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일 많은 한국 정부 딴 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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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9일 11: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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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중앙 은행의 소극적 정책 대응의 문제

    이같이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의 복잡성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유럽중앙은행이 취해왔던 일련의 조치들이 지닌 한계점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사실 그리스 정부의 채무 규모는 그리 큰 편이 아니다. 1990년대 말 동아시아 외환 위기의 여파로 발생했던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의 외환 및 재정 위기(1998년의 브라질과 2001년의 아르헨티나) 당시의 채무 규모에 비추어 보았을 때 그리스 정부의 채무 비중은 지극히 적다.

    게다가 그리스 정부가 자국 금융 기업들의 자산과 부채를 처리하면서 떠않게 된 부채는 외채가 아니라 유로화로 정산되는 부채다. 따라서 마음만 먹는다면 유럽중앙은행과 관련 기구들은 유로화를 추가적으로 발행하거나 내부 조정을 통해서 그리스 정부의 재정 위기 문제를 간단하게 수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단일 국민 국가의 행정부와 독립적 중앙은행이 마땅히 취해야 할 거시경제적 재정 정책과 통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단일 기구가 현재의 유럽연합 시스템 안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유럽중앙은행.

    예를 들어, 마스트리히트 조약 등 유럽연합 내부의 재정 정책 관련 합의는 정부의 재정 적자 폭을 일정한 한도 내에서 줄이거나 통제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경기 후퇴 국면에서 어떻게 확대 재정 정책을 편성해서 경기 후퇴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지에 관한 그 어떠한 절차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

    더불어, 지극히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독일 중앙은행의 헤게모니적 지배하에 놓여 있는 유럽중앙은행의 목표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까지 통화량을 줄일 수 있는지에 관해서만 촛점을 맞추고 있을 뿐 긴급 상황에서 유로존 내부의 금융 시장에 유동성을 지원한다던가 혹은 그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자본 시장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들을 수행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그리스와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처음 불거졌던 초기 국면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유럽중앙은행이 영국과 미국의 중앙은행들이 그랬던 것처럼 시중 은행에 긴급 유동성을 지원하거나 그리스 정부가 발행했던 채권을 사들여 서유럽 은행들의 자본 계정에서 부실 자산을 흡수하는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유럽중앙은행은 이러한 조치들을 계속해서 거부해 왔고, 유럽 금융안정 기구(European financial stability facility)를 신설한다느니, 유럽연합 차원의 단일한 채권 시장(Eurobond market)을 창설한다느니 하는, 현재와 같은 위기 국면에서는 별다른 실효성이 없는 조치들을 거론하고, 다시 이를 둘러싼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벌이면서 시간을 허비해 왔다.

    물론 현재의 추세대로, 그리스 정부의 채무 불이행 선언으로 시작될 남부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가 다시 동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로 확산될 경우 유럽 중앙 은행은 결국 2008년 금융 위기 당시 영국과 미국의 중앙은행들이 취했던 것 같은 긴급 유동성 투입 정책을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파국으로 내몰린 상황에서 임기응변식으로 취하게 될 조치가 과연 얼마만큼 실효성을 가질지 모를 일이다.

    국제 금융 시장의 패닉과 동아시아

    동아시아 국가들도 이와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 앞에서 결코 안전할 수 없을 것이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그리고 바라건대) 한국의 민간 은행들이 지난 몇 개월 동안 남부 유럽 국가와 은행들에 대한 직접적인 노출 규모를 줄여 왔고, 서유럽 은행들에게서 빌려 왔던 단기 채무의 비중도 대폭 축소해 왔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나 이 경우에도 일본의 엔화를 값싸게 빌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신흥 국가들의 금융 자산에 단기적으로 투자를 해 손익을 취한 다음 급속하게 역외로 빠져나가는 외국계 은행들의 투자 전략이 어떻게 청산되는가에 따라 한국의 금융 자산 시장과 환율 시장은 심하게 요동을 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단기 투자 전략은 개별 기업들의 자산 투자 전략에 속하기 때문에 한국의 중앙은행이 동아시아 지역에 진출해 있는 거의 모든 은행 및 비금융 금융 기관들의 장부를 일일이 분석하고 대조해 보지 않는 이상 그 규모를 파악할 길이 없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 동아시아 외환 위기 국면에서 이 엔 캐리 트레이드(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의 통화나 자산 등에 투자하여 이익을 얻는 금융기법-편집자)라는 투자 전략은 역내 자본 시장의 불안정성을 증폭시켰고, 그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에서도 동아시아 지역 자본 시장의 변동성과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난 가장 최근의 사례는 일본 동북지방의 핵 참사가 발생했을 때 나타났던 동아시아 지역의 주가 폭락과 엔고 현상).

    유럽발 재정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국제 금융 시장을 강타하고 유로존이 붕괴되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둘 때 동아시아와 한국의 자본 시장은 해외 단기 자본의 급속한 유출과 엔 캐리 트레이드의 급속한 청산, 그리고 이에 따른 통화 가치와 금융 자산 가치의 폭락 현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한국 경제가 제대로 그 파고를 넘어설 수 있는지 여부는 외환보유고의 절대 수준과 그에 대비된 단기 해외 채무 비중, 그리고 미국, 일본 및 중국의 중앙은행들로부터 얼마만큼의 달러화를 단기적으로 빌릴 수 있는가(통화 스왑; currency swap)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이와 같은 파국의 초기 국면을 무사히 통과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소유한 은행 및 비은행 금융 기업들에 대한 소유권을 지렛대로 삼아 중소기업과 가계 부분에 지속적으로 신용을 공급해 주지 않는다면, 중소 수출 기업들과 소규모 영세 서비스업종에 종사하는 경제 주체들은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경우에 따라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가 해당 기업들의 ‘채무 위기’로 번져 나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시중 은행과 비은행 금융 기업들의 자본 건전성을 해치는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현금이나 이에 준하는 유동 자산을 막대하게 보유해 놓았던 거대 수출 제조업 기업들도 세계 경제 전체의 불확실성이 높아짐에 따라 종래와 같은 지속적인 무역수지 흑자를 더이상 시현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경기 후퇴의 요소들은 고용 불안전성을 높이고 취업률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물론 이것이 다시 그렇지 않아도 높은 가계 부채의 상환 또는 연체에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지도 거시경제의 안정성을 판가름하는 매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한국 경제의 취약성과 대응 방안

    유럽발 재정 위기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적극적인 금융 시장 감독 정책, 조세 정책 및 노동 시장 정책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파국의 초기 단계에 벌어질 외환 및 역내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가장 유력한 방법은 지금까지 거의 아무런 규제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정책 노선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여 일시적인 자본 통제 조치와 금융 거래에 대한 조세 부과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와 더불어 대기업이 아닌 중소 제조업과 서비스 업종 기업들을 위한 별도의 신용 대부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업들의 투자 감축과 이에 따른 대량 해고가 야기할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조세 정책과 노동 시장 정책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해고 회피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들에 대해서 세금 감면 혜택을 주거나 보조금을 지급해 주고, 기업 파산이나 이에 준하는 긴급 상황이 발생할 때 해당 기업 노동자들이 기업을 인수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주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사태가 오래 지속될 경우 1990년대 말 동아시아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말레이시아 정부와 한국의 정부가 부분적으로 취했던 대규모 공공 근로 사업이나 노사정과 시민사회 단체 공동의 ‘실업 극복 국민 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현 정부가 지금까지 취해왔던 주요 경제 정책 노선과 핵심 정책 결정자들의 행태를 고려할 때 이 모든 조치들은 불가피하게 시민 사회 운동 및 노동 운동 세력의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통하지 않고서는 실현될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주요 노동조합 상급 단체들은 긴급 사태에 대비하여 실업 및 파업 기금을 적립하고 단위 사업장에서 벌어지게 될지도 모르는 대량 해고와 파업 등을 재정적인 차원에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글을 맺으며 – ‘태풍의 눈’ 속에서 기도하기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재의 국면은 어쩌면 ‘태풍의 눈’ 속에서 일시적인 고요 상태를 맞이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그 누구도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고,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필자는 이 글에서 피력된 우려가 그저 나만의 쓸데없는 걱정으로 판명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긴급 사태가 발생했을 때 그것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정책적 사회운동적 처방을 준비하는 일은 꼭 필요한 일인 것처럼 보인다.

    이번 겨울에 맞이하게 될 크리스마스 연휴가 최악의 불확실성으로 우리를 내모는 기간이 될지 아니면 세계 경제 전체가 지난 3~4년 간 계속해서 지나온 긴 터널의 끝을 볼 수 있는 안도의 시간이 될 지 걱정이 앞선다. 메리 크리스마스.

                                                      * * *

    주요 참고 자료

    1. 이 글에서 피력된 유럽연합 재정 및 금융 시스템의 구조적 한계와 지금까지 유럽 중앙 은행이 취해왔던 보수적 금융 정책에 대한 비판은 미국 텍사스 주립 대학 오스틴 캠퍼스(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진행된 국제 컨퍼런스 자료를 참조(http://yanisvaroufakis.eu/2011/11/22/the-euro-crisis-conference-videos-are-now-available-university-of-texas-3rd-and-4th-nov/#more-1381).

    트로이카의 그리스에 대한 구조 조정 정책 처방의 한계에 대해서는 Bretton Woods Project (www.brettonwoodsproject.org)에 실린 일련의 비판 기사들과 매사추세츠 주립 대학 암허스트 캠퍼스(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Amherst) 대학 교수 제랄드 엡스타인(Gerald Epstein)의 인터뷰 (http://therealnews.com/t2/index.php?option=com_content&task=view&id=31&Itemid=74&jumival=7614#) 참조.

    2. 남부 유럽 재정 위기의 전개 과정 및 현황과 관련해서 필자가 참고한 신문 자료로는 Adriano Farano, "The Italian Exodus," Project Syndicate, November 23, 2011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farano1/English); Peter Bofinger and George Soros, “Only way to stop the run on eurozone debt,” Financial Times, November 21, 2011; Wolfgang Münchau, “Austerity alone can’t save the euro,” Financial Times, November 20, 2011; Guido Westerwelle, “Germany is not for turning on how to save the euro,” Financial Times, November 17, 2011; Peter Spiegel, “Commission proposes ‘eurobonds’”, Financial Times, November 20, 2011; David Oakley, Tracy Alloway and Ralph Atkins, “ECB lending to eurozone banks hits high,” Financial Times, November 22, 2011; Richard Milne and Victor Mallet, “Bond markets keep pressure on Spain and Italy,” Financial Times, November 22, 2011; Stanley Pignal and Alex Barker, “Barnier panel to study break-up of EU banks,” Financial Times, November 22, 2011; Martin Wolf, “To the eurozone: advance or risk ruin,” Financial Times, November 22, 2011; Robin Wigglesworth and Nicole Bullock, “Europeans turn to US junk bonds to renew loans,” Financial Times, November 23, 2011; Sharon Bowles, “Markets Insight: Time for sovereigns to swallow their medicine,” Financial Times, November 23, 2011; Hugh Carnegy, “France pushes hard on ECB intervention,” Financial Times, November 24, 2011; FT Desk, Italian bond yields rise above 8%, Financial Times, November 25, 2011; Robin Wigglesworth, “High grade corporate debt feels euro heat,” Financial Times, November 24, 2011; Scott Boyd, “German Bond Sale Increases Odds Of Eurozone Breakup,” Seeking Alpha Weekend, November 24, 2011; Landon Thomas Jr, “Pressure Builds in Europe as Region’s Core Becomes Engulfed in Financial Crisis,” New York Times, November 27, 2011; Nouriel Roubini, “Down with the Eurozone,” Project Syndicate, November 11, 2011 (http://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roubini44/English); Matt Kennard and Shannon Bond, “Interest soars in US peer-to-peer lending,” Financial Times, November 24, 2011; Nicole Bullock, Michael Mackenzie and Ajay Makan, “US bank credit default swaps jump,” Financial Times, November 23, 2011; James Lamont and Henny Sender, “Asian borrowers on guard over European crisis,” Financial Times, November 18, 2011

    3. 동유럽 국가들의 부채 현황과 서유럽 은행들의 노출 위험에 대해서는 이 글에 첨부된 데이터 파일 참조. 그리고 국제결제은행이 취합한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주요 대출국가들과 만기일에 대한 정보는 BIS Monetary and Economics Department, Detailed tables on preliminary locational and consolidated banking statistics, 2007, 2008, 2009, 2010, end-June 2011, Basel: BIS. 이 자료를 취합하고 너그럽게 공유할 수 있게 허락해준 Ognjen Radonjic (경제학 박사, 벨그라드 대학 철학과 조교수)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필자가 참고한 신문 보도 자료로는 Reuter, “Fitch: Funding risks to emerging Europe banks from eurozone crisis,” Reuter, Nov 21, 2011; Pierre Glachant, “Eurozone debt crisis unnerves Balkan states,” AFP, November 21, 2011; FT Desk, “Hungary calls for IMF assistance,” Financial Times, November 21, 2011; Eric Frey, Neil Buckley and Stefan Wagstyl, “Austrian banks told to limit lending to east,” Financial Times, November 21, 2011; Telegraph Desk, “Debt crisis: as it happened,” Telegraph, November 24, 2011 등이 있다.

    * 이 글의 필자 신희영은 미국 뉴욕 신사회과학원 (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 경제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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