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노동정치 출발선에 서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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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2월 05일 02: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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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의 공유를 위해

    “마르크스의 꿈이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천년 전에 예수그리스도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그것도 아직 꿈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호치민)

    홍세화 대표님의 취임사를 잘 읽었습니다. 요 근래 읽은 글 중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왔습니다. 한 때 민주노동당 당원 번호 2번이라는 자부심을 ‘훈장’처럼 달고 다니는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불면과 고통을 안겨 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를 겪고, 그 이후 동지들 간에 날선 비판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노동자 정치’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은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최근에는 진보정당 대통합과 관련하여 동지들 간에 상처를 깊게 주는 독설이 오가는 것도 지켜보기만 해야 했습니다.

    누군가 물어보면 “알아서 해라”라며 차갑게 반응하기 일쑤였습니다.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런 말을 내뱉는 것조차도 고통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대표님이 말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후퇴는 우리 역사 전체의 비극적인 후퇴를 낳을 것”이라는 말씀에 힘입은 것이라는 점을 전제합니다.

       
      ▲이젠 뿔뿔히 흩어진 ‘동지’들. 국민승리21 삼선교 시대에 함께 한 사람들. 맨오른쪽이 필자. 

    전략과 전술의 적절한 배치가 필요

    “민주노동당이라는 배를 만들어 100km쯤 가다가 우리는 그 배가 목적지를 달리 하고 있음을 보고 차가운 바다에 뛰어 들었다. 다행히 또 다른 배가 있어 그럭저럭 근처의 섬에 도착했다. 이제는 10,000km 정도 갈 수 있는 배를 만들어야 하는데, 이미 뒤처져 있으니까 그냥 그 배를 가지고 빨리 출발하잔다.

    나는 그 배에 탈 수가 없다. 차가운 겨울 바다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나는 배를 새로 만들지 않으면 출발할 수가 없다. 나는 섬에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싶다. 배의 나무는 어떤 재질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항로를 잡아야 하는지, 선장은 어떤 사람이 가장 노련한지, 배에 탈 사람들이 가져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 등 모든 것을 시간을 두고 논의하고 싶다.

    그런데 그들은 배를 출발시키면서 섬에 있는 사람들보고 얼른 올라타라고 하는 것 같다. 개중에는 수영을 잘하는 사람들이 있어 이미 출발한 배에 올라타기도 하겠지만 나는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태우고 함께 출발하고 싶다.”

    지난 2008년 5월에 레디앙에 쓴 글입니다. 그러나 “총선 공동대응 기구이자 총선 이후 실질적인 창당을 하기 위한 전략 거점” 혹은 “총선용 대책기구”로 이름에도 ‘연대회의’를 달았던 진보신당은 저의 이런 희망과 무관하게 급출발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진보신당 결성을 위한 원탁회의에 갔다가 실망만을 안고 크게 화를 내며 돌아 온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원탁회의는 그저 시늉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과거를 얘기하는 것은 그래서 문제였다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홍 대표님이 제안하고 계시는 “진보좌파 정당 건설 연석회의”가 또 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대표님이 말씀하신 대로 ‘의회 진입이라는 목적에 진보정당의 명운이 걸리지 않기를’바랍니다. 적어도 100년은 내다보는 진보정당의 초석을 만들겠다는 각오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그렇다고 대중정당으로서 다가오는 2012년 총선에 ‘모르쇠’로 임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2012년 총선은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반역사적 집단을 심판하면서, 동시에 3당 합당으로 복잡해진 정치지형 속에서 진정한 진보정당의 토대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선을 다해 교두보를 확보하는 한편 중장기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전술과 전략의 적절한 조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고민과 전술은 연석회의를 통해 다듬어야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총선을 준비하되, 그 이후 중장기 전략을 만드는 두 가지 로드맵을 가지고 대응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또 다시 출발선에 서서

    멀고도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대표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다시 그 출발선”에 서 있습니다. 당연히 그 출발선은 차분하고도, 진지한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다시 또 좌절한다면 더 이상 길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더욱 절실합니다.

    이제 그 누구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습니다. 명망가 몇 명만을 남긴 채 다시 돈 대고, 몸 대는 정치로 전락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주노동당의 분당, 최근의 3당 합당으로 상처 받은 노동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다시 진보정치를 시작하자고 얘기하면 백이면 백 “그래서 뭐하자고?” “대안이 뭔데?” “해 봤자 소용없는 짓이다” “이제 좀 그만 괴롭혀라. 이젠 안 한다. 너나 해라.” “도대체 뭐가 다른데?” “이후에도 이런 애기 또 안할 자신 있으면 말해봐라!”라고들 반응하는 게 현실입니다.

    처음 출발할 때 보다 백배는 어려운 조건이라는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그만큼 세심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들의 마음을 잡는 ‘감동의 정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진정성이 없으면 감동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대표님이 말씀한 “우리는 결코 진보신당이 진보적 가치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진보진영 전체의 힘을 모으는 도구와 그릇이 될 수 있도록 겸손과 성실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에 큰 기대를 합니다.

    이 글을 쓰려고 생각하면서 청주로 내려오던 날 새벽,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한치 앞도 볼 수 없게 되면 속도를 줄이게 되고, 전방을 예의주시하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팽팽한 긴장감이 온 몸을 감쌉니다.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고민하는 우리 모두가 그런 자세로 임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금의 상황이 오히려 다행

    “이대로 하나의 조직구조가 다시 짜여질 경우 유력 정치인이나 새로운 당의 조직질서를 통해 ‘리메이크 민주노동당’의 활동 모습을 반복할 가능성이 높다. 노동자들은 주체로 참가하거나 일정한 조직적 흐름을 가지기보다는 수동적인 모습이 재현될 수 있다” 진보신당의 출범을 보며 우려했던 글입니다.

    제가 진보신당의 당원이 아니어서 실제로 그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유력 정치인에게 많은 짐을 지운 것은 사실인 듯합니다. 이제 그들 모두가 떠났습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정말 수십 년을 함께 동고동락해 온 동지들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러나 거꾸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가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조직위원장을 하면서 어느 신문엔가 “우리는 권영길 당이 아니다”라고 썼던 기억이 납니다. 권영길 후보를 폄하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이 명망가 중심의 정당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글이었습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명망이라는 것도 수많은 동지들의 죽음과 희생위에 세워진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따라서 세상에 알려진 이름 그 자체도 조직의 결정 아래 귀속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된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진보정치에 등을 돌리며 “호랑이를 잡으러 들어간다.”고 했지만 결국 호랑이와 비슷해진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이 연석회의를 열게 되면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것입니다. “명망가의 팬클럽이 아니라 뜻과 이념에 따라 결속한 당원들의 진정한 진보정당”이라는 대표님의 말씀의 실현을 기대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없는 현재의 상황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1년여 동안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입니다. 주로 대전과 충남, 충북에서 지내면서 곳곳에서 다음 운동을 이끌어 갈 수많은 멋쟁이들이 성장하고 있음을 몸으로 느낍니다. 노동운동의 위기를 뚫고 성장할 힘들이 이제 막 자라나고 있습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전략과 전망을 담고, 다시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갈 수 있는 그런 진보정당의 출현을 꿈꾸었으면 합니다.

    6월 항쟁의 정치를 넘어서는 노동자 정치를 위해

    “배달호는 유시민의 역사의식의 경계 밖에 있다. 유시민에게서 1987년 6월의 요구는 자신이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완성해야할 과제로 받아들이지만 1987년의 7~9월의 요구는 남의 일, 예컨대 권영길이나 민주노동당이 풀어야 할 일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그가 말하는 시민의 국민화(국민통합)는 한계를 드러내며 설득력을 잃는다. 그의 민주주의는 상대화된다.

    그의 말대로 2004년 총선에서 6월 항쟁 주체가 의회권력을 장악하여 항쟁을 혁명으로 끌어올린다면 그것은 권위적 보수주의자들이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현실로부터의 커다란 진보를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6월 항쟁의 이 혁명적 국민통합이 이러한 상대성 속에서, 7~9월에 대한 배제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또 다른 혁명을 필요로 하게 될 불구적 혁명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배달호의 죽음이 시사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조정환, 노무현의 승리와 배달호의 죽음 속에서 생각하는 유시민의 참여민주주의)

    지난 2003년 1월 9일 나이 오십을 넘긴 두산중공업의 배달호 열사가 돌아가셨을 때 의미심장하게 읽은 글입니다. 저는 조정환의 말대로 유시민의 길과 노동자 정치의 길이 달랐다고 봅니다. 6월 항쟁의 주역들은 기존의 정당을 통해 정권의 실세에 많이 접근했습니다. 한나라당에도 많고, 심지어 노무현 정부아래서는 장차관을 비롯해서 정부의 고위직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는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은 “87년 6월 항쟁의 정치가 비극으로 소멸되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이명박 정부의 탄생은 그 실패로 인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최근 과거에 저와 함께 공공연맹에서 일했던 노항래 국민참여당 정책위원장이 정약용과 박지원의 만남을 비유로 하면서 “참여당과 민주노동당/통합연대 세력이, 노무현의 ‘참된’ 계승자이기를 꿈꾸는 이들과 전태일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그렇게 만나야 한다. 만나면 아름다울 것이다.”라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풍경일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만남’의 아름다움일 뿐 삶의 모든 것을 같이 하는 아름다움은 아닐 겁니다. 연애를 한다고 꼭 결혼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과 아름답게 만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코 같이 살 수 없는 이유가 많다는 것을 먼저 그들이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노동자들은 그들과 함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그들의 민주주의에 노동자는 없었습니다. 철저한 노동자 배제의 민주주의를 6월 항쟁의 정치는 보여주었습니다. 공공부문의 파업권을 봉쇄한 필수유지업무제도도, 현재 비정규직의 고통을 가중시키기고 있는 비정규직 법안도 그 때 만들어진 것임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공무원과 교사는 여전히 노동3권도 없이 살고 있습니다. 이건 가치와 철학의 차이입니다.

    심지어 공공부문의 지방 이전을 두고 우리 연맹과 노무현 정부가 노정협약을 맺을 때 국무총리실 실무자로 나온 지금의 민주당 의원인 홍영표 의원이 지방 이전에 따른 비정규직의 문제를 제기하자 “비정규직의 ‘비’자만 나와도 협약은 없다.”라고 잘라서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한 때 민주노총 준비위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입니다.

    철학이 다른 것은 다르다고 인정해야 만남이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리고 철학이 다른 사람들은 공통분모를 찾으려 서로를 돌아보는 것이 기본적인 태도입니다. 구태여 하나여야 한다고 강요하려면 뭐가 차이인지를 먼저 보아야 합니다.

    진정 아름다운 만남을 원한다면 ‘묻지 마 과거’가 아니라 정책의 차이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지를 진정을 가지고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 시작입니다. 각설하면 실패로 끝난 6월 항쟁의 정치를 넘어선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시대적 과제를 대표님을 비롯한 우리가 안고 있다고 봅니다.

    멀고도 힘들게 돌아 온 길

    저는 민주노총이 앞장서서 진보대통합을 추진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론이 이상하게 나왔다고 봅니다. 애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재결합을 목표로 추진되었던 것을 돌아봅니다. 결혼으로 비유하자면 한바탕 부부싸움을 한 부부보고 다시 뭉쳐 살라고 했더니 엉뚱하게도 이웃집 여자와 동거를 하겠다고 하는 것처럼 황당한 일입니다.

    대표님은 “3당 통합에 대항하기 위해 진보정당이 만들어져서는 안된다.”고 강조했습니다. 동의합니다. 3당 통합은 또 다른 한 시기 진보정치 운동의 전환점일 뿐입니다. 87년 이래 ‘비판적 지지’를 해왔던 세력 중의 일부가 2000년 민주노동당 결성에 함께 했고, 그런 철학적 기조를 가져왔던 사람들이 넓어진 전선 속에서 다시 만나는 지각변동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거기에 진보정치를 생명처럼 아끼던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만 빼면 그건 지극히 자연스런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조건에서 우리는 분열을 최소화하면서 ‘연대와 소통’에 주력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 진보정치를 주장하는 움직임들이 아주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를 한데 모으는 노력은 매우 중요할 것입니다. 마침 이글을 쓰고 있는 사이에 사회당과의 ‘진보좌파 정당 건설 합의‘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반갑고도 고마운 일입니다.

    노동에 몸담고 있는 저로서는 흩어지고, 상처받은 사람들을 다시 모아야 하는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끝없는 논쟁과 상처받기가 다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노동자 정치를 색다르게 보는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수렁에 떨어진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다시 세울 조직적 토대가 만들어 질 수 있는 다른 기회를 기다릴 뿐이다.” 2009년 3월 ‘노동자 진보정당 건설 전국추진위원회(준)’을 해산하면서 레디앙에 쓴 글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그만큼 정말로 먼 길을 돌아서 기다려 왔습니다. 대표님의 취임사에서 저는 그 기회를 보았습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후회투성이입니다. 그 때 더 잘했으면 이런 고통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을 한 것 같습니다. 반성할 지점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수많은 날들을 자책 속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표님의 제안을 시작으로 진보적인 노동자 정치를 다시 세울 수 있는 토대가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미약하지만 힘을 보탤 수 있는 방법을 최대한 만들어 보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 이미 갈기갈기 찢겨진 노동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나갈 수 있도록 세심한 고민을 함께 했으면 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고난의 행군을 앞두고 건강에 유의하시라는 말로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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