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통합당, 청년유니온 길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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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02월 02일 08:5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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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하하하>에서 김상경이 꾼 꿈 속에 나오는 이순신 장군은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라는데 그러기가 영 쉽지 않다. (김영경 후보의 말대로) “현실이 너무 시궁창”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희망은 현실을 직시”했을 때 나올 수 있는 것. 따라서 나는 이 시궁창 같은 논쟁에 끼어들기로 했다.

    여기서 굳이 박이대승(존칭 생략)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드러낼 필요성을 느낀 이유는 그것이 그가 짐짓 기대하는 것처럼 청년 불안정노동자 운동의 앞날에 중대한 지표를 긋는 입장이어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것이 오늘날 노동자운동의 실재적 위기 속에서 드러나고 있는 다양한 파탄의 형세 중에서도 가장 구질구질한 징후에 속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지나간 시간에 대해 자기 나름의 역사적 평가를 내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헌데 이 역사로서의 현재에 대한 평가가 (내용에 있어서나, 아니면 그것을 공유하는 주체들의 범위에 있어서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일종의 소통 불능의 곤란을 느끼게 된다.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우리들이 발딛고 서 있는 공론장이 시궁창 같다고 느낀다.

    먼저 박이대승이 논거를 요약하면 이렇다. 그에 의하면 현재 청년유니온은 “활동의 정점에 이르렀”지만, “또 다른 돌파구가 필요한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 청년유니온에게 있어서 “가장 훌륭하며 유일한 대안”은 위원장으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며 청년유니온의 얼굴 역할을 해온 김영경이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란다.

    그는 모종의 논쟁이 필요한 운동에의 쟁점을 훌쩍 뛰어넘고 자문자답을 거듭하며 미리 설정해놓은 ‘정답’에 도달해간다. 일단 (그에 따르면) 청년유니온에게 1)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느냐 불출마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만이 유효한 질문이다. 왜냐하면 2) 진보신당으로 출마하는 것은 당선 가능성이 아예 없기 때문에 애초에 출마할 필요 자체가 없는 선택지이며, 3) 통합진보당의 경우에는 민주통합당과 별 다른 정책적/이념적 차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유효한 질문은 “민주통합당 후보로 출마하느냐 불출마하느냐”가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산출할 수 있는 논쟁의 곁가지들이 있다.

    통합진보당의 실패가 주류화 노선의 알리바이인가?

    일단 가장 다루기 쉬운 쟁점부터 정리해보자면 나는 박이대승이 통합진보당에 대해 내리는 비판적 평가가 매우 솔직하며 정당하다고 생각한다. 통합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 내세우는 정책에 있어서나 이념 지형에 있어서나 별 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이미 여러 가지 양상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단 그간 반신자유주의 기치로 투쟁에 동참해온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탈당파인 새진보통합연대가 다수를 점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이 국민참여당 세력과 통합을 하는 과정에서 여러 측면에서 정치적 후퇴를 보인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던 이들이 비정규직 확산을 조장하던 세력과 무언가 ‘진보적인 것’을 이루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심지어 최근 통합진보당을 둘러싸고 논란이 되고 있는 여러 가지 구태적인 상황들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도 없을 것이다. 예컨대 지역의 여러 예비후보자들이 도의원이나 시의원을 중도사퇴하고 출마한다든지, 이경훈과 같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가로막던 관료주의적이며 실리적인 엘리트 지망생이 출마하는 것을 용인한다든지, 혹은 집단적이고 조직적이며 편법적인 거주 이전을 통해 후보 결정의 패권성을 드러낸다든지 하는 점에서 통합진보당은 조금도 참신하지 않다.

    박이대승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현재 통합진보당이 고수하고 있는 것은 ‘진보정당의 정당성’이 아니라 ‘정파들의 패권적 당파성’에 불과하다. 가끔은 도리어 민주통합당이 보이는 화려한 전술적 행위들이 이들이 더 왼쪽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게 할 정도다.

    더군다나 과거 진보진영에서 꽤나 매력적이고 대중적인 스타정치인의 지위를 점하고 있던 노회찬과 심상정이 대중적으로 제기한 약속마저 파기하고 스스로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해오던 유시민 등과 통합한 것은 그들이 지니고 있던 어떤 매력적인 이미지들을 완전히 제거시키기에 충분했다.

    통합진보당-민주통합당 사이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좀 더 당선 가능성이 있는 민주통합당을 선택했다는 것인데 이게 합당한 알리바이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실리주의적 계산이 박이대승의 정치적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게 놀랍게 느껴진다.

    둘째로 그가 진보신당에 대해 내린 유일한 평가에 대해서는 달리 덧붙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겠다. 그 역시 매우 한정적인 의미에서만 진보신당을 언급했기 때문에, 그리고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변혁에의 새로운 전망을 밝혀나가고자 하는 진보신당에 있어서 굳이 이런 정치지망생들의 출마가 필요하지는 않기 때문에, 별 다른 논점이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과소대표성에 기댄 ‘근거 없는 자신감’

    일단 박이대승은 청년유니온 자체를 ‘청년세대’의 정치적 대표로 설정하면서, 이 운동이 매번 참신한 기획들로 스스로 발전해왔으며 기존의 노동조합 운동의 구태들과는 다른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큰 집회 무대 위에서 청년유니온의 몇몇 활동가들이 보여준 정치적 발언의 내용, 언론을 통해 보도된 몇몇 활약상, 청년유니온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서 접해온 청년유니온 운동의 형식과 내용에서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해 다른 청년 활동가들의 이런저런 정치적 조언들마저 모조리 무시하고 구태들을 반복하는 수준에서 ‘대중운동’으로 가느냐, 아니면 ‘시민운동단체’ 같은 수준의 ‘이슈파이팅 집단’에 머무르냐의 갈림길 앞에서 후자를 택했다는 것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지금의 상황에서 박이대승이 구구절절하게 나열한 장점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있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런 점들을 잠시 미뤄두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박이대승의 주장이 구태의연해지는 지점은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그는 일단 “김영경이 ‘청년 정책 입안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국회의원으로 4년간 활동한다면 한국의 청년들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출마의 근거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대체 어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이런 엄청난 대표성을 스스로 짊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의 청년대중 다수가 청년유니온의 운동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물론 청년유니온이 앞으로 청년 대중운동의 원대한 꿈을 품고 있다면 이런 포부를 갖는 것은 그리 나쁜 일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회 입성을 논하는 글에서 이런 근자감을 맥락도 없이 내뿜는 것은 그가 그토록 에둘러 가려고 하는 ‘김민석’이나 ‘임종석’같은 과거 학생운동 출신의 대표성을 띄고 국회에 입성한 엘리트 ‘정치지망생들’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이미 학생운동이 위기에 처하고 몰락하고도 한참이 흐른 후에 자신들이 노동자민중, 청년세대의 대표라고 말하면서 모종의 ‘과소대표성’이라는 무기 아닌 무기를 들고 여의도로 진격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명문대 출신이었기 때문에 엘리트가 엘리트가 되고자 열망했던 것에 불과하다는 박이대승의 분별정립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렇게 따지면 명문대를 나온 모든 인간들은 ‘엘리트계층’을 대표할 뿐이라는 조야한 논리가 성립되는데 박이대승 역시 명문대 졸업생이 아닌가? 말장난에 불과하다. 오히려 지금 김영경의 민주통합당 후보로의 출마 결정은 지난날 임종석 같은 386세대 대표주자들의 행보와 별로 다를게 없다.

    박이대승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김영경과 그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을 자임하는 박이대승(그가 스스로 ‘평조합원’에 불과하다고 말하더라도 그는 이미 진보정당운동의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는 <레디앙>에 자신들의 우경화된 입장을 기술적으로 옹호하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정치적 대변자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있다)은 ‘88만원 세대’라는 세대담론이 유행을 끈 이후에 등장한 운동으로서의 후과인 ‘청년유니온’의 정치적 과제를 ‘국회 입성’으로 귀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임종석 같은 정치인들에게도 모종의 시대적 정치적 과제는 주어져 있었다. ‘3김 정치를 끝장내는 패기넘치는 청년’이라는 표상으로서 말이다. 그러면서 그것이 마치 국회와 제도정당 안에서의 엘리트 정치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인냥 호도했다는 점에서도 박이대승의 입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오늘날 우리들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정치적 시원이라고 여기는 5월 광주민중항쟁이 과연 그런 수준의 것이었는가? 19년 독재정권 내내 그토록 열망하던 민중들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에의 열망이 새로운 군부독재에 의해 기만당할 것을 자각한 시민들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주체성을 자각하며 ‘민중 민주주의’를 외친 것 아니었는가? 하기에 이런 대중적이며 정치적/계급적인 요청을 화려한 언변으로 기만한 것이 ‘민주화 테제의 386세대 버전’이었다면, 그것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운동판의 ‘시궁창 같은’ 소식들

    최근 온갖 시궁창 같은 소식들이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그 중 대부분이, 누구누구가 어디에서 출마한다더라, 는 식의 뜬소문인데 이중 노동운동판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이들도 적지 않다. 이는 지난날 노동자운동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테제를 ‘의회 진출론’으로 호도해온 역사에서 비롯된 일종의 ‘주류화 노선’의 비참한 결과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의 측면에서 만들어진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대중운동의 성과를 괴이하게 계승하면서 ‘노동자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테제를 신자유주의에 맞선 정치이념과 노선을 풍부하게 세우거나 대중운동을 확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 수립으로 나아가지 않고, ‘실현가능한 정책대안’과 ‘입법 활동’에 주력하는 것에 국한시켰다.

    이것의 귀결은 대중운동의 전반적인 소멸현상이었다. 노동조합 관료들의 실용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점점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도모하는 것보다는 실용적이고 타협적인 정책 대안을 선택하는 것에 국한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오늘날 민주노총이 맞이한, 그리고 민주노동당이 마침내 맞이한 어떤 한계지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스타정치인들의 쇼에 매몰되고 기대는 운동이 얼마나 한계적인지 역사적으로 증명하는 지점이다.

    지난 세대의 오류 반복하는 ‘주류화 노선’

    일전에 나는 청년유니온이 스스로 새로운 (청년)노동자운동의 길을 열고자 한다면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으로서의 모델을 모색하고 일종의 지역운동적이며 사회운동적인 의제들을 갖고 자기-조직화에 주력화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청년유니온을 말함] "지역사회 기반, 사회운동적 노동자운동")

    그러니까 청년세대가 직면한 오늘의 현실을 뒤바꾸기 위해서는 몇몇 얄궂은 정책적 조치들을 이행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본주의가 직면한 현실의 모순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이런 모순적 상황들을 지양해나가는 대중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만이 청년 대중이 직면한 불안정노동과 청년실업의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나가는 주체로 설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저 386세대 국회의원들이나 권영길 같은 노동조합 출신 정치인들이 지나온 오류를 애써 반복하면서 해나가겠다는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지난 시간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생략한 무지이거나 기만에 다름 아니다. 결국 청년유니온 출신인 김영경 같은 이들이 국회에 입성하는데 성공하더라도 그는 스스로가 이미 실리주의와 의회주의의 한계 안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청년유니온이 과연 박이대승이 말하는 것처럼 ‘청년 모두의 대표’ 역할을 하고 있기나 한가? 굳이 NL계열의 한국대학생연합 같은 활동가가 월등히 많은 청년대중조직을 말하지 않더라도, 조합원 수백 명 수준의 시민운동적 활동체계를 지닌 단체인 청년유니온보다 더 너른 대중지형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은 여전히도 여럿 있다.

    그럼에도 청년유니온이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첫째로 이 단체가 참신한 의제설정에 주력했다는 사실, 그리고 둘째로 이슈파이팅 중심으로 활동함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끌 수 있었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런 점들로는 부족한 점들이 있었고, 고용노동부의 융통성 없는 결정들 때문에 노동조합 설립을 이루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조직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몇가지 방법들이 있지 않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예컨대 지역일반노조운동 방식의 전술을 통해 몇몇의 지역을 중점으로 편의점, 음식배달 아르바이트생들을 조직하면서 일시적이고 지역적인 노동조합을 선차적으로 건설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런 조직적인 과제를 간과하고 이슈파이팅과 의회에서의 정책적 노력에만 주력하는 것은 새롭고 참신하기보다는 오히려 부르주아 정치의 구태의연함을 보고 베낀 것에 가까워 보인다.

    더군다나 김영경 위원장이 진보신당이나 녹색당 등 대안적이며 좌파적인 가치를 걸고 새로운 운동의 과제를 발굴하고자 하는 지형보다 민주통합당이라는 노선을 선택한 것에 대해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흔하게 던질 수 있는 비판은 그가 일종의 ‘전향’ 노선을 택했다는 도덕적인 비판일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작 그 자신에게나 아니면 이런 쟁점에 대해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정한 설득력을 갖는 데 한계적일 것이다. 이런 “‘국회 입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실리적 선택”이라는 논리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단 이런 노선이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과제의 변종적 버전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청년의 정치세력화’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몫 없는 자들’의 정치세력화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에 대해 발본적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쉽게 말해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테제는 노동자운동이 보수주의 혹은 자유주의 정당정치세력과는 다르게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하기 위한 운동 전략을 말한다. 이것의 운동적 성과가 바로 노동 현장에서의 노동자들의 투쟁과 노동조합 결성, 그리고 빈민, 장애인, 여성, 농민, 청년/학생 등 다양한 부문운동들이 제 나름의 대중지형 속에서 사회적인 영향력을 주체적인 노력에 의해 만들어온 지난 역사이다.

    물론 우리가 지나쳐온 현실 속에서 이 역사의 대세는 진보정당운동 그 자체를 일컫는 개념으로 오용되어왔다. 일종의 주류화 노선으로 점철되어 몇몇 정치엘리트가 국회에 입성하면 마치 노동자민중 전체의 염원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처럼 호도되어왔던 것이다. 그것의 구역질나는 예 중 하나가 2003년 가을에 있었던 민주노총 지도부의 선택일 것이다.

    열사 정국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귀결점을 현장에서의 전면적인 투쟁이나 악법 저지를 위한 총파업으로 설정하기보다는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놀랄만한 성과를 이루었을 때 마치 노동자운동의 밝은 전망이 열릴 것처럼 모두가 착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자운동이 다시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라는 의제를 재구성해내려면 본래적 의미에 동시대적 요구와 의제들이 재구성되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요컨대 청년운동 역시, 청년/학생 대중 스스로 자신의 요구와 투쟁을 조직하여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러한 대중운동의 힘을 바탕으로 기존의 지배질서를 변혁해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다른 부문 대중운동들과의 계급동맹을 통해 공동의 합력을 만들고 전선을 구축해내지 않으면, ‘정치세력화’란 요원한 과제다.

    하기에 당사자운동의 한계를 넘어 노동자와 연대하는 ‘청년운동’, 도시빈민과 연대하는 ‘청년운동’으로서의 정치적 의제들을 설정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청년유니온의 ‘국회 진출론’은 이와는 정반대의 엉뚱한 방향이며, 이는 오히려 지난날 청년세대의 문제를 둘러싸고 설정되어온 여러 가지 투쟁 과제들을 시혜적이고 대리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주겠다’는 식의 보수 정치에 함몰시키고 말 것이다. 마치 저 통합진보당의 주류 분파가 자유주의 세력과의 상층연대에만 몰두하고 기계적인 통합을 도모함으로써 민중운동을 왜곡시켰듯이 말이다.

    청년운동의 진정한 정치적 과제

    나는 청년유니온의 활동을 폄훼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박이대승이 스스로 인정하는 청년유니온이 직면한 ‘정체’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최상의 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모두가 청년유니온에게 걸어왔던 기대를 잘 수행할 수 있을 때이다.

    그것은 궁극적으로는 오늘날 청년들이 마주한 청년실업과 불안정노동이라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그 과정 속에서 그런 변혁의 동력을 만들어가는 주체들을 모아나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요컨대 청년유니온은 청년운동의 이슈파이팅용 대표주자가 아니라, 스스로 미조직된 청년대중과의 마주침을 기획하고 대중운동의 공간을 가장 아래로부터 확장시켜나가는 여러 운동주체들 중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타의 다른 청년/학생운동 그룹들과 공동의 과제를 설정하면서 흩어져 있는 청년들을 여러 새로운 의제들,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에 치달은 지금의 정세에 적확한 요구들을 갖고 만나며 규합해야 하는 것이다. 지역 사회의 흩어진 사람들, 파편화된 학생사회, 노동 현장에서 ‘노동자’로서 정치주체화되지 못하고 있는 무수한 청년 불안정노동자들을 만나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의회정치에 대한 오도된 기대로 함몰된 패러다임으로는 이런 것을 수행할 수 없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직면한 세계적인 위기 국면에서 나름의 정치적 파급력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세계 곳곳의 청년들의 행동을 주목해보자.

    이들 중 김영경/박이대승처럼 ‘부르주아 정치 이데올로기’를 답습해 우경화된 방식으로 희망을 호도하는 세력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정치적 사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년유니온의 진정한 과제는 지금의 불안정노동에 가해지는 착취-구조와 청년실업을 극복하기위한 ‘대중운동 조직화’ 방향으로 재설정되어야 한다.

    물론 이런 전략을 세우는 데 운동이 제기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지금껏 좌파는 그누구에게도 뚜렷한 정치적 전망을 명확하고 쉽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그런 정치적 전망과 운동으로서의 비전을 청사진으로 내걸고 ‘이런 것들을 하자!’고 자신감있게 제시할 수 있는 중장기적 전망과 단기적 과제들을 도출하는게 절실히 요청된다.

    헌데 이런 과제들을 수행하기에 오늘날 청년 대중의 주체적 요건은 매우 열악하며, 이념적으로도 해체되어 있다시피하다. 따라서 지금 주어진 운동의 조건을 개선하고 변화시키기 위한 구체적 목표들을 만들어내고 모종의 ‘테제’로 도출할 필요가 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초기에 탄생한 여러 청년운동그룹들의 주체들이 운동적 전망을 갖고 다시 ‘사회’로 진출해나가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다.

    지금으로선 불가역적인 운동의 조건을 변화시키려는 초동 주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은 바로 이런 역할에 집중해야 하며 구조적이고 체제적인 모순이 무엇인지, 대체 어떤 것들이 오늘날 청년들을 이렇게 괴롭히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런 것이 병행되지 않았을때 지난 시기 청년유니온이 드러냈던 ‘청년고용할당제’와 같은 이념적/정책적 오류를 반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끝으로 김영경 위원장의 후보 출마 포기 선언을 기대한다. 그의 선택은 이후 청년유니온 활동의 역사적 오류로 기록되거나, 청년유니온 스스로 특수목적 ‘노동자운동’의 지향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귀결시킬 것이다. 그동안 조합원들이 쏟아온 열정이 아깝고 귀중하게 생각한다면 망상을 포기해야 한다.

    지난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간 이명박 정권 시기보다 더 극심하게 대학 등록금 인상을 종용하고, 대학의 기업화를 획책해왔으며, 동시에 비정규직 양산을 주도했었던 민주당 등 자유주의 세력에게 투항해 청년의제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은 역사적 무지이거나 앞서 싸워온 여러 청년들과 동시대 청년들에 대한 정치적 기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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