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로경찰서장 폭행사건을 둘러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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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30일 04: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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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권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오래전 일들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다. 지난 주말 한미FTA 반대 집회에서 발생한 종로경찰서장 폭행사건도 그런 것 중 하나다. 트위터로 이 소식을 보았을 때만 해도 기시감은 없었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떠들어대고 "경찰서장이 매맞는 나라, 누가 집권한들 이끌 수 있겠나"는 사설을 남발하자 정원식 총리서리에 대한 대학생들의 밀가루 투척사건이 또렷이 떠올랐다. 벌써 20여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지금 한미FTA 반대 투쟁에 참여하는 청년층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만큼 약간의 부연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1987년 6월항쟁에 이은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후보 단일화 실패로 민주화 진영은 정권을 획득하지는 못했지만, 88년 총선으로 야당들은 다수 의석을 차지했고 이를 기반으로 제5공화국 청산을 시도하는 등 집권당을 수세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노태우 정권은 차기 정권을 미끼로 김영삼과 김종필을 끌어들여 1990년 초 3당합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을 이룩했다. 이를 통해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이 만들어졌는데, 그렇게 해서 다수당이 된 집권당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는 등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반대파를 탄압했다.

    1991년 봄이 되자 이런 공안통치에 대한 저항이 대학생층을 중심으로 조직되었다. 하지만 이들의 열렬한 투쟁은 경찰에 의해 강경하게 진압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대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에 분노한 대학생들의 분신 자살이 이어졌다.

    대중의 분노 누르려는 보수언론의 여론몰이

    며칠 상간으로 대학생들이 전국에서 죽어가던 삼엄한 상황에서 당시 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은 자신이 출강하던 한국외대에 마지막 강의를 하러 갔다. 그리고 정권에 분노한 대학생들에게 밀가루와 계란 세례를 받게 된다.

    다음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은 몰골이 된 총리서리의 사진을 게재하고 대학생들을 노교수를 거리낌 없이 모욕하는 패륜아로 몰아갔는데, 이런 여론몰이가 대학가에 타오르던 거센 투쟁의 열기를 누르고 보수적 지배를 공고히하는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3당합당으로 형성된 정당체제가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늘이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원식 사건은 특정한 사건과 그것에 이은 미디어적 증폭이 얼마나 큰 구조적 영향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종로경찰서장 폭행사건도 이와 유사하다. 한미FTA는 3당합당처럼 매우 중요한 구조적 사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권자를 배신한 상층 보수연합에 분노했듯이 조약의 날치기 통과에 대해 대중은 크게 분노하고 있다. 그런 대중이 집회를 하자 정권은 물리적 진압을 시도했다.

    이전에는 곤봉으로 대학생을 내려쳤고, 지금은 추운 날씨에 시민들에게 물대포를 안겼다. 그러자 그런 강경진압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높아졌다. 이전에는 대학생들의 투쟁이 전체 사회의 투쟁으로 확산될 수도 있는 분기점에 있었고, 지금은 한나라당 의원들마저 물대포는 너무한 것 아니냐며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때 집권층의 특정 인물이 분노한 대중을 향해 뛰어든다. 그리고 자작극에 가까운 일이 불러온 폭력이 보수언론에 의해 도덕적 패륜 또는 공권력에 대한 있을 수 없는 도전으로 침소봉대되는 것이다. 대학생을 죽인 경찰폭력이 세수만 하면 지워질 밀가루와 계란 투척으로 가려지고, 고막을 터뜨리는 물대포가 서장의 전치 3주 상해 때문에 도외시된다.

    하지만 이렇게 유사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세부는 많이 바뀌었고, 세부가 바뀜에 따라 사건의 영향력도 크게 달라진 것 같다. 정원식 사건에 비해 종로경찰서장 사건은 현저히 남루하다. 이전엔 저명한 교육학자이자 전직 교육부장관 그리고 총리서리인 인물이 섶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들었다면, 지금은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는 경찰서장이다.

    시위군중은 그를 두고 "조현오 물러가라"고 했단다. 장관은 아니라도 경찰총장쯤은 나서리라 생각한 판에 실망스럽게도 경찰서장 정도가 나오는 것이 이 정권의 실상인 것이다.

    지금은 누구도 ‘쫄지’ 않는다

    그리고 이전에 정원식은 그 자리에 예정된 강의를 위해서 갔다. 그는 공직에 나서기 전 교사의 의무를 다하러 간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경찰서장은 의원들에게 갑작스레 약속을 통보하고 기다리는 이도 없는 시위군중 속으로 밀고 들어갔다.

    밀가루와 계란을 뒤집어쓴 노학자의 사진이 실린 <조선일보> 1면에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 비장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호위경관과 시위 군중과 취재진에 겹겹이 둘러싸인 서장 얼굴 옆으로 누구 것인지도 불명확한 손 하나가 솟아 있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공권력에 대한 도전을 표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전에는 <조선일보>가 어떤 사건은 이렇게 해석되어야 한다고 외치면 그 본질이 무엇이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해석들이 SNS에 넘쳐나고 <조선일보>를 조롱한다. 종로경찰서장의 자작극이라는 말이 서슴없이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조선일보>는 그런 SNS를 괴담의 서식지로 낙인찍으려 하지만, 천안함이 북한의 인간어뢰에 의해 격침되었다는 식의 괴담을 퍼뜨린 진정한 진원지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법이 자신들의 중심 보루임을 잘 알기에 현직 판사가 페이스북에 남긴 글을 빌미로 법조계와 SNS 모두를 통제하려고 한다. 그러자 그 현직 판사와 동료 판사가 함께 대들고 있다. 그렇게 모두 대들고 있다. 여검사가 대검을 비판하며 사표를 던지고, 〈나는 꼼수다〉의 정봉주 전 의원은 기사를 잘못 쓴 조선일보 기자에게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다. 현직 의원이 집단모욕죄로 고소한 〈개그콘서트〉는 정면에서 그 의원을 다시 한번 개그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렇게 모두 전혀 ‘쫄지’ 않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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