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의 궤변 "폭약 터뜨리는 게 더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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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3월 08일 02:5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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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저히 잠들 수 없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5시 20분 첫차를 타야하는데도 7일 새벽 4시에 집을 나서 버스정류장에서 한 시간을 떨다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1분이 1시간 같은 초조함 속에서 강정에 도착한 시각, 오전 10시 30분. 처음 보는 강정은 영화 속에나 나옴직한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현수막이나 길에 걸린 걸개그림이 없다면 이곳이 투쟁지임을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만큼 작은 어촌입니다. 한가로이 길을 거닐다 포구로 갑니다. 그제서야 나는 ‘아~ 여긴 격전지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8일 2시부터 4차례 발파가 이뤄졌다. 이에 항의하는 사람을 연행하는 경찰.(사진=@hwa2605)

    올레길 쪽밭에서 발파

    포구에 늘어선 경찰들은 이곳이 격전지임을 깨닫게 합니다. 포구 쪽으로 접근만 해도 경계를 하더군요. 아무것도 안했는데 말이죠.

    포구에 들러 경비정과 바지선 위치 등을 살펴보고 식사를 하기 위해 삼거리 식당으로 갔습니다. 식당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땅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잠시의 침묵과 당황 "벌써?" 라는 탄식들, 누군가는 열심히 전화를 돌리고 누군가는 망루에 올라가 상황을 봤습니다.

    그 순간 식당에 놓인 노트북에서는 "1차 발파를 했습니다."라는 외침이 퍼졌습니다. 아! 이제 이곳에 왔을 뿐인데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오늘(7일) 하루 동안 6차례의 발파가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인 구럼비 바위가 아니라 위쪽 지역부터 발파를 하는 것이어서 오늘은 올레길 쪽 밭을 발파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스코어로 따지면 6:0일까요? 이런 참담한 결과를 낳은 이유는 경찰들은 몇 겹으로 사람들을 포위한 다음 억류하였기 때문입니다. 근거를 물어도 무대응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은 공공연하게 "대응하지마!" 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더군요. 불법채증도 이어졌습니다. 사복경찰이 수시로 시위대를 향해서 카메라를 들이댔습니다. 소속을 물어도 답하지 않습니다. 나갈 수 없는 이유를 물어도 답이 없습니다.

    심지어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들 역시 쉽게 통과시켜주지 않았습니다. 물론 나름의 방안으로 지치지 않고 발파를 막으려는 활동가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경찰의 경고에 불응한 행동이 됩니다. 이처럼 아무런 근거 없는 억류 그리고 무대응은 주민과 활동가들의 불법행위를 유발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사소한 다툼에서 보이는 경찰의 과도한 대응 역시 문제였습니다.

    카약 뒤집어 연행, ‘살인미수 행위’

    개인적으로 제가 이곳 강정에서 놀란 것은 활동가와 경찰의 대치가 아닙니다. 이곳에서는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몇 번의 몸싸움이 일어날 뻔했고, 그 대상이 주로 주민이었습니다. 할머니들과 할아버지들을 서슴없이 미는 경찰의 모습이 경악스러웠습니다.

    헬멧을 벗으면 앳된 얼굴이 드러나는데, 아직은 젊은 청년인데 그들은 무슨 마음으로 주민 분들 밀치는 것일까요? 반인권적으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반인권적인 장면은 포구 쪽에서 보였습니다. 카약을 타고 접근하려는 활동가들에게 경찰은 카약에 접근하여 배를 뒤집어 연행했습니다. 외국의 경우 명백한 살인미수 행위입니다.

    그 외에도 제주도 의원들이 와서 기자회견도 하고 제가 도착하기 전에는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공문을 보냈으며, 이정희 정동영 의원은 부대 안으로 들어가 면담을 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오후 6시경 여섯 번의 발파가 끝나고 사람들이 몸짓을 하며 자리를 정리할 때쯤 오랫동안 면담을 한 이정희 정동영 의원이 나와 면담의 결과를 활동가와 주민들에게 브리핑했습니다. 하지만 브리핑의 내용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군은 계속 강행만을 주장하고 있었고, 이미 폭약을 설치했기 때문에 터뜨리는 게 더 안전하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이후 마을회관에서도 회의를 진행하였는데 회의 결과는 제주지사로 하여금 현 소송에서 위법성을 시인하게끔 주민들이 압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정의 하루가 이제 가고 있습니다. 내일은 더 힘든 하루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찰들의 억류와 발파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오늘 800kg의 폭약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래저래 걱정이 됩니다. 그래도 강정 분들은 굴하지 않고 꿋꿋이 회의를 하시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이야기 중이십니다. 여기저기 웃음소리도 들립니다. 밥은 먹었냐고 처음 보는 내게 살갑게 인사를 건네주시는 할머니, 귤을 내밀며 먹으라고 말해주시는 할아버지, 나는 작지만 그리고 가장 위태롭지만 따뜻한 마을에 있습니다.

    강정의 첫날이 이렇게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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