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도 사민주의도 아닌"
    By
        2012년 01월 30일 10:02 오전

    Print Friendly

    이 글은 ‘21세기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실정과 조건에 맞게 정치적으로는 민중참여, 경제적으로는 혼합경제, 사회적으로는 서민복지, 문화적으로는 민족정체성, 대외적으로는 대미자주를 강력히 추진하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정부의 담론과 정책을 평가한 것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통해 진보적 정권교체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한국 진보세력에게 적잖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논문이기에 독자들께서 ‘귤화위지(橘化爲枳)’(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의 지혜로 일독하시길 권한다. 이 글의 필자는 스티브 엘러 베네수엘라 오리엔테 대학 교수이며, 진보적인 매체 <Latin American Prospective>에 최근 실린 것이다. – 번역자 주

                                                     * * *

    대다수 정치학자들은 베네수엘라의 후고 차베스,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 정부를 그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같은 범주에 놓는다. 2008년 <좌파를 넘어>(Leftovers) 발행을 시작으로 좌파 비평가들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같이 온건한 ‘좋은 좌파’와 구별해 위 3인의 대통령을 ‘포퓰리스트 좌파’로 분류하는 한계를 보였다.

    이 책의 공동편집자인 호르헤 카스타네다와 마르코 모랄레스에 따르면, 포퓰리스트 좌파들의 뚜렷한 특징은 이념적 실체를 결여한 급진적 담론, 민주주의제도에 대한 홀시, 대단히 권위주의적인 성향, 그리고 자기 나라의 경제적 이익에 정치적 배당금을 노리는 미국 비난 등이다.

    그러나 오랜 정치 분석가이자 활동가인 마르타 하네커는 이와 다른 정치적 시각에서 3인의 대통령을 라틴아메리카 ‘신좌파’의 출현으로 표현했다. 하네커는, ‘신좌파’를 3인 대통령이 채택한 "21세기 사회주의"와 관련지었다. 두 개념이 모호하고 과도기적 성격 규정임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세 정부의 추진력에 대한 이 같은 표현은, 새로운 국제변혁운동을 추구하는 ‘제5인터내셔널’의 창설을 위해 2009년 후반기 차베스 대통령이 명명한 것이다. 이전의 제4인터내셔널의 전통과 단절하고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 새로운 유형의 경험을 분석,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의 개발은 여야의 많은 좌파들이 수사학 이상으로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새로운 좌파가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지 판단하는 기준에 대한 폭넓은 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왼쪽부터 모랄레스, 차베스, 코레아 대통령 

    온건한 정치, 급진적 사회경제

    세 정부의 하나의 특징은, 대통령 발의의 제헌의회 선거를 거쳤으며 이 온건한 정치무대가 보다 급진적 사회경제정책 실시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세 정부는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들과 의회 다수당을 기반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장기적 개혁 목표를 실현하는 민주적인 길을 걷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 글이 검토할 또 다른 특징은, 경제적 생산성과에 대한 사회적 참여와 협동, 맑스주의 계급개념의 수정, 경제(소유) 관계의 다양화, 자유민주주의보다 급진적 민주주의 선호, 그리고 국가적 상징 기념 등이다.

    이 글은 세 정부의 경험을 중남미의 다른 이념, 다른 나라와 구별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가령 카스타네다는 네스또르 까를로스 키르츠네르와 크리스티나 키르츠네르 페르난데스의 아르헨티나 정부를 ‘포퓰리스트 좌파’로 분류하며, 그들의 담론과 정책은 차베스와 모랄레스의 그것 만큼이나 무책임하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분류가 과연 정확한지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정부의 독특한 성격을 살펴보면서 점검할 것이다.

    새로운 유형의 특징과 접근에 대한 이 글의 분석은 세 나라의 공산당과 트로츠키그룹 같은 전통적인 좌파의 비판적 입장도 다룰 것이다. 세 나라와 쿠바가 가까운 관계이며 궁극적으로 쿠바모델을 복제할 것이라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두 가지 국제환경의 두 가지 사회주의 경로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를 밝힐 것이다.

    급진적 민주주의 모델

    하나의 독특한 특징은 유권자의 높은 투표율로 표현되는 정당의 예선과 본선, 그리고 국민투표라는 빈번한 선거제도이다. 진보세력은 간혹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압도적 승리를 기록했다.

    빈번한 선거, 유권자의 높은 지지

    예를 들어 1999년 4월 베네수엘라 유권자의 88%가 정부 발의의 국민투표를 통해 제헌의회를 비준했다. 2007년 12월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 나라 현대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후보 가운데 가장 높은 63% 지지율로 차베스를 재선출했다. 비슷하게 2009년 12월 모랄레스도 재선 도전에서 64%의 지지를 받았으며 그의 지지자들은 의회 양원에서 전례 없는 2/3 의석을 확보했다.

    차베스와 모랄레스는 또한 국민소환 투표에서도 각각 58%와 67%의 지지를 받아 승리했다. 결국 세 나라에서 압도적 다수의 유권자들은 정부의 주요 적들이 반대하는 새 헌법을 승인했다. 세 나라의 대다수 유권자들은, 1970년 36% 지지로 집권한 칠레 살바도르 아옌데, 2006년 38% 지지로 대통령에 복귀한 니콰라과의 산디니스타 출신 다니엘 오르테가 같은 다른 좌파 대통령보다 세 대통령에게 급진적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나라 모두 첨예한 정치적 긴장과 극단적인 갈등에 직면해 정권의 합법성을 인정받는 수단으로 잦은 선거 전략을 구사했는데, 이는 매우 위험했다. 모든 패배는 승복하지 않는 야당들에게 대정부 투쟁의 출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정부세력 관용

    세 나라 정치생활의 다른 특징은, 반대세력이 독재 치하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정부를 비난해도 강력히 억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 나라의 예리한 정치투쟁의 배경인 정당 간의 경쟁 관계도, 제3세계의 연약한 민주주의의 일부이지만 불충의 야당에게 전통적으로 낮은 수준의 관용을 보인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정부 반대파는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불충의 반대세력"의 대명사이다. 반대파는 정부 주도를 실제 지지하지 않고 권위주의라고 비난함으로써 정권의 정당성을 효과적으로 부정하려 했다.

    더구나 일부 반대세력은 중요 시점에 다른 반대세력이 제때 말리지 못한 폭력행위에 연루되었다. 베네수엘라에서 2004년 야당 지도자들이 반정부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라 꾸아림바(la guarimba)” 라 불리는 도시폭동을 공공연하게 주창했다. 볼리비아에서는 2008년 여러 주지사들과 결탁한 준 군사그룹이 친정부 시위대를 공격했고 브라질 행 가스파이프라인을 끊었으며 동부 저지대의 관공서를 파괴했다.

    세 정부의 또 다른 특징은, 급진적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자유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다.

    첫째, 급진적 민주주의는 사회적 협동과 직접 참여를 강조한다. 반대로 자유민주주의는 엘리트와 동의어로 자주 사용되는 소수의 우선권을 고려하고 견제와 균형과 분산의 시스템을 장려한다. 이 두 가지의 색다른 패러다임 고집이 심각한 갈등을 초래했고, 야당들이 세 정부의 민주주의 자격을 시비하는 이유가 되었다.

    급진적 민주주의는 사회협동과 직접 참여, 자유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

    이 두 가지 접근법의 차이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급진적 민주주의는 모든 문제를 과반수로 결정하는 다수 지배의 원칙을 적용했다. 그에 반해 자유민주주의 옹호자들은 소수자 권리를 배려해 중요 사안을 여야 합의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세 나라의 야당들은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이전 체제에서 실시해왔던 "복잡한" 민주주의 모델을 선호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은 합법성을 위해 50% 보다 훨씬 높은 찬성률을 요구했다.

    두 개념의 충돌이 2006년 볼리비아 제헌의회에서 일어났는데, 야당이 헌법 개정의 일괄 승인만이 아니라 각 조항에 대해서도 2/3 이상의 찬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모랄레스 사회주의 운동당(MAS)은 7개월의 저항 끝에 소수자에게 거부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2/3 의결방식을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랄레스 사회주의운동(MAS)은 2007년 12월 헌법을 비준하기 위해 전체 대의원의 과반수, 즉 단순 다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 날 참석자의 2/3 찬성을 얻으려고 주요 2개 야당의 보이콧을 역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주요 야당을 대표하는 호르헤 키로가(Jorge Quiroga) 전 대통령은 전국적으로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그 당시에 ‘국가망신’이라 비판했다.

    에콰도르에서 코레아 대통령도, 헌법 각 조항에 대한 의사결정은 의미 있는 개혁을 방해하는 66% 이상이 아니라 제헌 의원들의 단순 다수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네수엘라에서도 야당은 차베스가 대법원 판사 임명동의안을 대의원 2/3가 아니라 과반수의 찬성으로 처리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의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거칠게 비난했다.

    세 나라의 헌법에 명시된 국민소환제도 역시 급진적 민주주의의 기본 구성요소인 다수의 지배 원리의 연장선에 있다.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의 국민소환투표는, 정치적 분열갈등의 현장을 거리에서 선거로 이동시켜 위기를 수습하는 효과적인 메커니즘으로 증명되었다.

    2004년 8월 베네수엘라의 대통령 국민소환 투표는 2002년 쿠데타로 회귀하는 긴장을 제거하는 데 기여했고 수년간 상대적인 정치안정을 가져왔다. 볼리비아 모랄레스도 2008년 8월 국민소환투표라는 반란에 직면해 서로 상처 주고 갈등을 조장하는 몇몇 기득권자들에 대한 국민 다수의 반대를 호소한 바 있다.

    많은 정치 분석자들은 물론, 세 나라의 야당들도 자유민주주의 논리에 좌우되어 국민투표 민주주의를 요구했다. 이 모델에 의하면 국가 집행구조는 야당의 개입 없이 자체 의제에 따라 형성되고 대중이 그 찬반을 결정하게 된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에서 야당들이 차베스가 제안한 헌법 개정은 잘못된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절절하게 호소했다. 69개 헌법 개정 조항의 대부분이, 국민투표를 통해 한꺼번에 처리될 게 아니라 의회에서 개별적으로 심의되는 법률과 연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콰도르에서도 야당들과 일부 정치 분석가들은 국민투표 민주주의를 조장하는 코레아를 비난했다. 그 근거는 코레아가 2007년 4월 새 헌법 제정을 자신의 신임투표 성격으로 만들고 패배하면 집에 가겠다고 협박하면서 국민투표에 부쳤다는 것이다.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대중 동원과 참여

    둘째, 대규모적이고 지속적인 대중 동원과 참여가 급진적 민주주의의 기본 특징이며 세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체이다. 사회운동의 항의시위를 통해 모랄레스와 코레아(아르헨티나의 네스또르 키르츠네르는 말 할 것도 없고)는 권력 강화의 길을 닦았다.

    에콰도르에서 강력한 원주민운동단체(CONAIE)와 기타 사회운동들의 코레아 후보 지지가 2006년 대통령 결선 승리를 가져왔다. 베네수엘라에서도 2002년 4월 13일 수많은 빈민들의 결집을 통해 차베스가 쫓겨난 지 이틀 만에 대통령에 복귀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 모두 정부 지지자들의 동원은 야당들의 반란에 직면해 질서를 회복하는 수단으로 설계되었다.

    예를 들어 2002년 4월 쿠데타가 일어날 당시 차베스 지지자들의 카라카스 시내 운집은 폭력적인 반정부 세력과 대통령궁 사이의 완충역할을 했다. 그 해 12월에 시작된 2개월 총파업 기간에도 주변 지역사회 구성원들로 편성된 조직이 석유 침탈을 막아냈다.

    볼리비아의 농민들과 광부들은, 새 헌법 제정 최종 투표를 코앞에 두고 준군사조직의 위협에 처한 제헌의회 의원들의 안전을 위해 수크레시에 집결했다. 2010년 9월 30일 수천 명의 에콰도르 국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코레아 대통령을 사실상 납치한 쿠데타 반란군 부대를 저지했다.

    협동과 참여, 견제와 균형을 결합시키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

    셋째, 차베스, 모랄레스, 코레아는, 그들의 정부가 과거의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 하는 견제와 균형은 물론, 협동체제의 운용에 대한 지원도 강화하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들이다. 또한, 세 정부는 협동조합과 정당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 특권층의 결합과 직접 참여를 추진하고, 의사결정에 엘리트를 투입하는 몇몇 좌파정당들의 오랜 관행과 단절했다.

    이러한 노선에 따라 세 나라 정치지도자들은 레닌 정당 모델을 거부하고 그 대신, 볼리비아 부통령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의 말 대로, "좀 더 유연하고 유동적인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넷째, 여당은 정부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영향력, 정치력, 독립성이 부족하다. 예를 들어 베네수엘라의 여당인 통합사회주의당(PSUV)는 주로 내각의 장관들에 의한 지엽적 수준, 주지사들과 시장들에 의한 지방적 수준에서 개입하고 있을 뿐이다. 코레아의 정치조직, 2006년 대선을 앞두고 약12개 그룹에 의해 설립된 ‘애국동맹'(PAIS)도 신중한 권력을 휘두르기에는 너무 다양하고 이질적이다.

    일부 정부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일반국민들과 교류하고 밑으로부터의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수정 보완한다고 주장하면서 국가경영진의 막강한 지위와 역할을 정당화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지방 분권과 자치의 기치를 들고 권력의 집중에 맞서왔다.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정치모델은 공산주의 국가, 사회민주주의 국가와 분명히 다른 길을 걷는다. 세 나라에서 성공하고 있는 선거 민주주의와 정당 경쟁은 소련이나 중국 같은 기존 사회주의의 정치제도와 다르다. 이 세 나라에는 레닌주의자들의 전통에 입각한 일사 분란한 정당, 집권 전후 센터 역할을 하는 어떤 형태의 강력한 정당도 없다.

    기존 사회주의와도, 사회민주주의와도 다른 정치모델

    또한 세 나라 집권 좌파들의 투쟁이론, 정치적 갈등의 지속 정도, 첨예한 사회정치적 양극화, 확고한 급진주의는, 민주사회주의 정당들에 의해 운영되는 유럽과 아프리카 나라들과도 많은 측면에서 동일하지 않다. 사회프로그램 참여와 정부의 지도력을 지지하는 대중의 대규모 정치적 동원은 여타 중남미 국가들과도 일치하지 않는다.

    급진적 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가 결합된 이 신흥 혼혈 모델은 여러 가지로 독특하다. 국민투표, 정당 예비선거, 빈번한 선거, 협동조합 등 공동체조직의 공공일자리 프로젝트, 국가 정치생활에의 사회운동의 적극적 역할, 직접 참여를 촉진하고 과거의 대의민주주의를 억제하는 국가의 강력 지원과 공식 담론 등이 급진적 민주주의의 특징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낡은 시스템은 아직 해체되지 않고 있다. 베네수엘라에서 선출된 지방정부를 지역주민공동체가 대신한다고 하지만, 각 분야의 대의기관이 세 나라에 그대로 남아 있다.(번역 :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 (계속)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