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향 권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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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16일 12: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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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잘 아는 어떤 현명한 이가 한번은 "자만보다 자학이 훨씬 낫다. 자학에는 병폐도 있지만, 적어도 자학하는 자에게 미래가 있는 반면, 자만하는 이에게는 현재만 있지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반박하기 어려운 명언 같은데, 북조선에 대해서 남한 주민의 절대 다수는 확실히 ‘미래가 없는 자만’을 택하는 것 같습니다.

    남한 주민의 북조선에 대한 자만

    공개적으로야 ‘꼴통’의 딱지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개 북조선에 대한 논평을 삼가하곤 하지만, 사석에서는 대다수가 북조선을 "배울 게 없는 나라", "실패작"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약 5년 전인가, 제가 그 당시에 관계를 맺었던 한 진보적인 잡지의 발행인을 인사동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세상만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여행을 많이 하고 견문이 넓은 제 상대방은 저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북한이라는 나라의 존재 자체는 우리 민족의 하나의 수치다. 우리와 같은 한민족인데,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한 우상을 받들고 그 획일주의에 하등의 저항도 못하는 것은 정말 최악의 민족적 수치다. 아니, 한국학 하는 입장에서, 도대체 한민족의 어떤 특성 때문에 이러한 괴물 같은 사회가 한반도에서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좀 분석해달라."

    진보를 지향하는 분이신지라 당연히 북조선의 강제적 ‘민주화'(?)나 대립의 악화 등등을 절대 바라지 않으시고 햇볕 정책을 적극 지지하셨는데, 북조선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이라고는 이 정도였습니다. 저는 남한에서 이런 분들을 무수히 많이 봤는데, 이러한 대중화된 대북 자만심에 대한 제 생각을 성경책에서 나오는 말, 즉 "남의 눈에 티끌을 보기 전에 자기 눈에 대들보를 보라"는 말로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꽤나 다원적이었던 1940~50년대의 북조선의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사회가 그 뒤로 주체사상을 유일사상으로 삼아 대대적으로 획일화된 것은 역사적 비극이었다면 비극입니다. 한데 획일화 차원에서는 남한이 북조선보다 더 하면 더 하지 절대 덜하지 않습니다. 단, 우리가 이 부분에 익숙해져 신경 안쓸 뿐입니다.

    북조선에서의 (외피적인) 획일성은, 북조선보다 수천 배의 경제력과 수백 배 더 많은 핵탄두를 가진 미-일-한 이라는 세계 주요 제국주의적/아류제국주의적 야수들의 블록과의 투쟁을 배경으로 한 정권의 강제에 의해서 유지되는 측면은 있습니다.

    가진 자의 여유?

    자국의 노동자와 중국, 월남, 필리핀 등 수많은 나라 민초들의 피땀을 빨아 지금과 같은 규모가 있는 괴물이 된 남한의 경우에는, 1990년대 초반부터 북조선에 대한 ‘우월성’에 안주한 통치배들은 더이상 피치자들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꼭 강제하지 않아도 될 여유를 즐깁니다.

    학생과 같은 미천한(?) 신분으로 감히(?)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자본주의 연구회’를 만들거나, 한진중공업과 같은 이 사회의 큰 오야붕들에게 성공적으로 대들면 물론 감옥행은 어느 정도 보장돼 있지만, 이 체제는 더이상 노동운동가나 사회주의자, 반군사주의자/평화주의자 등을 "완전하게 박멸하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예컨대 반군사주의 투사, 즉 병역거부자 같은 경우에는 전과자로 만들어서 평생 이등시민이라는 신분으로 묶어 차별대우하면 하지, 1970년대처럼 강제 입대를 시켜놓고 거기에서 집총거부할 경우에는 때려 죽이지는 않거든요. 덩치가 훨씬 더 큰 인도나 호주 만큼의 총국민생산액을 자랑하는 세계 14위 경제대국인데, 몇 명의 보잘것없는(?) 반체제 투사들을 때려죽이지 않고 "그냥" 평생 괴롭힐 만큼의 아량(?)을 베풀 만합니다.

    한데, 이렇게도 좋아진 세상에 과연 5천만 명 인구의 대한민국에서는 비종교적 병역거부자들은 그 역사상 몇 명 정도 될까요? 넉넉 잡아 예비거부자까지 포함해도 40~50명 정도 될까 말까 합니다.

    병영에 끌려가면 폭력과 폭언이 난무하는 절대 복종 체계 속에서 인격이 망가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한국 군대란 국토 지킴이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유사시에 미-일-한 블록의 지배자들이 북조선과 중국을 상대로 싸움을 벌이면서 대량으로 소모시켜야 할 총알받이에 불과하다는 점도 알만한 사람이면 다 알지만, 반군사주의적 의지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이 ‘자유 대한'(?)에서 그토록 어려운 것입니다.

    전향을 모르면 한국사회 이해할 수 없어

    아니면, 노동운동이나 사회주의 운동 등을 보십시오. 실제 거기에서 활약하는 활동가의 수는, 1990년대 초반에 비해서 줄었으면 줄었지 별로 늘지 않았습니다. 사회는 덜 탄압적으로 되지만, 오히려 ‘골수’ 체제 반대자의 수가 점차 줄어드는 거죠.

    그리고 상층 활동가들을 보면, 20년 내지 25년 전에 운동판에서 뛰었던 사람들의 상당수를 그 자리에서 더이상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대신 그들은 국회의사당에 보수정당 의원으로도 가 있고, 도지사 사무실, 청와대 등에 가 있고, 각종 대학의 교수로도 재직돼 있고 보수언론에서 문호 대접도 받는 것입니다.

    그들이 소위 ‘전향’을 한 것이죠. 전향이라는 정치문화적 코드를 빼고서 한국 사회를 아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전향, 즉 일정한 거래를 전제로 하는 획일화된, 자발성이 강한 주류에의 ‘귀환’은, 극도로 보수적 사회인 한국에서는 하나의 ‘문화’라면 문화입니다.

    그 수많은 당쟁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이 사약을 받아마시면 받아마시지 ‘전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일제에 의한 식민지적 근대화는 전향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조선 땅에 이식시켰습니다. 조선 토착 사회 지도층의 협력 없이 효율적 통치를 할 수 없었던 일제 지배자들은, 온갖 당근들을 제시하면서 보수적인 양반귀족(민병석, 민영휘와 같은 민씨 척족 출신의 갑부들부터 시작해서)부터 신흥 민족주의자나 온건 사회주의자까지 열심히 자기 편에 끌어들이려 노력했습니다.

    보수적 양반들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주의자나 온건 사회주의 활동가까지도 주로 유산층 출신 아니면 유식층, 도일/도미 유학생층 출신들이었기에, ‘가진 자’ 모두들의 이해관계를 관철시켰던 일제로서 그들을 포섭하는 게 그리 힘들지도 않았습니다.

    민족지도자 33인의 그 이후

    비참하게도 일제 말기에 이르러 1919년의 그 유명한 ‘민족지도자 33인’ 중에서는 영양실조로 죽어도 배신을 하지 않은 한용운만 제외하고서 다들 전향하거나 적어도 민족진영에서 이탈했습니다. 인정식, 백남운 등 엘리트 온건 사회주의자들도 마찬가지이었습니다.

    끝내 전향하지 않은 박헌영이나 이현상, 이관술, 김상룡, 이주하와 같은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을, 나중에 남한이나 북조선 권력자들은 물론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자기 배신과 획일적 주류에의 합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구조에, 지조를 지킨 공산주의자들이 도대체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향 거부자들을 거의 모조리 죽이거나 주변화시킨 사회는, 그 다음에 전향자들을 아주 전면에 배치시켜놓았습니다. 남로당 동료들을 배신해 그 명단을 형리들에게 넘긴 다카키 마사오(박정희)부터 3당 합당으로 야당 정치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배신한 김영삼이나, 반노동 입법으로 노동변호사라는 자신의 경력을 배신한 노무현, 1965년 한일수교 반대 데모했다가 전향한 아키히로(明博)까지, 대부분의 남한 최고 권력자들은 전향자 출신들입니다.

    이재오/김문수/손학규부터 신지호까지 1970~80년대 사회주의 혁명가나 노동운동가들의 기나긴 전향사를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가장 놀랍고 안타까운 전향은 지식인들이나 문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1970년대의 저항의 상징이었다가 전두환 정권의 어용 지식인이 된 천관우 같은 경우들은 하나의 효시이었지만, 황석영이나 김지하의 전향은 그들의 문학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미쳐 저처럼 한국문학을 외국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슬픔을 안겨주었습니다.

    진중권 전향 과정 심층적 고찰 필요

    황석영이나 김지하보다 강도는 훨씬 더 약하지만, 실제로 2000년대에 접어든 박노해의 변신도 일종의 ‘준(準)전향’으로 볼 여지가 큽니다. 더욱더 안타까운 경우지만, 전 진보신당 당원인 진중권씨의 점차적 전향을 우리가 바로 지금, 그의 각종 사회참여적 발언들을 통해 여실히 잘 지켜볼 수 있는 것입니다. 전향이라는 과정의 연구자 분들께, 트위터와 블로그 글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 전향의 과정을 심층적으로 고찰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도 많은 우수한 대한민국의 두뇌들은 사회주의 등등의 ‘위험 사상’을 철저하게 버리고 우리 위대한 경제대국의 순량한 국민들의 즐거운 대오에 이렇게도 잘 합류하는가요? 사형을 피해 대신 남로당 동료들의 목숨이라는 대가를 치른 다카키의 케이스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이해라도 됩니다. 잘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니까요.

    그런데 지금 과거 ‘전진’그룹 등 좌파 운동가들을 맹비난하고, 귀족화된 예술인 정명훈을 옹호하는 진중권을, 그 누구도 죽이려 하지 않지 않습니까? 1990년대에 이루어진 김지하의 전향과 2000년대에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황석영의 전향도 그 어떤 강제도 개입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주류에 속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춥고 배고픈 측면도 있지만, 일단 같은 학력자본을 소유하는 선후배들의 동정적 시선부터 참기가 힘들죠. 그런데 과거 저항이라는 경력을 성공적으로 팔아서 주류에 합류하기만 하면, 세상은 당장 바뀝니다.

    문인 같으면 경우에는, 아예 새로운 천하가 열리는 거죠. 국가의 여러 기관에서 외국어 번역 알선부터 노벨상 은근한 로비까지 다 도맡아주고, 외국 투어도 보내주고, 국내에서는 가장 우수한 언론들이 높은 가격으로 글을 사주고… 성공한 자본주의 국가의 성공한 엘리트의 대열에 들어가는 입신출세의 극적인 경우죠.

    피와 잉크

    그 입신출세를 위해서 딱 한 가지 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영혼을 철저하게 죽여, 획일화된 대한민국의 ‘상식/통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민주화를 자랑하는 ‘자유 대한’에서 절대 다수의 유명지식인들은 바로 그런 방식으로 그 공적인 인생을 마감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역사상의 수치가 아닌가요?

    소련 시절의 저항 시인 알렉산드르 갈리치의 유명한 노래 "악마와의 대화"에서 악마와 계약을 맺어 체제에 영혼을 팔려는 자는 그 계약의 종이를 보면서 "이게 피로 쓰여진 것이냐"고 묻습니다. 악마의 답은 "잉크일 뿐"입니다. 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피가 거의 보이지 않네요. 잉크밖에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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