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망 바이러스 감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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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05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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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어이없다. 증거 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어서 구속 수사를 해야 된다니. 국회조차 정리해고가 부당함을 검증하고, 해고 노동자 복직까지 결정된 마당에 말이다. 서둘러 수술을 받아야 할 시인의 아픈 몸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무조건 가둬놓고 보는 ‘저차원적’ 정치 수사도 이제 신물이 난다. MB정권의 칼날 수사는 ‘안 봐도 비디오’로 끝나겠지만, 저들에게 예상되는 재판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맘에 안 들면’ 가둬놓고 시작하면 그만이니 말이다.

    나 같은 사람까지 희망버스를 타게 만든 사회

    MB정권이 하는 짓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다. 애초부터 ‘상식적 대화’가 안 통하기 때문이다. 저들은 송경동과 정진우, 두 사람을 구속 수사해 희망버스가 전파한 ‘희망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애먼 다리 짚은 것이다.

    이번 희망버스 움직임은 나조차, 아스팔트 바닥 투쟁과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는, 나조차 희망버스를 타게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그 의미를 짚어내야 한다. 저들은 선량한 시민인 나 같은 사람은 "좌빨 사상으로 무장된 몇몇 세력에게 세뇌되고, 선동에 넘어가 버스를 탔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 것이다. 이 정도면 ‘상식적 대화’가 안 통하는 이들 아닌가.

    학위 논문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여름 날, 나는 3차 희망 버스에 몸을 실었다. 연일 고공 농성을 하는 김진숙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모습이 가슴 아팠는데, 내가 보탤 수 있는 힘이라곤 유일하게 희망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그 버스에 함께 탔던 이들은 대부분 나와 같은 ‘선량한’ 시민이었다. 농민, 주부, 프리랜서, 여성단체 회원, 시민활동가, 교수, 심지어 고등학생까지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어느 누구에게 선동될 것 같지 않은, 자유 의지를 지닌 ‘주체적’ 존재였다.

    물론 투쟁이 낯선 나는, 2차 버스 참가자들이 받은 ‘최루액’이 두려웠다. 혹 하룻밤 경찰서 신세를 지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경찰을 따돌리기 위해 희망 버스를 놔두고, 시내버스로 영도에 들어가려고 여러 방법을 찾아 애쓰면서는, 마치 내가 80년대 운동권 세대가 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희망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항생제는 없다

    우리는 무사히 영도로 들어갔고, ‘다행히’ 무박 2일의 시위는 ‘평화적’으로 끝이 났다. 내가 다녀온 그 곳은 ‘축제의 장’이었다. 수변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통닭과 맥주를 먹으며 노는 사람들, 언더 밴드의 공연을 보는 사람들, 마음껏 자기 목소리를 드러내며 호소하는 사람들,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들. 이들은 ‘데모’를 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한바탕 축제를 벌이러 온 사람들 같았다.

    그곳엔 비정규직 노동자들부터 성소수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99% 소시민들과 약자들이 모여 평화적 잔치를 통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엄숙하고 찬바람 횡횡할 것 같은 ‘데모판’이 아니라, 신명나는 ‘굿판’을 통해서 말이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사이, 급속도로 희망 바이러스는 퍼져갔다. 며칠 전 나꼼수 FTA 반대 콘서트에는 수만 명이 모였다고 한다. 몇몇 앞선 사람들을 잡아 가둔다고, 희망 바이러스가 퇴치될 수 있다고 믿는가. 갖가지 사상 이념 항생제로 ‘상식’, ‘인권’, ‘민주주의’, ‘복지’와 같은 보편적 진리를 처치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인가.

    이런 식으로 민주주의를 계속 탄압할수록 희망 바이러스는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희망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항생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기 때문이다. 송경동 시인, 정진우 진보신당 비정규노동실장 구속 수사를 나는 규탄한다.

    * ‘여성다시읽기’ 모임은 전주에서 19년째 활동하는 풀뿌리 여성주의 문화비평 모임으로 지역사회 현안을 주제(이주여성, 비정규직, 노인문제 등)로 한 월례발표와 영화․소설․만화․미술 등 미디어비평모임을 한다. 이를 소식지 『여성다시읽기』에 담아 일 년에 네 차례 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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