧게 말해 1917년 이후의 소련, 1949년 이후의 중국, 1959년 이후의 쿠바와 다르게, 21세기 사회주의를 촉진하는 노력은 이전 사회주의의 전통적인 가치와 제도가 약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매우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 영역에서 강력히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 전위 부정, 광범한 민중 통합

    칠레의 사회학자, 정치학자, 언론인, 활동가인 마르타 하네커가 지적한 바와 같이, 21세기 사회주의는 소련, 동구와 그 밖의 나라 사회주의 건설에서 나타난 오류에 대한 인정에 기초하여 과거 좌파전략의 재검토로부터 탄생한 것이다.

    새로운 관점은, 전위정당의 빼어난 역할과 라틴아메리카 사회 현실에 거의 적용할 수 없는 교조적 이론을 부정한다. 또 노동계급의 영도적 역할과, 도시빈민, 비공식 부문, 지역공동체, 원주민, 아프리카 후손, 여성 등 광범한 민중을 통합시키는 노동계급의 능력을 의문시한다.

    노동계급 전위주의에 대한 부정은 다른 그룹들과 긴밀히 협력하는 정치적 공간, 변화를 갈망하는 대중의 정치적 힘을 창출했다. 볼리비아의 경우 이 접근의 핵심적 측면은,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 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평민 사회운동의 자기표현" 프로젝트이다. 특히 이 전략은 좌우의 정치조직이 자체 정치프로그램을 가동하는 원주민조직을 잘 다루어온 볼리비아와 에콰도르에서 뚜렷하다.

    모랄레스는 독일 맑스주의자 하인츠 디테리히와의 인터뷰에서 “노총 지도자들이 언제나 인디언들은 노동자들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혁명의 건설자이고 그들이 혁명의 주인이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지식인들과 노동자들이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볼리비아 노총(COB)의 조직노동자들과 원주민들의 힘 관계의 변화를 평가했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 21세기 사회주의는 사회복지, 동포애, 사회연대

    자본주의가 개인주의를 강조하는데 비해 21세기 사회주의는 사회복지, 동포애, 사회연대를 강한 도덕윤리의 구성요소로 하고 있다. 이 모델은 가톨릭과 심지어 해방신학으로부터의 영감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의 지도자들도 여전히 종교적 신념을 공언하고 있다.

    코레아는 영국학자 헬렌 야페(<체 게바라 : 혁명의 경제학>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해방신학과 사회주의의 상호관계를 언급하면서 "21세기 사회주의는 무신론자들과 천주교 신자들이 모두 결합될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카톨릭 신자이며, 그것이 사회정의를 추구하는 나의 신념을 부정하지 않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1세기 사회주의는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정치현실, 사회문화적 경험으로부터 상상력을 얻고 있다. 과거의 급진적 인기영합주의(populism)처럼, 21세기 사회주의는 전통적 좌파와 사회민주주의정당(휠씬 더 까다롭고 수입된 구호에 의존하는)보다 역사적 상징을 폭넓게 의인화하고 대중적 인기를 중시한다.

    예를 들어, 페론주의자들이 주안 마뉴엘 로사서와 주안 파쿤도 퀴로가를 재해석하듯이, 차베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을 미화하고 민족주의 행동을 강조하기 위해 시프리아노 카스트로(베네수엘라 군인·정치가) 같은 19세기~20세기 초 지도자들의 모순을 간과하려 하고 있다.

    세 나라 지도자들은 문화, 역사, 인종, 성별, 국적, 정체성에 대한 이전의 대표성과 미래에 대한 고정관념에 도전하는 국민들의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새로운 정치운동은, 낡은 질서를 정당화했던 종래의 지혜를 거부하는 대안적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역동적인 과정이 현재 사회운동과 정치권력을 사회정치적 투쟁의 전통으로 연결시킨다. 과거를 반추함으로써 볼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에서 역사적으로 사회변화를 위해 투쟁해온 원주민, 아프리카 후손, 농민, 여성, 노동자 등 지금까지 소외된 민중들의 통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원주민운동은, 그들 자신을 투팍 카타리와 투팍 아마루(스페인 식민 당국에 맞서 대중운동을 이끈)가 이끌었던 투쟁의 상속자로 여긴다. 과거와 현재의 투쟁을 연결함으로써 공식적 역사기록에서 제외된 저항의 유산을 이어받는 것이다.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어로 "뒤를 보면서 앞으로 걷는" 것으로 표현되는 이 과정은, 역사적으로 소외된 목소리를 통합시키고 사회변화를 위한 현재의 힘에 권력을 부여하는 감각을 만들어낸다. 모랄레스가 2006년 5월 1일 볼리비아 천연가스의 국유화를 선언했을 때, "투팍 카타리, 투팍 아마루 같은 우리 선조들의 투쟁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함으로써 과거로부터의 영감을 명시적으로 드러냈다.

    혁명전통에 대한 계승과 실정∙조건에 맞는 혁신

    21세기 사회주의의 지적 교리는, 세 나라 정부 지도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페루 호세 카를로스 마리아테귀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다. 인디아아메리카 사회주의를 제안한 마리아테귀는 아메리카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받아들였다. 노동계급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그는 더 광범위한 민중투쟁과 민족해방투쟁의 일환으로 원주민과 농촌공동체의 결합을 추진했다.

    마리아테귀는 이런 노선에 따라 스페인 정복 이전부터 내려오는 집단주의에 대한 원주민의 유산은 혁명정부 하의 사회주의 건설을 촉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식민지 경험에서 물려받은 경제체제에서의 인종과 계급의 상호관계, 그리고 자본의 힘에 맞서는 폭넓은 투쟁전선 구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세 나라에서는 남성 지배의 역사로 인해 전통적으로 간과되어온 여성에 대한 통합 노력도 진행되었다. 그 결과, 19세기 독립과정에서의 여성의 역할, 사회정치적 투쟁에의 여성들의 기여, 20세기 노동과 정치투쟁에의 여성 참여는 점차 늘어났다.

    에콰도르에서는 몇십 년 과거를 반추하는 과정의 일환으로 독립운동 지도자 마뉴엘라 사엔즈가 재평가를 거쳐 중요한 인물로 등장하고 있으며, 그녀의 시몬 볼리바르와의 관계에 대해 간단하게 볼 수 없게 되었다. 대령 계급장을 달게 한 피친차와 아야쿠조 전투에서의 용기 있는 행동 등 그녀의 남미 독립운동 공헌은 일부 사회운동의 감탄을 자아내고 있다.

    9월 5일을 국제 원주민 여성의 날로 1983년 지정하게 한, 1781년 라파즈 원주민 반란을 주도한 바르토리나 시사는 21세기에 더 존경받고 있다. 사엔즈와 시사의 경우, 토착민들과 원주민들이 지역사회 투쟁에의 여성들의 참여에 더 많은 관심을 갖도록 만들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후고 차베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베네수엘라 역사와 그 속의 가장 지배적인 인물, 시몬 볼리바르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 의문을 던진다. 새로운 정치담론은, 인종 평등을 주장한 다른 인물들을 점점 더 강조하지만, 학자들은 프란시스코 미란다, 안데레스 벨로, 시몬 로드리게스 같은 엘리트 지도자들을 기념하는 공간도 열어놨다.

    인종평등을 주장했던 인물 가운데, 베네수엘라의 라라 주(카라카스와 메리다의 중간쯤에 있는 지방)의 부리아에서 반란을 주도한 ‘흑인’ 미구엘, 1730년과 1795년 스페인에 맞선 봉기를 각각 이끌었던 아프리카계 베네수엘라인, 주안 안드레스 로페즈 델 로사리오와 호세 레오나르도 크리노스, 1797년 반 스페인 투쟁을 모의했던 마뉴엘 쿠알과 호세 에스파냐가 있다.

    시몬 볼리바르의 견해는 지금 과거와 현재의 베네수엘라 정치와 사회 과정에 관한 대중토론의 원천이다. 민주주의, 인종, 국제관계, 사회상황, 공공정책에 대한 볼리바르의 생각은 정부와 야당의 입장을 모두 강화시키고 있다. (번역=정성희 소통과 혁신 연구소 소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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