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태준과 철도 비정규직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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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14일 05: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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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천교 아래로 서울역 철로 위를 걷고 있는 네 명의 노동자가 보인다. 안전모를 쓰고 주황색 야광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철로의 상태를 천천히 살펴보고 있다. 서울역이 가까워오자, 비슷한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가고 있다. 그들의 어깨 너머로 외주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천막이 보인다.

    이 노동자들은 어디 소속일까? 코레일? 코레일공항철도? 코레일테크? 아니면 일용노동자일까?

    관심에서 사라지는 철도 비정규직의 죽음

    지난 9일 인천 공항철도 계양역에서 철로 보수작업을 하다 열차에 치여 숨진 5명의 참혹한 죽음의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사상 최악의 철도사고로 아빠와 남편을 잃고 쓰러진 가족들은 사회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노동자의 목숨보다, 국민의 안전보다 돈벌이에 미친 정부와 코레일이 저지른 사회적 죽음, 언론의 관심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참한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공항철도 비정규노동자 사망 책임 외면하는 코레일공항철도 규탄 기자회견’이 14일 오전 서울서부역에서 열렸다.

       
      ▲코레일 규탄 기자회견. 

    “제가 철도에 처음 입사한 30년 전에 철도 노동자는 5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3만 명도 안 됩니다. KTX를 비롯해 수많은 철도가 새로 생겼는데 노동자들은 다 어디로 갔습니까? 외주화로 인해 그 자리가 비정규직으로 채워졌습니다.”

    철도노조 박태만 수석부위원장이 절규하듯 말한다. 그런데 코레일은 내년 1월 1일부터 시설분야 외주화를 강행한다고 한다. 철도의 시설을 관리하는 정규직이 일하던 자리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로 채워진다. 자본에게는 노동자 5명의 목숨보다 돈벌이가 더 중요한 것이다.

    열차가 달려오는데 안전 불감증 때문에 뛰어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코레일테크의 하청노동자들은 열차의 운행 정보를 정확히 알 수도 없었고, 열차의 중단을 요구할 권한도 없었다.

    기관사와 하청업체 직원이 책임자라고?

    그런데 공기업 민영화와 외주화라는 자본의 탐욕이 만든 이 끔찍한 참사에 대해 경찰은 13일 열차 기관사와 3명의 하청회사 직원들에게 책임을 떠넘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코레일 사장 허준영, 코레일공항철도 심혁윤 대표이사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심지어 하청업체인 코레일테크 사장도 영장이 청구되지 않았다. 지금 이 시간에도 외주화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면서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는 그들은 단죄는커녕 일말의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다섯 명의 노동자들, 철도가 얼어붙어 대형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추운 새벽에 철로에서 일하다 비명횡사한 노동자들. 그러나 이 최악의 철도 참사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유족들과 하청회사인 코레일테크가 장례 절차와 보상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곧 장례가 치러질 것이고, 이들의 죽음은 더 빠르게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전국의 수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철로 위에서 일하고 있는 수많은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은 또 언제 계양역 참사가 닥칠지 모른 채 말 한마디 못하고 일해야 한다. 슬프고 끔찍하다.

    박태준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죽음

    포항제철 신화를 썼다는 박태준 씨의 죽음에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신문들은 그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1면에 내걸었다. 사회장으로 치르고 국립묘지에 안장된다고 한다. 그의 사진 뒤편으로 얼굴의 윤관조차 희미한 철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원한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있다. 포스코의 신화를 쓴 박태준 씨의 목숨만큼 철도노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숨도 소중하다.

    포스코는 지난 해 매출액이 20.88%, 순이익이 32.49% 늘어났는데도 도리어 정규직은 125명을 줄였다. 그 자리는 비정규직 사내하청으로 채워져 생산직 노동자 중 사내하청 비율 52.26%로 제철소 중 세계 최고 수준이다.

    포스코에서 평생을 바쳐 일했던 노동자들, 박태준 씨처럼 폐 속에 모래가 쌓여 죽어가면서도 병의 원인조차 알 수 없었던 노동자들, 지금 이 시간에도 포스코를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하지만 포스코의 ‘직원’이 아닌 1만7천 명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코레일과 포스코, 그들은 사람의 목숨과 건강보다 이윤과 돈벌이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탐욕스런 자본은 당연히 정규직으로 일해야 할 자리를 팔아넘겨 비정규직 사내하청 노동자들로 채웠고 끔찍한 참사로 이어졌다.

    오늘도 염천교 아래 서울역 철로 위해서, 전국의 철로 위에서 달려오는 열차를 두려워하며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주화와 비정규직화라는 탐욕의 열차에 치어 떠도는 다섯 명의 영령들을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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