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68평도 제겐 너무 넓고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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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16일 04: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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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집에서 편하게 받아보던 <구속노동자후원회> 소식지를 먼 부산구치소 7上1, 0.68평짜리 독방에서 받아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소식지를 평소 갇히지 않은 몸이라고 함부로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도 합니다.

    용산 유가족과 희망의 버스

    <구속노동자후원회>에 CMS 많이 가입하자고, 언젠가 이광열 사무국장님 ‘지시’대로 추천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렇게 제가 받아먹으려고 했던 건가 봅니다. 쑥스럽습니다. 유치장에서 구치소로 넘어 온 다음날 바로 후원회 소식지가 전달되었는데 무척 힘이 되었답니다. 이런 소중한 일에 함께 해주시고 계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며칠 뒤엔 안양교도소에 계신 이충연 선생님 서신도 받게 되었습니다. 용산4가 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아버님이신 이상림 열사와 함께 망루에 올라갔다가 ‘아버지를 불태워 죽인 자식’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누명을 쓰고 벌써 3년째 갇혀 지내시는지를 잘 아는지라 가슴이 한편 서늘했다가, 한편 뜨거운 분노가 이는 것을 느꼈습니다.

    2009년 1월 20일 그날 아침, 저도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 용산으로 쫓아가 교통사고로 입원하기 전까지 거의 날마다 유가족 분들과 함께 했습니다. 한번은 잡혀갔다 영장기각으로 나오기도 했고, 그 뒤로도 두 차례에 걸쳐 소환장을 받기도 했지요. 하지만 결과는 안타깝게도 ‘이웃들이 이웃을 불태워 죽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해괴하고 반인륜적인 판결이 어디에 있습니까.

    2009년 1월 19일과 20일, 실제 누가 살인진압 명령을 내렸는지, 양민 50여 명이 위태롭게 올라가 있는 그 처절하고 긴박한 망루를 왜 그렇게 급하게, 단 한 번의 중재 노력도 없이 경찰특공대들을 투입했어야 했는지, 왜 가족들 동의도 없이 전격적으로 부검을 끝마쳐야 했는지, 왜 검찰은 수사기록 3,000쪽을 숨기려 했는지, 모든 게 역사의 미궁 속에 빠져 있지만, 그 진실은 언제든 꼭 밝혀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용산학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투쟁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그 용산 유가족 분들이 ‘희망의 버스’에 함께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충연 님의 아내 되시는 정영신 님이 저 멀리 85호 크레인이 보이는 곳에서 한진중공업 가족대책위 분들의 손을 잡고 펑펑 울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용산의 죽음이 다시 한진중공업에서 일어나면 안 된다고, 함께 힘을 모아달라던 용산 유가족 분들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눈물, 눈물 그리고 눈물

    그리고 그 85호 크레인 아래에서 함께 눈물짓던 이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부평역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철탑에서 100일 넘게, 그리고 다시 GM대우 인천공장 정문 아치 위에 올라 60여 일을 고공농성 해야 했던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

    시청 서울광장 하이서울페스티벌 조명탑과 구로역광장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철탑에 올라야 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눈물,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옆 신축공사장 타워크레인에 올라 120미터 고공농성을 해야 했던 현대하이스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눈물…

    국회의사당이 건너다보이는 양화대교 아래 철탑에서 고공 단식농성을 했던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눈물, 프랑스 대사관 앞 길거리에서 먹고 자며 투쟁해야 했던 발레오공조코리아 정리해고자들의 눈물…

    15만 4000볼트 전류가 흐르는 송전선 철탑 농성을 마치고 내려왔던 대우조선 하청노동자의 눈물, 그리고 지금 1450여 일을 싸우는 재능교육비정규직노동자들과 정리해고 뒤 지금까지 동료, 가족 열아홉 명을 묻으며 ‘해고는 살인’임을 누구보다 절박하게 아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의 눈물을 보았습니다.

    한진중공업 김진숙 동지의 고공농성과 그것을 지킨 ‘희망의 버스’의 원동력은 이런 참혹한 눈물들이었음을 나는 똑똑히 보았습니다. 그런 눈물들을 더는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연대의 행진들을 보았습니다.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는 우리 시대 평범한 모든 이들의 삶의 존엄과 관련된 문제로 곧 내 문제이기도 하다는 의식의 확산을 보았습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저항의 망루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

    다른 세계로 함께 하는 망명을 꿈꾸며

    물론 거기에 기생하는 시대의 기회주의자들도 보았고, 위계와 절차와 지침에 찌든 관료들도 보았고, 도처에 지뢰처럼 무수히 깔린 역사적 패배감들도 맞닥뜨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큰 진실의 흐름은 그 어떤 방해로도 막을 수 없었습니다.

    1%의 독점과 착취, 폭력에 맞선 99%의 행진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른 세계를 다른 인류들이 원하고 있습니다. 자본의 공포에 휘둘리지 않는 ‘깔깔깔’의 담대함들이, 전복적 힘들이 되살아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승객으로 이런 역사적 흐름 속에 있다는 것이 기쁩니다.

    사실, 이 사회 전체가 감옥이기도 합니다. 지나간 시대의 관습에 매인 감옥, 아직도 수많은 미신에 사로잡힌 감옥, 무엇보다 자본의 무한 이윤을 위해 모든 이들의 삶이 제도화되고, 규격화되고, 기계화되는 감옥.

    모두가 이런 갖가지 삶의 구속과 보이지 않는 감옥으로부터 풀려나, 아니 탈출해서 좀 더 자유로운 몸과 영혼들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모순과 억압과 후진적인 문화가 싫다고 어느 제3세계로 망명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린 다른 망명을 꿈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망명, 내 안의 게으름과 기회주의, 두려움을 넘어 다른 가치관을 선택하는 망명, 자본가들 없이도, 권력자들 없이도 재밌고 신나고 뜻 깊고 아름다운 세계로의 망명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 세계로 나도 망명가고 싶은데 잘 되지 않습니다. 저만 간다고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럴 땐 0.68평이 무척이나 크고 넓습니다. 이곳저곳에 이런저런 생각을 수없이 늘어놔 보아도 꽉 채워지지 않습니다.

    마음자리 안에 소중한 생각의 실마리 하나 놓기도 이렇게 힘든데 살면서 무엇을 그리 많이 갖고 소유하려고 하겠습니까.

    0.68평도 제겐 너무 넓고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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