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산도, 폭력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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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17일 06:5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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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뻘건 불덩어리의 용산 남일당 망루를 기억하는가. 쉬어터진 목소리로 여기 사람이 있다고 외치던 그때의 절규를 기억하는가.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가 영원히 하늘로 가버린 다섯 사람, 시뻘건 불덩이를 피해 단말마의 비명 속으로 뛰어내렸다가 영구 장애인이 된 사람, 아버지를 죽인 패륜아이거나 도시 테러리스트라는 가장 악의적인 죄명을 뒤집어쓴 채 지금도 감옥에 있는 사람들, 그네들의 한이요, 응어리요, 원형인 망루를 기억하는가.

       
      ▲상도동 철거 현장.(사진=최인기)

    그곳은 모든 게 멈춰 있었다

    2012년 1월 20일은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3주기 추모준비위는 추모주간 첫 사업을 1월 15일 오전 10시 남일당 자리에서 시작했다. 그곳은 시멘트 한 덩어리 남아 있지 않을 만큼 완벽히 철거되어 임시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다.

    레아호프가 있던 자리, 횟집이 있던 자리, 도서대여점이 있던 자리엔 영하의 흙바람만이 불었다. 국제업무지구를 위한 사업 진척은 전무하다. 공사 현장이면 대여섯 대씩 있는 그 흔한 포클레인마저 눈 씻고 봐도 찾을 길 없다. 이럴 거면서 기존의 생명들을 그리도 급하게 단애절벽으로 내몰았던가.

    불과 1년도 되지 않았는데 사업시행인가가 나버렸던 곳, 사업을 위한 치열한 고민도 없이 모든 일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자 했던 곳, 기존의 생명들에겐 타협안 제시가 아니라 철거용역들의 폭력부터 시작되었던 곳, 남일당 일대는 지금 모든 게 멈춰 있다.

    당시 철거용역들의 야만적 폭력에 맞섰던 이상림 씨는 용산구청에 ‘관리처분 인가’를 연기해달라는 진정서를 보낸 적 있었다. 하지만 세수 증가에만 혈안이 된 용산구청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답변서를 보내왔다. 그런데 보라. 용산참사가 일어난 지 1년10개월 만인 2010년 10월, 법원은 관리처분 인가의 절차상 문제를 들어 무효판결을 내렸다. 남일당 일대에서 포클레인 하나 구경할 수 없는 것은 그래서이다.

    그렇다면 죄 없는 사람들을 도심 테러리스트로 몰아 무모하게 학살하고 감옥에 가두었으니 책임자가 나서서 사죄했는가. 꿈같은 얘기다. 사죄는커녕 신년 특별사면에서조차 남일당 관련 철거민들은 제외되었다. 차라리 엿 먹으라는 식으로 건설입찰 비리 관련 행정제제 3,472건에 대해서는 제제를 풀어주는 꼼수까지 부렸다. 빌어 처먹을! 기죽지 말고 건설사업 밀어붙이라는 얘기렷다.

    사람 있는 건물에 포클레인 작업 만행도

    하여 넉다운 됐던 개발사업이 다시금 꿈틀대고 있다. 잘못 끼운 단추를 계속 끼워나간다는 얘기다. 그동안 쏟아부은 자금을 어떻게든 건져보겠다는 절망적 공격개발이니 그 무모함은 더욱 극에 달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북아현동에선 건물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포클레인으로 벽을 찍어대는 만행을 저질렀다. 사업을 강행하느라 대림건설은 가장 포악한 철거업체 ‘다원’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상도동에선 유령회사 세아주택 대표가 60억 원의 뇌물사건으로 감옥까지 다녀왔는데도 출소하자마자 강제철거를 단행하고 있다.

    물론 더 격해졌고 더 잔인해졌다. 애초 주택재개발사업을 조합주택개발사업으로 바꾸는 꼼수를 부린 것도 건설사 쪽이다. 상상하기 힘든 60억 원의 뇌물이 오고 간 것도 그 같은 꼼수를 정수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똥 뀐 놈이 냄새 때문에 코 막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복수하고 있는 꼴이다.

    남일당에서 출발한 용산참사 3주기 추모준비위는 그 현장들을 돌아보면서 입술을 사려 물었다. 용산3구역, 북아현동 철거지역, 상도동 철거지역, 성남 헌인가구단지에서 야만의 개발이 어떤 무모한 짓을 저질러왔고, 그악스러운 짓을 저지르고 있는지를 똑똑히 보았다. 3주기 추모준비위는 결코 잊지 않고 끝까지 연대하겠다는 의지의 현수막들을 걸어주었다.

       
      ▲두리반 토론 모습.(사진=최인기)

    그 씨티투어의 마지막 행사는 531일의 철거투쟁 끝에 영업을 재개한 홍대 앞 칼국수보쌈 전문점 두리반에서 가졌다. 참석자들은 용산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강제퇴거금지법’ 제정의 필요성에 공을 들였다. 특히 폭력이 만연한 철거현장을 돌아본 뒤라 법 제정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강제퇴거금지법 제정돼야

    법 제정이 선결문제라는 전제 아래 토론자들은 도시재개발의 문제점을 극한까지 치고 나갔다. 이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 교수는 도시재개발은 ‘지우기’라고 단정하면서, 누가 도시의 주인이고, 어떻게 도시를 민주주의적으로 개발해나갈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인 권영숙 박사는 한발 앞으로 더 나아갔다. 도시재개발은 자본주의 그 자체이며 현 시스템으로는 탐욕을 저지할 길이 없다고 내다봤다. 앞서 철거현장의 폭력뿐만 아니라 전경에 의한 국가폭력도 사라져야 한다고 발언했던 권 박사는 분별없는 개발정책에 맞서 토지공개념화를 주장함으로써 보다 전복적인 대안을 제시했다.

    두리반에서의 토론은 두 시간 이상 이어졌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시티투어 행사는 밤 9시를 넘겨서야 끝났다. 용산참사 3주기 추모준비위는 두리반을 나서는 이들에게 말한다. “잊지 마시라. 그리고 역사의 화살이 내 살에 박히는 아픔을 감내할 수 없다면 지금이라도 연대하시라. 용산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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