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세금-경제체제 의제화해야"
    2012년 01월 22일 10:0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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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께서는 “진보정당이 세력으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진보의 의제는 거의 관철시켰다고 본다. 세력 면에선 실패했지만 정책 면에선 진보가 승리하지 않았나.”고 지적하시면서 ‘복지’를 그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선 진보대연합, 후 조건부 민주대연합’이라는 진보대연합의 조건과 ‘풀뿌리 복지연합’을 제안하셨다. 또 “어떻게 보면 복지 자체는 신자유주의의 폐해는 그대로 놔둔 채 거기서 비롯된 사회적 약자 문제를 해결하는 사후적 설거지 아닌가. 복지를 필요로 하는 이들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경제체제, 즉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적 경제체제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사후적 설거지’라는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바람직한 대안적 경제체제라 하더라도 ‘보편적 복지’ 시스템의 구축 문제는 피해갈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체제 그대로 두고 사후적 복지만으로 안돼

= 체제는 놔두고 사후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복지만 가지고는 안 된다. 2007년과 2008년 대선과 총선을 거치면서 민주개혁세력 참담한 패배를 당했다. 그래서 출범한 게 정세균 대표체제다. 정 대표는 뉴 민주당 플랜을 들고 나왔다. 그는 복지만 강조해선 안 되고 성장도 중요하다며 우경화의 길을 가려 했다. 나는 당시 그 부분에 대해 “뭔 소리냐, 민주당의 실패는 성장을 못해서가 아니라, 분배를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얘기했다.

2010년 지방 선거 직전까지 그랬다. 정동영 의원이 정계에 복귀하면서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민주당을 ‘좌경화’시킨 것이다. 그는 대표 선거에 나오면서 자기반성을 했고, 시대와 맞아 떨어지는 의제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 선거를 하면서 복지 의제의 주도권이 민주당으로 넘어왔다. 이제 무상 복지, 보편 복지를 놓고는 진보가 자유주의와 차별화할 게 없다.

진보정당은 노무현 정부 때가 성장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 부동산 문제, 사회 양극화 심화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됐다. 하지만 진보정당은 그때 기회를 잡지 못했다.

   
  ▲사진=레디앙

이제 뭔가 새로운 것을 포착해야 한다. 그것은 세금이다. 노벨상 경제학상을 받은 미국 경제학자 부캐넌이라는 사람은 『적자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지와 지출은 인기가 있지만, 세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기 때문이다, 정치는 포퓰리즘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 때문에 복지의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때문에 위기가 온다고 주장했다. 당장 우리의 현실을 봐도 봐도 이제 표가 된다 싶으니까 한나라당까지 복지를 들고 나오고 있지 않나.

진보, 세금과 경제체제 의제화해야

문제는 세금인데, 민주당은 증세 안 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조금 변하고 있다. 한나라당까지도 버핏세 흉내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지속 가능한 복지국가를 위해서는 세금을 물릴 수밖에 없다. 부유세 같은 부자 증세가 필요하고 일반인도 더 내야 된다. 이런 문제를 기본적으로 진보가 얘기해야 한다.

90년대에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글로벌 레벨 택스(global level tax, 지구평균세)를 도입하려 했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새로운 복지 수요자들을 양산한다. 그럼에도 세금을 내야 하는 모든 대기업들이 외국에 나가 공장을 지으니, 복지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세수 확보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이런 세금을 도입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복지 프로그램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을 안 만드는 체제를 만드는 것이 다. 일자리가 최고 복지라는 한나라당의 말은 맞다. 물론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 임영일 선생이 진보적 복지 핵심은 노동 배분, 노동 복지라고 한 것은 핵심을 찌른 말이다.

전체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리고, 자본가 몫은 줄여야 한다. 국민총소득 가운데 노동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은 노동소득분배율이 우리의 경우 50%대로 떨어졌다. OECD 국가의 경우 멕시코, 터키 같은 나라를 제외하면 보토 70%대를 기록하고 있다.  

자본가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줄이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을 늘여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함으로써 워킹푸어를 줄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일하게 함으로써 복지의 대상, 규모를 줄이게 하는 게 중요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시장 열패자들을 무한하게 대량 양산하면서 복지만 하면 뭐 하나. 이게 내가 가진 문제의식이며, 그렇다고 내가 복지 프로그램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가 그 동안 복지 담론을 주장함으로써 실질적인 복지 정책을 이끌었다면 이제 세금과 경제체제를 문제 삼아야 한다. 재분배 이전에 분배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말이다. 복지는 재분배다. 재분배 이전에 1차 분배를 문제 삼아야 한다. 99%의 열패자들을 만들어 놓고 1%에게 세금을 거둬들이자는 체제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

왜 97년 체제인가?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

–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더는 87년 체제가 아니라 97년 체제 속에 살고 있으며 … 87년 체제에 합당한 장례식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조희연, 서영표 교수는 “87년에 내재한 급진적 지향들을 되살려야 한다. … 손 교수는 종종 경제주의적 편향으로 경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현재의 정치적 대치선을 신자유주의대 반신자유주의에서 찾을 때 구체적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정치적 계기에 대한 헤게모니적 개입의 여지가 축소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는데, 이에 대한 반론과 함께 왜 97년 체제라는 문제설정의 틀이 학문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중요한지를 정리해서 말씀해주신다면?

= 87년 체제에 대한 조희연, 서영표 선생의 문제의식과 한국사회에서 소위 운동권의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창비 그룹’이 얘기하는 87년 체제는 서로 다른 것 같다. 창비 측의 얘기는 결국은 민주 대 반민주, 반MB 같은 것에 문제의식이 닿아 있다.

그런데 97년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 사회가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에 그런 창비식의 문제의식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대표적으로 청년실업 문제부터 모든 걸 보면 어떻게 97년 이전과 지금을 같이 볼 수 있겠나. 그래서 반신자유주의 문제를 보자는 것이 내 문제의식이다.

서영표, 조희연 선생의 이야기는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87년 체제에 내재된 급진적 지향이 있다는 건데, 나는 87년 체제 속에 무슨 급진적 지향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차라리 만약 있다면 87년 헌법 속에 있는 경제민주화 조항, 소위 ‘김종인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119조 정도다. 두 사람의 입장은 갑자기 운동론 가지고 체제를 얘기하는 것이 된다. 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운동체제를 도입해버리면 우리가 얘기하는 체제와는 전혀 다른 얘기이며, 문법이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다만 신자유주의와 반MB로 환원될 수 없는 다양한 계기들이 복합적인 모순을 발생시키고, 우리가 헤게모니적 개입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87년 체제를 얘기하면 그런 계기들이 찾아지고, 97년 체제를 얘기하면 그렇게 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체제 용어 남발 지식인 병

– 백낙청 선생께서 2013년 체제를 얘기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는 정권교체만 가지고는 해소될 수 없는 문제가 많다는 입장이신 것 같다.

= 일부에서 2008년 체제, 2013년 체제 얘기하는데 나는 왜 그것을 체제라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정권이라면 되는 수준 아닌가. 체제라고 명명하려면 그것에 값하는 내용과 의미가 있는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체제라 말하는 것은 유식해 보이려는 지식인의 병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 시작된 이명박 정부는 97년 체제의 하위체제로서 우파 신자유주의 보수 체제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올해 정권교체가 된다면, 그리고 안철수가 나온다면 정당체제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체제는 다르다.

어떤 체제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하다못해 박근혜 위원장이 당선된다고 해도 이명박 정부와는 다를 것이다. 박근혜 위원장은 복지 등 여러 측면에서 조금씩은 왼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게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것인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2008년 이후 유럽이나 미국의 오바마 정부를 보면 잘 알 수가 있다. 그들은 변형된 신자유주의 또는 신신자유주의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안철수 원장이 나와서 설령 대통령이 된다 해도, 좋은 CEO 대통령 수준일 뿐이다.

– 비관적이고 우울한 전망인 것 같다.

= 촛불에서 시작해서 SNS라든가, 중동혁명 그리고 지난 해 타임즈가 2011년의 인물로 ‘프로테스터’를 선정한 것처럼 밑으로부터 변화를 위한 새로운 움직임이 보이고 있으며, 거기에 희망을 걸어볼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대중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촛불에 대한 무조건 낙관과 미화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대중의 움직임에 대해서도 두 얼굴 같이 봐야 한다. 나는 무조건 낙관하지는 않는다.

– 얘기의 방향을 돌려보겠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삶에 가장 영향을 준 두 스승으로 마르크스와 고 리영희 선생님을 꼽으셨다. 그리고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인용, “나는 유의태의 얼마 정도나 되는 스승일까를 스승의 날이면 항상 생각한다.”고 하셨는데.

   
  ▲사진=레디앙

마르크스, 리영희 그리고 베버

= 나의 스승은 두 사람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는 세 사람을 얘기한다. 마르크스는 지적 능력도 뛰어났지만 실천적 지식인의 전범을 보여줬다. 마르크스의 좌우명이 ‘인간적인 것 모두가 우리와 무관한 것은 없다’는 거였다. 세상의 모든 모순과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고민한 그의 공동체 의식에서 많이 배운다.

리영희 선생은 내가 개인적으로 어려울 때 종종 만났다. 나는 학교에서 잘리고 리 선생은 신문사에서 잘렸다. 우린 당시 막걸리를 자주 마셨다.

리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Live simple, Think high"(삶은 단순하게, 사고는 높게)이다. 내가 리 선생님 추모사에도 썼지만, 어느 날 선생께서 나를 부르더니 “지금까지 생활이 어려워서 밥상 위에서 글을 썼는데, 책(8억인과의 대화)이 많이 팔려서 드디어 책상을 하나 샀네.”라고 말씀하면서 그렇게 좋아하시던 모습이 잊을 수가 없다. 욕심 없고, 겸손하게 사신 분이다.

선생님은 또 “나한테 유일한 사치는 파카 만년필로 글을 쓴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글은 피로 쓰는 건데 소모품인 볼펜으로는 못쓰겠다는 거다. 잉크를 넣는 만년필로 계속 써야 된다는 생각이 분명하셨다. 지식인으로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써야되는지 전범을 보여주신 분이다.

다른 한 분은 막스 베버다. 그는 마르크스보다 50년 뒤에 살았던 보수적 사회학자다. 맑스(마르크스)와 이름이 비슷하다고 박정희 시대에는 그의 책이 금서가 되기도 했다. 베버의 좌우명은 “Warm heart, Cool head"(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냉철하게)였다.

(베버는 “정치인은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갖고 있어야 한다. 가슴만 있고 머리가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고, 머리만 있고 가슴이 없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말했다. "Warm heart, Cool heart”라는 말은 영국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의 표현이기도 하다-편집자)

그런데 살아가다보면 냉철한 사람은 가슴도 냉혈한인 경우가 많다.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은 머리도 펄펄 끓는다. 나는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머리의 균형을 가지고 살려고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얼마나 실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스승의 날에 제자들이 꽃을 가져다주기는 하는데 얼마나 훌륭한 스승으로 살아왔고, 실천했는지 생각해본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동의보감에서 나오는 허준의 스승 유의태이다.

조선시대에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표현에도 나와 있는 것처럼 우리 몸은 부모님이 주신 거라서 손상시킬 수가 없다는 생각 때문에 수술 같은 것을 할 수가 없었다. 우리 의술에서 다른 것을 발달했지만, 외과적인 부분은 발달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유의태가 암에 걸려 죽게 되자, 밀양의 얼음골에 가서 죽으면서 제자에게 그리 오라고 한다. 얼음골에서는 시체가 썩지 않는다. 자신의 몸을 해부해서 인체의 비밀을 공부하라는 말이다. 스승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다. 과연 나는 그에 비하면 얼마나 하고 있는가 비교해보면 항상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다.

삶의 왕도는 없다

– 2002년 언젠가는 ‘욕심’에 대한 물음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건방진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욕심이 없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발전에 대한 욕심이야 여전히 많다.”고 말씀하셨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러신지?

“삶에는 왕도가 없다”는 말씀도 자주 하셨는데. 어린 시절 미술학도를 꿈꾸셨던 선생님께서 최근 카메라를 들고 중남미와 중국 등을 여행하시면서 그것을 책으로 펴냈다(『마추픽추 정상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보다』, 『레드 로드-대장정 13800km 중국을 보다』) 앞으로도 계속 그 작업을 하실 건가?

= 삶의 왕도 없다는 건 대학교 때 경험에서 온 것이다. 나는 대학을 평균적인 학생보다 2년 일찍 들어갔다. 대학 2학년 때 데모를 하다가 감옥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미성년자였다. 재판하면서 미성년자라는 걸 감안하지 않은 채 구형을 잘못 내렸던 검사가 판사한테 야단을 맞기도 했다.

감옥에 갔다 와서 다시 데모를 하다가 또 잘렸다. 그때 경성사범(후에 서울대 사범대로 됨)을 나오신 아버님이, 경성사범을 다녔던 군사 정권의 실력자 김종필씨를 찾아가 “우리 아들을 도와달라.”고 요청을 했다. 그런데 서울시 경찰청의 담당인 정보과장이 “그런 놈은 안 된다. 감옥에 다녀와서도 계속 데모를 했다.”며 현장에서 내가 찍힌 사진을 잔뜩 가져와서 보여줬다고 한다.

그때 그 경찰이 아버님에게 “내가 학교 속에 프락치를 많이 심어놨으니까, 아드님에게 말조심 하라고 일러두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 후 아버님은 왜 당신의 아들만 잘렸을까 하는 의문에 나름 답을 찾으신 것 같았다. 그건 나와 제일 친한 친구가 프락치였을 거라는 의심이었다. 지금 한겨레 대기자로 있는 김효순이 아주 가까운 친구였다. 친구를 프락치라고 생각하는 아버지께 항의도 했지만 내가 순진해서 모른다며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 후 난 군대를 갔다. 어느 날 면회를 온 아버님의 얼굴 표정이 너무 좋아보였다. 그런 환한 표정은 몇 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내 이름을 부르시면서 “너, 잘리기 참 잘했다.”고 말씀하셨다. 나처럼 잘려서 군대를 오지 않았던, 김효순을 비롯한 내 친구들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잡혀가 사형을 비롯한 중형을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내가 일찍 잘린 게 그걸 피할 수 있었던 거다.

기회주의와 원칙을 지키는 삶

기회주의자로 산다고 해서 잘 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아무도 모르는 거다. 그럴 바엔 나의 원칙을 가지고 사는 게 좋다. 미국에서 박사를 하고 귀국했을 때, 한국의 정치학계가 보수적이기 때문에 취직이 어려울 거라며, 주변에서 취직을 위해서라도 진보적 글쓰기를 자제하고 고개를 숙이라고 얘기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취직한 다음에 쓰라는 얘기다.

그런데 좀 비겁하더라도 그런 행동을 하면 교수가 된다는 보장이 있으면 고민 좀 해보겠는데, 그런 보장도 없었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고, 나중에 취직도 됐다. 왕도가 없다는 말이 대강대강 살자는 게 아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원칙을 지키고 살자는 얘기다.

욕심에 대해서 얘기해보면, 한국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건강, 주택, 교육, 노후 문제가 걱정이 될 수밖에 없는데 나는 그런 걱정은 없다. 소위 명문대 교수도 됐다. 교수가 늦게 돼서 다른 사람에 비해 많지 않지만 연금도 나오니 무슨 걱정이 있겠나. 골프를 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88만원 세대 같은 고생하는 젊은이들이 많은 시기 아닌가.

한때 오죽했으면 학교 총장에게 내가 명퇴를 할 테니 후임 교수만 뽑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겠는가. 내가 돈을 받고 교수 자리를 내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연금도 나오고 다른 데서 시간 강사를 하면 된다. 취직 안 되는 젊은 사람들에게 자리를 내주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물론 제도를 고쳐서 그런 사람들이 취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되지만, 또 그런 싸움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힘이 부족해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내 자리라도 내놓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두 가지 종류의 늙음

다음으로 이제 늙어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다. 사회적 실천운동으로 진보교연에서 활동하고 있다. 김세균 선생이 정년을 앞두고 마지막 청춘을 불태우면서 진보정당 통합을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운동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아직 가지고 있다. 물론 여러 가지 실망스런 일을 보면서 이걸 계속 해야 하나 허무주의적 고민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나는 늙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본다. 동물적 늙음과 식물적 늙음이 그것인데, 전자의 대표적인 사례가 사자다. 사자는 늙으면 이빨도 빠지고, 젊은 사자한테 밀려 무리에서 쫓겨나 혼자 살다 죽는다. “논객 손호철” 이렇게 불리다가 어느 날 “젊은 논객”에게 밀려나 ‘비리비리’해지는 것 같은 거다.

식물적 늙음은 느티나무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당상나무처럼 늙을수록 커지고 주변에 그늘이 돼주는 것과 같다. 식물적으로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계 후배는 물론 어려운 조건에서도 사회적 실천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그늘과 버팀목이 돼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근데 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그렇게 되고 싶으면 논쟁을 덜해야 한다고 얘기해주더라. 적을 덜 만들고 품을 넓혀야 하는데 논쟁을 하다 보니 그러지 못하고 있다. 손호철 제자라고 하면 우파는 좌파라며 싫어하고, 좌파도 노선에 따라 싫어해서 득은 못 보고 손해를 본다. 그런 문제도 고민이 된다.

어떤 사람은 나보고 “개인적으로는 부드러운 남자고 정치력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보는데, 논쟁적인 것이 문제”이라면서 “3년 절필해서 세탁을 시킨 후에 정치에 입문을 시키고 싶다. 하면 잘 할 것 같다.”고 얘기하더라. 그럴까 고민도 해봤다.

여행, 역사 정치적 글쓰기 방편

미대를 가고 싶었는데 결국 그러지 못하고 이 길로 왔다. 예술에 대한 갈망이 아직 있다. 일종의 자기 사치 같은 거다. 내가 기자 출신이라서 그런지 딱딱한 이론적 글쓰기 고민을 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하면 현실과 현장감을 살려서 쉽게 대중적으로 전달하는 글을 쓸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한다.

마침 남미에 다녀와서 쓴 책이 평도 괜찮았고, 책이 많이 팔리기도 됐다. 한비야식의 여행에 관한 글쓰기라기보다는 역사 정치적 글쓰기의 방편으로 여행을 생각해보고 있다. 거기에 가능성을 보고 여러 가지 고민 중이다.

김세균 교수만큼은 아니지만 이번에 진보통합에 노력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좌절감과 허무주의적 생각도 들은 건 사실이다. 민교협 의장 4년 활동 등 현장실천 운동도 해봤다. 어떻게 보면 학자로서 사회적 빚은 최소한은 갚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러니 이제 여행이나 다니고 사진이나 찍을까 하는 허무주의적 생각도 있다.

내가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민교협 의장을 맡았다. 당시 나는 학자로서 큰 성취를 이루는 길을 갈 것인가, 실천적 운동에 나설까를 놓고 깊은 고민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기간 중에도 학문적 글쓰기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의장을 맡아서 다양한 실천 활동을 했다. 지금은 이제 내 자신을 좀 추슬러서 아직은 진보정치 운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걸 해야되지 않나 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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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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