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먹고 사는 요정들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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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12일 12:4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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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미디어보프(민중의 소리 내 노동방송국)의 편집음반 제작과 관련하여 문화예술인들이 성명서를 냈습니다. 왜 바로 성명서를 내지 않았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2011년 초여름에 편집음반 제작 사실을 인지했으니 오래 걸리긴 했습니다. 관련 문화예술인들이 많고 각자의 활동이 바쁘니 의견 조율이 쉽지 않았을 거라고 짐작하시더군요.

    "미안하다"라는 한 마디

    대답은 아닙니다. 우리는 기다렸습니다. “미안하다”라는 진심어린 한마디를……. 하지만 들을 수 없었습니다. 성명서를 발표하고 바로 다음날 사과문을 보냈더군요. 이렇게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던 것을 그동안은 왜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을까요? 그들만이 알겠죠.

    성명서를 접한 많은 분들이 함께 분노하며 격려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민중가요를 좋아하는 나의 실천은 무엇인지 말씀하셨습니다. 미디어보프에게 듣고 싶던 말을 여러분에게서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꽃다지 공연모습.(사진=칼라뉴스)

    어떤 분들은 이번 문제 제기를 단순히 ‘저작권을 침해하지마라’는 것으로 해석하시더군요. ‘창작문화의 훼손’이라는 애매한 말을 할 게 아니라 단도직입적으로 ‘저작권’을 주장해야하는 것이 아니냐고도 하셨습니다. 당사자들은 그럴 의향이 없었습니다.

    이 사안의 핵심은 저작권 문제 이전에 문화예술인과 창작물에 대한 ‘존중’과 ‘예의’의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작권을 침해당해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는 생각을 하기에 앞서 우리의 노래가 진보운동에 복무해야 하는 도구쯤으로만 취급받고 부정당했다는 생각에 더 분노했고 좌절했습니다.

    인터뷰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대중가요계에도 꽤 급진적인 사회비판의 목소리를 담은 노래들이 있는데 굳이 민중가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입니다.

    민중문화 3주체, 유기적 관계의 와해

    옛날에는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었습니다. “민중문화를 구성하는 3주체가 있다. 창작자, 유통자, 수용자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일방적으로 들려주고 듣는 수직적·수동적 관계가 아니라, 서로 피드백하며 민중문화를 완성하는 횡적·능동적인 관계이다. 민중문화는 소비되는 상품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 라는 꿈을 함께 만들고 수용하는 소통 그 자체이다.” 라고……. 지금 누군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게 답하지 못할 듯합니다.

    한때 활발한 피드백 과정을 거치며 민중문화를 만들었던 창작자와 유통자, 수용자는 서로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요? 얼마나 소통하고 있을까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중문화를 만들던 3주체의 유기적인 관계는 와해되었고 독자적인 유통구조는 거의 허물어졌습니다. 네, 겸허히 인정하겠습니다. 예전의 아름다웠던 문화공동체의 가치는 많이 잊혔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꿈꾸는 우리로서는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기도 합니다. 옛날처럼 할 수는 없겠지요. 시대가 변했고 사람이 변했습니다. 공동체문화의 가치는 여전하다 해도 그 가치를 담아내고 소통하는 방식은 새로 찾아야 할 일입니다. 이미 단순히 음반을 사고파는 상점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시선을 나누는 새로운 소통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여러 시도가 있었고 여전히 모색 중입니다.

    절치부심 새로운 모색을 하는 와중에 벌어진 미디어보프의 편집음반 제작과 문화예술인들의 사과 요구에 대한 묵묵부답은 민중문화 3주체간의 단절을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면에서 가슴 아프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와 미래이니까요.

    우린 베짱이가 아니라 노동자다

    미디어보프의 주장처럼 편집음반 제작이 성행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저도 많이 협조했었고 직접 제작해주기도 했었습니다. 어렵게 투쟁하는 현장에 작은 도움이 되고 싶어서, 노동자가 내일 먹을 밥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같이 만들자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문화예술인 아니 문화노동자는 내일 먹을 밥을 걱정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떠나갔습니다.
     

    자본주의를 반대하지만 발 딛고 사는 곳은 자본주의라는 현실 앞에서 음악 재생산을 위한 자본도 필요하고 생존을 위한 자본도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슬 먹고 사는 요정이 아니니까요.

    그럼에도 문화예술인들은 어쩌면 이슬 먹고 사는 요정이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당신은 문화예술인들을 게으름뱅이, 베짱이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이슬 먹고 사는 요정 행세를 해서…….

    우리는 요정이나 베짱이가 아니라 당신과 같은 노동자입니다. 나는, 우리는 문화노동자입니다. 이제 당신에게 문화노동자들의 손 내밀어 봅니다. 함께 밥을 짓지 않겠느냐고……. 같이 밥 먹고, 같이 살자고…….

    민중가요는 광장에서 만나야 제 맛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이 서로의 꿈을 나누고 일궈가는 과정이라는 의미일 겁니다. “당신 마음대로 사용하세요.” 혹은 “사용하지 마세요” 라는 주의 주장을 하기보다는 민중문화를 만들고 지켜나갈 새로운 길을 함께 찾아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노동자가 살맛나는 세상, 문화노동자가 밥 먹고 예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봅시다.

    같이,
    밥 먹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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