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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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07일 12: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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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돌연히 독감에 걸린 뒤에 몇시간 동안 책을 읽을 힘조차 갖지 못해 그저 아이를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했습니다. 사람이 아플 때에 반성을 하게 되는 법칙이 있는가요? 인지상정인지 어떤지 모르지만, 저 본인이 아프면 과연 남에게 아픔을 주지 않았는가를 곧 생각하게 됩니다. 개인적 반성 관련으로는 여기에서 쓰기가 곤란하지만, 대(對)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어제의 제 생각을 정리해보자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자본주의가 힘을 잃어가는 오늘날에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나라의 좌파가 자본주의적 시장지상주의가 추락한 그 만큼의 "세 확장", 그 만큼의 성장을 하지 못한 이유들이 객관적인 현실에도 있지만, 또 동시에 분명히 우리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한 반성을 치열하게 해야 좌파라고 누구에게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반성이 있어야 좌파는 좌파답게 대중화될 수 있을 것이고, 반성하지 않고 독선적으로 나가는 만큼 결국 폐쇄적인 섹트로 전락할 위험은 큽니다. 반성의 주제들을 거칠게나마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1.

소련의 망국은 분명히 역사 희대의 비극이었습니다. 1989년과 1997년 사이에 러시아만 해도 1천명 당 사망률이 9명에서 16명으로 폭등해, 1980년대에 비해 약 3백만 명이 "추가적으로" 죽은 셈이었습니다. 영양실조와 알콜, 마약 중독, 각종 범죄, 체첸 독립운동에 대한 무력진압과 학살 등등으로, 고통스럽게 죽은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민중의 희생을 대가로 해서, 극소수의 관료와 관제 재벌, 정상배들이 구소련의 자원과 공장을 "사유화"(약탈)한 것이고, 기생적이고 극도로 폭력적, 반민중적 "신흥 자본주의" 사회를 건설한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 비해서야, 후기의 소련도 거의 낙원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과연 소련이나 동구라파 국가들의 망국/체제변환은 "사회주의 사망 신고"이었을까요? 푸틴의 마피아 자본주의에 비해서야 당연히 민중으로서 살 만한 사회이었지만, 스탈린 시절의 보수화와 혁명가들의 숙청, 관료화를 거친 그 사회는 이미 거의 이렇다 할만한 혁명성을 보유하지 못했습니다.

혁명성을 그대로 어느 정도 여전히 보유하는 쿠바와 같은 "현실 사회주의" 사회들은, 소련과 달리 망하지도 않았으며 망할 일도 없습니다. 스탈린 시기 이후의 소련의 사회적 체질로 봐서는, 고급 관료들이 약탈적 자본가로 변신해 "사유화"에 나서는 것은 어디까지나 시간의 문제이었으며, 이는 "사회주의 패망"이라기보다는 1917년 러시아 혁명의 궁극적인 "한 주기의 완주"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혁명 이전의 자본에 대한 사유제가 부활됐으니 "원점"으로 다시 온 셈이죠. 그런데 일국화된 뒤에 고립화, 관료화돼, 결국 변질되어 이렇게 자기부정된 러시아 혁명은 "원점"으로 귀환될 수 있어도, 이는 사회주의라는 세계적 이념의 패망을 의미하지 않으며, 의미할 수도 없습니다.

소련의 패망을 "사회주의의 패망"으로 간주한 것은 분명 근거없는 패배주의였습니다. 그런데 이 패배주의는 특히 1990년대에 국내 좌파를 황폐화시키고, "포스트 바람" 등 각종의 기형적인 현상들을 일으킨 것입니다. 역사를 긴 안목으로 봐야 할 좌파는, 왜 그렇게도 근시안적이었을까요?

2.

소련이나 북조선은 분명히 우리가 꿈꾸는 "사회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사회들입니다. 혁명의 점차적인 제도화, 관료화 과정도 있었지만, 아무리 혁명적 열정이 남는다 해도, 미제나 서유럽, 일본, 남한과의 같은 굴지의 야수들로부터 방어하느라고 국내총생산 20~25% 정도를 무의미한 "국방"에 써야 하는, 각종의 무역 제한으로 말미암아 최신의 기술에의 접근이 많이 차단돼 있는 (준)주변부 사회들은, 사람들이 조금씩만 일하고도 각자의 자유로운 자기 실현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산주의적 낙토로 고립된 채 발전되기가 아주 힘듭니다.

그 엄청난 자원과 상당한 기술력을 가진 소련마저도 결국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약간의 여유만 있는 상대적 빈곤을 선사해야 했으며, 자원은 훨씬 없는데다가 국방비 비중이 훨씬 더 높고 고립이 훨씬 더 심각한 북조선은 비극적이게도 식량문제마저도 안정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일국적 현상이 아닌 세계적 현상이어야 하는 것이고, 지금 핵심부가 보유하는 기술력 이상의 생산력 수준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 즉 매일매일 사람을 파김치로 만드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가 가능해질 것입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각자가 하루에 2~3시간씩 사회적 노동을 한 뒤에 시를 쓰거나 산책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랑을 나누는 등 말 그대로 모두들의 자유로운 자기실현을 담보할 개인의 자기실현에 몰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회가 되라고, 야수나 언제 간섭할지 모를 강대국에 둘러쌓인 동북아의 최빈국에 요구하는 건 분명 무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소련이나 북조선의 현실은 우리 이상과 많이 다르더라도, 그 현실을 여러 가지 이유로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운 여러 분파들의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과연 그렇게까지 배타적으로 대할 필요는 있었을까요?

2008년 이전의 구 민노당의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은 북조선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계급문제를 등한시한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었지만, 좌파는 정말 그들과의 타협의 여지도 없이 선을 그어야만 했을까요? 분당은 불가피했는지는 몰라도 정말 최선이었을까요?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좌파가 떠난 민노당이 유시민 류의 부르주아 정객들의 들러리가 돼버린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부르주아 정객들의 손을 머뭇거림없이 잡아주는 것은 분명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의 엄청난 오판이고, 그들의 어떤 근본적인 판단 오류를 보여주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좌파는 같은 당 안에서 남았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을 견제하여 그들의 이와 같은 치명적인 오류들을 예방할 수라도 있지 않았을까요?

이미 과거의 일이라 소용없는 이야기지만, 그 때에 분당을 긍정한 제 자신의 언행을 저는 지금 책망하고 싶습니다. 잔류 만노당이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치의 늪으로 빠지고 만 지금으로서야 진보신당의 독자적인 강화, 진정한 계급 정당으로서의 대중화 등이 유일한 선택이지만, 4년 전의 일은 많은 면에서 후회스럽게 느껴집니다.

3.

산업화된 세계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오래동안 일하고, 비정규직들이 가장 많은 나라에서는, 절실한 계급문제 대신에 다소 관념화돼 있는 "민족" 문제를 앞세우고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히 좌파가 할 일은 아닙니다.

노동자들에게 지옥뿐인 야수 남한의 주도로 "통일"이 되는 것은 잘못하면 북조선 민중들에게 대재앙이 될 위험성이 높습니다. 결국 남한과의 평화 공존 체제 속에서 북조선이 독립적으로 발전돼 가는 가운데 지금 중국이나 월남 민중이 파업 등을 통해서 하듯이 북조선 민중들도 그 통치층들에게 사회적 정의 구현을 요구해가면서 그 자율적 역량을 강화시키는 것은 아마도 민중 본위로 사고되어지는 "통일" 문제의 당분간의 최선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좌우간, 좌파의 "통일" 논의 기조에는 추상적인 "민족"이 아닌 구체적인 노동계급의 권리와 복지, 독립적 역량 강화가 깔려 있어야겠습니다. 그런데 자주파의 "통일지상주의" 등의 오류에 위와 같이 반대해도, 미제에 의해서 군사보호령이 되고 만 나라에서 지식인이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는 어떤 민족주의적 울분을 십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군사적 점령에다가 요즘 매판적 성격이 아주 강한 남한의 지배엘리트들이 영어를 모든 사회적 진출, 신분상승의 기분으로 만들어놓은 것도, 사실 많은 이들에게 그저 민족적 모욕감만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좌파가 반대해야 할 것은 영어를 쓰는 나라들의 민중이 아니고 남한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의 지배자들이지만, 좌우간 한반도의 식민지적 과거까지 생각하면 계급 문제들이 "민족적으로" 오해될 소지들은 여기에서는 많습니다. 그렇다면 민족주의자/자주파들과 보다 진지하게 논쟁해서, 적어도 그들을 인간적으로라도 이해해주어야 되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 저는, 지금 이 부분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합니다.

민족주의적 등의 오류들을 당연 "오류"라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좌파에게는 독선이 아닌 이해와 관용이 필요할 것입니다. 속단 대신에 장기적인 역사적 비전이 필요합니다. 과거에 장기적 시각과 이해력, 관용이 부족했던 데에 대해 반성하고, 앞으로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을 것을 인제 자신에게 서약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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