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있는 한 희망버스 멈추지 않아
By
    2012년 01월 31일 05:48 오후

Print Friendly

직장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택한 사람들의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생목숨을 끊을 결심을 한 그네들이 보았을 이 땅의 마지막 풍경이 어떠했을까. 치솟는 등록금 때문에 공부를 중단하고 막노동판으로 떠밀려 가는 젊은이들을 볼 때도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진정 이 나라가 평등한 교육의 권리가 보장된 땅인가, 그저 자조만 했었다.

소 값 폭락으로 갓 태어난 어린 송아지를 굶겨 죽여야만 하는 농민들의 소식을 들을 땐 또 어찌했던가. 죄의식에 사로잡힌 그네들의 말에 귀를 틀어막았다. 집단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나이 어린 아이들을 볼 때 나는 차마 손을 건네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보았을 어른들의 모습은 또 어떠했으랴.

말을 잃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두 손이 결박당한 사람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깊은 자책과 무기력 속에 늘어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채로 피폐해지고 파괴되는 내 인간성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모욕적이고 치욕적인 삶에 넌더리가 났던 적이 없었다.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견딜 수 없이 부끄러웠던 적이 없었다. 이 정권이 비웃듯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내게 인간이 인간으로서 얼마나 굴욕을 견뎌낼 수 있는지 그 한계점을 시험하고 있는 동안 내내……. 절망의 맨 밑바닥을 보았다.

   
  ▲사진=진보신당

나는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까마득히 잊어가던 ‘금관의 예수’를 다시 기억해냈다. 지독한 고립감에 빠져 나는 그 노래를 속으로 목청껏 부르곤 했다. 무엇을 할까, 대체 무엇을 해야 한단 말인가. 더듬이를 잃은 촉수동물처럼 허둥거리면서, 그러면서도 희망을 꿈꾸었던가?

그렇다, 그랬다. 절망 속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을 꿈꾸지 않으니까. ‘희망버스’는 절망의 낭떠러지에 간당간당 매달려 있던 위태로운 나의 인간성에 내려온 동아줄이었다. 여름 한낮 뜨거운 열기 속에 늘어진 내 정신을 적셔주는 한 줄금 내리는 세찬 소낙비였다.

희망버스에서 나는 나랑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진정 ‘우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아직까지 많이 있다는 동료의식을 보았다. 그 ‘우리’는 모두 한 방향으로 직진해 나아가는 데 익숙해져버린 이 세상에서 서로가 다른 방향에서 한꺼번에 쏘아올린 화살과도 같았다. 쏘는 위치는 다를지라도 목표로 하는 과녁은 하나였다.

일반적으로 말해 ‘희망버스’는 지상 35미터 높이의 85호 크레인에서 온몸을 바수어 지켜내고자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의지와 함께하는 것이지만, 개별적으로 따지자면 그것은 우리들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

짓눌리고 억압당해오는 동안 켜켜이 쌓인 패배의식을 깨뜨리고, 너와 내가 다름 아닌 하나라는 공동체적 의식에 새 숨을 불어넣어주는 것이었다. 얼마나 바라고 갈망해왔던 소중한 가치인가. 희망버스는 그런 우리의 애탄 바람과 갈망에 불을 댕긴 불씨였다.

희망버스는 이제 갓 피어오르기 시작한 불씨이다. 얼마나 어렵게 살려낸 불씨인가. 비바람과 눈보라, 태풍과 쓰나미, 그 어떤 도전에도 꺼지지 않도록 지켜내야 할 책임은 이제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다. 오늘도 우리는 곳곳에서 절망을 목격한다. 희망버스가 멈출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이다.

                                                  * * *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