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약용과 박지원 & 진보와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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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9일 03: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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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끔씩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분들의 선의를 대할 때 우리 역사 속의 한 사람 다산 정약용을 떠올려 생각한다. 2백년 전 재주 많고, 열정 넘치고, 분노를 삭힌 학자 정약용의 면면은 오늘의 그들과 맞닿아 있다.

    엉망이 된 현실의 불합리에 대한 분노 또는 또릿또릿한 탐구정신이 이끈 새로운 사상에 대한 관심, 아마 천주학에 대한 젊은 다산의 관심이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개혁적이었고, 인민을 사랑했으며, 변혁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천주학에 대한 젊은 날 그의 짧은 관심은 그에게 한 시대의 화인이 되어, 참혹함과 하소연할 데 없는 불우의 사유가 되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진보세력들이 젊은 날 마주친 마르크스-레닌주의, 사회주의, 주체사상이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왼쪽)와 다산 정약용.

    사회주의와 진보적 자유주의

    같은 시대에 연암 박지원이 있었다. 호방하고 자유분방한 그의 기질은 어쩌면 우리가 표방한 진보적 자유주의의 2백년 전 판이라고 말할 만하다.

    그의 <열하일기>는 개혁군주 정조에게도 거슬릴 만큼 지나치게 혁신적이어서 그 시대 ‘문체반정’이 필요한 이유로 거론될 정도였다. 그는 당연한 듯 여긴 격식, 마음 속 신조의 허망함을 일필휘지로 드러냈다. 사회사상도 혁신적이어서 요즘 식으로 말하면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개인의 권리나 이익추구 행위에 대한 국가권력의 지나친 개입이나 규제에 비판적이었다.

    이익을 실현하기 위한 개개인의 영리활동은 나라의 부를 키우고, 백성의 살림살이를 풍요롭게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의 집안은 천주학에 극렬 반대하는 노론이었으나 그는 ‘천주쟁이’를 가혹하게 징치하는데 반대했다. 그는 따뜻했고, 열정적이었으며, 새로운 것을 찾기에 게으르지 않았다.

    정약용과 박지원은 같은 시대를 살았다.(물론 박지원이 스물다섯 해 먼저 태어났으니, 동년배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2백년 전 조선에서 스물다섯 나이 차이가 만든 소통의 벽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 인물인 두 사람이 같은 임금을 섬기고, 같은 시대의 부조리를 탐구하면서 함께 혁신을 꿈꾼 동료였던 셈이다.

    같은 궁 안에서 한 사람은 신흥 참모로, 한 사람은 특채(음서)된 관리로 함께 일했다. 두 사람 모두 이러저러한 이유의 인사조치 등으로 같은 궁과 한양 인근의 집과 지방 목민관 직위를 오르내렸다. 정조가 승하하던 날, 한양으로 향하던 정약용은 낙심해서 무릎을 꿇었고, 지방 목민관이었던 박지원은 자신을 때로 질책하고 때로 응원해 준 호학군주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그러고 나서 두 사람 다산과 연암의 삶은 확연히 갈라졌다.

    만나지 않았던 두 사람

    정약용은 그야말로 참척의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젊은 날 그를 스쳐간 천주학은 그의 삶을 부수는 자들의 명분이 되었다. 그 고난 속에서 다산은 조선개혁의 꿈, 목민의 철학을 벼리고 닦았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 그의 권고와 혁신의 꿈을 권력에 참여할 수 없는 이의 허망한 넋두리로 들렸을 것이다.

    ‘반짝~’했던 개혁의 꿈이 스러진 나라에서 박지원 역시 초야로 묻혔다. 젊은 날 그를 사로잡았던 새 문물에 대한 열정은 나이와 함께 스러졌고, 삶의 말년에 집안의 자녀들 훈육이 그의 일이 되었다.

    그들은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남인과 북인으로, 서로 비수를 감춘, 때로는 으르렁대는 정치세력의 양 쪽에서 각기 촉망 받는 새 인물로 각자 그렇게 살았고, 자신의 시대를 제 각각 마주했다. 같은 사회의 같은 모순과 부조리에 직면해서 그들은 제 각각 고심하고 제 각각 교유하며 꿈을 키웠다. 그러나 그들은 만나지 않았다. 뜻을 견주고 섞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평행선을 달렸다.

    그들이 머리를 맞대었다고 그 시대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어쩌면 아무런 변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후대에 그들이 남긴 저술 한 대목씩을 읽는 재미로 시간을 때우는 내게, 두 사람의 조우, 세상에 대한 한탄과 자신의 꿈을 펼쳐보며 나누는 교유의 장면을 상상하면, 아름답고 장엄하기만 하다.

    그들은 그렇게 각자가 속한 문벌의 적대를 넘어서, 스물다섯 해 나이 차이를 눙치고 마주했어야 한다. <목민심서>보다, <열하일기>보다 더 한 호쾌하고 멋진 장면, 대화를 엮어냈을는지 누가 아나. 그를 가로막은 것, 그것이 그 시대의 불행이고 한계였을 것이다.

    그들은 각각 그 벽 너머를 살필 수 없었다. 한 시대를 살피던 그들이 족벌, 나이, 사조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다.

    누가 다산이고 누가 연암인가?

    우리 시대의 다산은 누구이고, 연암은 누구런가. 오늘의 진보세력과 진보자유주의세력을 그렇게 대비하는 게 무리일까. 설혹 무리일망정, 그 시대에 다산과 연암이 무릎을 맞대고 통음하며 교유하면 좋았을 어느 장면처럼, 우리시대의 우리들, 참여당과 민주노동당/통합연대 세력이, 노무현의 ‘참된’ 계승자이기를 꿈꾸는 이들과 전태일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이 그렇게 만나야 한다. 만나면 아름다울 것이다. 진실하다면, 우리에게 진정이 있다면….

    내가 꿈꾸는 새로운 진보세력의 구축, 진보통합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의 하나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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