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난은 부자를 피해간다…방콕과 우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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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26일 0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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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많은 비가 내렸다. 연일 최대 강수량을 기록하면서 물은 도심까지 차 들어왔다. 필사적으로 도심의 홍수는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는 국가적인 피해를 넘어 국제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피해에 대처하는 모습은 사람마다 조금 달랐다. 피해를 예상했던 시민들은 이미 짐을 싸서 해외로 혹은 남부 휴양지로 이주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하고 홍수 피해를 당했더라도 복구의 책임을 정부에 넘긴 채 잠시 다른 곳으로 휴가를 떠났다.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1%가 홍수를 피하는 방법이다.

    이 이야기는 서울 도심 한복판을 집어 삼키고, 우면산 산사태로 주변을 쑥대밭을 만들었던 지난 여름을 떠올리게 한다. 군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피해 복구를 할 때 캐리어 가방을 들고 유유히 휴양지로 떠나던 몇몇 사람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태국 방콕의 지난 10월의 이야기다.

    환경 재난은 가난한 자에게 가혹하다

    지난 해 10월 말 태국의 수도 방콕은 물에 잠겼다. 물론 도심을 지키기 위한 사투를 벌인 끝에 중심부를 어느 정도 방어 할 수는 있었지만 도시가 제 기능을 찾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방콕 도심을 빗물이 휩쓸고 간 지 3개월이 채 되지 않은 1월 나는 태국을 찾았다.

       
      ▲방콕 시내 지하철역 입구의 모래주머니. 여전히 지난 홍수를 막기 위해 애썼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태국 시내 곳곳에는 모래주머니가 쌓여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눈에 띄는 수마가 할퀸 자국은 없어 보였다. 다만, 그저 큰 비가 내렸다는 느낌 때문에 방콕을 가로지르는 짜오프라야강의 수위가 내 눈에는 유독 높아 보였다.

    사실 방콕의 홍수는 예견된 일이었다고 한다. 북부 산간지방에서 내려오는 물이 짜오프라야강으로 모여 태국만으로 흘러가는데 그 중심부에 방콕이 있기 때문에 북부지방이 물난리를 겪고 있을 때, 방콕 시민들은 이미 엄청난 폭우만이 아니라 강을 따라 흘러 내려오는 물들이 쌓여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과 그 위력이 엄청날 것이라는 것을 걱정했다.

    빈곤층, 복구 사업에서도 후순위

    물 관리를 위해 만들어 놓은 수많은 댐들은 넘치는 물을 감당하지 못할 것이고 상류의 댐에서 하류의 댐으로 갈수록 그 힘이 세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강력한 힘의 물길조차 사회적 약자들을 먼저 할퀴고 간다는 것이다. 방콕으로 향하는 물길이 거세어지자 처음에는 댐을 통해 막기 급급하던 태국 정부는 방콕 시내의 수위마저 높아지자 물길을 도심 외각으로 내기 시작했다. 방콕 시내는 반드시 지켜내야 할 요새였기 때문이다. 그 요새를 지켜내기 위해 외각 지역에 살고 있던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 공동체들은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물길로 인해 엄청난 홍수의 피해를 감내해야만 했다.

    방콕 시내 역시 홍수의 피해가 있었다. 하지만 가장 피해를 많이 본 사람들은 운하 주변에 불법으로 판자촌을 짓고 사는 절대 빈곤층의 사람들과 낮은 지대에 사는 저소득층 주민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복구 작업에서 후순위로 밀려 났다.

    가장 많은 보상금과 복구지원을 받는 것은 방콕 시내의 주요 시설과 부촌이다. 그들은 이미 보험을 통해 많은 대비책을 만들어 두었고, 예상된 위험을 피해 다른 나라, 다른 지역으로 피해 있을 여유도 있었다.

    반대로 가장 피해가 심한 운하와 수로 옆의 판자촌은 정부의 보상에서 제외됐다. 그들이 합법적인 주거지 대상에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하층 계급은 이렇게 자연 재해의 피해와 복구에 있어서도 배제된다.

       
      ▲방콕 시내 지하철역, 여전히 지난 홍수를 막기 위해 애썼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홍수 당시의 대처 상황을 담은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환경 문제에도 정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나는 태국 정부가 수도의 수몰 사태를 막기 위해 취한 태도를 비판하고, 그냥 그 물길이 수도를 쓸어버리게 뒀어야 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사전예방적 조처를 취했으면 바람직했겠지만, 최악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비상 조처는 나름 합당한 판단일 것이다. 실제 한국에서도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우리 정부 역시 서울 도심을 지켜내기 위해 주변지역의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는 국가적 판단을 하게 될 것이고 시민들도 이를 받아들일지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런 판단을 함에 있어 이런 선택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자가 될 이들의 인권을 간과하지 않았는가? 혹은 그들의 삶의 가치와 존엄성을 도심에 사는 이들, 즉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권력이 있는 이들의 그것보다 낮게 평가 하고 있지는 않는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방콕 시내에는 주요 회사의 건물들과 국가 시설들이 있으니 이것들이 재난에 피해를 본다면 복구에 더 많은 시간과 자본이 소요될 것이다. 또 부유층 사람들이 사는 곳이 피해를 본다면, 그들에게 보상해줘야 할 금액이 다른 가난한 지역에 비해 현저히 높고 그들은 이 피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을 만큼의 권력도 충분하다. 그러나 단순히 이러한 주장만으로는 수도를 지키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어렵다.

    비슷한 예를 들자면 요즘 한국에서 많이 논의 되고 있는 핵 발전소가 있을 것이다. 에너지와 자원을 가장 많이 쓰는 서울과 수도권에는 핵 발전소가 없다. 그렇게 안전하다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자랑하는 핵 발전소가 수도권 근방에 생긴다면 경제적으로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송전탑을 지어야 하는 수고도 없고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결코 핵 발전소를 수도권 근방에 세우는 판단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서울 시민들은 자신의 권리나 인권을 핵 발전소 인근에 사는 지역 주민들의 그것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는 분명히 힘이 있다. 혐오시설을 다른 지역으로 몰아 낼 수 있는 힘, 그리고 그것을 대의라는 말로 포장하여 마땅히 그러한 일들을 정치적으로 강요하고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권력 말이다. 나는 그것이 현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내는 계급사회의 위대함이라고 생각한다.

    갑에 대한 을의 봉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늘 성공을 꿈꾼다. 더 많이 배우고 더 성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은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 혹은 누군가 말한 돈에 대한 순수한 욕정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근래에 보면 단순히 부자가 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이 돈이 만들어 내는 착취의 구조에서 ‘갑’이 되고 싶기 때문에 혹은 ‘을’이 되기 싫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전자의 이유보다 후자가 더 크게 작용되지 않을까 생각해볼 수 있는데, 분명 공정한 사회가 가능함에도, 우리 사회는 지배와 피지배로 나뉘고 지배되기 보다는 지배하는 쪽이 되기 위해 애쓰게 돼버렸다.

    그런데 이러한 지배구조에서 하나 더 생각해야 하는 것이 환경에 대한 인간의 착취이다. 사람과 사람, 도시와 지방, 여성과 남성, 성인과 아이, 모든 관계들이 자본이라는 유용한 도구로 조정되는 착취의 구조를 만들어 가면서 자연과 인간은 똑같은 착취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착취가 도를 넘어가게 되면, 즉 그들의 수용력에 한계가 생기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각종 환경 재난과 99%의 민중 봉기라는 반작용이 그러하다.

    인간과 자연을 착취하는 1%에 대해 책임을 묻는 방법은?

       
      ▲방콕 시내를 관통하는 짜오프라야 강에서 운하 주변, 모래 주머니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다.

    태국 시내에서는 매일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홍수로 피해를 본 모든 국민들을 위해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로를 막고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이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태국의 한 활동가는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강력한 힘만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어서 놀랬지만 실제 이를 위해 매일 매일 집회를 하고 매일 매일 그 수를 늘려가는 시민들의 모습도 대단했다.

    앞으로 기후변화로 인해 더 심각한 자연 재해가 예상된다. 그때 우리는 자본가 계급의 무자비한 착취로 인해 발생한 무서운 환경 재앙을 원죄자인 자본가의 힘을 빌려 재건해야 하는가?

    아니면 착취 구조에서 ‘을’인 자연과 99% 미약한 자들이 힘을 모아 이 체제를 변혁해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을’이 ‘갑’에게 그들의 책임을 묻는 일은 자연과 환경을 착취의 대상에서 구원하는 길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체제 내에서 바꾸면 충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미 우리는 자본이 만들어놓은 체제 안에서 다람쥐들처럼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과연 그것을 앞이 아니라 뒤로 돌린다고 무엇이 바뀌는가? 우린 다람쥐일 뿐이고 우리가 하는 일은 쳇바퀴를 돌리는 것 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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