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버스의 제도화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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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30일 03: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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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글머리에

    한진중공업의 생산 기지 해외 이전과 이에 따른 대량 해고, 김진숙 씨의 크레인 고공 농성 그리고 연이어 전개된 ‘희망버스’ 운동처럼 지난 한 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첨예한 이슈는 아마 없을 것이다.

    필자는 ‘한진중공업 사태’의 핵심을 ‘대기업의 생산 기지 해외 이전’과 이에 따른 기업 구조 조정 및 대량 해고라는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과연 이 문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수 있을지 여부를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를 던져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통해 필자는 대기업들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는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을 고안하고 그것들을 실현 가능한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의견을 나누어 보고 싶다.

    2. 대기업의 생산 기지 해외 매각 또는 이전의 경향, 인센티브, 그리고 이에 따른 문제들

    우선, 대기업들의 생산 기지 이전과 아웃소싱 및 이에 따른 대량 해고의 문제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을 먼저 지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는 1970년대 중반 이후의 오일 쇼크, 1980년대 이래 레이건 행정부가 취한 일련의 금융, 조세 및 재정 정책들이 미국 대기업들의 생산 기지 해외 이전을 부채질하고 결과적으로는 자국 제조업의 공동화 현상을 야기하였다.

    일본의 경우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과 강제적으로 합의한 환율 조정(루브르, 플라자 합의 등)을 거치며 일본의 대기업들이 대만을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들로 생산 기지를 이전시키는 현상이 급속하게 나타났다.

    한국에서 이와 유사한 현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동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진행된 기업 및 금융 부문의 구조 조정을 거치면서였다. 당시 한국의 대기업들은 기업의 자산과 부채를 급속하게 재조정하면서 실물 부문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고용의 규모와 구조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대기업들이 소비 시장 접근의 용이성과 저임금 노동력을 찾아 생산 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면서 한진중공업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한국처럼 수출을 주도로 한 소규모 개방 경제 체제는 외국 시장의 여건에 따라 불가피하게 가격과 생산량의 변동성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국민경제 내부의 유효수요를 진작시켜 기업이 이윤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시장에 물건을 내다 팔아서 이윤을 얻는 구조를 지닌 나라에서는, 대기업들이 생산 조직을 경량화하고 특히 노동 시장을 유연화하는 것이 불가피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치열한 가격 경쟁에 시달리는 대기업 경영자들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값싼 노동력을 이용할 수 있는 해외로 생산 기지를 이전시키고, 이것을 통해 기업의 기대 수익을 높히고 재무 구조를 개선하려는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3. 기업의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

    그러나 이와 같은 민간 기업들, 특히 대기업들의 투자 및 경영 전략이 아무런 제재없이 진행될 경우 한국내 노동 시장이 악화되고 빈부격차는 심각하게 벌어지며 장기적으로 거시 경제의 안정성조차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이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다양한 법적, 제도적 방안들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1) 정부 통계와 기업 공시 제도의 개편

    우선,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의 통계청과 노동부로 하여금 기업의 생산 기지 해외 이전과 해외 매각, 분사 및 업무 아웃소싱, 그리고 이에 따른 대량 해고에 관한 설문 문항을 신설해서 현재 진행하고 있는 고용과 임금에 대한 노동 통계에 적극 반영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고용의 안정성, 임금과 노동 시간 그리고 실업과 고용 상태에 대한 각종 지표에 기업의 생산 기지 해외 이전과 매각 및 아웃소싱 등이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를 분석할 수 있는 기초적인 정보를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참고로, 미국의 노동 통계국(Bureau of Labor Statistics)과 상무부 (Commerce Department) 산하의 센서스국(Bureau of Census), 그리고 유럽연합의 통계청(Eurostat)은 이와 관련된 자료들을 이미 오래 전부터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통계청이 해외의 사례들을 참조하고 이미 존재하는 설문 문항과 통계 기법을 원용해서 한국적 상황에 맞게 추가적으로 설문 문항을 만들기만 하면 거의 아무런 기술적 어려움 없이 관련 정보를 축적하고 공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예를 들어, 100인 또는 300인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들은 반드시 해당 기업의 투자와 이윤 및 고용 상황을 분기별 또는 연간 보고서를 통해 공시하도록 법으로 정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주식 시장에 상장된 기업들로 하여금 해당 기업의 재정 상태에 대한 분기별 또는 연간 보고서에 고용된 전체 노동자들의 수와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 비율, 임금과 보너스 지급 수준 그리고 대량 해고 여부와 규모 등을 공시하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이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해고할 때 그것이 노동자들의 이익에 준한 자발적인 것이었는지 아니면 해당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한 비자발적인 해고였는지를 밝힐 필요가 있다.

    더 나아가 거대 기업 집단에서 발생하는 비자발적인 실업의 근본 원인(기업의 생산 기지 이전, 사업 부문 재조정, 기업 이윤의 감소 등)과 각종 형태 (대량 해고, 조기 은퇴 또는 명예 퇴직 등) 및 그에 대한 해당 기업 차원의 지원 방식과 규모(보상금 수준과 지급 방식, 재고용을 위한 직업 훈련과 취업 알선 여부 등) 를 밝히도록 법제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규모 기업이 이와 같은 임금 및 고용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정기적으로 발행할 때 외부의 감사 기관이 정보의 정확성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법제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만약 외부의 감사 기관이 허위 정보를 이서하거나 기업 경영자들과 공모하여 정보를 은폐 조작했을 경우 각 사례에 해당되는 만큼 누진적으로 처벌하는 방안도 쉽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공정거래위원회와 재무부 및 노동부 등의 관계 부처를 통해 이 양자의 관계를 주기적으로 감시하고 상호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할 수 있다.

    (2) 정부 조달과 자본 시장을 통한 압력

    이와 같은 정보가 공개될 때 중앙 및 지역 정부와 해당 기업의 성과에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개인 및 기관 투자자, 해당 기업 노동자와 지역 사회와 정부 기관 등)은 크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기업의 경영과 노동 조직 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정부와 공기업은 민간 기업들로부터 중간재와 완성품을 조달받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 기관과 공기업이 정부 조달을 위해 특정 민간 기업을 선정할 때 해당 조달 품목의 질과 양 그리고 비용 이외에도 특정 기업이 노사관계와 직업 안정성 등의 영역에서 얼마만큼 사회적 책임성을 다하는지를 평가하고 이를 조달 기업 선정과 연계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경영진의 만행으로 인해 심각한 노사분규가 빈번하게 발생한 기업이 있다면 정부 조달 평가에 불이익을 줄 수 있고, 불가피한 대량 해고시에도 과연 해당 기업이 어느 정도까지 노동자들의 재교육과 취업 알선 등을 위해 노력했는가에 따라 기업들을 차등 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기업의 주식과 채권을 소유하고 있는 투자자(개인 및 기관 모두)와 기업 경영진 그리고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은 해당 기업의 경영 성과를 평가할 때 주식 가격과 주주 배당금의 규모뿐만 아니라 노사관계의 안정성, 직업 안정성과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투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평가하는 기준을 활용할 수 있다.

    한국의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기금 등의 공적 연기금의 투자 뱡향을 정하는 가이드 라인을 개편해서 단기 수익률뿐만 아니라 노사관계의 안정성과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투자 등을 함께 고려하여 사회적 책임성이 높은 기업들에 재원을 집중 투자하도록 유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3) 생활 임금 법안과 최저 보상액에 대한 사회적 기준 마련

    한국 정부는 최저 임금 법안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생산 기지 이전에 따라 대량 해고되는 노동자들에게 해당 기업이 지급해야 하는 최저 보상금 액수를 법으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기업별, 산업별 자료와 대량 해고 이후 동종 또는 유사 업체에 재취업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필요한 직업 훈련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종합적으로 추계하여 가이드 라인을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이와 같은 조치들은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임금과 소득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될 것이고, 대기업 경영주들이 생산 설비를 해외로 옮기거나 기타 경영상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해당 기업에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들의 복지와 안녕을 조금이나마 더 고려하게 만드는 장치가 될 것이다.

    이에 덧붙여 필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들이 미국의 여러 주와 캐나다 등지에서 현재 부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생활 임금’(living wages) 제도를 더욱 심도깊게 연구해 볼 것을 제안하고 싶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연방 정부와 각 주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최저 임금’(minimum wages) 법안은 실질 물가 변동률은 물론이고 가계의 크기와 각종 경제외적 변수들을 고려하지 않고 기업 경영진과 정부 당국자들의 협상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문제들 때문에 북미 지역의 경제학자들과 노동운동 지도자 그리고 지역 공동체 운동가들은 최저 임금 법안과는 구별되는 생활 임금 법안 제정 운동을 펼쳐왔다.

    그 법안은, 각 지역과 도시별로 4인으로 구성된 한 가구가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는 기초 비용을 추계한 이후 각 주와 시 정부에 물품을 조달하는 민간 기업들이 이 최저 생활 임금에 준하는 임금을 해당 기업 노동자들에게 지급하고 관련 자료들을 공개하도록 명시하는 조항을 담고 있다.

    물론 한국의 정치적 세력관계와 대기업들의 반대 때문에 중앙 정부 차원에서 이 생활 임금 법안을 일괄적으로 도입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경우라면 개혁적 또는 진보적 성향을 지닌 광역 및 지방자치체 수준의 단체장과 의원들이라도 먼저 이 법안을 연구하고 심의해서 주민들의 안정된 생활 기반을 마련하고 다시 이것을 통해 지역 경제 전체를 활성화하는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4) 지역 정부의 역할과 노동자 기업 인수 또는 협동조합기업 운동

    더 나아가, 기업의 도산과 경영진의 일방적인 작업장 폐쇄 등의 사태에 직면하여 해당 기업 노동자들이 법원에 경영진을 고소 고발하여 법원이 경영진의 생산 기지 폐쇄의 적법성과 적정성을 판별할 수 있도록 법적 구제 장치를 만들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법원이 기업 채산성의 악화가 기업 경영진의 불법과 비리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닌지, 해당 기업 경영 이외의 다른 용도로 자산을 전용하거나 금융과 부동 자산에 대한 투기에 골몰했던 것은 아닌지 등을 판별해서 엄정하게 처벌하도록 사회적인 감시와 견제의 폭을 넓여야 할 것이다.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기업 채산성이 악화된 경우라면 해당 기업의 잠재 수익성을 판단하여 지역 정부가 일시적으로 해당 기업의 소유권을 박탈하고 경영을 정상화한 다음 이를 다시 민영화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도 있다.

    특히 이 과정에서 해당 기업의 노동 조합과 지역 단체가 이 기업을 인수할 의사가 있을 경우 이들에게 우선 선택 권한을 부여하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의 기업 인수와 경영 참가 등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관련 법을 개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 인수 기업들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동안 정부가 세제 혜택, 정부 조달 특혜 등을 제공하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5) 기업 조세 체계의 개편과 국제적 차원의 감시와 처벌 기준 마련

    해외에 생산 기지를 두거나 독립 법인을 운용하는 거대 기업들에게 부과하는 조세 체계도 대폭 손질할 필요가 있다.

    미국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이윤을 조세 회피를 목적으로 국내의 본사로 송금하지 않고 막대한 잉여금을 쌓아두고 환투기를 벌여온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동안 미국 연방정부는 ‘조세 휴일’(tax holidays)이라는 기괴한 임시방편을 마련해 매년 임시로 정한 날에 기업들이 해외 잉여금을 국내로 송금할 경우 낮은 세율을 적용하거나 기업 법인세의 일정액을 감면해 주는 방식을 취해왔다.

    한국의 경우 필자가 아는 한 이와 관련된 정확한 정부 통계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해외로 진출한 한국 대기업들이 해외 잉여금을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에 관한 체계적인 분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의 거대 기업들이 벌이는 이와 같은 전횡을 한국의 대기업들이라고 해서 전혀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해외에 지사를 두거나 해외로 진출한 기업들에 대해 부과하는 조세 부담률과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편해서 대기업들의 조세 회피 수단을 막고 생산 기지 해외 이전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해외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는 기업들에 대해서는 (1)각종 조세 감면 혜택을 대폭 줄이는 것을 넘어서서 (2)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가 징벌적인 성격의 누진적 조세를 부과하고, 이렇게 해서 얻게된 추가 수입분을 (3)해외에서 국내로 생산 기지를 재이전하는 기업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하는 데 사용하는 방안을 떠올려 볼 수 있다.

    특히, 문어발식으로 확장된 한국 재벌 체제의 특성을 고려할 때 (4)재벌 산하 기업 법인이 고용 안정과 사회적 책임성에 관한 일정한 사회적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 정부 조달 등에서 연계된 기업 집단 전체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마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기업들이 동남아시아와 중국 등지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는 경우에도 이 기업들이 한국에서 유지해왔던 적대적인 경영 관행과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 방식을 (마치 한진중공업이 필리핀의 수빅만 공장에서 벌인 것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제적인 차원의 감시와 규제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국제노동기구 등이 이미 오래전부터 노동과 인권 및 환경 관련 규범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련의 국제 규범들이 정확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고, 그 규범을 국제법을 통해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는 한국의 시민 사회 및 노동 단체들에게 한국 기업 해외 작업장에서 벌어지는 노동 조직들에 대한 탄압과 인권 유린 등을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자고 제안하고 싶다.

    그리고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국제 시민사회에 널리 알리고 각종 소비자 불매 운동, 정부 조달에서의 배제 등의 방법을 통해 해당 기업 책임자들을 처벌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4. 한국에서 벌어졌던 논쟁에 대한 논평

    희망버스 운동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을 때, 개혁적 성향을 지닌 경제학자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 바 있다.

    우선, <프레시안>에 실린 김기원 교수의 글은 한진 중공업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그 글에서 김기원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정리 해고와 비정규직은 불가피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가들과 ‘희망버스’ 참가자들이 보다 현실적인 목표를 내걸고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필자는 김기원의 글에 나타난 전반적인 논지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글에 대한 반론문에서 박승옥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와 같은 문제들의 불가피성을 인정한다는 것이 곧 지난 10여년 간 한국 사회에서 무분별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기업들의 생산 기지 이전과 그에 따른 대량 해고의 문제에 대해서 그 어떠한 제도적 개선책도 내올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김기원도 인정했던 것처럼, 이같은 문제들을 조정하는 방식이 “나라마다” 다르고, 김진숙 씨의 고공 농성과 ‘희망 버스’ 운동은 이 문제들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나는 김기원이 말했던 “실현 가능한 목표”가 조금은 더 이념적으로나 정책적인 방향 모색의 측면에서 확대되어서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필자가 이 글에서 소개한 몇 가지 제안들이 그 “실현 가능한 목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혹자는 이와 같은 일련의 법적 사회적 규제 조치가 정부가 과도하게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고, 경영 효율을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겨레> 인터뷰에서 강신준 교수가 잘 지적한 것처럼, 한국의 “조선소는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조선소 설립 초기 보조금 투입과 금융 보증 등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필자는 강신준의 지적이 한진중공업이나 조선소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 경제를 좌지우지하고 거시경제적 안정성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거대 독점 기업들 거의 모두가 처음부터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법률적인 차원에서도 한국의 ‘질서자유주의 헌법’은 공공의 안녕과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라면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여 각종 조치를 취할 것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의무화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환경을 보전하고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 ‘개인의 사유 재산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는 ‘그린벨트’를 지정하고 운용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중앙 정부나 지역 정부는 당연히 대기업들의 전횡과 이로 인한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기업이 법적으로 정해진 바대로 사회적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를 평가하고 이를 위반한 사실이 있을 경우 적법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중앙 정부와 지역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당연히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제3의 세력’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날라리 외부세력’과 ‘희망 버스’의 존재로 대변되는 ‘3자 개입’은 바로 그 무능하고 편파적인 정부 기관장에게 한 때 부여했던 정책 결정 권한을 되돌리고 그에 따른 책임을 묻는 방식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5. 정책 실현의 가능성(?)

    한국의 많은 개혁 성향의 학자들과 사회운동가들이 간파하는 것처럼, 현 정부 하에서 이 문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해결되지는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정부가 출범할 때부터 내세운 정책 기조와 지금까지 취했던 일련의 경제 정책들이 노골적일만큼 대기업들과 금융 자산가들에게 편파적이었고, 심지어 ‘동반성장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요식행위만 벌이다만 꼴이 이 정부의 성격을 여실히 드러내 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한국의 다양한 정당 정치 세력들이 초기의 무관심과 무대응에서 벗어나서 초보적이나마 함께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이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맞아 ‘진보 개혁’을 내거는 거의 모든 정치세력들은 후보 선출을 포함한 일련의 정책 협의를 해나갈 것이다.

    진보적 성향의 정당과 사회단체들은 선거 연대의 기본 방침들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이 글에서 제안된 몇 가지 방안들을 보다 구체적인 법안으로 만들어서 다른 거대 야당들과의 협상에 나서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디 다양한 수준에서 ‘실현 가능한’ 정책 목표들이 충분히 논의되고 법제화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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