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인들 "민중의 소리 사과하라" 왜?
    2012년 01월 09일 04:5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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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소리 사업국 산하 계열사인 미디어보프가 지난해 전국농협노조에 저작권자의 동의없이 민중가요 편집음반을 제작해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해당 음악의 저작권을 가진 음악인들이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관행이라 상관없다고 했다"

음악인들은 지난 5일 발표한 성명서를 통해 미디어보프가 지난 20여 년간 불린 민중가요의 명곡은 물론 음반 판매를 하고 있는 최근 히트곡, 심지어 현재 미발표곡이며 음반 발매를 앞둔 곡까지 포함시킨 편집 음반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저작권 관련해서는 어찌해야 하냐는 노동조합의 문의에 ‘관행이라 상관없다’고 말하고 편집음반 제작을 대행했다"고 밝혔다.

모두 2장의 CD에 총 44곡이 수록된 것으로 알려진 문제의 편집음반에는 꽃다지, 김병수, 김성만, 김호철, 노래공장, 박성환, 박준, 안치환, 우리나라, 유인혁, 노동문화예술단 일터, 정윤경, 좋은친구들, 지민주 등의 곡이 저작권자의 사전 동의 없이 수록되었다.

음악인들은 이와 관련해 "음반 제작을 대행했다고 알려진 ‘민중의 소리’에 공문을 보내 사과문을 홈페이지 메인화면 상단에 72시간 게재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2달여 만에 돌아온 답변은 편집 음반을 제작한 주체가 ‘민중의 소리’가 아니라 ‘미디어보프’라는 담당자의 전화와 메일뿐이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이후 관련 예술인들은 인내심을 갖고 공식 사과를 기다렸으나 무시로 일관하는 태도를 접하며 다시 한 번 미디어보프의 태도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음악인들은 또 "(편집음반 제작이) 창작자들의 의사와 무관한 임의의 선곡과 편집으로 인해 창작자의 의도가 실종되고, 노동문화 재생산을 위한 경제 기반의 취약성을 심화시킨다는 문제점 등이 이미 제기"되어왔다며, 지난 2000년 민주노총 문화국과 문화단체들이 노동조합에서 임의로 편집음반을 제작하지 않기로 결의한 사실을 밝혔다.

   
  ▲음반 사진.

"자신들 영상에는 저작권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의 민정연 대표는 기자와 통화에서 "지난해 6월에 음악을 무단 도용당한 가수 중 한명이 문제의 2장짜리 편집음반을 발견했다"며 "처음에는 민중의 소리로 연락을 해서 공식적인 사과문을 홈페이지에 72시간 개재할 것과 홈페이지 자료실에 등재되어 있는 음원을 삭제할 것을 요구했으나 2달 뒤에야 미디어보프 이정미 대표이사의 이름으로 오해가 있다는 메일이 왔다"고 밝혔다.

민 대표는 "편집음반에는 제작 당시에는 아직 정식 음반으로 출시도 되지 않은 곡들이 무단으로 수록되었고 가수 이름이 오기되거나 누락된 경우도 있다"며 "자신들이 촬영한 영상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민중가요에 대해서는 ‘관행’이라며 이를 무시한 데 대해 미디어보프가 운영하는 방송국이 피해를 입은 가수들의 음원을 사용하는 것을 일체 거부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다"고 전했다.

처음 문제의 편집음반을 발견한 음악가 김성만씨도 "우연히 공연에 갔다가 짜깁기 앨범을 발견했고 제작 책임자를 찾아보니 민중의 소리가 해당 앨범을 제작해 준 것으로 확인되었다"며 "편집음반 제작을 의뢰한 노조는 잘못을 인정하고 수차례 사과를 했지만 민중의 소리는 책임을 미디어보프에 떠넘기기에 급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중의 소리가 하종강 선생님의 라디오 프로그램을 음반으로 제작할 때는 사전에 연락이 와서 음원 사용 여부를 물어봤다"며 "음원을 사용하기 전 작곡가 혹은 가수에게 동의를 구해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왜 절차를 지키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번 무단 음반 제작에 대해 음악인들과 문화평론가들은 다소 시각 차이는 있었지만 편집음반을 만든 미디어보프의 행동에는 문제가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창작자 동의조차 안 구한 것 결례"

자립음악생산조합 운영위원인 박종윤씨는 "기본적으로 저작권에 대해서는 성명서를 낸 음악인들과 입장이 다를 수 있다"며 "하지만 이번 편집음반 제작은 돈 문제를 떠나서 창작자인 음악가에게 동의조차 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예의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유데이 페스티벌 정문식 집행위원장도 "문화예술을 운동의 부속물로 생각하는 시선이 그대로 드러난 사건"이라며 "창작물이 갖는 저작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일어난 수준 이하의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문제가 된 편집음반을 제작한 미디어보프는 민중의 소리 홈페이지의 계열사 조직도에 따르면 민중의 소리 사무국 산하의 계열사로 명기되어 있으며, 미디어보프가 운영하는 한국노동방송국 홈페이지에 소개된 연혁에 따르면 2005년 민중의 소리 TV 제작국과 민중의 소리 RADIO 제작국이 합해서 설립된 것으로 소개돼 있다. 연혁과 함께 개재된 회사 소개에도 "민중의 소리 미디어 사업팀의 경험과 성과를 바탕으로 미디어보프가 탄생했습니다"라고 돼 있다. 

편집앨범 제작을 의뢰했던 전국농협노조 한순희 교육국장은 "처음에 조합원들에게 민중가요를 나눠주기 위해 민중의 소리로 전화했더니 미디어보프로 연결해줬다"며 "당시 여러 가수가 부른 노래가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문의했으며, 다른 노조와도 비슷한 작업을 했었는데 (저작권에 대한) 문제가 없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전국농협노조가 사과문과 함께 음악가들에게 보내준 미디어보프 측의 편집음반 견적서에 따르면 총 2140세트(CD 4280장)가 제작되었으며, 이 음반은 모두 전국농협노조 조합원들에게 무료로 배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민정연 대표는 "견적서를 보면 미디어보프 측이 실비 수준의 금액만 받고 제작을 해준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편집앨범뿐만 아니라 다른 노조에 대해서도 미디어보프가 지속적으로 편집앨범 제작 작업을 해줬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소한 재상산 가능한 수준 저작권도 보호 못받아

민 대표는 이러한 형태로 민중가요 음원이 주요 소비층인 노동조합 조합원들에게 배포될 경우 꽃다지가 주장하는 (창작물에 대한) 배타적인 저작권이 아닌 최소한의 재생산이 가능한 수준의 저작권마저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음악평론가인 차우진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대중음악뿐만 아니라 인디음악과 민중가요에도 당연히 저작권이 존재한다"며 "성명서를 통해 알려진 편집음반 제작 당시 제작사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아예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또한 "민중가요에 대한 개념의 재정립이 필요한 시기"라며 "사람들이 비주류·비상업적 성격의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개념이 허약한데 민중가요에 대해서도 이참에 레이블 형태의 저작권 관리집단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공동체 성격을 유지하되 창작물 사용에 대한 CCL(Creative Commons License, 조건이 붙은 저작권 자유이용 권한)과 같은 확실한 사용기준을 정할 것인지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디밴드 3호선버터플라이의 멤버인 성기완씨도 "저작권을 현재의 자본주의적인 방식이 아닌 공적인 컨텐츠로 설정하면서 동시에 창작자의 권리를 지켜줄 수 있는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밝혔고 "하지만 저작권을 활용하는 사람이 창작자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를 지키지 않는다면 공적인 기능을 활용할 자격이 없다"고 못박았다.

한편 미디어보프는 지난 5일에 음악인들이 공식적으로 항의 성명서를 발표하자 이정미 대표이사의 명의로 다시 한 번 사과의 뜻을 담은 메일을 꽃다지 민정연 대표에게 보내왔다. 또한 본 기사에 대한 취재가 시작되자 이번에는 편집음반으로 피해를 입은 14명의 음악가들에게 전체메일로 다시 한 번 사과메일을 발송했다. 하지만 미디어보프 측에 사실 확인을 위해 전화를 하자 회사 대표번호는 수신이 불가능한 상태였으며, 민중의 소리 영상사업팀에 전화번호를 남겼지만 현재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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