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가르기는 그만, 사람부터 살리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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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20일 02:4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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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터로 ‘김여진씨와 날라리들’을 만나고 (시민들이 보내온)고구마를 만나고, 핀란드 계신 분을 만나는 기적이 생겼다. 크레인에서 책은 아예 못 봤다. 생각도 하면서 정리도 했다고 언론에 얘기했는데 그건 뻥이고 종일 트위터만 했다.”

    300여 명의 시민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도 호탕한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19일 밤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간의 고공 농성 이후 처음으로 시민들과 만났다. “소금꽃 나무가 희망버스에게”라는 주제로 성공회대에서 열린 노동대학 특강을 통해서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크레인에서)매일 매일이 기적이었다고 말한 것은 트위터” 때문이었다. 농성 기간에 트위터리안들은 김 위원의 트위터(jinsuk_85)에 ‘뭐 먹으세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라는 멘션을 보냈고, 김 위원의 답변에 맞춰 음식을 보내줬다고 한다. 김 위원은 “처음에는 고구마가 왔다”며 “그러더니 사람이 왔다”고 말했다. 심지어 독일에 유학 갔던 학생이 ‘마음이 무거워 크레인을 보고 가야겠다’고 해서 한진중공업 농성 현장에 오기도 했다.

       
      ▲19일 성공회대 노동대학 특강에 나선 김진숙 지도위원. ©최훈길 기자

    특히, 핀란드 음대 교수와의 트위터 사연이 마음을 찡하게 했다. 김진숙 위원은 이 음대 교수에게 크레인 농성 시 1일 벌금 100만 원인 상황을 “하루에 100만짜리 호텔방에 산다”고 농담을 건넸다. 애초 자신과 생활 수준이 비슷한 줄 알았던 이 교수는 나중에 실상을 알고 핀란드에서 귀국해 한진중공업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는 크레인 밑에서 2주일간 머물기도 했고 이후에는 출장 중에도 한진중공업을 들렀다고 한다.

    이에 대해 김진숙 위원은 “사람들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학생들이 새로 연애를 시작하며 크레인 밑에서 결의를 다지는 일도 벌어졌고, 투쟁이 끝나니 커플들이 우후죽순 탄생되기도 했다”며 “진짜 깨알 같은 마음들”이라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진숙 위원이 ‘희망버스’를 알게 된 것도 트위터를 통해서였다고 했다.

    이런 김 위원에게 전기가 끊긴 당시 상황은 “절망”과도 같았다. 그는 “전기가 끊긴 것은 트위터가 끊어졌다는 것이자 세상과 얘기했던 것이 끊어진 것이었다”며 “그 절망감을 뭐라고 표현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측이 노린 것도 바로 이 ‘고립감’이었다. 이후 용역들은 김 위원에게 핸드폰 배터리가 전달되지 않게 필사적으로 검문을 했고, 이 과정에서 눈물겨운 비하인드 스토리도 있었다.

    “(외부에서)대용량 배터리, 태양열 배터리를 식빵 안에 넣고 본드로 고정시켰다. 용역들은 금속 탐지기로 음식을 스캔을 하고 다 헤집었다. 밥에 볼트가 섞여 있는지 찾는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배터리를 찾는 것이었다. 어느날 식빵이 용케 크레인으로 들어왔다. ‘본드가 있다’는 메모가 없어서, 오랜만에 보는 빵이라 환장을 했다. 그런데 먹어 보니 쫄깃쫄깃 하더라. 잼인 줄 알고 (본드를) 먹었는데 배터리가 나왔다.”

    그러나 트위터 때문에 김 위원은 ‘속앓이’를 하기도 했다. 한 시민은 전태일, 박종철 열사를 언급하며 “지금은 누군가가 목숨을 바쳐야 할 때”라는 쪽지를 트위터로 보내기도 했다. 그는 “(트위터) 맞팔을 잘 안하는 이유가 소름 끼치는 쪽지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김 위원은 “내가 답답해 스포츠조선하고도 인터뷰를 했다”며 “어쨌든 한 사람에게라도 더 알려야 되겠다는 절박감에서 그렇게 했다”고 말했다. “제가 제일 싫어한 게 정치인과 기자였다”고 말한 김 위원이 고공 크레인에서 얼마나 세상과의 소통하려고 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또 희망버스를 만나고 트위터로 소통하면서 김진숙 위원도 변화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너무 쫓기듯이 팍팍하게 운동해왔다. 운동을 하면서 편 가르기를 좋아했고 사실은 그렇게 해왔다”면서 “저를 변화시켜온 것이 희망버스였고 트위터였다”고 강조했다. 그는 “저는 희망버스가 만든 가장 큰 힘이 깃발을 떠나서 노선을 떠나서 사람을 살리자는 것이었다”며 “우리가 적들을 보고 바꾸라고 하지만 정작 먼저 바뀌어야 할 것은 제 자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또 “트위터를 보면 ‘나꼼수가 어떻다, 백만민란이 맛이 갔다’며 트위터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나꼼수의 방식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편 가르기를 하지 않고 배척하지 않고 갔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김진숙 위원은 “땅 멀미”를 겪고 있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층수 구분이 안 돼, 병원에서도 길을 잃고 있다고 했다. 또 함께 농성을 했던 사수대들의 경우 교통사고를 내기도 했고, 집에서 가스렌지를 켜고 외출해 119가 출동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김진숙 위원은 “다음 희망버스를 제가 운전한다면 쌍용차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또 김 위원은 “저한테 플래시가 모이는 게 굉장히 부담스럽다”며 절박하게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전북버스노조의 투쟁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 위원은 “대한민국은 아직도 이명박이 대통령이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천민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며 “그런 것이 끝나기까지 희망버스는 어디로든 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참석자가 ‘거하게 뒤풀이 하실 생각 없나’고 묻자, 김 위원은 “송경동, 정진우 동지가 출감하는 날 한바탕 거하게 놀면 좋겠다”며 웃음을 내보였다. 이날 1시간 30여 분간의 특강이 끝나고 김 위원은 활짝 웃으며 주먹을 다시 불끈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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