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진보당, 누구 위한 정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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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09일 09:5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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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 현장, 비정규직 외면 분노 폭발

    현대자동차 이경훈 전 지부장이 통합진보당 울산 남구 국회의원 예비후보에 등록한 것이 알려지면서 인터넷과 트위터에서 격렬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김진숙을 외부세력이라던 이경훈, 진보후보 출마 논란”이라는 제목의 <참세상> 기사는 트위터에서 수 백회에 걸쳐 리트윗되면서 최대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트위터에 올라온 글 중에서 이경훈을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글은 한 건도 없었고, 통합진보당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과 비판으로 확대되면서 통합진보당 당원들이 이정희 대표에게 이경훈 후보 출마를 철회시키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여기에 67900명의 팔로워를 가지고 있고, 2010년 11월 현대차 1공장 농성장에 올라와 취재를 했던 <한겨레> 허재현 기자가 “이경훈 현대차 전 지부장, 비정규직들 파업할 때 뒤에서 어떻게 그들을 생깠는지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현장에서 취재하고 있었거든요. 이런 사람이 노동자 서민 대변하겠다고 진보당 울산 후보로 나온다네요”라고 트위터를 날리면서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졌다. 그는 이어 “몇몇 진보언론 기자들은 이경훈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치를 떨었다”며 “저런 사람은 절대 누군가의 대표가 돼선 안 된다”고 썼다.

    이경훈에 분노하는 누리꾼과 현장

    누리꾼들의 거센 분노를 불러온 이유는 무엇보다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투쟁에서 309일 크레인 고공농성으로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을 이경훈 지부장이 ‘외부세력’으로 쫓아냈다는 내용 때문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에 대한 신뢰와 그를 살아서 내려오게 했던 희망버스라는 ‘외부세력’의 투쟁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이경훈 전 지부장이 파업 당시 했던 ‘외부세력 색출’은 큰 충격을 준 것이다. 거기에 2010년 11월 15일부터 시작된 25일간의 비정규직 점거파업 당시 공장 안에서 벌어진 사건이 알려지면서 관심과 비난이 증폭되고 있다.

    이경훈 출마에 대해 비정규직 당사자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분신을 시도했던 비정규직 황인화 조합원은 “따라다니며 낙선운동 하고픈 심정”이라고 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반대 서명운동이 추진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분위기도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다. 금속노조 간부였던 2공장의 한 조합원은 “지부장 선거에 나와 떨어진 사람이 국회의원 나오려고 하는 것에 대해 조합원들이 권력만 쫓아다닌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며 “현대차 김억조 사장과 찍은 사진을 후보 명함으로 만들어 뿌린다는 얘기에 분노하는 조합원들이 많다”고 전했다.

       
      ▲현대차 사장과 함께 찍은 이경훈 후보 명함.

    민주노총 이경훈 옹호하거나 침묵

    그러나 민주노총 간부들은 이경훈을 옹호하거나 침묵하고 있다. 민주노총 이영희 정치위원장은 “지난 11월말 비공식적으로 당 지도부에 이경훈 전 지부장의 남구갑 출마 의사를 전달했다”며 내놓고 지지운동을 벌이고 있다.

    소속 노조인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는 침묵하고 있지만 선거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속노조의 경우 박상철 위원장이 이경훈 지부장과 같은 조직 출신이다. 현대차지부의 한 관계자는 <울산매일>과의 통화에서 “당내 경선이나 조율을 거쳐 후보단일화가 이뤄지면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경훈 후보는 조승수 국회의원과 당내 경선을 치러야 하지만, 가까운 조합원들을 대거 당원으로 가입시켜 내부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사회적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경훈 후보는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지지를 받아 통합진보당 후보로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주와 어용의 장벽이 사라지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25일간 점거파업을 벌인 비정규직을 외면해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연대한 이들을 외부세력이라고 폭력으로 끌어낸 이경훈 지부장이 아무렇지도 않게 민주노총 후보, 통합진보당의 후보로 출마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노동운동 내에 민주와 어용의 구분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 동안 노동운동은 조합원의 이해와 요구를 넘어 전체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위해,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투쟁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최근 4~5년 동안 민주노총은 촛불, 용산, 쌍용차, 현대차 비정규직, 한진중공업에서 연대파업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민주노총의 중심인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민투위 집행부 시절 쌍용차 77일 점거파업에 대한 연대파업을 거부했고, 주간연속 2교대제에 대해 노동강도 강화에 합의했다. 주식과 성과급을 미끼로 한 자본의 무파업 요구에 굴복했고, 경제위기를 이유로 정규직 전환배치를 통한 비정규직 해고를 외면했다.

    민주노조의 외피를 쓰고, 민주노총의 울타리 속에서 어용과 별반 다르지 않는 노사 뒷거래가 횡행하기 시작했지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는 이를 방치하거나 외면했다. 결국 민주와 어용의 구분이 사라지고 관료주의의 노사영합주의가 기승을 부리면서 이경훈 집행부를 탄생시켰다.

    2010년 현대차 비정규직 25일 점거파업 당시 이경훈이 비정규직을 협박해 농성을 중단시키고, 연대한 이들을 외부세력으로 몰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민주노동당은 이경훈 뒤에 숨었고, 이경훈의 행위를 정당화시켰다.

    다행히 현대차 조합원들이 지난 지부장 선거에서 이경훈을 버리고 대등한 노사관계를 선택했지만, 이경훈의 국회의원 출마는 계급적, 변혁적 노동운동을 상실한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비극적 결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거다.

    진보정당의 무너진 노동자 계급성

    둘째, 진보정당의 노동자 계급성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6~97년 정리해고제 반대 민주노총 총파업의 성과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이 의회주의에 갇혀 조금씩 노동자 계급성을 상실하고, 노동운동의 경력을 팔아 ‘출세’하려는 자들로 채워지면서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멀어져갔다.

    결국 민주노동당은 많은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이라는 3대 악법을 만들고, 한미FTA 비준을 강행했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신자유주의 세력과 합쳤고, 사회주의 강령을 삭제하고, 핵심 과제에서 노동을 제외했다.

    민주노총에서 걸러지지 못한 후보들은 훨씬 더 높은 도덕성과 운동성을 요구하는 진보정당에서 걸러져야 하지만, 계급성을 잃어버린 진보정당은 이경훈 후보의 출마에 대해 침묵과 방관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경훈 후보가 버젓이 현대차 김억조 사장과 재래시장을 방문한 사진을 예비후보 명함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은 통합진보당이 누구를 위한 정당인지 상징적 보여주고 있다. 이경훈의 출마 논란은 변혁적 노동운동과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어디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노동운동과 진보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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