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미는 '공기'처럼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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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20일 10: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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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렸을 때에 배운 역사교과서에서는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되는 한 가지 사진이 있었습니다. 1917년10월 혁명 이후에, 평생 최초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농민 부인들은 칠판에 쓰여진 대로 공책에다가 잘 따르지 않는 손으로 어렵게 어렵게 씁니다: "우리들은 노예가 아니다. 노예는 우리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는 소련 정권 초기의 최초의 교과서 중의 하나인 <문맹 타도. 성인용 자모 교과서> (Долой неграмотность: Букварь для взрослых, 1919)에서 따온 문구였지요.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인 러시아의 역사교과서에서 그 사진이야 나올 리가 없지만, 인터넷에서 그 사진을 만날 때마다 왠지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비록 그 때의 해방은 몇 년 가지 않아 결국 스탈린주의적 관료체제는 봉기를 단행한 인민으로부터 그 자유의 상당 부분을 회수(?)해버리고 말았지만, 그 순간이 엄연히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사실에 대한 기억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합니다.

    경제문제 이상의 것

    1945년 8월 이후의 조선 각지에서의 인민위원회 설립 등 일시적인 ‘직접적 인민 민주주의’ 출현이나 1946년 10월 항쟁, 지리산 등지에서의 빨치산 투쟁에 대한 기억들은 한반도 남반부 민중들에게 중요하듯이 말입니다. 그러한 기억을 가진 인민들을, 잠시 다시 노예화시킬 수 있어도, 노예 상태를 벗어나려는 그 의지들을 완전히 꺾을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요즘 국내 소식을 듣노라면 아무래도 지금의 우리 상태는 집단적 노예상태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예컨대 최근 이란산 원유 수입 감축에 대한 소식을 생각해보시지요.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이란을 경제적으로 질식사시키려는 상전나라에서 후국(侯國) 한국에다가 "50%로 이란산 원유수입을 줄여라!"라고 엄명(?)을 내리고, 천자의 혜명(惠命)을 받들어 모시는 남조선후(南朝鮮侯) 명박(明博) 전하의 장상(將相)들은 "천자의 성은이 망극하옵니만, 저희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돌봐주셔업소서, 부디 30%만 줄이도록 은혜로운 명령을 다시 고쳐내려옵서소"라고 천사(天使: 천자의 사절) 앞에서 무릎을 꿇어 읍소하는 꼴입니다.

    남조선 후왕 (侯王)의 뛰어난 충성에 힘입어, 천자의 사절은 이제 보다 덩치 큰 후국 일본에 가서 역시 "이란에 대한 경제적 토벌에의 동참"을 비슷한 방식으로 명령할 셈입니다. 그런데 한국이라는 한 나라의 국가적 독립성이나 자주성은 물론 그 나라의 여권을 갖고 사는 모든 시민들의 개인적 자존감까지도 완전히 뭉개버리고 마는 이 소식은, 국내 매체들은 대개 "경제뉴스"로 다루어주었습니다.

    경제보다 훨씬 더 일차적이고 중요한 부분들이 관계되는 일이지만, 이미 주인님과의 명령/복종 관계에 익숙해진 노예들에게는 그 관계틀 속에서는 돈밖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왜 개인적 자존감의 문제인가요?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도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고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데에 대해서 나름대로 자긍을 하고, 자존의 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스코틀랜드 시인 로버트 번스 (1759-1796)의 명시 "사람은 사람이다, 등등"에서 이야기하듯이, "정직한 가난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자는 그저 비겁한 노예, 우리는 그를 상대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난하게 살 용기가 있다 등등" 이지 않습니까?

    미국은 왜?

    그런데 미 제국의 "이란 고사 작전"에 동참하는 이상, 우리는 더이상 "정직하다"고 자긍할 수 없습니다. 미 제국이 이란에 대해 별의별 경제 제재를 하고, 이스라엘의 모사드라는 첩보조직과 협동해 벌써 이란 핵과학자 4명의 목숨을 테러적 방법으로 빼앗고, 나아가서 아예 이란과의 전면전이라도 벌이려고 하는 진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인권?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란 국회를 보시면 여성 의원 아홉 명 정도 보이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 공격을 준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회는 물론 없고 여성의 정치적 진출을 아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란의 우파적인 신정(神政) 독재는 여성 등 여러 약자 집단들의 인권을 억압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전폭적으로 지지, 지원하는 사우디 등등의 걸프 지역의 보수적 왕국에서는 이란과 같은, 전체 대학생 중에서 여성이 65%나 차지하는 역동적 사회를 상상도 할 수 없다는 거죠.

    핵 폭탄 제조의 위험? 핑계에 불과합니다. 중동 유일의 진짜 핵무장은 바로 미국의 "우방 이상의 우방" 이스라엘이 갖고 있으며, 대다수의 객관적인 관찰자의 의견을 종합해보면 이란은 아직도 핵폭탄 제조 수준 가까이도 못갔습니다. 간다 하더라도 무엇이 달라지나요? 파키스탄에 핵무기가 있다고 해서 주변 지역의 지정학적 지도는 과연 크게 바뀌었나요?

    진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북조선이나 시리아, 중국과 마찬가지로, 이란은 미 제국의 후국이 되려 하지 않거나 될 수 없는 나라들의 그룹에 속합니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의 이란은 실제로 종교적 보수주의 방향으로 가고 인민들의 많은 기대들을 배반했지만, 그 혁명의 결과로 그나마 대외적인 자율성 정도는 따낼 수 있었습니다.

    이 부분이야말로 미국 집권자들의 눈엣가시가 되고, 혁명의 "혁"자만 봐도 벌써 겁과 증오에 치를 떠는 사우디와 같은 나라들의 지배자들을 자극시킵니다. 이란이 혁명을 거친, 자원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국가적 통제를 확립시킨 나라이기에 그 유전을 싼 값에 임대해 그 자원을 더이상 쉽게 약탈할 수 없게 된 유럽 열강들도 기본적으로 이란을 회의적으로 보고, 미 제국의 반(反)이란 책동에 아주 쉽게, 비교적으로 지율적으로 동참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일

    예컨대 과거에 이란을 반(半)식민화시킨 영국 같으면 그러한 동참은 자연스럽기까지 하죠. 그런데 한국은 영국과 같은 식민주의 침략의 역사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국과 달리 이란 혁명으로 그 자원 약탈의 기회를 잃은 것도 전혀 아니지 않습니까?

    한국 시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일제시절에 대한 집단 기억에 기반을 두는 반(反)식민주의적 정서로 봐서는, 이란혁명의 성과에 박수갈채라도 보낼 부분들은 많고, 굳이 경제적으로 보더라도 에너지집약적 제조업 국가 한국의 특징상 이란과 차후 아주 긴밀히 협력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같은 피해자 대열에 속한다는 역사적인 동류의식이나, 미 제국의 전횡과 범죄(여태까지 4명의 이란 핵물리학자를 암살시킨 것은 분명히 국제범죄입니다!)에 대한 도덕적 분노 등을 다 나몰라라 하는 우리 후국은, 미 제국의 공범으로 아주 아주 쉽게 나서는 것입니다. 한국 여권을 갖고 계시는 독자 여러분, 아무래도 자존심은 좀 상하지 않으십니까?

    1980년대식, 단순한 "양키여, 물러가라! 통일하자!"식의 반미에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있습니다. 남북한 양쪽 지배자들부터 시작해서 진정으로 통일을 원하지 않는 것부터 문제죠. 통일문제보다 계급문제가 일차적으로 해결돼야 된다는 말씀이죠.

    그런데, 이와 같은 단순한, 감상적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형태는 아니더라도, 노예상태에 묶여 있는 우리에게는 "반미"는 공기처럼 필요합니다. 미 제국의 국제범죄에 공범으로 나서게 되는 만큼, 우리들은 우리 자신들의 인간적 본성, 기본적 자존부터 부정하기 때문입니다.

    물처럼, 공기처럼 필요한 반미

    또 주인님들의 요구가 어디까지일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게 문제죠. 정말 미 제국이 이란을 침략하게 된다면 또 파병을 요구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렇다면 또 거기에 가서도 제국의 총알받이 노릇을 해야 한단 말인가요?

    반미는 공기, 물처럼 필요한 것이고, 또 한국이 미 제국과 적당히 거리를 두자면 현실적으로 수많은 방편들은 있습니다. 남북 공동 군축으로 주한, 주일 미군의 주둔 명분부터 약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 또 중국과의 안보차원 협조를 토의해, 미군의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중-북-남의 공동안보협력의 시대를 향해서 적어도 한두 걸음을 걸어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 같으면, 아주 궁극적으로는 남북한 양쪽의 영세중립과 한반도에서의 일체 외국군 철수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방향"입니다. 문제는, 노예화가 지나친 나머지 오웰의 말대로 "노예상태는 바로 자유"라고 생각하기에 이른 한국의 지배층이죠.

    "오렌지 발음"으로 한반도 "원주민"들을 줄세우고 계급으로 나누는 저들은, 상국(上國)으로부터 그렇게 쉽게 떨어져나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오렌지 발음"이 별로 좋지 않은 가난한 "원주민"들을 주인님들에게 총알받이로 계속 공급하려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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