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성과 자본주의 사이에서
        2011년 12월 11일 1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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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표지. 

    몇 년 사이 지속된 대중문화계의 ‘엄마 열풍’이 심상치 않다. 2008년에 출간됐던 신경숙 작가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가 100만 부 넘게 판매됐고, 엄마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영화 <애자>는 200만 관객을, 여성 수감자의 모성을 그린 영화 <하모니>는 300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고 한다.

    고혜정 작가의 『친정엄마와 2박 3』은 연극과 영화, 뮤지컬로 제작되어 대중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런 ‘엄마 열풍’ 속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우리 시대의 ‘엄마들’에게 접근한 책 『엄마는 괴로워』(이경아 지음, 동녘, 13000원)가 새로 나왔다.

    한손에 경쟁, 다른 손에 모성 글러브를 끼고

    이 책은 남들보다 아이를 잘 키워내야 한다는 모성과,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경쟁 사이에서 고투하고 있는 대한민국 엄마들에 관한 이야기다. 위에서 언급한 ‘엄마 열풍’은 대부분 모녀관계를 다루며 우리를 애절한 눈물의 세계로 이끌지만, 이 책은 자본주의라는 사각의 링 위에서 한쪽에는 ‘경쟁’이라는 글러브를, 다른 쪽에는 ‘모성’이라는 글러브를 끼우고 고투하는 엄마들을 만나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아이들 성적 때문에 울상 짓는 모든 대한민국 엄마들에게 왜 그래야만 하는지 한번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학교 공부보다 컴퓨터 게임에 관심이 많은 아이들과 그 아이들의 신통치 못한 성적 때문에 괴로워하던 저자는 그 괴로움의 근원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문득 생각한다. 왜 아이의 성적 때문에 엄마들이 괴로워해야 할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저자는 녹음용 마이크를 챙겨 직접 우리 시대 엄마들에게 이 물음을 던져보기로 한다. 서울과 수도권, 지방의 중소도시, 여성들이 많이 모이는 시민단체부터 농촌지역까지, 우리 시대가 부여하는 엄마역할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곳을 다 찾아다녔다.

    그 엄마들의 이야기 속에는 ‘경쟁력 있는 아이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사회적인 명령에 저항하는 목소리도 있고, 이 시대에서 아이들이 살아남으려면 무한경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체념하는 목소리도 있다.

    수많은 엄마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며 이야기를 들은 저자는 아이의 성적이 엄마를 괴롭히는 건 아이 때문도 엄마 때문도 아닌, 그 무엇인가가 우리에게 강요하는 어떤 원리가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엄마들의 딜렘마

    마침 이 책의 편집이 마무리되어 가던 시점에 한 충격적인 사건이 사회면 뉴스를 장식했다. 고3 수험생이 공부를 강요하는 엄마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그 학생은 시신을 어머니 방에 그대로 둔 채 8개월을 아무 일 없었던 듯 학교에 다니고 친구를 집에 데리고 오고 수능시험까지 치렀다고 한다.

    학생은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전국 1등을 강요하며 폭행을 일삼았던 것이 살해의 이유였다고 밝혔다. 과연 그 학생의 엄마는 왜 그렇게 아이에게 1등을 강요했던 것일까? 엄마와 아이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기에 이런 비극이 일어난 것일까?

    어쩌면 아이에게 1등을 강요한 그 어머니는 아이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차근차근 쌓기를 원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삶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원하는 삶을 아이가 수용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

    자본주의로 무장한 우리 사회는 모든 사람들이 경쟁에 뛰어들기를 강요하고 있다. 경쟁에서 승리한 소수는 그 대가로 상을 받을 것이고, 불행히도 실패한 대다수는 다시 경쟁에 뛰어들어야만 한다. 선착순 사회가 되어버린 우리 시대에 우리 엄마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엄마들은 자신의 아이가 빨리 뛰어서 제일 먼저 목표점에 도달해 편히 쉬기를 원한다. 하지만 그 엄마들은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지 않은가? 선착순을 강요하는 사회가 원하는 것이지, 엄마 자신이나 아이들이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자본주의가 내건 경쟁 논리를 부정하는 순간 아이가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갈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는가?

    당당한 주인 또는 부유한 노예

    어떻게 할까?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돕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가 원하는 대로 아이를 기르는 어머니가 될 것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한다면 아이는 노예가 아니라 주인으로 자랄 테지만, 그는 가난할 것이다.

    반면 자본주의가 원하는 것을 한다면 아이는 주인이 아니라 노예로 성장하게 될 테지만, 그는 부유할 것이다. 어떻게 할까? 당당한 주인의 어머니가 될까, 아니면 부유한 노예의 어머니가 될까? 이 책의 저자가 우리 시대 모든 어머니에게 묻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 * *

    저자 : 이경아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했다. 여성학을 선택한 것은, 아이들 곁에 머물면서도 세상 속에 온전히 나로서 살아있고 싶은 욕망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로서 내가 되는 길은 도저히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모순으로 가득 찬 가시밭길이었다. 덕분에 헛된 욕망들은 내려놓고 삶에 바로 기여하는 가치를 알아보는 눈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제 그 안목으로 나에게 허락된 정말 아름다운 삶의 속살들을 구석구석 여행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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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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