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노동자인가. 예술가의 생존권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인가. 정책은 예술과 예술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현실은 차갑기만 하다. 달빛요정이 떠난 지 1년이 되었다. 최고은 작가가 떠난 지 1년이 되어간다. 숲속 홍길동까지 떠나보내야 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다.
분야를 막론하고 창작자들의 처우와 보상은 상식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 예술은 오로지 상품가치로 평가받고, 혹은 그래야 한다고 강요받는다. 왜 바뀐 건 없는지, 무엇을 어떻게 할지, 해결책은 무언지 각계의 고민과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자리가 필요하다. 12월 3일 토요일 오후 3시,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의 ‘살롱 드 팩토리’에서 열리는 문화예술인 집담회 ‘밥 먹고 예술 합시다’는 예술인의 생존권과 정책의 문제를 고민하는 자리이다. 진보신당 문화예술위원회(준)와 문화연대, 칼라TV의 공동주관으로 7인의 예술가와 4인의 정책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인다. 이 자리에서는 예술인들의 현황을 공유하고, 기존 법과 정책의 현실성과 한계를 검토하고, 현장의 요구 및 아이디어를 제출하며, 그것의 수렴 가능성을 토론한다. 현장의 목소리를 실효성 있는 정책안으로 연결시키는 기획이다. ‘밥 먹고 예술 합시다’에 앞서 패널로 참여하는 예술인들 중 만화가 이동수 씨와 극작가 박새봄 씨가 자신들의 생각이 담긴 글과 작품을 보내왔다. 차례로 싣는다. <편집자 주> |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림=이동수 |
상황 1.
그는 날마다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눈다. 겨눠야만 한다.
그가 꿈꾸는 어떤 이상, 혹은 세속적인 ‘대박’을 향해
자신을 향해 화살을 겨눈다.
그래서 실수에 대한 대가는 스스로의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운명이다.
몇 번씩 자신이 쏜 화살이 빗나갈 때마다 그는 치명상을 입는다.
그 속에서 얻는 성찰을 통해 그는 끊임없이 그의 활솜씨를 닦아 나간다.
물론 자신을 향해 쏴야 하는 고통 때문에 솜씨가 더 좋아진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상황2.
그가 그 자신을 향해 화살을 쏘아 사과를 맞히는 솜씨는
또한 구경꾼들에게도 만족스러워야만 한다.
때때로 그가 쏘는 솜씨가 서툴거나 능숙하거나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물론 그가 사과를 못 맞혔을 때, 솜씨 좋게 쏘지 못했을 때 구경꾼들은 그에게
금화 대신에 야유를 던지거나 자리를 뜬다.
그가 스스로의 목숨을 건 활쏘기라는 사실은 구경꾼들에겐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 * *
예술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황 1과 상황2에 자신을 맞물려 놓는 것이다.
두 상황 사이에서 끊임없는 줄타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 줄에서 떨어지면 시지프스처럼 다시 고통을 감내하며 줄을 타야 한다.
이상적인 모습은 능숙하고 만족스런 솜씨로 사과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빌헬름 텔이거나 로빈 후드가 아니다.
아니, 더 이상 빌헬름 텔이거나 로빈 후드이어서는 안 된다.
그들 이상으로 사과를 기가 막히게 맞출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그 자신의 열망이기도 하고 구경꾼들의 바람이기도 하기 때문에….
▲행사 웹포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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