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스꽝스런 위기, 단기 처방으로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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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21일 01:3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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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신당은 19일 오후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한 반성과 모색 – 노동자 정치와 진보좌파정당 건설”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진보신당은 “진보정치의 통합과 혁신의 움직임이 분주하지만, 현장과 지역에서는 오히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훼손과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며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이유와 원칙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고, 노동운동뿐 아니라 한국의 진보운동을 가장 신실하고 변혁적인 세력으로 되살릴 구상이 절실”하다며 토론회 주최 배경을 설명했다.

    진보신당은 또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 필요성에 적극 동감하며, 진보좌파정당 건설 연석회의라는 제안으로 진보신당이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진보정치의 주춧돌이 될 것을 다짐한 바” 있다면 이번 토론회는 “이에 대한 노동 진영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청취하고 쟁점을 정리”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회는 권태훈 진보신당 좌파정당 추진위원회 위원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발제는 이근원(공공운수노조 충북지역본부 조직국장), 허영구(새로운노동자정당 추진위원회), 심재옥(진보신당 부대표)이 맡았으며 진보교연의 곽노완(서울 시립대 교수)와 신현창(금속노조 GM대우 비정규직 지회 전 지회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아래 글은 이날 “노동자 정치세력화, 무엇보다 전략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이근원 발제문을 요약한 것이다. – 편집자 주

       
      ▲토론회 모습.(사진=박성훈)

    1. 다시 시작하려면 돌아봐야 한다.

    발제에 앞서 마음이 쓰리고, 아프다. 내 잘못도 크다. 분당 과정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활동가 여러분은 티코지만 노동조합에 있는 우리는 기차다. 불과 얼마 전에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라고 교육하고, 선전한 우리가 지금 탈당하자고 말할 수는 없다. 충분한 대중적 동의가 있어야 한다. 조금만 더 시간이 흐르면 안다. 기차는 길게 돌아야 하지만 결국 누가 빠른가?”

    분당과 신당 창당운동은 운동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대중과 함께 호흡하고 대중의 동의를 전제로 한 운동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정세인식의 오류와 이론과 실천의 모순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신당운동은 당의 본질적인 문제, 즉 노동정치의 실종과 우경화의 문제를 종북주의라는 협소한 틀에 가두어 버림으로써 노동계급에 기반한 새로운 계급정당의 운동이 아니라 민족의 문제만이 사상된 오히려 몰계급적이고 보다 사민주의적이고 개량적인 운동이 되고 말았다. 좀더 차분하게 대안을 모색하자는 목소리는 눈앞에 닥쳐 있는 선거준비로 인해 묵살되었다.

    우리가 어떤 내용의 정당을, 어떤 과정을 통해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진보정당을 다시 만들고자 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주장했지만 허공에 대고 소리지는 격이었다.

    지난 2008년 3월 2일 진보신당 구성을 위한 원탁회의에서 당시 노동자정당 건설 추진위원회 준비모임이 제출한 공식적 입장은 이렇다.

    진보신당 운동 반성할 지점들

    “오늘의 원탁회의는 새로운 진보정당운동의 첫발이며 이를 위해 각계의 추진 단위가 처음으로 만나 먼 미래에 우리가 만들 정당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논의하는 자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심상정이나 노회찬이 만들어 놓은 판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동등하게 참여한 자리라는 사실을 환기시키고 싶다.

    그런 측면에서 오늘 결성을 준비하는 진보신당은 새로운 진보정당이라고 규정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해서 만드는 정당은 이렇게 급조해서 만들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이를 새로운 당이라 규정한다면 우리는 민주노동당의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왼쪽부터 이근원, 심재옥, 권태훈, 신현창, 곽노완, 허영구.(사진=박성훈) 

    돌아보면 반성할 지점이 많다. 요약하자면 첫째, 노동의 조직적 참여가 적었다. 국회의원 당선 이후 보좌관 등은 있었으나 실제 노동조합과 결부된 사업을 추진할 만한 경험과 내용을 가진 사람은 중앙당에 거의 없었다.

    둘째, 국민승리 21부터 민주노동당까지 오는 과정에서 소위 ‘비판적 지지자’들과의 동거를 안이하게 판단한 지점이 있었다. 패권주의적 태도 등에 대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지 못했거나 통제력의 미비가 있었다.

    셋째, 당과 노동조합의 결합과 분리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미흡했다. 당원을 만들어 민주노동당에 보내면 되는 정도로 생각했지, 노동자 당원에 대한 실천적 과제를 주지는 못했다.

    마지막으로 분당과정에 대해 충분한 대응을 조직하지 못했다. 그 의미와 전망 등을 고려한 바탕위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과 그 가능성, 혹은 분당이 불가피하다면 이후 전망에 대해 공유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최근 통합진보당으로 간 인사들 중에서 종북주의 파동을 증폭시킨 조승수나 김형탁 같은 분들이 많다는 점은 분당 과정에서의 종북주의 비판이 얼마나 한계를 가진 것이었던가를 역으로 반증하고 있다. 이런 내용과 파장에 대해 깊이 있는 대응을 하지 못했다. 

    2. 돌아봄은 앞으로 나가기 위함이다

    진보정치 10년에 대한 평가는 이미 2008년 9월 진보신당이 주관하여 만든 연속토론회에서 거의 모든 영역이 다 짚어졌다. 하지만 당시 짚어졌던 문제 의식들이 이후 전혀 진척되지 않은 채 ‘노동’없는 ‘정치’로만 활동이 이루어졌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당시 토론에 참가한 김원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었다. 

    “지역에서 ‘일상적 정치활동’이 중요하다. 현재 민주노조운동의 중심적인 부문인 대공장노조 상당수가 ‘공장’과 ‘현장’을 넘어서는 사고에 미치고 있지 못한데 어떤 방식으로든 이로부터 노조들이 벗어나야지 온전한 의미의 정당 활동과 정치활동이 가능하다고 본다.

    당과 노조 간의 관계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정당 분열이 곧바로 노조 및 현장 활동가와 대중조직의 분열로 이어지지 않을까에 대한 문제도 있다. 작업장에 초점을 둔 조직화 모델을 근본적으로 다시 평가하며, 불안정 노동자, 여성, 비조직 노동대중을 삶의 공간이자 노동의 공간인 지역에서 ‘새로운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아직 길이 보이지 않는 ‘열린 모델’이긴 하지만, 정당운동, 사회운동, 지역 주민운동 등을 포괄하는 ‘개방적인 노조 모델’을 통한 준비 작업이 필요하다.”

    문제는 비판과 반성은 많았으나 여전히 같은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민중의 집’ 운동이나 진보신당의 참신한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는 점을 전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과 집중에 의한 새로운 진보정치의 길은 제시되지 않았다. 

    새로 출발하려면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현재 노동현장은 엉망이라는 점을 무엇보다 깊게 인식해야 한다. 분당과 탈당, 그리고 합당 등의 과정에서 노동현장은 무관심과 좌절, 그리고 갈등이 극대화되고 있다.

    87년 이래 주요한 ‘전략’으로 추진되어 온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거꾸로 현장의 분열과 갈등을 가져 오고 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길을 만들어야만 한다. 노동현장에서의 진보신당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애(愛)와 증(憎)이 교차하고 있다.

    3. 새로운 길은 없기도 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닥치고 있는 산별노조의 어려움과 정치세력화의 위기를 동시에 해결하는 길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확산, 한국사회의 변화와 새로운 진보의제의 창출 필요성, 계급문제와 사회공공성의 빈번한 충돌 등은 노동정치, 계급정치의 영역을 확장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시작은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추진해가고자 하는, 아주 멀고도 힘든 길을 걷겠다는 각오를 가진 중심축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만들려는 시도가 현재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러 조건상 대단히 힘들고, 총선 전 유의미한 중심축을 만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큰 틀로 본다면 산별노조와 정치가 함께 가는 새로운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어떤 형태의 진보정당이 만들어 진다고 해도 ‘돈대고, 몸대는’ 정치활동 이상을 벗어나기 힘든 조건이다. 이를 구체화하는 과정이 바로 대중적 진보정당을 다시 만들어 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이미 지난 2008년 노건추는 진보정당의 건설 경로를 밝힌 바 있다.

    “노동, 농민, 여성, 환경, 장애인, 청년학생, 문화예술인 등의 추진단위가 구성되어 각각의 전국적, 지역적 영역에서 그 토대를 구축하고 내용을 채워나가면서 이러한 단위를 통합해 나가는 것이어야 한다. 진보신당도 바로 이런 추진 단위 중의 하나로서 그 역할과 위상을 정리해야 한다.

    각각의 추진 단위는 진보신당 안의 조직이 아니라 독립적인 진보정당운동의 추진체로서의 위상을 갖고 독자적인 논의와 토론, 그리고 조직화를 통해 각각의 영역에서의 새로운 정치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 이런 활동들이 일정하게 진행된 이후 각각의 부문단위와 지역단위, 그리고 기존의 정치세력들을 대상으로 한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모임(이를 테면 원탁회의 같은)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진보정당 건설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경로를 거칠 때 민주노동당과 차별화된 정당을 만들 수 있으며 보다 폭 넓은 토대와 풍부한 진보의 내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평당원을 중심으로 세우는 민주주의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시 실패하지 않는 진보정당운동을 하겠다면 이런 전략을 분명하게 추진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이런 얘기는 당장 닥친 총선을 앞둔 진보신당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한가한 얘기로 비춰질 것이다. 그러나 다시 시작하는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다시 선거 일정에 의해 조악한 형태로 출발하고, 전략없이 전술로만 일관한다면 안될 것이다.

    총선과 대선이라는 선거 전술과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전략 사이의 충분한 고민이 집적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은 중심축을 만들려는 시도가 진행 중이고, 어떤 식으로든 조만간 가시적인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청년, 환경, 문화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런 움직임이 나타나도록 공조하고, 이를 종합하면서 전략을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길고도 어려운 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진보신당이 홍세화 대표의 말대로 진보정치 재구성을 위한 토대가 되려면 ‘밀알’의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할 것이다. 밀알은 썩지 않으면 새로운 싹이 나오지 않는다. 노동현장의 진보신당에 대한 반감은 통합진보당의 그것보다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당장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보신당에 들어와서 같이 만들어 가자.”라고 말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 집단으로 입당하여 당의 노동자적 성격을 강화하면 된다.”라는 논리와 다를 바 없다.

    현재 닥치고 있는 진보정치의 우스꽝스런 위기는 그런 단기 처방으로는 극복 불가능하다. 전술과 전략사이에 무수히 많은 갈등과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진보정당 운동의 전면적인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공통점이 있는가부터 점검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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