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 김근태 상임고문 타계 애도 표시
    2011년 12월 30일 03: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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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이 향년 64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각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는 가운데 진보정당들도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통합진보당 천호선 대변인은 "민주주의 큰 별이 졌다"며 "김근태 이사장님은 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셨고 한국정치에 새바람을 일으킨 정치개혁의 선구자셨다"고 깊은 애도를 표했다. 천 대변인은 "혹독한 시절의 모진 고문이 질긴 고통이 되었고 결국 그분을 일찍 떠나 보내드리게 된 사실이 더 없이 아픈 역사를 되새기게 한다"며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았던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진보신당 문부식 대변인은 "오래 전 작고한 고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한국 민주주의의 ‘희망의 근거’를 마련하고 일생을 기울였던 노고와 드물게 지녔던 인간의 품격을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라며 "더불어 당신의 육신에 아로새겨진 폭력의 흔적을, 우리 가운데 누구도 용서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용서받고 편히 살아가는 자들을 잊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는 말로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한 자들에 대한 분노와 애도의 마음을 표시했다.

김 상임고문은 1965년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한 이후 학생을 주도하며 현 민주통합당 손학규 대표, 고 조영래 변호사 등과 더불어 ‘서울대 운동권 3총사’라 불렸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운 정권에서 재야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수배와 투옥을 반복했으며, 전두환 정권시절이던 1985년에는 소속회원이던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이 이적단체로 규정되어 체포된 이후에 고문기술자 이근안 경감에게 무려 23일간 물고문과 전기고문에 시달렸다.

김 고문은 오랜 기간 파킨슨병을 지병으로 앓았으며, 물고문의 후유증으로 지독한 비염과 축농증에 시달렸으나 고문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 때문에 수술대에 오르기를 오랜 기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러한 상황에도 김근태 고문은 19대 총선을 준비하고 있었으나 이번에는 뇌정맥 혈전증이 발병하였고 결국 폐렴등의 합병증까지 겹치면서 끝내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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