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 최상재를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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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1월 04일 01: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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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마지막 날까지 닷새 시간이 남았던 지난 달 26일 정오. 서울 목동 SBS 본사 로비 바닥에 한 남성이 앉았다. 그리고 팻말을 든 사람들이 하나 둘 그의 곁에 섰다. 이들이 든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최상재는 우리 자랑, 대기발령 취소하라”

최상재. 그는 SBS의 PD로 <그것이 알고싶다>, <세븐데이즈> 등을 연출하며 민영방송 SBS의 공영성을 채우는 역할을 했다. 지난 2004년엔 SBS노조위원장에 취임해 당시 재허가 위기에 처했던 SBS의 구원투수 노릇을 했다. SBS의 공공성을 실현하는 데 노조가 앞장서겠다고 약속하며 재허가에 부정적이었던 정부와 방송-언론계 안팎의 여론을 설득했다.

2007년 언론노조가 회계부정 사건으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을 때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도 그였다. 위원장에 취임한 그는 어수선한 조직을 바로잡은 뒤, 곧이어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갖가지 언론장악 시도에 맨 앞줄에서 맞섰다.

지난 2009년 7월 여당이 자신들에 우호적인 신문들에 방송 사업을 허가하기 위해 언론법을 날치기 처리했을 때도 그는 국회 본회의장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 순간까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공영방송을 장악한 대통령 측근 사장들이 비판 저널리즘 소명을 지키려던 언론인들과 보도-프로그램들을 국민 시선 밖으로 밀어내려 할 때도, 그는 주저 없이 달려가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2009년 11월 최상재 당시 언론노조 위원장이 언론관계법 국회 재논의를 촉구하며 프레스센터 앞에서 농성투쟁을 벌이고 있다.(사진=공공운수노조)

그랬던 그가 지난해 2월 본업인 PD로 돌아가기 위해 회사로 복귀했다. 하지만 회사는 그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제작 일선에 있었을 당시 능력을 인정했던 회사는 그에게 프로그램을 맡기지 않고, 비제작부서 한 구석에 자리를 내줬을 뿐이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회사는 그에게 ‘해고’ 전 단계인 ‘대기발령’ 통보를 내렸다. 그가 언론노조 위원장으로서 이끌었던 언론법 투쟁으로 인한 형사재판에서 유죄를 받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 판결도 내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회사 SBS는 그를 회사 문 바로 앞까지 밀어냈다. 그 회사는 건설회사 태영이 지배주주이며, 아버지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세습 사주가 지배하고 있다.

그가 언론노조 위원장 임기를 마칠 무렵, 차기 위원장과 함께 하는 대담을 위해 만난 일이 있다. 그때 그는 회사로 돌아가면 시사교양 PD로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일부에선 언론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그가 정치권으로 가 언론의 자유가 더 이상 권력에 의해 흔들리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해주길 기대하지만, 그는 프로그램 제작에 뜻을 두고 있었다.

당시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을 뿐이었지만, 그가 만들고자 하는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는 필자 역시 컸다. 그가 언론운동의 상징이 된 존재여서도, 과거 프로그램을 잘 만들던 PD였던 때문도 아니다. 지난 2007년 언론노조 위원장에 취임한 그가 대중 앞에서 했던 첫 말 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사과를 했다.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을 말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크레인 위에 오르고, 농민들이 FTA(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며 눈물을 쏟을 때 함께 하지 않은, 권력화 된 언론의 모습을 대중 앞에 털어놓으며 미안하다 말했다. 지금은 비록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언론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언론의 가치를 지켜야 한다고, 그 일에 인생을 거는 언론인들이 있다고 호소했다.

물론 그 호소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언론 현실은 초라하다. 어쩌면 그가 호소했던 당시보다 더 후퇴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지금의 언론 현실 속 그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스스로를 합리화하지 않으며, 미안하다고, 변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기 때문이다.

KBS, MBC와 달리 사주(社主)가 있는 SBS에서 노조를 한다는 것은 언론인 개인으로서 욕망을 포기함은 물론, 인생 자체를 거는 행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주저 없이 인생을 걸었고, 언론운동의 중심에 있던 수년의 시간 동안 언론인으로서의 염치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안다는 것의 무서움은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언론인의 염치를 알아버린 최상재가 만드는 프로그램에는 시청자들이 실망하고 있는 작금의 프로그램들엔 없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새해가 된 지금도 그는 SBS의 로비에 있다.

* 이 기사는 <PD 저널> 김세옥 기자가 썼으며, 금속노조 인터넷 기관지 ‘금속노동자’(www.ilabor.org)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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