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비굴했다
        2012년 01월 14일 04: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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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위키리크스가 2011년 9월 폭로한 미국 외교전문(25만 건)의 충격파는 전세계를 뒤흔들었지만, 유독 한국만은 그 파장에서 비껴나 잠잠했다. ‘KOREA’란 단어가 들어간 비밀전문이 1만4165건이고, 주한 미국 대사관이 작성한 것만도 1980건에 이르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몇몇 전문들만 단편적으로 기사화됐을 뿐, 기초적인 조사 분석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죽 답답했으면 직접 그 비밀전문들을 번역해 알리려는 시민들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을까?

    새책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김용진 지음, 개마고원, 16000원)은 바로 그 주한 미 대사관 작성 비밀 외교전문을 통해 권력이 그토록 감추고 싶어 한 비밀들, 미국은 알지만 정작 우리는 모르는 ‘대한민국의 실체’에 대해 심층분석한 종합보고서인 셈이다. 따라서 최근 한국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들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파헤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협상과 아프간 파병, UAE 원전 수주, 독도 문제, 론스타, 한미 FTA 등 한국 사회를 격동시킨 사건들의 뒤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밀담과 비밀협상들이 그 대상이다. 비밀문서에 기록된 충격적인 내용들은 ‘공식적인 발표’ 뒤에서 굴러가는 ‘진짜 현실’을 보여준다.

    미국의 MB 사용설명서

    미국은 MB가 대통령이 될 줄 언제부터 알고 있었을까? 미국은 이명박이 서울시장이었던 시절부터 그를 유력 대통령 후보로 보고 유심히 주시하고 있었다. 대선 레이스 과정에서도 다른 후보들보다 이명박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는데, 미 대사관이 작성해 보고한 것 가운데 정동영 관련 문건이 9건인데 반해 이명박 관련 문건은 26건이나 된다.

    이명박은 미국 입장에서 매우 유용한 존재이기도 했다. 미 대사관은 MB를 “매우 친미적인 스탠스”를 보이는 유일한 후보로 평가하고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정감 있고, 유쾌한 상대”라든지, “군중들을 잘 다루며 카리스마 넘치는 대선 선두 주자로서 가는 곳마다 록 스타 대접을 받는다”라고 MB를 표현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미국은 이명박의 당선을 매우 반기며, 자신들의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과 친미 성향 보좌관의 임명, 그리고 4월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과반수 의석 차지 가능성은 미래를 위해 보다 본질적인 한미간 동반자 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 본능적으로 미국에 이끌리는 대통령과 행정부로 인해 최근 몇 년 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던 한미관계에 탄력과 신뢰를 회복할 진정한 기회가 생겼다. (2008년 2월 21일 전문) ―본문 366쪽

    하지만 미국은 MB를 그저 좋게만 바라본 것이 아니다. MB의 모든 측면을 철저하게 분석했다. 미 대사관은 이명박 대통령을 “포퓰리스트”라며, “휴고 차베스의 보수파 버전”으로 간주했다.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747 공약은 포퓰리즘의 산물이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MB가 복지에 대한 요구를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한 것과 대조적인 부분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자질과 배경을 “국법을 느슨하게 해석하는 삶을 살았다”며 냉철히 적시하면서 그의 당선은 “어떤 특별한 정치 기술이나 정책 비전보다 일차적으로는 좋은 운 때문”이라고 파악하고 있었다. 미국은 이렇게 몇 년간 정보를 모은 ‘MB 사용설명서’를 가지고 MB정부를 요리하기 시작했다.

    미국에 빌붙은 권력자들의 실체

    한국의 친미 인사들은 미국의 개입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보다 미국의 편에 서서 적극 협력했다. 대통령부터 관료들에 이르기까지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부끄러운 친미 사대주의 행동을 일삼았다. 재밌는 기록 하나는 2007년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이명박 캠프의 유종하 선거대책위원장이 버시바우 대사를 찾아가 BBK 스캔들의 핵심인 김경준의 한국 송환을 연기해달라고 부탁하는 동시에 이명박 후보의 친미 성향을 알린 대목이다.

    10월 25일 회동에서 유 전 장관은 한미동맹과 관련해 미국은 이명박 후보에 대해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후보가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연장을 매우 강력하게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2007년 10월 31일 전문) ―본문 255쪽

    김경중의 송환을 늦춰 달라면서 자신이 ‘미국편’임을 강조한 것이 의미심장하다. 이명박 정권의 주요 인사들도 강한 친미 성향을 내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인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미국 대사관의 오랜 정보원”이라고 불릴 정도다. 그는 1997년 대선 때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에 미 대사관에 조사 결과를 알려주기도 하고, 2007년에는 MB의 최측근으로서 선거 동향을 알려주고 차기 정부의 인선 정보를 미리 흘리기도 했다.

    또한 그 밖의 여러 정보원들이 고위관리의 인사나 주요 정책들을 미국에 줄줄 흘리고 미국 입장에서 조언해준다. 예컨대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론스타에 대한 금융위 결정사항을 미리 미국 대사에게 알려주고 대응 방법을 조언해주기까지 했다. 한국의 정치인과 관료들이 이렇게 미국에 ‘알아서 기었으니’ 미국이 한국에서 원하는 목적을 얻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더 비굴했다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비밀문서를 통해 본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모습은 보통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더 비굴하고, 부끄러우며, 한심하다. 미국의 요구와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굴복하고서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갖은 꼼수를 쓴다.

    정권의 부끄러운 치부는 어떻게든 감추려고 하고, 있지도 않은 성과를 치적이라며 크게 부풀린다.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보다, 정권의 체면과 자신의 보신을 우선시하는 모습은 큰 실망감을 안겨준다. 한국 국민들이 5년여 동안 익히 짐작하고 있던 것들을 이 책은 확실하게, 있는 그대로의 증언으로 확인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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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김용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상대 경영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과 미국탐사보도협회 IRE에서 1년간 탐사저널리즘을 연구했다. 1987년 KBS 기자가 된 이후 제대로 된 탐사보도 한 편쯤은 남겨보고자 여태 애쓰고 있다.

    사건 취재로 잔뼈가 굵었고, 매체비평 프로그램 KBS <미디어포커스>의 데스크와 KBS 탐사보도팀 팀장 등을 역임하며, 언론과 사회에 대한 엄정한 비판을 해왔다. 2008년 9월, 권력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낸 직원을 표적으로 한 이른바 ‘심야인사’ 때 부산 KBS로 파견됐다가 3일 만에 다시 울산 KBS로 옮겨, 그곳에서 4년째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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