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도 공범이다. 기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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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19일 02:1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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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버스 관련 첫 공판이 이번 주부터 시작됐다. 1월 17일 박래군과 송경동, 19일 희망버스 승객 몇 분, 20일 정진우 공판이 진행된다. 검찰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희망버스 참여자들에 대해 기소를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래군 송경동에 대한 2차 공판은 2월 7일 예정이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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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호 크레인에 붙어 있던 바람개비를 볼 때마다 뿌듯했다. 1차 희망의 버스가 85호 크레인 아래 닿았을 때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다음날 오전에 크레인 기둥에 붙일 거라며 부직포를 오리고 접어 붙여 바람개비를 만들고 있었다. “저도 같이 할까요?” 그렇게 앉아 새벽 동이 트고 나서까지도 바람개비를 함께 만들었다.

    ‘기다리던’ 소환장이 왔다

    희망의 버스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때쯤 여기저기서 소환장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렸다. 미안했다. 그리고 조금은 부러웠다. 함께 만든 희망의 책임을 지는 건 억울하면서도 행복한 일일 것이기 때문이다.

    2차 희망의 버스를 다녀온 후 받지 않기를 ‘기다리던’ 소환장이 왔다. 편지봉투에 담긴 종이 한 장이 그리 가볍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2006년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막는 싸움을 하다가 기소되어 서울에서 평택을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재판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일단 귀찮았다.

    한 건은 말도 안 되는 혐의를 씌우는 검찰의 기소에 끝까지 항변해서 결국 무죄를 받았다. 그래도 그게 2년 걸렸다. 한 건은 결국 벌금형이 떨어져 그것도 전과인 셈이니, 다시 벌금을 내게 되거나 혹시라도 구속될까 하는 두려움도 없지 않았다.

       
      ▲앞줄 왼쪽부터 송경동 시인, 백기완 선생, 정진우 실장. 

    엉뚱하게 내가 활동하는 단체로 불똥이 튈까 하는 것도 신경이 쓰였다. 가까운 사람들한테 괜히 염려 끼치는 것도 미리부터 걱정됐다. 지금 구속돼 있는 정진우가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는 길에 체포된 이야기를 듣고는, 혹시 내가 혼자 나가다가 체포되면 누구한테 먼저 전화를 걸어야 할까 고민도 했다.

    들리는 소식으로는 집이나 직장으로 무작정 경찰이 찾아가는 경우도 있었다니 그 역시 생각만 해도 피곤해지는 일이었다. 이 모든 것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피의 사건에 관하여 문의할 일이 있으니 영도서로 출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한 문장이 만들어낸 무게다.

    질문만 읽는데 2시간 훌쩍

    85호 크레인에서 사람들이 내려온 후 경찰 신문 조사를 받으러 갔다. 진술을 거부했으니 질문만 읽은 셈인데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간이 아까운 것도 그렇지만, 정말 불쾌했던 건 도대체 나를 왜 소환했는지, 경찰의 질문으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자존심도 상했다.

    내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카페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는 내 이름과 똑같다. 그런데 다른 단체 이름을 대면서 소속을 묻는 것이 아닌가. 흔한 이름은 아니라 인터넷 검색창에만 넣어 봐도, ‘미류나무’ 숲을 조금 헤치면 단체 이름을 알기가 어렵지는 않다.

    소환장을 예닐곱 번 보내는 정성과 비교하면 그 경찰조사의 무성의함이란, 그러면서 무작정 개인의 금융 정보와 통화 내역을 빼돌려 보는 경거망동이란.

    그나마 경찰이 유일하게 소환의 이유로 내세운 것은 사진 한 장이었다. 2차 희망의 버스에서 밥을 나눠주던 근처에 가만히 서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 찍는다 미리 얘기라도 해줬으면 웃으면서 포즈라도 잡았을 텐데 사진 참 안 나왔다는 생각을 실없이 하다가도, 그렇게 가까이에서 누군가 몰래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었다.

    괜한 자존심을 버리고 아직 내가 그만큼 열심히 활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반성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사법부가 나를 공범으로 불러주지 않는 건, 조금 서운하다. 나는 1차 희망의 버스에서 공장 담벼락을 넘으며 희열을 느꼈다. 홀로 외로이 고공농성 중인 한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어 고마웠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이 가자고 했다. 인권운동사랑방을 후원해주시는 분들에게 그 경험을 나누면서 같이 한 번 다녀오자고 메일을 보냈다. 주위에 있는 활동가들에게, 우리 이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가보자고 제안했다.

    간절히 공범이 되고 싶은 사람들

    수천 명이 함께 하는 1박 2일 일정을 치르는 데 일손이 빠듯해 보이면, 거들 일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매번 무려 3만 원이나 되는 참가비를 내서 희망의 버스 재정을 보탰다. 그 돈은 단체에서 지급되는 활동비를 쪼갠 것이니 단체를 끌어들여도 좋다.

    심지어 그 단체는 박래군이 함께 하고 있는 단체이고, 송경동이 후원하는 단체이고, 정진우가 좋아하는 단체다. 물론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의 버스는 처음부터 자발적인 개인들의 마음이 만나 여기까지 온 것이니 말이다.

    이렇게나 간절히, 공범이 되고 싶은 마음을 경찰이나 검찰과 같은 공안세력이 짐작은 할까. ‘희망’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내기가 무안했던 그날들을 감싸며 흐트러진 마음들을 추스르는 연대의 기운을 북돋은 희망의 버스에, 작은 힘이라도 보탰다는 게, 함께 했다는 게 뿌듯한 수많은 마음들을 상상은 할까.

    그들이 상상할 수 없는 희망의 물음들을 세상에 뿌려놓은 희망의 버스를 가두려고 할수록 더욱 공범이 되고 싶은 마음을 말이다. 그러니 진심으로 송경동과 정진우를 가두고 싶다면, 희망의 버스 일부 참가자들을 기소하고 재판하고 싶다면, 우리 모두를 공범으로 기소하라.

    신나게 웃고 떠들다가도 천 일이 넘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어쩔 줄 몰라 아파하는 마음들을 기소하라. 옆을 돌아볼 새도 없이 하루하루 쫓기듯 살다가 다른 세상을 알게 됐다며 따스하게 차오른 감동을 호소했던 마음들을 기소하라.

    절망에 짓눌려 무엇을 해야 할지 엄두가 안 났던 것을 차라리 반성하고, 밤거리에서 집회와 시위를 벌인 것을 반성해야 할 이유를 모르는 모든 마음들을 기소하라. 그때는 그 마음들이 법을 버릴 것이니 현명한 공안세력이라면 송경동, 정진우를 비롯한 수십 명의 희망의 버스 탑승객들에 대한 기소를 철회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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