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가 점거, 노동운동 도약 계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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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08일 09: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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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예상대로 노동 및 학생 운동과 연계되어 도처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주코티공원(자유공원)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던 사람들을 강제로 몰아냈다.

    이에 대항해 11월 17일 뉴욕 소재 주요 노조와 학생 및 사회 운동 단체들이 대대적인 가두 시위를 벌인 데 이어 뉴욕 시내 일부 대학생들은 뉴스쿨 대학의 부속 건물을 점거하고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불씨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대규모 집회나 캠퍼스 점거 운동의 형태로 확산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의 최근 소식을 전하고자 한다. 특히 뉴욕시에 기반을 두고 있는 주요 노동 및 사회 운동 단체들이 어떻게 월스트리 점거 운동과 연계를 맺고 있는지에 촛점을 맞추고자 한다.

    지역 노동 운동 단체들의 참여와 지원

    한국 사회에도 이미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노동조합 운동은 1970년대까지의 화려한 전성기를 뒤로 하고 점차 사회적인 영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2010년 기준으로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조합 가입률은 12% 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미국의 거대 연합노동조합(AFL-CIO와 SEIU 등)이 기층 노동자들을 조직하거나 경영진의 부당한 처사에 맞써 싸우는 대신 미국 민주당에 선거 자금을 대주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제도의 부분적인 개선을 이루려고 노력해 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로비 위주의 활동이 노동조합의 정치력 신장이나 교섭력을 확대하는 데 지극히 제한된 역할만을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노동 조합 활동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뉴욕 소재 최대 강성 노조가 소속되어 있는 운수노조(Transport Workers Union; TWU)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시작되자마자 가장 먼저 이 운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적극적으로 점거 운동가들이 주관하는 집회와 시위에 참가해 왔다. 집회 현장에서는 뉴욕 경찰의 위협으로부터 점거 운동 참가자나 시위자들을 보호하는 ‘사수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고 있다.

       
      ▲TWU, SEIU 조합원들. 

    다음으로 서비스 노조에 가입되어 있는 간호사 노조원들(SEIU Local 1199)은 주코티 공원에 응급 치료 시설을 설치하고, 번갈아 가며 이 곳에 나와 다치거나 긴급한 치료를 요하는 점거 운동 및 시위 참가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해왔다.

    뉴욕시 교사노조연맹(United Federation of Teachers) 지부(District Council 37) 노조원들은 점거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자유공원 인근에 사무실을 임대하여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이 중요한 의제를 두고 토론을 할 때마다 이 사무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지난 10월 15일 블룸버그 시장이 경찰을 동원해 자유 공원에서 노숙 투쟁을 벌이던 점거 운동가들을 연행하고 텐트와 각종 시설물들을 철거할 예정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미노동조합연맹(AFL-CIO)과 서비스 노조(SEIU) 소속 뉴욕 인근 노조 집행부는 노조원들로 하여금 이른 새벽 주코티 공원으로 집결해서 경찰의 침탈을 막고 점거 운동가들을 보호하라는 긴급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른 새벽부터 진행될 예정이었던 경찰의 최초 진압 시도를 막아낼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의 노조 활동 지원

    노동조합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에 이처럼 도움을 주었다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내부의 회합과 실행위원회를 통해 뉴욕 소재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뉴욕시립대학에서 근무하다가 지금은 노동조합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재키 디살보(Jackie DiSalvo)가 전하는 말에 따르면, 점거 운동가들은 거의 매일같이 뉴욕 소재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회합을 갖는다고 한다.

    게다가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은 내부의 실행위원회를 통해 노사 분규가 심하거나 각종 문제로 많은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월마트와 같은 ‘문제 사업장’ 노동자들을 자문하고 지원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9월 버라이존(Verizon)이라는 거대 통신회사가 집 전화선의 설치와 유지 보수 업무를 담당해 오던 담당 부서(landline technical support division)를 아예 없애고, 이 부서에서 근무하던 전문 기술직 기술자들을 대량 해고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마치 민영화된 한국통신(KT)이 수익률이 떨어진다는 미명하에 가정용 전화 설치 및 서비스 운영 부서를 없애려고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버라이존 기술자들은 당연히 상급 노조인 통신노동조합(Communication Workers’ Union)과 함께 이 대량 해고 조치에 반대하는 파업과 시위를 전개했다. 그리고 이 상급 노조와 버라이존 경영진 간의 지루한 협상이 전개되는 국면에서 때마침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사회적인 관심과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은 즉각 버라이존 기술직 노동자 및 통신 노조와 연대하여 대대적인 항의 집회와 거리 시위를 감행했다.

    예고된 파업

    이 뿐만이 아니다. 어쩌면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노동조합의 파업은 월스트리 점거 운동과 미국의 사회 운동을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지도 모른다.

    서비스노조 산하의 뉴욕시 빌딩 서비스노조(Local 32BJ)는 2만5천명의 노조원이 가입하고 있는 상업용 건물 청소원 및 시설 관리 노조다. 이들은 주로 금융과 보험 그리고 부동산 관련 거대 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맨하탄 남부의 상업용 부동산 건물의 청소와 시설 유지 보수 업무를 주로 담당하고 있는데, 올해 12월이면 기존 건물 업주들과의 노동 계약이 끝나고 새로운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비록 노동 계약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지는 않지만, 노동조합 지도부는 경제 위기 국면에서 하락한 실질 임금을 회복하고 직업 안정성을 도모한다는 취지하에 강력한 요구 사항을 내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월스트리트 점거운동을 지지하는 전미자동차노조(UAW). 

    자유공원에서 <인티펜던트>(Indypendent : 영국의 유력 일간지 <인디펜던트 : the Independent>와 다른 뉴욕에서 발행되는 독립매체-편집자)의 한 기자와 인터뷰를 한 사울 니브스는 “노조 지부가 있는 각 건물들을 찾아다니며 우리의 요구 조건을 내걸며 노조원들을 설득하고 있다. 노조원들을 파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그 누구도 이 노조가 순전히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을 위해서 파업을 시도하거나 그 기간을 연장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재의 노조 지도부가 공언한 대로 강력한 파업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에 새로운 동력을 부여할 것임에 틀림없다.

    내년 봄 뉴욕시 공공운수노조도 임금 인상과 연금 수혜 기준을 둘러싼 강력한 싸움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 운수노조에는 뉴욕시 지하철 및 철도(Metropolitan Transit Authority; MTA) 운영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관사와 정비사들이 소속되어 있다.

    지난 3년 동안 지속된 경제 위기를 핑계로 뉴욕시 정부는 뉴욕시 지하철 및 철도 운영 본부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조치를 취했고, 그렇지 않아도 서비스 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지하철 및 철도 이용 요금이 경제 위기 국면에서도 매년 인상되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MTA에 근무하는 노동자들과 뉴욕 시민들에게 돌아갔다.

    MTA 노조는 성명을 통해 블룸버그 시장이 MTA 경영진의 방만한 경영과 부주의한 금융 투자로 입은 손실을 노동자와 시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노조는 MTA 경영진이 월스트리트 금융 기업을 모방하여 하는 일에 비해 엄청난 연봉과 보너스를 지급받아 왔고,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MTA 노동자들이 퇴직 후에 받아야 할 연금의 상당 부분이 월스트리트 금융 기업의 부주의한 투자로 인해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은 MTA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나 임금 삭감이 아니라 방만한 경영과 부주의한 금융 투자를 일삼아 온 최고위급 경영진을 내쫒고 형사 처벌하는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재 노조 지도부는 내년 봄에 전개될 싸움을 위해서 지역 공동체운동 단체는 물론 환경운동 단체 그리고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어려운 문제

    물론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과 노동조합 운동간의 연대가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이 강력한 리더십과 위계 질서 하에서 움직이고 각종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차원의 규제 사항들에 묶인 상태에서 활동해 왔다면,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처음부터 그와 같은 위계 질서와는 거리가 먼 의사 결정 구조와 활동 방식을 유지해 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양 당사자들이 처음부터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본다든가 효율적으로 공동의 활동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다소 순진한 생각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람들이 양 당사자가 합의하고 연대 활동을 펼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다수의 지역노조 운동 활동가들은 "노동조합 운동은 항상 법적인 문제들만을 생각하도록 내몰려왔다.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은 조직 노동자들에 영감을 불어넣어 미국의 노동운동이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새로운 국면

    이 점에서 11월 15일 이후 전개되고 있는 사건들은 이 양자가 어떻게 한데 힘을 모으고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될 것 같다.

    11월 17에는 블룸버그가 점거 운동가들을 몰아낸 데 대한 대규모 항의 시위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 시위에는 뉴욕 지역 교사노조와 공공 부문 노조가 대거 참여했다. 서비스노조 지도부는 경찰에 연행될 것은 각오하고 거리 연좌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리고 11월 말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뉴욕시 소재 각급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연일 대규모 거리 시위와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이때는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벌어진 경찰의 과잉 진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진 점거 운동 캠프에 대한 강제 진압 사건이 벌어진 이후였다.

    이러한 일련의 탄압 조치에 분노한 각 지역의 점거 운동은 점점 더 급진적인 형태로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고, 그 중심에 바로 지역 단위 노조와 사회 운동 단체들이 활동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11월 30일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이 주최하고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대'(United for Peace and Justice; UFPJ)가 주관한 ‘전쟁과 환경 파괴 수단에 투자하여 돈벌이를 일삼는 월스트리트 금융 기업들에 대한 반대 시위’(March against War Profiteers and Wall Street Investors From Investing in More War, Death and Environmental Destruction!)가 그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12월 1일에는 전미노동조합연맹(AFL-CIO)이 주도한 ‘일자리와 경제 정의 실현을 위한 행진’(March for Jobs and Economic Fairness)이 맨하탄 중심가에서 있었다. 이 집회에는 교사노조와 간호사노조가 중심에 섰다.

    12월 4일부터는 맨하탄 남부의 월스트리트 인근에 위치한 트리니티 교회(Trinity Church) 앞에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의 일부(25명)가 자유공원에 대한 경찰의 침탈에 항의하는 무기한 ‘단식 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교회 주교는 점거 운동가들이 교회의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취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12월 중순 경부터는 워싱턴 D.C에 지부를 두고 있는 각종 사회 운동 단체들과 전미노동조합 연맹 등의 노조 지부들이 중심이 되어 ‘정부 되찾기'(Take Back the Capitol)”라는 새로운 형태의 항의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점증하는 실업 문제와 조세 불평등 문제를 거론하며, 워싱턴 D.C 한복판에서 4일에 걸친 항의 시위와 행진을 벌인다는 게 이들의 계획이다.

    12월 12일에는 미 서부 지역 점거 운동가들이 지난 번 오클랜드 지역에서 있었던 총파업 투쟁과 유사한 형태의 대규모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를 통해 그들은 미국 서부 지역의 항구 해안 도시를 폐쇄하는 계획(Coordinated West Coast Blockage)을 세우고 있다.

    12월 17일에는 미국 전역에서 점거 운동가들이 각 지역별로 새로운 점거 운동 근거지를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12월 17일은 월스트리트에서 점거 운동이 시작된 지 3개월이 되는 시점이며, 그동안 경찰의 탄압 때문에 없어져버린 점거 운동 근거지를 이 날을 기해 새롭게 구축한다는 게 그들의 계획이다.

    과연 이들의 계획대로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이 새로운 근거지를 찾고 각 지역의 노동 및 사회 운동 단체들과 긴밀한 연대를 형성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 *

    주요 참고 자료

    Ari Paul, “Labor Finds a Young Soulmate,” Indypendent, November 02, 2011
    Arun Gupta, “The Revolution Begins at Home: An Open Letter to Join the Wall Street Occupation,” Indypendent, November 02, 2011
    John Tarleton, “NYC Central Labor Council to March Today, More Conservative Building Trades Unions Ready to Show Their Support (Finally) for 99% Movement,” Indyblog, December 1, 2011
    Jeff Goodwin, “Occupy Wall Street: The Challenge Ahead,” The Labor Standard, November, 02, 2011
    Mike Elk, “What Can Labor Learn? It won’t be easy for union leaders to accept the Occupy movement’s most important lesson,” In these Times, November 16, 2011
    Sarah Jaffe, “Thanks to Nurses Union and Occupy Wall Street, Pressure for Wall Street Speculation,” AlterNet, December. 04, 2011
    그외 월스트리트 점거 운동가들이 발표한 주요 활동 계획은 Occupy Wall Street 홈페이지(http://occupywallst.org/)와 Press TV – US Desk의 최근 기사들 참조

    * 이 글을 쓴 신희영(경제학 박사)은 미국 뉴욕 신사회과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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