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버드, 슈스케,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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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28일 02: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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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비대위 명단 공개 ‘26살 하버드 출신 사업가 이준석 씨 포함”
    “박근혜, 월 30~50만원 취업활동 수당 추진”

    한나라당의 27일 발표로써 이제 2030 세대를 대하는 각 정당들의 전략적 밑장이 다 깔렸다. 아직 시간이 좀 더 있지만 이미 낙장 된 패는 거둘 수 없는 바, 이 정도 즈음에 각 정당들의 처신에 관한 코멘트를 다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하버드, 슈스케, 잉여’

    현 시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 그리고 통합진보당(이 자리에서는 진보신당에 관한 평을 생략한다. 지지자 여러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해드린다)의 2030전략을 한 줄로 요약하면 위와 같다. 각 전략에 대한 구체적인 논평을 달기에 앞서, 2012년의 열쇠를 쥐고 있는 청년세대의 중요성에 대해 짧게 읊조리고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10.26 그리고 2030

    대망의 10월 26일, 한나라당은 7% 포인트 격차라는 수치 앞에 ‘빅엿’, 아니 충격을 먹었다. 1억원 상당의 피부과 진료를 딛고 강남 3구와 50~60대를 선방하는(?) 기염을 토했으나 청년세대, 특히 30대의 몰빵으로 한나라당은 장렬히 전사했다.

    이 보궐선거가 2012년 대선의 전초전임을 상기해 봤을 때, 열쇠가 누구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는 너무나도 명백하다. 청년 세대가 대단히 낮은 투표율 때문에 ‘허수’ 상태일 때, 한나라당은 그들의 압도적인 고정 지지층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특별한 묘수 없이 승리를 챙겨왔다.

    하지만 10.26 보궐선거를 통해 우리들은 청년 세대가 선거의 판세를 결정짓는 중대한, 아니 절대적인 ‘변수’임을 확인했다. 새로운 변수의 등장은 진보개혁 진영 입장에선 대단한 호재이다.

    어차피 한나라당이 ‘청년’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대단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모태 보수와 고정 지지층의 텃밭을 유지하면서 청년들의 진입을 최대한 막아야 하는 한나라당과, ‘변수’들을 적극적으로 경기장 난입시켜야 하는 진보개혁 진영의 진검승부랄까.

       
      

    슈스케

    한나라당의 전략을 평하기에 앞서, 민주통합당의 몰골을 먼저 봐야겠다. 이들은 20~30대 청년 비례대표 4명을 슈스케 형식으로 선발하겠다는 카드를 들고 나왔다. 한 마디로 병맛이다. 경쟁하여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는 승자독식의 세계에 환멸을 느끼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경쟁하라니.

    슈퍼스타 K의 지원자가 200만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영감을 얻은 모양이지만 안타까운 비공식 통계를 알려드리겠다. 수십 년 전에는 청소년들의 절대 다수가 장래 희망으로 ‘대통령’을 써 냈을지 모르나, 지금은 ‘연예인’이다.

    가수를 뽑는 대국민 오디션은 온 국민의 공통 관심사일지 모르나, 국회의원을 뽑는 대국민 오디션은 ‘그들만의 리그’에 불과하다. 하물며 가수의 자질은 고음처리와 감정이입 능력이라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겠으나, 인간의 모든 역량을 조화롭게 발휘해야 하는 정치인의 자질을 대체 무엇으로 평가할 수 있단 말인가? 기성 정치인들이 이러한 것들을 평가할 자질이 되는지도 모르겠고. 어쨌든, 청년들은 여의도판 슈스케에 환호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슈스케라는 ‘이미지’의 실패는 차치하고, 민주통합당이 청년들에게 제시하는 ‘컨텐츠’의 영역은 또 어떠한가. 이들은 수미상관의 기법을 활용하여, 이미지에 이은 컨텐츠의 부실함 또한 제대로 증명했다.

    민주통합당의 출범 이후 야심차게 내어 놓은 정책 비전의 청년 파트를 들여다보면, 달랑 한 줄이다. “청년고용할당제”. 워낙 공사가 다망하신 분들이라 ‘청년’들을 위한 정책들은 충실히 준비하지 못했으리라… 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청년, 당신들이 희망이라고 이빨 까는 건 누가 못하는가.

    그런 립 서비스는 각하의 신년인사 편지에도 다 써 있다. 민주통합당이 이러한 문제의식에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할 수 없다면 필히 망할 것이다. 슈스케라는 허접한 양식으로 청년들을 들러리 세웠다는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을 것이니. 청년들의 현실과 삶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야권 맏형의 모범을 보이길 바란다.

    하버드

    26세 하버드 출신의 사업가를 비대위에 포함시켰다는 소식을 접한 진보진영의 반응은 얼추 예상된다. 스펙으로 무장한 청년을 들러리 세워 청년 문제의 취약함을 감췄다는 비판의 논평이나, “한나라당답다”라는 비아냥 수준일 것이다. 그리고 틀린 주장도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 주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데에 있다. 앞서도 말했지만 적어도 ‘안보’가 아닌 ‘청년’이라는 프레임에서 한나라당은 공격이 아닌 수비의 입장이다. 어떠한 비판과 조롱이 몰려 와도 본전인 것이다.

    그들은 청년들이 보기에 가장 ‘안전한’ 상징과 이미지를 내세우고, 그들의 계급적 스펙트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카드를 제시해 청년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면, 대성공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엔, 이번 발표로 한나라당은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하버드 출신 비대위원에 대한 평에 앞서, 안철수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보자. 청년들은 그가 제시하는 위로와 공감이라는 키워드에 환호했다. 하지만 이는 절대적인 근거가 아니다. 안철수가 청년에게 먹힐 수 있는 최대의 스펙은, 바로 스펙이다. ‘남부럽지 않은 스펙과 명성을 갖춘 이가 사회적 모범을 다한다!’ 청년들은 바로 이 대목에서 열광하는 것이다.

    하버드 출신 사업가 이준석 씨는 다른 케이스라 평할지 모르겠으나, “이 대표는 2007년 5월부터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무료로 과외를 해주는 대학생 봉사단체인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을 이끌어 왔다. (중략) ‘세상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고, 가난하다는 이유로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사진=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이 대목은 어떠한가. 과연 진보개혁 진영이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이 무시무시한 상징을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인가. 엘리트가 보여주는 사회적 모범의 대척점에서 강력한 상징과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인다. 진보진영은 안철수를 비판했지만, 한나라당은 안철수에게서 교훈을 얻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전환한 한나라당이 청장년층의 구직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월 30~50만원의 취업활동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25일 알려졌다. 이는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실업자와 고용보험 비가입 장년 실업자 등 사각지대에 있는 구직자를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박 위원장이 수차례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제도다.’

    세상에나. 이미지에 이은 컨텐츠의 러시다. 야권이 필요 이상으로 방심했다. 그들이 운신의 폭을 쥐어짜서 이런 시혜를 의제로 만들 줄이야. 저거 우리가 다 이미 했던 이야기라고, 저들이 청년에게 보여줄 정책적 한계는 명확하다고 우는 소리 해봐야 이미 기차는 떠났다.

    한나라당에게 등을 돌린 이들을 붙잡긴 어렵겠으나 상관없다. 어차피 한나라당이 관리해야 하는 대상은 아고라나 네이트에서 ‘ㅉㅉ 쟤네 또 쇼한다’라고 댓글 다는 네티즌이나, 트위터에서 한나라당을 조롱하는 청년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 SNS의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미지의 청년들, 이들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니들 짱 먹어라. 이런 빌어먹을.

    잉여

    민주당의 슈스케와 한나라당의 하버드에 이어, 통합진보당의 2030 전략에 대한 평을 해야 하는 데, 할 게 없다. 내가 봤을 땐 그냥 잉여다. 나름 활동가로 일하고 있지만, 이 분들이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부랴부랴 통합하고, 정신없이 10% 지지율 땡 치고, 2012 전열을 갖추느라 분주한지는 모르겠으나 그 어떠한 잔치에도 이들이 보이질 않는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저러한 평가 대신 짤막한 제언을 드리는 수준이 맞을 것 같다.

    지금은 어설픈 지지율에 기인한 낙관적 전망을 내릴 시점이 아닌 것 같다. 최소한 ‘청년’이라는 프레임에서 통합진보당은 대단한 위태롭다. 복지국가 논쟁 때 ‘버로우’ 탄 것은 통합하느라 정신없었다는 변명의 여지가 있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아니다. 원론적인 이야기겠으나, 부디 어수선한 당의 상황을 서둘러 정비하여, 청년 담론을 향해 예리한 칼을 휘두르시길 바랄 뿐이다.

    우선, 하버드 엘리트에 대항하는 강력한 상징이 필요하다. 물론 이 상징에는 진보진영이 논하는 계급적 가치가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어설픈 정책 비전을 제압하는 컨텐츠를 갖춰야 한다.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청년 고용을 확충하고, 사회보험료에 대한 지원 체계를 강화하고, 복지국가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1인 가구를 중심으로 한 주거복지를 강조하고, 반값등록금을 뛰어 넘는 무상 교육의 비전을 현실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새로운 정책과 기존 제도의 개선, 더 나아가 구체적인 예산 설계까지… 말은 쉽다고 하겠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진보를 논하기에 그래야만 한다. 하루 빨리 ‘청년’의 영역에서 진보진영이 잉여 신세를 면하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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