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당 운동 3기 실험 끝났다"
        2012년 01월 18일 09:0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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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수-자유-진보 3분 구도로 가야

    – 선생님께서는 한국 정당정치 지형에서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냉전적 보수세력, 민주당은 자유주의 개혁세력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한국정치에 필요한 것은 그 사이의 중도세력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같은 진보세력이라는 것을 줄곧 강조해왔다.

    이미 말씀하신 것처럼 진보정당의 최근 움직임에 대해 “최악의 시나리오로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상황은 통합진보당은 오른쪽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자유주의 세력과 통합하지만 여전히 거기서 진보정당이 가능성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진보신당은 그런 우경화를 비판하면서 왼쪽으로 달려가는 것 같다. 원래 진보신당이 지향했던 위상, ‘친북적’ 이미지를 벗고, 실력 있고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진보정당을 만들려고 했던 애초의 목표점과 다른 방향인 것 같다.

    이처럼 오른쪽, 왼쪽으로 달려가면서 진보의 어떤 중심이 사라지거나 무력화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 진보정치가 선택 가능한 대안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현실적으로 한국정치는 보수와 자유 그리고 진보의 3분 구도로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예를 들면 5.5 대 4.0 대 0.5 정도의 구도라면, 앞으로 이것을 점진적으로 냉전적 보수세력을 약화시키고 자유주의 세력이 중심에 놓이면서 서구처럼 보수 대 진보의 구도로 나아가야 생각된다.

    이를 위해 이번 총대선 구도는 진보진영은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사회당이 합해진 통합진보당이 생기고, 그 다음에 중간 측에 오른쪽으로 가는 순서로 보면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그리고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이 있다. 그래서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이 합쳐진 자유주의정당이 만들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왜 최악의 시나리오인가?

    그런데 결국 한편으로는, 과거로부터의 역사성이 작용하기도 했겠지만, 진보신당 독자파의 좌편향에 의해서 진보정치세력의 통합은 무산됐다.

    나는 두 가지 점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원인이야 어찌 됐든 진보신당 당 대회에서 부결이 된 이상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는 당에 남았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총선에서 패배를 하더라도, 대선 국면이 있기 때문에 진보정치세력의 재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됐는데 불복하고 떠났다.

    진보교연 소속 일부 교수는 진보신당에서 탈당한 사람들이 만든 통합연대에 같이 갔다. 그 이유는 불복도 잘못이지만 최소한 3자 통합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들과 민주노동당이 통합하고, 그 안에서 이른바 노심조 등이 중심이 돼서 국민참여당과 통합을 막아내면 진보신당 잔류파와 통합 가능성이 열려, 2단계 통합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런데 갑자기 3자 통합으로 가버린 것이다. 대중정치인으로서 정치공학적 필요성에 따른 통합이 인정되는 점이 없지는 않다. 심상정의 경우 그 전까지 태도를 보면 이해되는 바가 없지 않으나, 노회찬과 조승수의 경우 개인적으로 충격적이고 많이 실망했다. 3자 통합 방식을 잘못됐다고 본다.

    3자 통합의 내용도 그렇지만, 그 과정도 잘못됐다. 그 세 사람의 후원회장, 과거 선대위원장 역할을 했던 사람들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그런 선택을 했다. 나도 그런 얘기 들어본 적 없다. 인간적 배신감까지 느꼈다.

    진보의 좌우편향

    결국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과 자유주의 정당 중에서도 우파 자유주의 정당인 국민참여당과 함께 했다. 민주당이 말하는 무상복지, 보편적 복지를 유시민 씨는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사람이다.

    통합진보당의 이런 우편향과 함께 진보진영의 남아 있는 한쪽은 좌편향으로 흐르고 있다. 본인들은 대중적 진보정당이라고 말하지만 서클적 전위정당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진보의 좌우편향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최장집 선생과 생각을 같이 한다. 한국의 진보정당의 3기 실험은 끝났다. 해방 후 남로당을 비롯한 다양한 진보정당 활동이 있었다. 두 번째는 4.19 이후 진보정당 운동이다. 원내에도 진출하고 5~6% 지지를 얻기도 했으나, 5.16으로 끝났다. 이어 87년 민주화 이후, 특히 97년 IMF 이후 시작된 노동자정당 실험은 끝난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이미 말한 대로 신자유주의에 가까운 자유주의 정당과 통합했다. 노심조는 조직적 결정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거기에 합류했다. 그들은 자유주의 세력과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세력 사이에 포위됐다. 앞으로 이 당은 민족주의적 정당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진보 세력은 왜소해질 것이다.

    나는 이렇게 된 가장 큰 책임은 1차적으로 진보신당의 독자파에 있다고 본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노심조 등이 탈당을 하면서 진보신당의 독자파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국민참여당과 함께 함으로써 그들의 잘못을 잊게 만들어준 셈이다.

    진보정당 지지세력의 딜레마

    진보신당의 그 같은 잘못된 선택에도 불구하고, 진보정당를 바라는 세력들은 비빌 곳이 거기밖에 없다는 딜레마적 상황에 놓여 있다. 어차피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으로 보기 어렵고, 더구나 민족주의적 정당이며, 과거부터 비판적 지지 노선과 열린우리당 2중대론과 같은 태도,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태도가 남아 있어 굉장히 우려스러운 측면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좌파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허무주의적 반응이다. “모든 거 버리고 잊자. 이제 끝났다.”라고 말하거나, 아니면 작은 규모라도 그나마 남아있는 나머지 세력을 모아서 원래 목적이었던 통합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통합 진보정당이라는 것은 단순히 진보신당과 사회당 통합만 가지고 되는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 하면 나머지 노동과 문화계, 학계, 일반 대중 수준에 남아 있는 다양한 수준의 지지층과 과 함께 할 것인지의 과제가 남아 있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우리는 네 층위의 고민을 해야 된다고 본다. 먼저 대중정치인 수준이다. 이들은 당의 리더이자 간판이다. 대중 정치인이 없는 대중정당은 생각할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노심조 같은 대중 정치인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 사람들을 다시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다.

    두 번째는 활동가 수준이다. 이들은 겉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진보정치 운동의 뿌리인 사람들, 간부들이다. 예컨대 진보신당의 경우 독자파, 평등파 쪽의 활동가들인데 이들은 이번 통합에 가장 강하게 반대한 세력이다.

    세 번째가 당원이고 마지막이 유권자다. 이번에 진보신당의 대중적 정치인들이 탈당한 것은 첫 번째인 대중 정치인과 네 번째인 유권자의 교감을 기초로 해서 이뤄진 일이다. 대중적 정치인들이 탈당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만든 조건이기도 하다.

    진보신당, 서클적 전위정당 가능성 높아

    우리는 첫 번째와 네 번째 간에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하면 대중정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진보신당은 결국 두 번째의 길을 갔다. 이들은 서클적 전위정당으로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두 가지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이미 언급한 것처럼 노심조가 조직적 결정에 따르지 않고 탈당함으로써 진보신당에 면죄부를 준 점과 홍세화 대표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순수한 진보정당 지지 기반이 어느 정도는 있기 때문에 이들을 잘 모아내서 이번 선거에 어는 정도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통합 실패에 대해 “봐라, 노심조는 이미 나갈 줄 알았다.”는 식의 사후 정당화 논리를 펴서는 안 된다. 그 사람들이 가는 것은 경로 의존적이기 때문에 부결이 돼서 간 거지, 음모론으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어려운 조건이지만 새롭게 개방적인 태도로 나가야 된다.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조직 보위주의적인 수세적 방식으로 대응하면 다 끝난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와 개방적 태도, 자기성찰이 필요하다.

    – 선생님께서는 절차적 민주성을 강조하시면서 진보신당 9.4 당 대회에서 통합안이 부결된 것에 대해 독자파 책임이 크긴 하지만 통합을 주장한 이들은 그럼에도 당을 떠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같은 논리로, 2008년 민주노동당 심상정 비대위 혁신안 부결 이후 분당도 잘못된 선택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 그건 다른 문제다. 당시 심상정 비대위가 올린 안건의 내용은 분당할 것이냐 아니냐를 물은 것이 아니다. 비대위의 혁신안을 놓고 표결한 것이고 결과적으로 패배한 것이다. 그때는 당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한 것이다.

    만약에 당시 분당 문제를 놓고 토론을 하고, 그것을 표결한 것이었다면 문제가 다르다. 표결을 하겠다는 것은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안과 그때의 상황은 서로 다른 것이다.

    변혁성과 대중성

    – 지난 해 9월 “‘안철수 현상’을 보며 한숨만 나온 까닭”이라는 제목의 한 칼럼에서 “안철수 현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는 부정적 생각이 더 많다”면서도, “안철수처럼 대중을 움직일 수 있는 ‘진보의 안철수’는 정말 없는 것일까요?”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현실정치에서 리더십은 특히 중요한 문제다. 그것은 오늘의 현실과 내일의 꿈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인 이른바 ‘확신의 딜레마’를 해결해주는 주요 기제이기도 하다.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계시는 진보정치의 리더십의 자질은 무엇인가.

    = 안타까운 일이다. 항상 나는 진보정당 보면서 대중성과 변혁성을 같이 갖는 게 어떤 것인가 항상 많이 고민해왔다. 미국 60년대 반전운동 당시 가장 진보적인 음악가, 가수였던 필 옥스(Phil Ochs)라는 사람이 있었다. 밥 딜런이나 존 바에즈는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는 특정 사건을 가지고 만든 노래, 테마송을 불렀다. 1960년대 미국의 박노해라고 부르면 맞을 것 같다.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 부르는 포크 싱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가 엘비스 프레슬리의 웃기는 통바지에다가 전기 기타를 들고 나왔다. 완전히 난리가 났었다. 그는 아무리 변혁성을 가지고 있다 해도 대중성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의 변혁성에 엘비스의 대중성을 갖춘 음악을 만들겠다는 뜻인데 비판을 많이 받았다.

    변혁을 지향하면 소수화 되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경화가 되는 수밖에 없나?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김수영의 시에서 나오는 것처럼 대중들은 바람보다 먼저 눕고 먼저 일어난다. 그들은 지식인보다 더 급진적일 수 있다.

    노회찬, 심상정 같은 사람들은 진보의 안철수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보는데,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제대로 못했다. 이제는 그렇게 될 수 없게 됐다. 폴란드 바웬사나 브라질 룰라처럼 노동운동에서 출발해서 대통령이 되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진보성과 대중성을 갖춘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동계급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힘

    – 선생님께서는 “진보정당의 위기 뒤에 더 심각한 ‘노동의 위기’를 바라봐야 한다. 귀족노조라고 비판받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과 조직화되지 못한 다수로 양분돼 있는 것이다. 결국 그것을 묶어내 노동정치가 되살아날 때만 진보정치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와 함께 ‘적·녹·보(노동·생태·여성)’와 대중운동의 결합을 강조하셨다.

    이 말씀만으로는 구체적 상이 잘 잡히지 않는 것 같다. 지금 여기서 필요한 실천적 과제를 말씀해 달라. 그리고 민주노총 정치 방침에 대해서도 의견을 부탁드린다. 임영일 소장은 노조와 정당의 분리를 주장하기도 했는데.

    =노동운동의 위기는 다양한 측면에서 나온다. 그 가운데 가장 중심적으로는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미조직 다수 노동자로 양분된 게 가장 큰 문제다. 내가 좋아하는 학자인 조반니 아리기가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그는 마르크스가 노동운동을 바라볼 때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전략적 능력을 같이 결합된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20세기 노동운동을 보면 선진국과 제3세계가 분절된 상태가 됐다.

    선진국 노동운동의 경우 체제 전략적인 힘과 능력은 있으나, 체제 내 통합이 돼서 이해관계가 없고, 제3세계의 경우 이해관계는 있지만 전략적 힘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경우 대기업 노조는 전략적 힘은 있으나 노동자 계급의 투적 조합주의 경제주의에 빠져 있으며, 정말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다수 노동자들과 88만원 세대들은 이해관계는 크게 존재하나 전략적 힘이 전혀 없다. 이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민주노총, 통합진보당 배타적 지지 말 안돼

    진보정당 통합 문제 가장 첨예하게 부각된 이유는 노동운동 때문이다. 2008년 분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이 노동운동 현장, 민주노총이다. 민주노총이 진보정당 통합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결국 이번에도 기이한 형태로 진보정당의 통합이 이뤄졌고, 따라서 올해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노동운동이 갈가리 찢겨지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런 고민이 임영일 선생 같은 분리 주장으로 나왔을 거라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국민참여당과 함께 하는 통합진보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렇다고 진보신당만 지지한다거나, 두 정당 모두 지지한다는 것도 적절치 않은 면이 있다. 정치운동과 거리를 두자는 것은 그런 고민에서 나온 것이라 본다. 답이 잘 보이지 않는 어려운 문제다.

    이 문제는 노동운동의 객관적 현실과 연관시켜서 판단해야 되지만 내가 잘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얘기하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 우선 새로운 통합 진보정당을 지지하거나, 민주노총이 그만한 힘이 있다면 자신들이 중심이 돼 통합을 유도하든지 새롭게 재조정을 하는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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