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가 된 조심스런 언론인
    2011년 12월 11일 12: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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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가 언론인으로 활동한 30여 년은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ㆍ노태우로 이어진 독재정권 시대와 온전히 겹쳐 있으니, 언론인의 본분을 다하고자 평생을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느라 수난을 당해야 했다. 그는 이런 격동기의 한복판에서 취재를 하고 논설을 썼는데, 이미 30대 초반부터 논설위원으로서 역사와 정세의 맥을 관통하는 사설과 칼럼을 집필하면서 필명을 떨치고 신망을 쌓았다. 그래서 그는 늘 독재정권의 포섭 대상 영순위였고, 그런 만큼 포섭을 거부한 데 따른 권력의 핍박은 더욱 모질었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장기화되면서 숱한 언론인들이 청와대나 국회, 관계로 속속 투항했다. 정부 각 부처에 대변인제가 신설되면서 언론인들의 변신은 더욱 심해지고, 5공 이후에는 극에 달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송건호는 “나는 분단조국에서는 관리를 안 하기로 결심했다”는 말로 저들의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쳤다. – 본문 24쪽 중에서

   
  ▲책 표지. 

“(기성) 정치는 죽었다.” 이른바 ‘안철수 현상’ 앞에서 제도정치권이 내지른 이 비명은 유권자들의 선언으로도 환치된다. 어떤 영역이든 거기에 ‘전문’으로 복무하는 자들이 직무를 유기하면 대중은 언제고 그들을 ‘제외’시켜버림으로써 ‘대리인’ 자격을 회수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제도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자 마침내 시민들이 저마다 스스로 ‘언론’이 됨으로써 제도언론을 공론의 장에서 시나브로 ‘제외’시켜가고 있다. 그러나 사이비 언론(인)이 사회에 미치는 해악은 여전히 건재하다.

오늘날 이런 언론현실에서, ‘참 언론(인)’의 존재는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 ‘참 언론인’의 표상이 바로 청암 송건호다. 청암 서거 10주기에 맞춰 나온 『송건호 평전』(김삼웅 지음, 책으로 보는 세상, 20000원)은 그의 정론정신을 기리는 헌사이자 현직 언론인들에게 울리는 경종이다.

저자 김삼웅도 줄곧 정론직필의 길을 걸어온 언론인으로서 일찍이 청암을 사숙하여 곡필언론 연구의 일가를 이뤘다. 김삼웅은 이 평전을 쓰기 위해 청암에 관한 거의 모든 자료를 섭렵했다. 청암의 삶과 인간적인 면모는 물론이고 그가 남긴 중요한 글과 저서는 거의 모두 그 핵심을 짚어 논평했다.

청암은 일제강점기 식민체제가 안착된 시기(1926년)에 충북 옥천(<향수>의 시인 정지용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골에서 태어나 ‘황국신민화’ 교육을 받으며 자란 탓에 전쟁에서도 ‘우리나라’(일본)가 이기기를 바랐던 ‘제국의 국민’일 수밖에 없었다.

즉, 민족의식의 세례를 받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청암은 15세에 서울로 유학(한성상업학교)을 온 이후에야 헌책방을 순례하며 왕성한 독서를 통해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일상처럼 이어진 그의 헌책방 독서는 한국현대사 연구의 밑거름이 되었다.

청암은 정론직필을 선두에서 이끌었고 새로운 언론 창달을 주도한 언론계의 거목이기도 하려니와 한국현대사 연구의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이자 대가이기도 하다. 8.15해방 이후 이승만의 백색독재, 박정희의 군부독재 아래서 친일파들이 득세하자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이 현대사 연구를 기피하여 현대사 연구가 불모지로 남아 있을 때 언론인 송건호는 홀로 현대사 연구에 매진하여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그는 특히 ‘민족지성’ 문제(친일청산 문제)에 천착하여 민족의 양심을 바로세우고자 노심초사했다. 따라서 당연히 그의 역사 기술은 ‘과학으로서 역사’라기보다 ‘가치로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자기가 사는 시대의 연구와 서술에 대한 역사가들의 책무가 그 역사적 권능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시금석”이라는 게르비누스의 주장은 ‘불행한’ 한국현대사를 끌어안고 고심참담하던 청암에게 절실한 울림이었다. 그는 평생을 그 ‘울림’에 충실했다.

청암은 ‘길’이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진정한 ‘지사’였고, 불의에 맞서서는 어떤 핍박도 마다하지 않았던 불굴의 ‘투사’였다. 시인 고은의 표현대로 “시대가 착실한 세대주, 조심스러운 언론인을 투사로 만들고 역사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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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건호(宋建鎬)

호는 청암靑巖. 1926년 9월 27일(음)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다. 15세에 서울로 올라와 한성상업학교에 다니면서부터 헌책방 순례 취미를 갖게 되었으며, 민족의식에 눈뜨기 시작했다. 1946년 경성법학전문학교(1948년 국립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편입)에 진학하여 다니다가 6.25전쟁으로 낙향했다.

1953년 복교(서울법대)한 그해 대한통신사 외신기자로 들어가 처음 언론과 인연을 맺었으며, 1954년 <조선일보> 외신부로 옮긴 때부터 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56년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한국일보> <세계일보> <민국일보> <경향신문> 등 주요 일간지 기자 및 논설위원을 거쳐 1965년 <경향신문> 편집국장에 취임했다.

1966년 <조선일보> 논설위원, 1969년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거쳐 19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취임한 직후에 언론자유수호운동에 참여하여 일선 기자들과 함께 ‘10.24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1975년 사주가 자유언론실천 기자들을 대거 해고하자 편집국장을 사임하고 언론 현장을 떠났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현대사 탐구와 왕성한 필력으로 《민족지성의 탐구》를 비롯하여 주요 저작들을 출간하기 시작했으며,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 3.1민주구국선언 등으로 현실참여의 폭을 넓혀갔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렀다.

1984년 민주언론운동협의회(민언협) 의장에 선임되어 언론자유수호투쟁의 선봉에 섰으며, 《말》지를 창간했다. 1988년 《한겨레신문》을 창간하고 초대 대표이사에 선임되어 언론독립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1993년 《한겨레신문》 대표이사 회장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갔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긴 투병생활을 해야 했다.

1996년 애장도서 1만 5000여 권을 한겨레신문사에 기증하여 ‘청암문고’를 개설했다. 1999년 금관문화훈장을 받고, ‘20세기 최고언론인’으로 선정(기자협회보)되었다. 2001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그해 12월 21일 오전 8시 영면에 들어 사회장으로 국립5.18민주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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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김삼웅

독립운동사 및 친일반민족사 연구가이다. <민주전선>등 진보매체에서 활동했으며, <대한매일신보>(현 서울신문) 주필로 있었다. 제7대 독립기념관장을 지냈으며,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 위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 제주4·3사건희생자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 위원, 단재신채호선생기념사업회 이사,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친일인명사전》편찬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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