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이 정치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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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13일 09:2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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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파업 연대 기금 후원 주점에서 유명자 지부장님을 만났다. 재능교육 노동자들의 투쟁이 1400일을 넘겼다. 몇백 명의 사람들이 시청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함께 분노했을 때에도, 나꼼수가 왔을 때에도, 시민들이 국회의원들에게 환호할 때에도 그 떠들썩함 뒤편에는 부실한 천막을 치고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4년을 넘어 싸우는 사람들

싸움은 어느덧 4년을 넘어섰고 천막을 지키는 사람은 열 명 남짓밖에 남지 않았단다. 열아홉 살 때 멋모르고 처음 농성장을 방문했던 나는 스물세 살이 되었다. 4년.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그 대학생활도 저물어 가는데 그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열아홉 살 때 나는 상황에 대한 얄팍한 이해와는 별개로 당연히 내가 학습지 교사와 무관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학습지 선생님보다 대단한 무엇인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더 ‘안정적’이고, 더 ‘전문적’이고 덜 고된 무엇인가. 끊지 말고 몇 달만 더 학습지 공부를 해보라는 권유를 마냥 귀찮게만 여기며 어린 시절 나를 스쳐간 학습지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재능교육 농성장 앞 연대집회 모습. 

지금은 학습지 교사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대졸 고학력자, 특히 여성이 출산 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떠밀릴 수 있는 직종 중 하나인 것을 안다. 모든 여성이 충분한 출산 휴가를 주고 아기 엄마를 배려해 주는 직장, 아니면 누군가에게 아기를 맡길 수 있도록 임금을 많이 주는 직장에 다닌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들이 대다수라는 것, 양육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다시 전문적인 일을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도. 틀을 깨는 어려운 인식의 과정도 아니고, 그냥 현실이었다.

<경향신문>에 김규항씨와의 인터뷰에서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말했다. 연대해 주러 온다고 생각하면 오지 마라. 시간도 있고 사회의식도 있는 대학생들이 불쌍한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이 싸우는데 와서 힘이 되어준다고 생각해도 오지 마라. 너희들도 노동자로 살아갈 것인데 너희의 삶에 대해 어떤 원칙을 가질 것인지 고민하기를 바란다.

공감은 어디까지나 감성의 영역이고, 인식은 이성의 영역인 줄 알았는데 둘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재능 노조의 싸움은 그들의 과거이자 나의 미래다. 우리는 곧 연대‘해주는’ 사람에서 우리의 싸움을 해야 할 사람으로 자리를 옮겨 갈 것이다.

연대해주는 사람에서 싸움하는  사람으로

하지만 좀처럼 대학에 다니는 우리의 불안한 미래에 대해 알려주지 않는다. 내가 관심을 기울일 영역이지 내 문제는 아니라고, 대학을 나오면 불안정한 노동이나 해고와는 무관하게 살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나는 배웠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들 중 상당수는, 그리고 인문학을 공부하고 대기업에 취직할 준비를 착실히 해오지 않은 나는 더더욱 졸업 후 불안정 지식노동을 전전하며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누군가는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대학생들에게 재능교육 노조의 싸움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상상력이나 공감의 문제만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한다. 눈을 돌리니 꽤 많은 고학력 대졸자가 학습지교사를 포함한 불안정한 사교육 시장에 종사하고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보려 하자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수많은 학습지 교사, 시간강사, 학원 강사들이.

상상, 공감, 공유라는 것은 너와 나 사이의 ‘거리’를 전제로 형성되는 감정이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나는 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었던 김진숙씨의 고통에 대해 상상해 보려 노력했다. 육체노동을 하면서 살아가는 나의 모습은 도저히 그려지지가 않아서다. 그것은 내게 여전히 타인의 고통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할 때 우리는 대중의 걱정을 공유하거나 공감한다고 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완전한 우리의 문제였다. 사람들은 내 입에 들어올 고기가 내 몸에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운동권 선배들은 ‘시민들이 단순히 내 몸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고 빼앗긴 식량 주권에 분노했기 때문에, 그런 대중을 지도부가 잘 지도했기 때문에’ 촛불이 들불처럼 번질 수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내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 이상을 넘겨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그때 수능 공부 중이었던 대중 속의 한 사람, 나 역시 내 문제를, 나를 걱정했다.

나는 남의 일에 화를 잘 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누군가 못되게 굴었을 때마다 내가 대신 펄펄 뛰며 열받아 하고 화내주고 결국엔 인연을 끊었다. 시간이 오래 지나자 정작 당사자들은 다시 연락하며 만나고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내가 냈던 화를 내 몫의 분노라고 생각했는데 남의 화를 대신 내 준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냈던 화들이 아무 소용이 없었다는 것에 억울한 것은 그 까닭이다.

내가 서 있는 위치

타인을 이해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싸우는데 힘을 보태준다고 생각하는 연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분노가 연료처럼 소모되고 나면 그칠 감정이다. 차별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사라져야 하고, 정의로운 것이 좋다는 지극히 평이한 당위 이외에는 목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괴로웠다.

‘연대 해준다, 싸우는데 힘이 되어 주겠다’는 마음으로 농성장을 바라보는 것, 내가 정확히 그 지점에 서 있다. 정의로움이라는 당위로 매일 집회에 가는 사람과, 내 문제라 절박하기 때문에 그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의 방식 중 어느 쪽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어렴풋이 생각한다.

낮 시간 동안은 내가 믿는 바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다가 하루 일과가 끝난 후 열심히 집회에 참석하는 것, 그 이상을 고민해 본다. 낮과 저녁 시간의 삶과 집회가 열리는 밤 시간의 삶으로 내 삶이 구분되기를 원치 않는다. 하루 일과가 끝난 후 광장에서 정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이 정치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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