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민주의, 한국 진보파 이념 최대치"
        2012년 01월 02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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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2012년 새해를 맞이하여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를 ‘특별 인터뷰’ 형식으로 만났다. 최 교수는 올해 치러질 두 차례 선거는 "사회경제적 이슈가 정치 경쟁에 전면으로 등장"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으나, 이런 이슈를 충족시켜줄 정당체제는 형성, 발전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사회경제적 이슈가 전면으로 부상하게 된다면, 전반적으로 정당 간의 경쟁축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데 "진보 쪽도 민주 대 반민주와 같은 20년 전의 낡은 정치관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주의의 확대 심화를 위해서라도 자유주의 이념의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또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는 다르며 자유주의도 충분히 진보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 사회에서 진보 좌파의 이념적 최대치는 사민주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지난 12월 26일 청담동에 있는 최장집 교수 연구실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으며, 인터뷰는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가 진행했으며, 이광호 <레디앙> 편집국장도 함께 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으로 내용이 길어서 몇 차례 나눠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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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권자들 정당, 후보 평가 기준 높아졌다

    -2012년이 시작됐다. 두 가지 정치 현안 문제를 질문 드리는 것으로 새해 특집 인터뷰를 시작하겠다. 우선 두 차례의 중요한 선거가 가지는 의미와 약간의 전망을 말씀해 달라. 특히 진보정치 세력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 내년 선거는 우리가 민주화를 경험하고 그 이후 선거를 거듭한 지 상당히 긴 시간이 흐른 후 치러지는 선거다. 20년을 넘는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학습 효과 커졌다. 따라서 각 정당과 후보에 대한 평가 기준도 과거보다 높아졌다.

    지금 유권자들은 너희들은 무엇을 가지고 경쟁하려고 하느냐, 왜 집권하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통해 정당에 대해 적극적인 대안 제시를 요구하고 있다. 집권하면 시민 삶의 무엇이 달라질 수 있나 하는 문제가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사회경제적인 이슈가 정치 경쟁에 전면으로 등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걸 다룰 수 있는 정당의 능력, 정책 비전과 구체적인 정책 대안 등을 요구하는 정치 환경이 됐다는 게 중요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대를 충족시켜줄만한 정당체제는 형성되고,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대와 그것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정당체제의 낮은 발전 수준 사이의 괴리, 격차가 넓어졌다. 그러하기 때문에 기존의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과 비판적 태도는 더 커졌다.

    그래서 정당들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외부로부터 인사와 에너지를 수혈해야 하는 압력에 직면했는데, 지금은 그 압력이 더 커졌다. 정당은 지금 딜레마에 봉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창조적 파괴를 통해 권위주의의 유산 위에 걸터앉은 것이 아니라 민주화 시대에 걸맞은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부정적 효과를 다룰 수 있는 근대화된 정당체제로 변화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조현연(왼쪽) 교수와 최장집 명예교수. 

    진보도 20년 전 낡은 정치관에 지배돼

    그런데 그렇게 되면 좋겠는데, 그렇지 못하고 변화하는 시늉만 하고 외부의 에너지와 인사가 수혈되는 것에만 그칠 수도 있다. 그것은 기존의 정당체제를 더 불안정하게 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그동안 이 문제는 한국 정당체제를 안정화시키지 못한 중요 요인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동안 치러졌던 정당 간의 선거 경쟁이란 것은 주로 민주주의를 둘러싼 것이었다. 민주대연합론 내지 민주 대 반민주 슬로건 같은 게 그런 것이다. 그런데 선거경쟁이 민주화 이슈에 더 초점을 두게 된다면, 정당이 다루어야할 사회경제적 문제와 통치능력에 대한 준비는 약해지고, 또 권력을 획득코자 하는 격렬한 투쟁과는 달리 실제로 정당 간의 차이는 적어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반면에 사회경제적 이슈가 전면으로 부상하게 된다면, 전반적으로 정당 간의 경쟁축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진보든 보수든 어떻게 자신들의 구체적 정책 목표를 제시하고 실현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말해야 하는 압박에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복지 이슈를 들고 나온다면 동시에 경제성장 정책은 어때야 하는지도 말하게 된다. 지금과 같은 국가와 재벌 중심의 성장지상주의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와는 다른 종류의 경제정책을 제시해서 대중들에게 설득력을 줄 수 있는지가 중요해진다. 이런 문제들이 선거 경쟁의 주 이슈가 되어야 정치가 좋아질 텐데, 진보 쪽도 민주 대 반민주와 같은 20년 전의 낡은 정치관이 여전히 지배하고 있어 걱정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정당들은 보수를 대표하는 한나라당과 개혁 내지 진보를 표방하는 민주통합당, 그리고 그보다 더 진보적임을 자임하는 통합진보당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정당들이 정렬(整列)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안정적인 제도화로 가는 투표자 재정렬(voter realignment)의 계기가 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보수 쪽에서든 진보 쪽에서는 아직까지는 변화를 기대할한 새로운 요인의 등장은 없어 보인다. 정당체제의 불안정성은 계속될 것 같다.

    북한 체제 인정하는 진보, 보수 합의 필요하다

    – 북의 김정은 정권이 예상보다 이르게 들어섰다. “진보와 보수 모두 북한 체제 인정에 대한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북한 문제, 특히 3대 세습 등과 관련해서 입장이 다른 정파들이 통합진보당으로 하나가 됐다. 김정은 체제에 대한 진보정치 세력의 입장 또는 태도는 어떠해야 된다고 보나?

    = 북한체제의 비개방성으로 인해 정확히는 말할 수 없지만, 김 위원장 사망 그 자체는 예상됐던 문제이기 때문에 북한 내부에 큰 변화 같은 것은 없을 것으로 본다. 일단 이를 전제로 할 때, 진보와 보수 모두 북한 체제를 인정하는 컨센서스가 필요하다고 말한 것은 이런 거다.

    보수와 진보는 남북문제를 둘러싼 가치, 이상, 정책대안에 있어 사실상 양극화 돼있다. 민족문제와 같은 중대 이슈에 있어, 보수는 보수대로 진보는 진보대로 독자적인 이상과 목표를 추구한다고 할 때 그것은 한편이 다른 한편에 대한 비토세력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되면 그 어느 것도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컨센서스라는 말은, 두 세력이 가치와 이념에 있어 완전히 합일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성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정책대안들이 협의되고 타협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예컨대 통일 전 서독의 동독 정책의 경우를 본다면, 독일 통일은 기민당과 사민당이 도달한 컨센서스 위에서 추진되었던 정책의 결과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사민당 브란트 수상의 “동방정책”이 대동독 정책을 주도한 것으로 이해할지 모르지만, 동방정책은 이미 전후 최초의 공화국인 아데나워 기민당 정부에 의해 그 틀이 놓여졌다.

    그들의 정책 비전은, 독일이 민족주의를 포기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통해 중부 유럽에 있어 독일의 패권국가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포기하고 어떻게 유럽에서 독일의 위상을 재설정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공통의 인식과 목표를 가졌다. 그것은 유럽에서의 안정적인 평화의 질서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대북 강경책과 ‘햇볕정책’의 한계

    한반도의 민족문제를 접근하고 해결하는데 있어, 누군가 비전을 갖는 정치인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국제관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민족문제는 국내정치 차원에서 해결할 수가 없다.

    좁게는 동북아, 넓게는 세계정치의 맥락에서 남북 관계와 통일문제의 정치적 조건을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전제로 한다면, 남북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선택의 범위는 넓지 않다. 지금까지 보수의 대북정책은, 힘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굴복시켜, 체제가 와해될 때 이를 통합하는 것을 지향해왔다. 이것은 한반도에서 제2의 전쟁위험까지 내포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제2의 전쟁을 피하는 것은 절대명제이다.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방향의 정책은 이성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 이명박 정권이 최근까지 추진했던 대북 강경정책은, 지금 임기후반에 이르러 그것이 실효가 없다는 것, 즉 평화공존, 화해협력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입증한 결과만을 보여줬을 뿐이다.

    그렇다고 김대중, 노무현 정권이 추진해왔던 “햇볕정책”의 경우, 완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그것대로 허점을 노정했다. 일종의 온정적, 감성적 접근이랄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정서 같은 것들을 북돋우면 (남북 사이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 같은 기대감을 불러왔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이 같은 온정적 태도도 내용적으로는 별 효과가 없었다. 김대중 정권 시기에 서해안 해전이 있었고, 대북 화해협력이 강조되었던 시기에도 북한은 핵무기 개발에 집중해서 남북한 간에, 또 국제정치에 있어 중대 이슈로 등장했다.

    민족주의 진보파 대북 인식과 실천 바뀌어야

    요컨대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런 약점을 보완해서 컨센서스를 이뤄내고, 이를 토대로 이상과 현실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는 대북관이나 정책을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는 화해협력과 남북 간 교류가 확대되었던 이 시기 북한이 자신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를 핵 문제로 풀어나가는 것을 봤다. 나는 3대 세습을 인정하느냐 않느냐, 왕조적 체제가 좋냐 나쁘냐 하는 규범적 문제를 판단하는 것과 현실권력으로서 북한체제를 인정하는 것은 엄격하게 구분돼야 한다고 본다. 김정은 체제든, 그것이 어떤 체제든 그것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국가고, 현실적인 권력이기 때문에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존 민주노동당의 대북문제에 대한 이해와 접근 방식에 대해 언급한다면, 나는 당 일각에서 견지하는 대북 노선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북한체제를 혁명적 민족주의의 전통을 통해 이해한다면 문제는 클 수밖에 없다. 북한체제가 도달한 오늘의 현실이 병영국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왕조적 체제 구축이다. 이는 반민주적이고, 반자유주의적 성격이 너무 분명하다. 이런 이념적 기초를 갖고서는 진보세력이 현실정치에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것을 이념적 파탄이라고 본다.

    남북한 관계뿐 아니라 국제정치 틀에서 남북문제가 이해되는 게 필요하다. 동북아를 포함한 세계적 수준에서 현실 정치권력의 움직임과 논리를 진보파가 잘 이해하는 게 매우 필요하다. 북한 지도층은 마키아벨리를 읽지 않고서도 힘의 논리에 입각한 현실정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국제관계에 있어 권력에 대한 본질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민족주의가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 국제관계나 남북문제를 보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민족자주노선을 강조하는 진보파들의 북한 인식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접근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본다.

    평화공존, 화해협력이 유일 노선

    – 보수와 진보의 ‘컨센서스’가 중요하다는 말씀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의 내용이라고 보나. 지난 두 정권의 햇볕정책이 남북 관계에서는 최선이라는 주장도 있다.

    = 두 정권의 평화공존과 화해협력이 유일한 노선이라는 점에서 최선이라는 것은 맞는 말이라 하겠다. 이걸 부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현실정치(Realpolitik)의 수준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민족적 정서나 공동체의 역사성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알아야 하고, 이런 측면이 보완돼야 한다.

    북한에 대한 이해는 현실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남북의 정치적, 군사적 대립 상황을 현실로서 수용하고 여기에 대응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과거에도 얘기했지만 남북한 관계는 안정적인 평화를 제도화하고 운영할 수 있는 체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이 돼야 한다.

    – 이념의 시대 종식이라는 얘기가 나온 지 오래다. 후쿠야마도 그런 얘기를 했고, 보통사람들도 그런 얘기를 한다. 선생님께서는 “특정의 이념이 한국의 정치와 정치인들을 위한 이념적 가이드로서 얼마나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한데 최근 선생님의 ‘자유주의’에 대한 입장이 학계 등에 주목을 받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둘러싼 국사학계의 논쟁도 주목을 받게 된 데 기여를 한 것 같다.

    선생님께서 이념을 연구 주제로 선택하시게 된 배경과 여러 ‘이념들’ 중 ‘자유주의’를 선택하신 이유를 설명해 달라. 10년 전 펴낸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서도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 속류적인 이해를 넘어 ‘자유주의의 재발견’의 필요성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연장선 위에 있는 건가?

    민주주의는 이념이 아니다

    = 내가 이념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우리가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그리고 그러한 인식에서 대안을 추구하는 합리적 논거와 가치, 그리고 신념의 체계라는 뜻이다. 이념의 의미를 넓혀 기존에 존재했거나, 존재하고 있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본주의, 자유주의, 공화주의 같은 뜻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이념은 그보다 더 일반적인 의미를 갖는다. 현실을 이해하는데 이념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인간이 사고할 때 모든 사건과 현상을 그때그때 즉흥적이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어떤 일관성이나 통일성을 통해 사고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무주의가 아닌 한 어찌되었든 이념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후쿠야마식의 이념의 종식이라든지, 자유주의 이념의 승리라는 입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후쿠야마도 후에 스스로 이런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나?

    그간 여러 이념적 단면들이 한국의 정치 역사적 맥락에서 변형 과정을 겪으면서 토착화되는 경험을 했다. 한편으로 우리는 이런 것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른 한편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념의 다양성, 즉 가치와 이상의 다양성 같은 것들이 허용되고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한데 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이념이 아니다. ‘주의’로 번역되니까 이념 같지만,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의 한 유형이고, 일련의 제도적 실천을 떠받치는 원리다.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자유주의, 사회주의 등 여러 이념들과 접합되면서 민주주의가 자기 규범이나 원리를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내가 이념을 말하게 된 배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민주주의만으로 접근될 수 없는, 해결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념적 문제가 내재돼 있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더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념의 문제를 불러들여서 민주주의적 가치를 어떻게 강화하고, 풍부하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이것이 내가 이념을 말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의 경우 민주주의가 단순한 지형에서 이뤄졌다. 분단, 냉전 반공주의와 권위주의는 경험적으로 동일한 것이었고, 그에 대응하는 민주주의가 강조됐으며, 운동을 통해서 민주주의를 쟁취하면서,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상적인 이념의 틀로 받아들여졌다.

    민주주의가 이상화, 도덕화되면서, 민주주의만 되면 사회경제적인 문제뿐 아니라 분단과 통일 문제들도 다 해결될 것 같은 환상을 갖게 됐다.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가 너무 커져서 이를 현실적으로 이해하는데 여러 가지 애로가 생겼고,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실천할 때 많은 인식의 혼란을 겼었다.

    서구의 경우 처칠이 “민주주의란 지금까지 시도된 모든 정치체제를 제외한다면, 최악의 정치 체제”라고 날카롭게 지적한 것처럼, 민주주의는 지고한 어떤 이상적인 체제가 아니라 허점이 많은 현실의 체제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민주주의를 경험하면서, 현실에서 존재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데 여러 문제점들이 생긴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됐다. 이런 문제를 보강하기 위한 이념적 자원으로서 자유주의를 심도 있게 성찰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한국사회에서 공산주의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불러들여진 자유주의는 해방 이후 분단국가가 되면서 공식 이념으로 채택되고, 교육됐다. 제도 건설자로서 미국은 한국을 미국식으로 제도화시켰다. 하지만 자유주의는 냉전 반공주의라는 현실 아래서 그 내용이 실현될 기회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거꾸로 민주화를 이룬 이후에야 자유주의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게 되었다.

    나는 여러 이념들 가운데서 자유주의가 보편적인 이념이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 인권과 도덕적 자율성을 갖는 개인과 같은 인간주의적 기본 사상이 자유주의에 의해 정립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보편적 이념으로 수용돼서, 헌법에도 그 내용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외래 사상으로 자유주의 이념은 충분한 한국사회에 뿌리내리고 수용되지 않았으며, 내면적 가치로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자유주의를 들여올 때 민주주의는 풍부해진다고 본다. 예컨대 민주주의 제도를 발전시킬 때, 국가권력을 어느 정도로 제한하고, 개인의 인권을 보호할 것인가,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집행부, 입법부, 사법부에 각각 권력을 얼마나 부여하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자유주의는 많은 보탬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 “일차적으로 자유주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얼마 전 <조선일보>가 보여준 오독이나 왜곡 보도 등 ‘악용’의 문제는 논외로 하더라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자유주의의 긍정성과는 달리 ‘시장의 자유’를 옹호하는 이념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자유주의에 대한 속류화된 이해라거나, 사르토리가 말한 자유주의와 경제 자유주의의 “매우 불행한 결합”이라는 말로 해결하기에는 그에 대한 반발력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 후학들의 우려도 없지 않은 것 같다.

    마르크시즘과 자유주의에 대한 오해

    = 자유주의에 대해서 아주 잘 정립된 정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는 서유럽의 발상지에서조차도 내용이 다양하고, 뭐라고 딱 공인된 정의가 없다. 이처럼 여러 가지 내용 가운데에서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간의 관계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문제와 관련해서는 양면이 다 있다.

    한편에서는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와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주장이 있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원래 자유주의는 경제적 자유주의와는 다르다는 관점이 있다. 나는 후자의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그럴 때만이 자유주의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자유무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자유주의, 즉 국가와 같은 공적 권력이 시장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로부터 경제적 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로크, 몽테스키외, 흄, 칸트, 방자멩 콩스탕 등 자유주의의 주요 철학자들은 자유무역을 옹호하지 않았다.

    원래 자유주의 사상은, 종교의 자유, 내면적 신념의 자유를 옹호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를 위해 철학자들은 국가권력 또는 개인 외부의 어떤 권위에 대응하여 인간 개인의 천부인권의 평등사상을 발전시켰다.

    이를 기초로 사회의 구성 원리를 전체적으로 개인의 자율성과 자유를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유기체적 사회관을 부정하고,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것을 중심으로 한 혁명적 사상이 발전되었다. 그러므로 경제적 자유주의는 자유주의의 원래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해하게 된 데는 마르크시즘적 영향을 강하게 받은 C. B. 맥퍼슨과 같은 철학자가 자유주의 이론에 기초를 놓은 홉스, 로크의 사상을 “소유적 개인주의”로 특징지으면서 그것이 개인 재산의 소유를 핵심으로 한 자본주의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했다고 주장했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의 대표적인 철학자들은 로크의 사상이 시대의 경제적 요구에 대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 보수주의 이념이 된 자유주의

    우리나라에서는 분단 상태에서 민족문제가 해결되지 못했기 때문에 민족주의가 깊숙이 영향을 미쳤다. 특히 분단은 한국 사회의 완성된 근대국가의 형태가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민족주의의 영향력은 강하다. 이는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한국사회의 발전 모델을 둘러싸고 영미 모델의 자유주의적 발전이냐, 소비에트식 사회주의 체제이냐 하는 논쟁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해방 이후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이런 논쟁은 변형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했으나, 해결되지 않은 이념적 갈등으로 남아 있다. 이 같은 논의 지형에서 자유주의는 어느 한편으로부터 굉장히 거부감을 갖는 이념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이 이념을 지지하고 지탱하는 사회세력의 기반이 없다는 점이다.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부르주아지, 중산층의 이념이다. 서구의 경우 왕정에 반대하는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부르주아 세력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한국의 부르주아 세력은 자유주의를 대표하지 못하고 국가권력과 결합해서 경제적 민족주의와 국가주의의 대변자로 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자유주의는 한국사회에서 발 딛기 어려웠다. 그러는 동안 보수 세력은 자신들을 자유주의의 주창자로 자임했고, 그것은 결국 냉전반공 이념으로 변형된 역할을 갖게 됐고, 그로 인하여 보수주의 이념의 대명사가 됐다.

    그러나 자유주의에는 진보적 내용이 많고, 진보적 이념으로서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영국의 자유주의 발전을 보면, 19세 말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사회적으로 확대되면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반대되는 논리, 즉 국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불러들이고, 공리주의 사상이나 사회주의까지도 수용하면서 시대변화에 따라 크게 변화했음을 알 수 있다.

    유연성과 개방성은 자유주의의 중요한 특징이다. 아마 현대 자유주의 사상에 있어 존 롤스만큼 중요한 철학자는 없다고 하겠는데, 그의 정의의 이론은 사실상 사회경제적 체제라는 면에서 말한다면, 사회민주주의의 내용을 갖는다. 이를 통해 롤스는 자유주의를 거의 사민주의와 다를 것이 없게 만들었다. 요컨대 자유주의의 강점은 다양한 정치이론, 경제체제와 공존할 수 있는 이념적 토대를 제공해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도 잘 어울리는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사회주의 이념 공간 폐쇄돼 있어

    – 반공, 분단, 냉전 이데올로기의 강고함과 폐쇄적인 이념 공간 속에서, ‘정치의 현실주의자’로서 민주당과 진보적 정당의 이념적 방향에 대해 선생님께서는 “민주당이 추구할 수 있는 이념적 개척지는 진보적 자유주의일 수 있고, 진보적 정당은 사회민주주의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다.

    좌파적 이념이 거세된 공간이 여전히 지금의 대한민국이라면, 그 속에서 자유주의의 확장성은 제한받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렇다면 민주당이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나아가는 것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리고 ‘진보적 자유주의’란 개념이 일종의 ‘접두사 자유주의론’의 하나로 자유주의의 긍정성을 새로운 대안 이념의 토대로 삼기 위한 것인데,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진보적 자유주의’란 어떤 자유주의를 의미하는 것인지, 과연 성립 가능한 개념인지?

    = 나는 정치학자라는 내 역할과 소임에 충실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다. 운동가나 실천가, 또는 정치인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관찰 가능한 사실이나 현상을 놓고, 합리적으로 이를 설명을 하려 하고, 조건 지워진 제약적 상황에서 실현 가능성의 영역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현실주의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말하는 현실주의는 이상을 부정하는 현실 속에서 그것이 무엇이든 이루어내는 것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실용주의는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추구되는 이상과 가치가 설정되고, 이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을 발견하려 한다는 의미에서 현실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이상과 가용한 현실적 수단 사이에는 변증법적 관계가 상정되고, 그 과정에서 실현가능한 이상의 범위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념을 먼저 설정하고 이를 추구하는데 복무하는 유형의 사람은 아니다. 이상을 추구하되, 실천 가능한 현실주의를 그에 접목하려는 것이 내가 의미하는 현실주의이다. 그래서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내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국의 이념적 공간, 지형 단면은 상당히 특수한 점이 있다. 한국은 서구와 비교해볼 때 해방 이후 내전을 겪고, 분단이 되고 전쟁을 치른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는 사회다. 경험뿐 아니라 남북분단이 현존하고, 서로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것이 한국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정치적 조건이다.

    북한이 기본적으로 사회주의를 대변하는 한 남한에서 사회주의는 현실적으로 추구되기 어렵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 공간은 폐쇄돼 있다고 본다. 한국사회 진보적, 좌파적 이념 최대치는 사민주의라고 본다. 이것이 질문에서 인용한 내 발언의 배경이다.

    서구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아닌 자유주의 국가

    그 다음 진보적 자유주의란 말은, 한국의 보수 양당체제에서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정당이라고 전제할 때, 그들이 추구할 수 있는 하나의 이념적 지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유주의 앞에 접두사를 붙이는 것은 한국적 현상임과 동시에 일반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자유주의의 범위가 굉장히 넓혀지고 변형돼서, 자유주의를 말할 때 어떤 자유주의인가를 한정하고 명시적으로 지칭해야 하는데, 그렇기에 그것은 한국에서나 서구사회에서나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접두사를 통해 자유주의를 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서 진보적이라는 것은 시장자유주의와 관계 속에서 진보적이라는 의미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신자유주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사회적 가치를 통해서 시장을 규율하는 자유주의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존 롤스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철학자라고 생각한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사회적 시장경제(Sozialmarktwirtschaft)든, 사민주의적 시장경제든, 뭐라고 부르든 간에, 사회의 공동체성과 복지의 가치를 시장을 규율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삼는 내용을 포괄한다. 현실에서는 이를 대표하는 나라들을 독일, 프랑스, 스칸디나비아국가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을 사민주의 또는 복지국가라고 할 때, 이들을 사회주의국가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이들은 엄연히 자유주의 국가다. 하지만 경제체제는 영미처럼 규제되지 않은 시장자유를 중심으로 한 경제체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들어온 규제된 시장경제체제를 말한다.

    한국에서 민주당이 만약 진보적인 것을 말하기를 원한다면, 진보적 자유주의 이념을 생각해볼 수가 있다. 민주당이 진보적이길 원한다면, 자신들의 이념으로 체계화하고 일관성을 보여줄 수 있는 것으로서 ‘진보적 자유주의’를 말한 것이다.

    민주당 좌클릭되면 진보정당은 틈새정당 될 것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진보 정당이 추구할 수 있는 이념적 한계로서 사민주의를 이야기했는데, 진보적 정당이 이런 한계를 넓혀 이념적 지형을 확대할 수 있으며, 또는 이 한계를 잘 활용해서 하나의 대안적 시장 내지 경제체제를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진보가 진정한 의미에서 사회경제적 문제에 있어 기여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 한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주의가 폐쇄돼 있다고 해서 민주당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못할 리 없다고 본다. 사민주의의 자유주의적 버전은 엄연히 민주주의 틀 안에서 추구될 수 있다.

    만약 민주당이 사민주의 영역으로 갔을 때 진보적 정당의 설 자리는 어디냐 하는 물음이 나올 수 있다. 아까 진보적 자유주의의 공간이 가능할 것인가를 물었는데 나는 뒤집어서 민주당이 진보적 자유주의를 개척한다면 진보세력은 어떤 영역에 자리 잡을 수 있는가를 물어보겠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이를테면 최근 서구 유럽의 경우 신자유주의 하에서 보수당과 사민주의 정당, 영국의 경우 보수당과 노동당 사이의 차이가 없어졌다. 양쪽에서 사민주의적 컨센서스가 만들어지면서, 오히려 사민주의적 특성이 무색무취하게 되고, 차이가 없어지면서 나타난 것이 틈새정당(fringe party 또는 niche party)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이런 종류의 틈새정당이 각 나라마다 나타나서 유럽 정치지형에서 새로운 중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중요한 단일 이슈를 가지고 정당을 조직하고 활동하는 것이다. 이런 정당은 프랑스 르팡의 국민전선처럼 극우일 수도 있고, 또는 독일의 녹색당같이 진보일 수도 있다. 나아가 신자유주의에 대응하는 경제적인 사민주의 정당이 새로운 이름으로 다시 나타나는 것도 가능하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기존의 주류 양당 체제가 투표자 지지를 균등하게 분할하는 바람에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이런 군소정당이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해서 전체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광범하게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이 진보정당들에 앞서서 대중적인 진보이념을 먼저 개척한다면, 우리 사회의 진보정당들에게 남은 길은 틈새정당밖에는 없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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