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랑한 꿈, 희망으로 쏘아올려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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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24일 1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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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한여름의 초입이었던 지난 6월의 어느 날이었다. 2차 희망의 버스에 대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던 송경동 시인이 7월 9일로 계획된 2차 희망버스의 목표를 185대로 하자고 제안했다. 혜성같이 나타나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1차 희망버스는 서울 11대를 포함해 겨우 19대였다.

시인의 맹랑한 꿈

1차의 두 배도 아니고, 10배를 목표로 한다는 게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의 허무맹랑한 얘기라는 지적에도 개의치 않고 그는 되려 큰소리를 쳤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85호 크레인 35m 하늘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있는 시간 185일을 기억하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살려야한다는 시인의 ‘맹랑한 꿈’은 쌍용차 해고자들의 ‘소금꽃 찾아 천릿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희망자전거’를 만들어내며 아름다운 현실이 됐다.

폭염이 시작되던 7월의 어느 날이었다. 온 몸에 쏟아진 시퍼런 최루액의 잔인한 기억이 선명하던 2차 희망버스, 경찰의 가혹한 탄압으로 희망버스의 승객들이 곳곳에서 끌려가고, 보수언론과 부산시 관변단체가 총출동하고 이명박 정권까지 나서 희망버스를 ‘훼방버스’라고 비난하던 시절이었다.

3차 희망버스를 언제 시동을 걸까 고민이 깊었다. 7월 말부터 시작되는 여름휴가 시즌 때문이었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 때도 여름 휴가를 평택에서 보내자는 제안이 있었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시인은 오랜 관성과 타성에 젖어 있던 금속노조와 민주노총 간부들의 패배감에 정면으로 맞서자고 했다. 그리고 ‘무모한 도전’은 현실이 됐다.

도로에 쓰러져 목숨이 위태로운 한 여인을 구하자고 소리치며 도로로 달려 나갔다는 이유로, 도로교통법과 집회시위에 관한 현행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그는 부산구치소로 끌려갔다. 정부와 자본은 희망을 꿈꾸었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염원했다는 이유로 그의 육신을 가두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그의 꿈은 지금 이 시간에도 교도소 담장을 넘어 세상을 향해 퍼져나가고 있다.

송경동 시인의 산문집 『꿈 꾸는 자 잡혀간다』(실천문학사, 10000원)는 용산참사, 기륭전자, 한진중공업 희망버스라는 자본의 폭압을 온 몸으로 맞서느라 출판사에서 요청했던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시인이 감옥에 갇혀서야 세상에 태어났다.

눈이 아리고 코끝이 시큰해지다

그는 산문집 작가의 말 ‘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다’에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어쩔 수 없다는 이 시대의 감옥에서, 모든 억압과 좌절의 감옥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나비처럼 훨훨 날아 나오는 꿈을 꿔본다”고 했다.

‘꿈 꾸는 자 잡혀간다’는 멋대가리 없는 제목(?)과는 달리, 절망의 현실에 대한 무겁고 답답한 글이 아닐까 하는 우려와는 달리, 밝고 따뜻한 시인의 꿈이 첫 시작부터 책을 덮을 때가지 가슴 깊은 곳을 아련하게 어루만져준다.

이 책은 송경동 시인의 개인사와 가족들의 이야기가 담긴 1~2부와 사회와 세상을 향한 그의 꿈과 노래가 담긴 3~5부로 구성됐다.

특히 ‘꿈꾸는 청춘’이라는 1부가 인상적이었다. ‘광주항쟁’을 이유로 시인을 꿈꾸던 ‘깡패’ 송경동이 고교 문예반에서 겪었던 아픈 현대사, 일용공 노동자로 살았던 아픈 사연이 구들장처럼 배어 있는 ‘잡부 숙소’ 이야기, 역사의 상처가 개인의 삶에 새겨 놓은 진한 생채기가 아름답게 그려진 ‘깡패 큰아버지’, ‘아버지의 자리’, ‘봉분 없는 무덤’은 때로는 아프고 가끔씩 울컥했지만, 읽는 내내 애잔하고 따뜻했다.

가난한 노동자, 그가 첫 사랑을 고백한 한 편의 시인 ‘어느 비정규직의 사랑 이야기’, 평범하게 살고 싶었으나 시대의 불의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던, 민주노조의 활동가가 되었던 그의 형제 이야기 ‘동생의 행운목’, 시대에 저항했던 시인이 아들 관호에게 보내는 따스한 부정이 가슴 아픈 ‘사우나 가는 길’ 등으로 구성된 2부 ‘가난한 마음들’을 읽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진해졌다.

노동운동 부끄러운 자화성 더 아프게 지적했었더라면

그가 이 시대와 노동자, 민중에게 바쳤던 시와 사연들로 구성된 3부 ‘이상한 나라’와 대추리, 기륭, 용산에서 시인이 온 몸으로 써내려간 4부 ‘잃어버린 신발’은 그 자체로 시대의 절규다. 송경동은 악명을 떨친 이명박 정권은 물론 노무현 시절에도 자본의 폭력에 쓰러져간 가난한 민중들의 몸둥아리를 온 몸으로 감싸 안으며 상처를 위무하고 희망의 노래를 부른다.

그의 추상같은 글은 비열한 자본의 가면을 벗기고, 정권의 폭압과 거짓 이데올로기를 시원하게 까발리며, 패배감과 절망에 갇혀있는 ‘늙은’ 노조 간부들의 오랜 타성을 일깨운다. 그리고 마침내 5부 ‘CTS 85호와 희망버스’에 이르러 그가 평생을 거쳐 기획했고, 실천했고, 마침내 현실로 만들어냈던 ‘희망’을 행복하게 노래한다.

그리고 시인은 말한다. “이제 다시는 누구라도 혼자 외로운 고공을 오르지 않아도 되게 만인의 연대가 굳건한 그런 세상이 그립다. 희망버스 시즌2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1편보다 더 아름다운 2편이 나오리라.”

2008년 9월이었다. 기륭전자 조합원들이 공장 옥상에 올라가 6년에 걸친 싸움을 하고 있을 때, 필자는 여성 노동자들의 거듭된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교섭과 투쟁을 함께 하면서 두 달을 온전히 기륭에서 보냈었다.

용산에서, 4대강에서, 현대차에서 삶과 생명을 파헤친 포클레인이 기륭전자 농성장을 밀고 들어왔을 때 송경동 시인은 기꺼이 포클레인 아래로 몸을 던졌고, 꼭대기로 올라갔다. 공권력으로 가장한 자본의 사병들이 시꺼멓게 포클레인에 몰려왔을 때 그는 전깃줄을 목에 감으며 저항해 그들을 물리쳤다. 시인은 적당히 싸우는 척하지 않았고, 온 몸을 던져 연대하며,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그의 아름다운 연대가 이 책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가 온 몸으로 연대하면서 겪었던, 자본과 정권이 아닌 ‘동지’라는 사람들에게 받았던 상처와 관료화에 찌든 노조 간부들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적나라하게’ 그려지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다. 특히 스스로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반성하며 정독했으면 좋겠다.

탐욕의 자본이 만들어 놓은 야만의 시대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아름다운 시인의 언어로 혁명과 희망을 꿈꾸는 그의 노래가 있어 조금은 더 아름다운 새해를 기대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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