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가치 불교와 동떨어져"
    2012년 01월 30일 01: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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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 불교가 ‘호국 불교, 산속 불교, 노인 불교, 권력 유착 종교’ 등의 오래 된 이미지가 조금씩 탈각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개인적으로는 몇몇 스님들의 활발한 사회적 실천 활동, 생명 평화운동과 현존 권력에 대해 서릿발처럼 비판하는 모습 등을 대중들이 알게 되면서, 그리고 화쟁위 출범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실천 불교, 민중 불교의 기운이 올라오고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노동자나 사회적 약자들이 투쟁하는 장소로 명동성당과 함께 조계사도 이용되고 있다는 점도 불교의 변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스님과 함께 명진, 법륜, 수경 스님 같은 분들은 불교 신도가 아니더라도 일반 대중들이 많이 알게 된 것도 불교의 이런 변화의 원인이자 결과가 아닌가 싶다.

   
  ▲도법 스님.

= 맞다. 큰 맥락에서 보면 94년 종단 개혁이 계기가 돼 불교가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한 거다. 조선조 500년, 일제 30년 그리고 해방 60년 동안 불교는 역사와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배제당하고 그래서 살기 위해 은둔, 도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던 스님과 불교도들이 늘 있어왔지만 그건 아주 소수에 불과했다. 불교가 이렇게 살아오다가 해방 이후 이에 대한 고민과 모색 과정, 그리고 활동들이 이뤄져 왔으며, 점차 대중적 공감과 힘으로 형성됐으며 이것을 토대로 94년 종단 개혁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이다.

그 이후에 불교의 정체성이 뭐냐, 라는 물음들을 갖게 됐고, 정체성을 바르게 확립하자는 문제의식이 생기게 된다.

불교의 정체성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부처는 왜 이 세상에 왔나, 불교는 왜 있어야 되나, 즉 존재 이유와 가치를 말하는 것이다. 부처의 말씀인 불교의 모든 경전은 공통적으로 이 질문에 대해, 뭇 생명이 안락하고 행복하게 살게 해주기 위해 부처가 왔고, 불교가 있다고 말한다.

이게 불교의 본래 정체성이고, 이걸 제대로 확립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생겼으며, 요즘 나타난 현상은 이런 것의 반영이다. 이를 실현하는 방법이나 도구는 여러 가지가 있다. 법륜 스님의 방법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명진 스님처럼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런 정체성에 맞게 하려면 때에 따라서는 국가와 이념을 넘어서는 원칙을 갖가 갈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런 것을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일련의 불교의 모습은 그런 정체성에 맞게 가자는 요구에 따른 현상이라고 본다.

– 올해 두 차례 선거가 있다. 법륜 스님께서는 즉문즉설과 함께 최근에는 ‘정치 행위자(?)’로서 대중적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혹시 법륜 스님이 정치라는 영역을 통해 하시려는 일의 참 내용이 뭔지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 그리고 종단 차원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으신지?

= 종단이 어떻게 보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나도 잘은 모르겠으나 내가 관찰한 것에 따라 설명한다면, 법륜 스님은 한국 사회 현실에서 뭇 생명과 한국 사람들의 안락과 행복을 실현하기 위한 불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것은 정치와 연결이 되기도 하고, 또 사회나 문화와 연결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치도 방법과 도구로 쓰는 것이고, 이는 사람들의 행복 위한 것이지 본인이 권력을 잡거나 어떻게 해보겠다는 것은 아니다. 법륜 스님의 활동은 불교 정체성에 맞는 활동이고, 불가피하며,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불교가 건강하게 가는 모습이라고 본다,

-법륜 스님께서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정당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등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관측도 있는데.

= 한국 사람들, 나아가 우리 민족 구성원들의 행복을 위해서 어떤 정치를 하면 좋을지 방향과 길을 제시해줄 수 있다. 또 누가 적임자인지 말할 수 있고, 때로는 그런 적임자들이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줄 수도 있다. 이건 불교의 건강한 역할이라고 본다.

– 윤성식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의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장 경제도, 주류 경제학도 아니라 불교에서 대안을 찾고 있습니다. 불교는 출발할 때부터 시장과 자본에 우호적이었고 재물에 긍정적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불교 사유방식은 우리 역사와 전통 속에서 나타난 이웃사촌이나 품앗이 설명되는 마을 공동체와 유사하다. 이웃사촌은 따로따로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사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따로 따로는 자본주의에 가깝고 사촌으로 연결을 사회주의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동체주의냐 자유주의냐 하는 말도 있는데 이것도 후자는 따로따로에 가깝고 전자는 함께하자는 의미다.

불교는 따로따로의 존재와 ‘같이 함께’가 늘 공존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개념을 붙잡고 가야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통상적으로 얘기되는 자본주의 가치와 삶의 방식은 불교와는 동떨어진 것이라고 본다. 불교 자본주의라는 말이 어울리는지는 글쎄다.

불교적 사유방식으로 대안을 찾자는 게 내 생각이다. 내가 생명평화 순례(도법 스님은 2004년 3월 1일부터 5년 동안 전국을 돌며 탁발 순례를 한 바 있다)를 하면서 조선일보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신문 주필과 논설위원 한 분과 얘기를 나눴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논설위원이 물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한 운동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누가 반대하겠나. 그러나 이걸 주장하고 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부정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하는 생명평화운동이라면 같이 할 수 없다. 스님은 이 부분을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나?”

그래서 내가 답했다. “나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또 다른 어떤 체제를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내 관심은 현장의 삶의 주체가 행복하다면 어떤 체제든 상관없다. 문제는 이런 체제가 아니라 행복한 삶이 모든 판단의 기준이어야 한다. 그런 게 가능하다면 그게 기독교 간판을 내걸었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불교든 아무런 관계가 없다.”

관념이 아니라 실제를 봤을 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칼로 무 자르듯 분리시킬 수 있겠나. 복지는 일종의 사회주의 개념이다. 그런데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보편 복지를 하겠다고 얘기들을 한다.

공존과 균형을 통해서 균형적으로 문제를 다루고 풀어가야 한다. 그리고 관념이 아니라 실사구시의 자세로 접근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진보든 보수든 관념적 주의주장이 강하지 실제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 많다. 이게 큰 문제라고 본다. 윤성식 교수 얘기는 내가 잘 몰라서 뭐라고 답하기 어렵다.

– 좌파 또는 진보파는 시장 경제,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사회주의적’ 가치와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평소 한국 사회의 진보파 또는 좌파에 대해 관심을 가진 적이 있으신지요? 또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고 계신지요?

= 나는 간디를 통해서 살아있는 불교, 부처에 눈을 떴다. 그분은 어느 편에도 서있지 않았다. 독립 운동을 했지만, 영국도 인도도 아닌, 진실의 편에 섰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영국의 주장도 인정했고, 그렇지 않다면 인도가 주장해도 그걸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자나 약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관점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진실 가치는 생명과 평화로 표현되는데, 누가 됐든 이것이 생활화, 사회화될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사회가 괜찮은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좌우, 보수 진보로 나누는) 그런 부분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간디의 방식으로 접근해서 진실의 관점에서 보면 10개 중 7~8개는 약자 편의 입장에 서는 것이며. 부자 쪽 입장에 서는 경우는 2~3개 정도에 불과하다. 현상만 보면 약자나 인도 편을 든 것이지만, 내용을 잘 보면 실제로는 실사구시 입장에서 진실의 편에 서서 판단과 선택을 한 것이다. 그래서 양쪽으로부터 인정도 받고 존경도 받은 것이며 당시 세계적 양심과 지성들이 그를 주목한 것이다. 그게 불교 사유방식이라고 본다.

– 한국에는 비교적 다양한 종교가 존재하고 있다.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종교 간의 평화가 어느 정도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물론 우려되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비교적 평화 공존을 하는 거 같다.

이에 대해서는 종교 지도자들의 노력과 역할이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걱정스런 지도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종교가 추구하는 사랑, 자비 이런 것들이 토대가 됐을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회적 힘, 세력의 균형도 이런 평화를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한다.

평소 종교 간 평화 실현을 위해 실천 활동을 열심히 하고 계신 스님께서는 한국에서 종교 간 공존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현재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 말씀해주시기 바란다.

   
  

= 거듭되는 얘기지만 관념적으로 보면 기독교나 불교가 따로따로 일 수 있는데, 실제로는 한국사회에서 엄연히 같이 있다. 서울 종로만 해도 교회와 성당과 절이 같이 있다. 이 실체는 부정할 수 없다. 이미 공존하고 있는데 문제는 서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어떤 한 종교도 일방적으로 갈 수 없도록 세가 형성이 돼 있다. 극단적으로 가지 않게 하는 건 다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력을 형성 독주하려는 특정 세력의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이 갈등과 불안을 가져오고 위험한 요인이 생기고 있다.

이런 부분을 잘 품고 다듬어 가야 할 문제이지, 괜찮다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종교인들이 종교에 대한 보편적 상식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종교가 종교다워야 한다.

다른 하나는 건강한 민주 시민의식이 중요하다. 다양하게 존재하는 종교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가지 않은 것은 건강한 민주 시민의식이 그만큼 대단히 각성되고 성숙한 것이 중요하게 작동하지 않나 생각한다. 작용한 것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많은 문제를 안고는 있지만 종교에 대한 건강하고 보편적 상식을 가진 종교인들이 실제 역할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도 이렇게 갈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건강한 민주 시민의식을 키워내고, 종교의 보편적 상식을 유지한다면 종교 간 평화는 가능하고,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적으로 볼 대 건강한 민주 시민의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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