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섬에서 콘크리트 군사기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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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30일 04: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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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마을 해변의 노을. 

탐라인의 자긍심인 유물 관리 부실

고대인들이 도읍지로 삼는 곳은 어김없이 수량이 풍부한 곳이었음을 감안할 때 강정이 탐라국 도읍지였다고 전해오는 말은 신빙성이 있다. 그 소문을 증명하듯 지난 8월, 지표 조사 중이던 해군기지 부지에서는 청동기, 철기 유물과 원형 수혈식 집자리(움집터), 주혈식 소토유구(불에 탄 흙이 쌓여있는 흔적) 등이 줄줄이 발견되었다. 강정 사람들이 바다와 밭을 오가던 중덕삼거리에서 강정포구에 이르는 상당히 너른 지역이다.

유물이 발견되자 강정 주민들은 환호했다. 마땅히 공사가 중단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행 매장 문화재 보호와 조사에 관한 법률 5조 2항을 따르면 그렇다. 유구(집터)가 발견될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법률에는 공사 중단과 동시에 발굴되는 유물과 유구를 보존하고 공사 진행을 문화재청장과 협의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해군은 가뿐하게 이 법을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심지어 9월 2일 이후부터는 문화재 발굴 현장에 군인과 경찰을 상주시키고, 개를 키우고, 10월 6일에는 인근 바위를 발파했다. 나아가 10월 24일 경에는 본격적인 발파를 진행하겠다는 발표를 하였다.

같은 날인 10월 24일에 강정 문화재에 대한 중간 점검에 나서겠다고 한 문화재청이 어떻게 대응할는지 기대가 된다는 필자에게 문화재청에 대한 신뢰를 잃은 주민들은 “휙 둘러보고 공사해도 된다고 명분이나 주려는 것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제주시 일주도로에 자리 잡은 제주국립박물관 선사실에 전시된 제주 청동기 유물은 66점에 불과하다. 제주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청동기 유물이 발굴되는 예는 희귀해서 매우 소중하게 다루어지는데,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강정마을 해군 펜스 안쪽에만은 불법, 편법을 용인해오다보니 주민들로서는 문화재청을 향해 불신을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라인이라는 자긍심을 은근히 드러내기 좋아하는 제주도민들이 소중한 유물들을 잃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고대 유물이란 이미 부서진 구럼비와 마찬가지로 재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 강정은 어떤가요?”

“요즘 강정 어때요?“
근래 들어 지인들을 만나면 필자에게 꼭 물어오는 말이다. 강정은 어느새 대한민국 전역에 사는 사람들의 주요 관심거리가 되었다. 우리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섬이어서 그렇고, 그 섬이 동북아에서 가장 첨예한 형태의 군사 분쟁지로 전락할 기로에 처해있기 때문에 그렇다.

10월에는 좋은 소식도 있었다. 제주도가 해군에게, 지난 8월 태풍에 유실된 오탁방지막을 설치하고 제주도의 허락을 얻은 후 공사를 지속할 것을 주문했기 때문이다. 구럼비 시험 발파 때도 별 힘을 쓰지 못하던 제주도가 처음으로 공사 일시 중지를 요구한 것이다.

해군이 이 요구를 수락해 공사 시 부유토사를 저감하기 위한 오탁방지막을 공유수면에 설치하려면 한 달 이상 공사가 중단된다. 오직 해군기지 문제에만 온정신을 쏟고 살아가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생활이 잠시 평화로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나쁜 소식을 연이어 듣고 보면 갈 길이 멀다는 생각. 10월은 제주 여느 마을처럼 강정도 감귤 수확을 준비하는 시기인데 예상치 못한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백합꽃이나 감귤 농사를 짓는 농가들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공사장에서 날아든 비산 먼지 문젠데요, 공사 중에 발생된 비산 먼지가 마을 곳곳으로 날아들어서 수확을 앞둔 감귤들이 가지에 달린 채 썩고, 화훼 농가 비닐하우스마다 벌겋게 쌓였어요. 큰일입니다. 한 해 수고한 농사를 다 망치게 생겼어요.”

눈앞에서 썩어 들어가는 감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다보니 작물을 죽이는 비산 먼지가 사람들의 호흡기에는 괜찮은지를 물을 겨를이 없단다.

이 문제에 대해 제주도나 해군은 물론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고 있다. 지금도 이러할진대 해군기지가 들어설 경우 발생될 심각한 환경오염에 대한 제주도 당국의 대처 능력은 과연 어느 정도 신뢰할 만한 것일까? 빙 둘러 기름띠를 몰고 다닌다는 군함들이 서귀포 해역을 오염시킬 것이라는 소문이 유언비어만은 아닐 것 같다. 제주시 출신 이광진 씨는(디자이너) 해군기지 문제로 인한 환경과 생활 파괴에 대해 분노한다.

“무엇보다 개개인의 자연스러운 삶의 환경 곧, 행복추구권을 개무시한 것이 해군기지가 제공한 가장 근본적인 재앙의 출발점이라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들도 점점 망가뜨려 놓겠지요.”

   
  

경찰에 포위된 미사

강정은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구럼비를 다녀간 사람들은 신묘한 영성을 가지고 사람을 품어주는, 아무래도 살아있는 생각을 가진 듯 독특한 표정을 지닌 용암단괴를 잊지 못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중덕해안이 펜스로 가로막힌 후로도, 반 이상 깨부수어진 구럼비 쪽을 향해 부름에 답하듯 걸어가곤 한다.

10월 10일 발족된 ‘제주 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천주교 연대’ 성직자 500여명과 신도들 역시 구럼비 가장 가까운 강정포구에서 저녁미사를 드렸다. 경찰 병력이 사방을 차단하고 있는 살풍경 속이었다.

주민들은 전국에서 모인 참석자들에게 구럼비를 보여주기 위해 집어등 환하게 켠 갈치잡이 어선 한 척을 강정바다에 띄웠고, 저녁 파도로 검은 가슴을 씻고 있는 구럼비를 잠시나마 지켜보게 배려해 주었다. 미사가 끝난 후, 군중 바깥을 지키던 너덧 명 형사들과 수인사를 하게 나누었는데, 서울경찰청에서 내려와 두어 달이 되었다는 형사는 묻는 말에 수월수월 대답도 잘 했다.

“구럼비는 제주에서도 보기 드문 특별한 곳이던데, 부서졌으니 너무 아깝지요?”
“아휴, 국방이 시급한데 그 정도는 양보해야지요.”
곁에 있던 서귀포 경찰청 소속 형사가 끼어들어 하는 말 역시 그와 비슷했다.
“제 고향이 저기 남원인데요. 거기도 아름답습니다. 제주에 강정 같은 데 많아요.”

인류가 영원히 간직해야 할 신념인 평화, 대화, 아름다움의 수호를 우리 정부와 제주도가 포기하는 게 안타깝다는 이용임 시인의 말이 허사가 아님을 그 모든 것이 파괴된 다음에야 깨닫는다면 너무 늦지 않겠는가.

영향력 있는 정치가나 지식인들은 몸을 사리고, 주민들은 도를 넘은 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을 보며 “힘없는 정의는 도움이 안 되고, 정의 없는 힘은 폭군적”이라고 신구범 전 제주지사는 탄식을 했지만, 지금 강정마을에 가보라.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기도

기지사업부지에 1회 들어갈 때마다 200만원을 내라는 법원의 가처분 신청에도 불구하고 새벽마다 강정포구에서 구럼비로 헤엄쳐 들어가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기도를 하는 송강호 박사가 있고, 세계인이 모여 평화를 배우는 대학교와 공원을 꿈꾸며 조그맣게 <강정평화학교>라는 서로배움터를 개교한 주민들이 있다. 10월 18일 개교했고 11월 17일 현재 벌써 4기를 배출했다.

삶의 터전을 위해 일어선 강정 사람들은 싸움을 넘어 전혀 새로운 평화를 꿈꾼다. 땅을 빼앗겨 백합꽃을 키우지 못하는 주민의 집을 학교로 삼아 ‘평화의 섬 제주’가 호사가들의 말장난이 아님을 증명하려 한다.

근래 제주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마을인 강정이 그 거룩한 평화의 뜻을 일으키고 있는데, 지금 제주 도정은 수백억 원으로 알려진 통신 요금을 지불하며 공신력도 없는 외국 회사가 주최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되었다고 환호한다.

주민의 공복으로 선출된 지역 국회의원들은 해군기지 예산 삭감이라는 칼날이 그들에 의해 얼마나 무디어졌는가를 증명한 후 그 대열에 끼어 박수를 치고 있다. 세계가 알아준다는 경관 중에도 1급 경관 지역인 강정을 내주는 조건으로 토건 개발 계획을 잔뜩 발표해놓고도 그 마음이 편안한 것일까?

숨 막히게 열거된 1조5천억 상당의 개발 계획이 추진된다 해도 이곳은 제주도가 아닌가. 크루즈 관광미항 면세점, 해양관광테마 강정항, 크루즈 터미널, 크루즈 관광 테마 거리(실제로 강정해군기지에는 크루즈함 입항 설계가 되어있지 않다.) 다이버 지원센터, 퇴역 함정을 이용한 함상 펜션, 실내형 키즈랜드…

용천수 공원, 프리미언 아울렛, 친환경 빌딩형 국가시범 양식단지, 강정마을 커뮤니티 센터, 농어촌 공동체 회사 설립, 소비지 모델형 농·수산물 유통 시범마을, 서건도 해양레저공원, 관광미항 지역발전소 사업, 민군 상생 프로그램 운영, 서귀포 해군박물관, 태양광 발전단지, 농·수산물 현지 가공공장…

서귀포의료원 현대화 사업, 제주 재활전문센터 건립, 알뜨르 평화대공원 조성, 해양교육연구단지 등등이 빼곡히 들어차 시멘트 냄새를 날리는 인공 투성이 제주도에 관광을 올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심스럽다.

평화 편지를 쓰는 사람들

인공 구조물로 단장된 풍경은 제주 아닌 곳에도 많다. 난만한 ‘개발’로 인한 오염과 군사기지로 인한 타락한 문화 유입으로 인해 관광지로서 등급이 낮아지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것이다. 이는 물론 제주도민의 자긍심과도 연계된 문제다.

온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절대 경관을 현대의 야만인 콘크리트나 전쟁기지와 맞바꾸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제주도민 개인들이 차지할 파이 조각이 강정 포함 서귀포 지역을 군사기지와 바꿀 만큼 클 것인지 의심스럽다.

오늘도 강정에는 교도소에 갇힌 주민을 위해 평화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있다. 제주를 지키기 위해 자비를 털어 달려와 그림을 그리거나, 인형을 만들거나, 올레꾼을 위한 차를 끓이거나, 노래를 부르거나, 길거리 미사에 참석하거나, 마을회관에서 기사를 전송하거나, 그저 강정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평화를 살해하는 힘들’을 견제하고 있다.

삼삼오오 걸어가는 젊은이들의 빛나는 웃음과 더불어 코사마트 사거리를 걸어가는 햇살이 주민, 연극인, 화가, 성직자, 올레꾼, 해군, 정사복 경찰들 어깨로 차별 없이 쏟아져 내릴 때 당신은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쪽 표정이 인류 미래의 평화를 가리키고 있는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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