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죽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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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30일 10: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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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는, 거의 진부해진 말은 있는데, 요즘 대구 중학생 "왕따 자살" 사건을 보면서 그 말의 본뜻을 새삼 인식하게 됩니다. 저를 포함한 "우리"는 이 죽음이 발생될 수 있는 "배경"을 제공했으며, 또 그만큼 이 죽음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저를 놓아두지 않고 있는 아주 강한 느낌입니다.

죽음의 배경을 제공

그런데 그 죽음은 "뉴스거리"가 되어 수많은 매체들에 의해서 상업적으로 이용되는데도 우리는 우리 책임에 대한 반성은커녕 제대로 된 원인분석도 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와 유사한 유의 다른 죽음들을 부르고 있는 것이죠.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하는 것은, 대통령을 아키히로(明博)에서 유시민 류의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로 교체하는 것은 생각보다 아주 쉬울 수가 있어도, 수십만 내지 수백만 명의 어린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가해자들을 뉘우치게 하여 가해/피해 관계를 풀어주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라는 점입니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아키히로가 죽음으로 내몰든, 유시민이가 죽음으로 내몰든, 이 체제로서 본질적으로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죠. 그런데 아이들 사이의 가해/피해 관계는 이 정신병적 체제의 병리적인 본질과 직결돼 있는 만큼, 그 어떤 사회적 "약"으로도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수술"은 필요합니다. 김영삼 옹의 1996년 "학교폭력 추방" 켐페인부터 지금까지 집권 정치꾼들이 학교에서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겠다고 약속함으로써 정치적 자본을 꾸준히 축적했지만 결과는? 당연히 제로입니다. 남한 같은 사회에서 학교에서 죽음들을 멈추는 것은, 고문실에서 고문 피해자의 갈비뼈가 부러지지 않게 하는 일 만큼이나 힘든 일일 것입니다. 갈비뼈를 보호하자면 일단 고문실 자체를 철폐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리도 같은 논리로 봐야 할 듯합니다.

슬픈 이야기지만, 착취 아니면 빈곤이나 군사화 등으로 물들여진 모든 사회들에서는 아이들이 폭력화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을 보고 배우니까요. 제가 성장했던 구소련 같으면 남한과 같은 개념의 착취(개인 자본가에 의한 잉여가치 수취)는 없었지만, 상대적 빈곤과 군사화, 그리고 간부층과 일반인 사이의 권력 향유 내지 생활수준 차이가 있었으며, 그만큼은 아이 사회의 폭력도 없지 않았습니다.

나도 많이 두들겨 맞았다

저만 해도 힘센 친구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은 비일비재했습니다. 심지어 그것 때문에 학교에 가기가 싫은 날들도 꽤 많았는데 , 등교가 "어린 인민의 의무"로 돼 있었던 사회에서 "등교 거부"라는 개념이 없어 그렇게 할 엄두도 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저도 그렇고 제가 무수히 많이 본 다른 완력이 약한 폭력 피해자들도 그랬지만, 자살할 생각이라고는 추호도 없었습니다. 반대로 "힘의 관계"에서 약자로 몰리는 만큼 오기 같은 게 생겨 책을 더 열심히 읽고 취미 동아리에 더 열심히 다녀 커서 사회주의 조국의 좋은 과학 일꾼이 되어 당과 인민들을 위해서 잘 일할 꿈을 더 열심히 꾸었습니다.

저나 그 당시에 저와 같은 처지에 몰렸던 다른 폭력 피해자(그 중의 상당수는 유대인 내지 독일인 등 민족 출신 성분이 불리해 당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들이 특별히 마음이 강해서 그랬던 것인가요? 그게 전혀 아니고 객관적인 현실에 힘입어 폭력을 견딜 수 있었습니다:

1.

"현실 사회주의" 사회는 많은 면에서 전통사회의 민중 공동체 기풍을 이어받는 것인데, 폭력이라는 차원도 그렇습니다. 러시아의 전통적 시골 같으면 농민 아이들끼리의 싸움은 많은데, 패배하는 쪽에서 피를 흘리자마자 바로 멈추는 게 불문율입니다. 한 어린이가 일찌감치 불구자가 되어서 공동체 전체가 인력을 잃고 인화를 해치면 안되니까 일종의 안보이는 "안전 장치"가 있는 거죠.

소련 학교에서 똑같은 불문율이 적용돼 아무리 폭력이 있다 해도 예컨대 몸이 심하게 다칠 확률은 거의 없었습니다. 또, 학교 역시 "공동체"이었던 만큼 폭력이 발생되자마자 누군가가 이를 꼭 말리는 등 "사회"의 긍정적인 영향력은 늘 실감됐습니다. 폭력 희생자는 "혼자" 아니었다는 거죠.

2.

학교 폭력에서 계급적인 "보상" 차원은 역역해서, 그걸 "사회적 정의" 차원에서 피해자가 어느 정도 이해해줄 수도 있었습니다. 가해 학생들의 대부분은 집안 학력이 짧은 육체 노동자 자손들이었고, 피해 학생은 대개 인테리 가정 출신들이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저를 상습적으로 때렸던 힘 센 급우 몇 명의 심리를 십분 이해하고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성적으로는 과학일꾼이 될 꿈도 꿀 수 없었으며, 평생 화물차 핸들을 잡거나 조립라인 옆에 서야 됐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그때나 지금이나 그저 미안할 뿐이었습니다.

3.

학교는 아무리 폭력적이라 해도, 피해자에게 여유 시간이나 가정이 있었습니다. 학교는 2시면 끝나는 거고, 그 다음에 마음껏 도서관 책들이 빌려보고 즐길 수 있었던 거고, 부모의 손을 잡아 박물관, 명승지, 자연 탐방이나 할 수 있었습니다. 부모도 마찬가지로 4~5시면 집에 오고,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아이들과 놀 여유가 있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학교 폭력이라는 부분은 어린 인생의 "다"가 될 수 없었던 것이죠.

자살 충동 방지 요인

그러면, 위에서 열거한 "폭력 피해자 자살 충동 방지 요인"에 비추어보면, 오늘날 남한의 어린이, 청소년의 삶은 어떻게 보이나요? 우리에게 폭력을 그나마 완화라도 시킬 수 있는 공동체 전통이라도 남아 있나요? 북조선 같으면 아주 많이 남아 있는데, 남한은요?

실은 아이의 신체를 부모 몸의 연장으로 보고 그 신체의 훼손을 불효로 간주하는 유교 논리는 조선시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젊은이들의 폭력성을 억제시키는 기능을 맡았습니다. 유교의 긍정적 차원이라면 대체로 그런 것이지만, 우리는 유교의 부정적인 유산, 즉 장유유서(長幼有序)와 같은, 빨리 소각해야 할 과거의 쓰레기 이외에 유교로부터 이어받은 게 있나요?

급우가 폭력 당하는 것을 보면 이를 바로 말릴 정도의 공동체적 "집단 무의식"은 우리에게 남아 있나요? 어른 사회에서 지난 2년 동안 쌍차 해고자 19명이나 사회적 타살을 당한 것을 보고도 아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절대 다수가 방관만 하고 있는데, 과연 이 "방관자들의 사회"를 보고 어린 아이들이 뭘 배워야 하나요?

약자 가정 출신의 아이가 여러 모로 억울함을 갖고 있어 약간 폭력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고 포용해줄 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롭고 계급적 차별에 민감한가요? 그랬다면 우리에게 지금과 같은 폭력 천하도 없었을 것입니다. 남한 아이들이 2시에 귀가해서 학교에서의 일을 잊고 독서나 취미활동에 매진할 수 있나요?

맞교대, 특근, 연장근무 등등에 지칠대로 지쳐 맨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는 대다수 서민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매일 바깥에 가서 자연탐방할 기력은 남아 있나요? 굳이 묻지 않아도 답은 뻔하죠. 어른의 삶도 어린이의 삶도 장시간 고강도 노동의 지옥이 된 사회에서는, 폭력도 악질화되고 폭력의 피해도 극대화됩니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거울

아이들은 그저 어르들을 보고 배울 뿐입니다. 군에서의 고참이 신참을 명령지휘하면서 괴롭히듯, 편의점에서 사장이 알바에게 돈도 제대로 안주면서 멋대로 부리듯, 일부 교사들이 학습자 위에서 군림하는 태도를 취하듯, 심지어 부모들이 성적이 내려간 아이를 패고 꾸중으로 볶아먹듯, 아이들끼리도 폭력의 먹이사슬의 틀이 잡히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군사화가 심했던 소련에서 아이들이 흔히 병정놀이를 했듯이, 남한 사회의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공동체적 양심이라고 찾아보기 어렵고 약자가 강자의 먹이가 되는 사회를 아주 잔혹한 폭력놀이를 통해서 재현할 뿐입니다. 그들이 우리들의 거울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러한 의미에서는 우리는 다 – 조한혜정 샘의 말씀대로 – (간접적) 살인범입니다. 우리는 실패했습니다. 인간들이 서로를 생각해주고 배려해주는, 그 따뜻한 온기로 폭력성을 완화시켜주고 아이들의 본성적 착함을 살리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 아직까지 실패한 것이죠.

<재능교육> 파업 노동자들이 4년이나(!) 투쟁하느라 고생해도 "진보"도 그들에 대해서 별다른 관심을 가져다주지 않고 있고, 송경동 동지와 정진우 동지가 아무 죄도 없이 양심수가 되어 감옥에 갇혀도 대다수의 "온건하게 진보적 시민"마저도 아무 일도 없듯 그저 내년 총선이나 대선 생각에 잠겨 있는 사회는 분명 정상적 사회는 아닙니다. 무관심이야말로 폭력의 최악의 형태는 아닌가요? 아이들이 우리들의 폭력성을 배웠을 뿐이죠.

빅토르 최가 1980년대 말에 "엄마야 우리는 다 중병에 걸렸다! 엄마야 우리는 다 미친 지 오래됐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오늘날 남한에 그대로 적용될 만한 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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