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의 통곡, 한국 교회의 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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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11일 07: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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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삼 ‘고문’의 추억에 관한 끔찍한 이야기가 여기 저기서 들려오고 김근태 선생을 고문한 이근안씨 소식도 듣게 된다. 물고문, 전기고문, 관절뽑기, 날개꺾기, 요도에 볼펜심 꽂기… 이근안씨의 고문 메뉴다. 그가 고문 ‘기술자’ 소리를 듣는 것은 ‘죽기 바로 직전까지’ 고문하는 기술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기술자 이근안씨는 민주화 이후 10년간 도피생활을 해오다 2000년 대법원에서 7년 징역을 선고받고 2006년 11월에 만기 출소하고 2008년에는 목사로 변신했다.

    김근태 선생은 살아 생전에 이근안씨가 수감된 교도소에 면회가서 자신을 짐승처럼 고문한 이근안을 용서했다. 그러나 이근안씨는 목사가 된 후에도 김근태선생에 대해 "건전지 하나 들이대면서 겁을 줬더니 빌빌거리더라"고 비아냥댔는가 하면 극우 성향의 ‘쿨 TV’에서 자신은 고문 기술자가 아니라 "애국자"라고 합리화했다. 2011년 2월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건전지 2개를 이용해 겁만 주었기 때문에 고문이 아니다. 자신의 심문은 일종의 예술"이라고 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직접 조사해 간첩 혐의로 형을 받은 범죄자들이 버젓이 국가기관에 의해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돼 한없이 좌절감을 느낀다"고 얘기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과거 행적에 대해 어떤 반성도 하지 않았음을 태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이근안과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반성은커녕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시키도록 하고 있다.

    이근안을 특별한 ‘괴물’로 취급하는 것은 또다른 우민화 논리가 될 수 있다. ‘악의 평범성’을 넘어 ‘악의 합리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근안은 국가 폭력의 충실한 집행자였을 뿐이다. 그는 "정해진 목표로 가는 가장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들고, 가장 리스크가 적은 길을 선택하도록 이성을 활용한 것"일 뿐이다. 시장 전제국가는 이를 합리화 한다.

    국가가 시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보다 시민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려는 의지에 의해 작동되는 사회에서, 폭력의 손맛은 쉽게 끊기 힘든 유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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