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김장훈 & 기부
        2011년 12월 18일 10: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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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론」이 집필된 1920년대 초반은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하던 시기였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기에 모스는 인간의 도덕적 감성 타락에 상당한 회의를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한 사회에서 인간 행위의 대부분은 전적으로 ‘경제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 결과 사람들의 관계는 교환가치에 매몰되어 점점 더 피폐해지는 상황이었다.

    요컨대 인간들이 점차 ‘계산기’만을 두드리는 ‘경제 동물’이 되어가고 있다고 모스는 진단했던 것이다. 모스는 이러한 상황을 절망적으로 규정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일부 고대사회에서 널리 행해졌던 하나의 행위에 주목하게 된다. 외적으로 보아서는 경제적 이성의 지배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이는 행위, 바로 기부 행위가 그것이다. – 본문 31쪽

    안철수와 김장훈

       
      ▲책 표지.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지난 11월 14일 안철수 원장이 사재 1700억 원을 사회 환원한다고 밝히자 이러한 행보의 진의를 묻기 위해 달려온 기자들에게 그가 한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안철수연구소 측은 "지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사회공헌이 선택이 아닌 필수"인 시대라며 "안철수연구소가 창립 이래 지속적으로 전개해 온 사회공헌 활동이 일상화될 수 있도록 우리의 독창적 노하우와 혁신성을 접목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나눔과 기부 문화를 선도해나갈 것이며, 아울러 우리 사회에 나눔과 기부 문화가 확산돼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입장을 밝혔다.

    안 원장의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에 수많은 시민들이 감동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지난 서울시장 선거 이후 잠시 수그러들었던 ‘신당 창당’설,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한 ‘강남 출마설’ 등의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이러한 통 큰 기부를 순수하게 보지 않으려는 입장도 분명 있는 것 같다.

    우리에게 대표적인 기부천사로 익숙한 가수 김장훈 씨는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기부를 한다고 말해왔는데, 안원장의 사회환원 발표가 있던 날 어떤 이는 다음 아고라에서 안원장의 기부보다 김장훈의 기부가 100배 더 ‘순수하다’고 말했다.

    기부란 무엇이며 또 기부는 반드시 순수해야 하는가?

    『나눔은 어떻게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가』(변광배 지음, 프로네시스, 11000원)은 기부는 실천하면 그만이지 기부가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하냐고 묻는다면 할 수 없지만, 혹시라도 기부의 기원이나 기부행위의 본질 등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에게 의미 있는 책이 될 것이다.

    통계청이 2011년 11월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 중 36.4%가 기부에 참여하고 있고, 1년간 기부 횟수가 6.1회, 1인당 기부 현금이 16만 7,000원에 달한다(본문 18쪽 이하)고 하니, 이제 기부 행위 자체는 이미 그 다양성과 함께 우리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평생을 어려운 생활 여건 속에서 김밥을 팔아 모은 돈 수억 원을 기부했다거나, 어떤 평범한 시민이 구세군 냄비에 1억 원짜리 수표를 넣고 사라졌다는 소식이 아직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안겨주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사람들은 보통 기부를 할 때 그것이 무엇인지 심각하게 따져 묻고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히 그 행위의 실천 자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부를 할 뿐이다. 그러나 기부를 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라든가 기부 사실의 공개 여부에 대한 가치, 그리고 동시에 기부를 받는 사람의 감정이나 그들이 느낄 수 있는 부담감 등에 대해 하나씩 따져 본다면 ‘기부’라는 행위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래서 그저 실천함을 넘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된다. 도대체 기부란 무엇인가?

    "모스에서 사르트르까지 기부에 대한 철학적 탐구"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에 소개될 20세기를 대표하는 네 명의 지성인은 기부, 특히 ‘기부의 순수성’에 관심을 가졌다. 각기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의 주요 관심사는 기부라는 행위로 연결된 ‘나’와 ‘타인’의 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고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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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 변광배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프랑스 몽펠리에 3대학(폴 발레리대학)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극작품과 소설에 나타난 폭력의 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대우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프랑스 인문학 연구모임 ‘시지프’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원 시절 우리나라 민주화에 보탬이 되는 길을 모색하다 ‘폭력’이라는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 소렐, 사르트르, 바타유, 프로이트, 마르크스, 벤야민, 데리다 등의 폭력에 대한 사유를 연구하고 있다. 특히 ‘동일자’의 ‘타자’에 대한 폭력의 일환으로 서양 사상사에서 경시되어 왔던 요소들, 가령 신체, 광기, 여성, 동양 등은 물론이고, 들뢰즈와 가타리의 ‘소수집단’론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또한 1940~1960년 사이의 프랑스 지성사를 수놓았던 사르트르, 카뮈, 아롱, 메를로퐁티, 보부아르, 레비스트로스 등에 대한 연구와 함께 문학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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