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정치에 나서면 소는 누가 키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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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18일 05: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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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의 계절이 왔다. 올해 정권교체가 될 것인지가 새해 벽두부터 모두의 관심사인 것 같다. 그동안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주변 여러 사람들이 출판기념회를 한다며 오라고 한다. 그래서 누가 정치에 나서려 하는지 생각해보았다.

    자의도 있고 타의도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회변화를 위해 시민운동에 몸을 던졌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운동에만 몸담아서는 생계조차 꾸려가기 버거운 사회운동 출신들이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자기 직업세계에서 부당한 처사를 겪으면서 제대로 뜻을 펴보지 못한 사람, 나름대로 자기 직업 영역에서 성공을 했으나 더 큰 자기실현을 하고픈 사람, 그리고 권력 그 자체를 추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회운동의 경력을 바탕으로 제도정치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이들 새내기 정치가들의 열정에 힘입어 정치권도 물갈이되면 좋겠다. 그런데 세상의 화두가 모두 정치로 모아지고, 사회운동 지도자급 사람들이 너도나도 총선에 출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정치를 해야 하지만, 사회의 모든 능력있는 사람들이 모두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잘난 사람들’은 정치에 뛰어드는 현실

    그런데 파트타임 시민운동을 해온 나는 정치하겠다는 사회운동가들을 말릴 명분이 없고, 모든 일을 정권교체와 연결시키는 세상의 보통사람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다. 우선 40대 중반 넘어서까지 사회운동을 해서는 자신의 경력에 걸맞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없고, 자녀들 교육은 물론 가족의 생계조차 꾸릴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이후 공익 시민단체의 돈줄이 막히고 진보적 학자들의 연구용역조차 끊어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여전히 정치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을 너무도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다.

    우리나라 공직사회, 대학, 언론, 지역사회 어느 곳도, 뜻있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소박하게 노력하여 그 영역에서 조직도 발전시키고 자기실현도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이 대기업을 비판하지만 나는 이 점에서는 그래도 기업이 좀 낫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치에 나서기보다는 각 분야에서 최고가 되라는 충고는 지극히 맞는 이야기이기는 하나 한국사회의 현실과는 좀 동떨어져 있다.

    20여년 전 나는 노동현장 조사를 하면서 노조위원장 출신들의 이후 성장통로가 마련되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느꼈고, 이후 논문과 책에서 그것을 강조한 바 있다. 87년 울산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권용목은 고생 끝에 뉴라이트 쪽으로 갔다가 결국 일찍 사망했다.

    이것은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비극이다. 오늘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이 저렇게 미약한 것은 앞장 선 사람들의 스펙과 헌신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노동운동 자체의 사회적 영향력이 대단히 취약하기 때문이다.

    20여년 민주노동운동 역사에 제대로 된 노동교육센터나 노동재단 하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시민운동 20여년에 시민운동에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계속 활동할 수 있고 그들을 먹여살려줄 기관 하나 없다. 기자들은 삼성의 돈을 받아 미국연수를 가고 돌아와서는 삼성맨이 된다. 소신있는 기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민간재단 하나 없는 이 조건을 생각하면 그들을 비판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좋은 다큐를 만들 수 있는 자질과 의욕을 가진 가난한 영화제작자를 후원해주는 기관이 없고, 학자들이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조사·연구하려는 의지가 있어도 조사비를 구할 길이 없고, 장차 중요한 역할을 할 잠재력있는 연구자들을 훈련시킬 수 있는 대학원 하나 없는 현실도 그렇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좋은 거름을 주어야 한다

    자신의 영역에서 경력을 쌓아가면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조건이 안되어 있으니 모든 ‘잘난 사람들’은 곧바로 세상을 바꾸겠다고 정치로 가게 된다. 그런데 지난 20여년 간 세상을 바꾸겠다고 수많은 사회운동가가 정치에 뛰어들었건만, 오직 자기 자신만 권력자로 바꾸었을 따름이며 일부는 부나방처럼 불에 뛰어들어갔다 타죽고 떨어져 사람들의 발에 밟혔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치에서 경륜과 식견을 쌓은 전직 운동가들은 다시 운동 진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것은 비극이다. 개인의 비극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의 비극이다. 이들을 정치로 내몰고, 정치경력을 쌓은 이후에도 다시 사회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이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정치의 후진성, 정치가에 대한 배반감, 양심적 인사들의 변신과 도덕적 파탄을 계속 목격해야 하며 대중의 좌절과 실망감은 계속될 것이다.

    좋은 열매를 얻으려면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하고, 꽃을 피우려면 줄기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거름을 주는 일이 힘들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그저 나무에 영양제만 놓으면서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으며, 정치학자들은 이쁜 좋은 꽃이 꼭 필요하다는 원론적인 사실만 강조한다.

    우리사회 각계의 중견인 486세대는 언제까지 선거판에 나서는 친구들 정치자금을 대고만 말 것인가? 왜 그 부자 노조는 노동운동, 아니 자기 자식들의 미래에 그렇게 무관심한가? 국민의 피와 땀으로 오늘의 지위를 갖게 된 대기업들은 왜 자기 회사 이미지 홍보에만 그 많은 돈을 쓰는가? 우리사회에 돈은 충분히 있다. 그 돈이 미래를 위한 거름으로 사용되지 않을 따름이고, 또 돈 있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방법을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

    시민운동, 노동운동의 지도자들은 가장 ‘준비된’ 예비 정치가들이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는 지역이나 자신의 분야에 남아서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계속 발휘해주어야 하고 정치권으로 가더라도 다시 돌아와 그 경험을 전수해서 집단적 지혜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 대다수 사회운동가들이 거름이 되지 않으면 제도정치에 나선 동료들도 뜻을 꺾을 수밖에 없다.

    사회란 무엇인가? 공익을 위해 봉사할 의지가 있는 사람이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를 뒷받침해주는 물적 기반이다. 우선 공직이나 대학에서 이들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사회 내의 여러 진지들, 특히 많은 공익재단을 만들어 이들이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길이 오직 중앙정치로만 통하는 조선시대 이래의 과도정치화 현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치도 바뀌지 않을 것이고 우리나라는 계속 후진 상태에 있을 것이다. 정권교체? 물론 필요하다. 그런데 바닥현실을 보면, 교체되더라도 그 정권이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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