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요금 오르고, 탈핵 선언은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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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8일 10:1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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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한국전력(이하 ‘한전’) 이사회가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의결했다. 한전 측은 이에 대해 지난 8월 전기요금을 4.9% 인상했으나 원가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 적자가 증가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기요금은 통상 한전 이사회에서 적정한 인상안을 마련해 지식경제부 장관에게 승인 신청을 하고, 장관은 대통령에게 추인을 받아야 한다.

       
      

    소액주주 "전기요금 적게 올려 회사에 손해"

    한전의 이번 행동은 지난 8월 김쌍수 전 한전 사장에 대한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고려한 조처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전 소액주주 14명은 지난 8월 전기요금 현실화에 실패한 책임을 물어 김쌍수 전 사장을 상대로 2조8000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연료비에 못 미치는 수준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한전 주주소송은 다른 소액주주 소송과 달리 명백한 불법행위나 ‘도덕적 해이’로 송사에 휘말린 것과는 차이가 있다. 김 전 사장이 전기요금을 올리지 못한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논란이 되기 때문이다. 한전은 한국정책금융공사와 정부의 지분이 51%에 이르는 전형적인 공기업이고, 정부가 전기요금 인상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소송 대상이 정부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서 한미FTA와 전기요금이 연관될 수 있는 실마리가 관찰된다. 한미FTA는 공공복지정책보다 투자자 보호를 중시하는 미국의 일방적인 투자자유화 정책을 그대로 도입하는 협정이다. 특히 대표적인 독소조항 중 하나인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협정의무 위반 등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투자유치국 정부를 상대로 직접 별도의 중재기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분쟁해결 절차다.

    ISD의 핵심쟁점은 ‘간접수용’ 조항인데, 이는 투자자의 자산가치를 떨어뜨릴 만한 정부의 조치를 ‘수용’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는 자신의 자산을 수용당하지 않더라도 단지 정부의 규제에 의해 자산가치가 하락했다는 이유로 정부를 상대로 제소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한전에 투자한 미국인 주주 한국정부 제소?

    이는 한미FTA가 발효된 후 한전 주식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들이 전기요금 억제 정책을 펴는 우리나라 정부에 제소를 걸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전은 정부와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지분의 5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정부투자기관으로서, 국내 판매전력의 100%를 담당하고 있다. 발전의 경우에도 자회사를 통해 국내 생산전력의 95% 이상을 담당하고 있어 전력수급뿐만 아니라 국가공공정책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한전은 외국인 보유지분을 40%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긴 하지만 뉴욕 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엄연한 주식회사이기도 하다. 미국 투자자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거래를 통해 주식을 보유하고 우리나라 전기요금 정책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전은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 등 발전자회사 6곳 외에도 엔지니어링·발전설비·정비 등을 담당하는 자회사 5곳을 합쳐 10개가 넘는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 자회사 가운데 상장업체로는 지분 80%를 보유하고 있는 한전기술, 한전KPS와 지분 29%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있는 한전산업 3개사가 있다.

    이 자회사들의 주식가격은 한전의 영업실적에 따라 출렁거린다. 그리고 한전 영업실적은 대부분 전력을 구입해 팔아 얻는 수입에 의존한다. 우리나라 정부의 전기요금 정책에 따라 한전뿐만 아니라 한전의 자회사들까지 영향을 받는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이 한전의 자회사들이라고 가만히 놔둘 리 없다. 최근 한전은 수천억 원의 영업적자를 이유로 자회사들의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일부 인터넷 진보언론을 통해 ‘핵 폐기’를 선언한 독일이 ISD소송에 직면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웨덴 국영 에너지기업인 바텐팔이 자신들이 소유한 독일 함부르크 부근 브룬스뷔텔 원전(66.7%), 크뤼멜 원전(50%)을 폐쇄한 독일 정부를 상대로 ISD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탈핵’을 선언할 경우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에서 주목되었다.

    우리도 탈핵 선언하면 제소된다?

    한전이 원전사업자는 아니다. 하지만 한전이 지분을 100% 보유한 자회사인 한수원이 전 원전을 보유하고 운영과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결국 한전의 향후 지배구조 변화와 운영방식 변경에 따라 얼마든지 국내 원전의 소유 비중이 달라질 수 있다.

    만에 하나, 한전이 민영화라도 하게 될 경우 통상적이지만 엄청난 폐로비용, 핵폐기물 저장 비용 등 외에 독일의 사례처럼 한국사회도 ‘탈핵’ 사회로 나아가는 데에 엄청난 비용을 추가적으로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한전뿐만 아니라 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상장공기업들도 소송의 위험에 직면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가스공사는 한전과 마찬가지로 정부에서 요금을 통제하고 있어 부대사업이 없으면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를 수십년 째 유지하고 있다.

    원가 미반영분을 추후에 정산받고 있는 지역난방공사도 계절별 수익구조가 다른 사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주주들의 제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건 물론 한미FTA가 체결되지 않은 상황의 이야기다. 한미FTA가 체결되면 더 돌이킬 수 없는 상황들이 벌어질 수 있다.

    또한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알뜰주유소가 자칫 한미FTA의 투자자국가소송제(ISD) 대상이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만일 SK에너지(외국인지분 31%)나, GS칼텍스(미국계 석유자본 셰브론 50% 지분보유)에 투자한 미국 투자자나 기업이 정부의 알뜰주유소 정책으로 SK주유소나 GS칼텍스 주유소의 이익이 침해됐다고 판단할 경우 정부를 제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할, 미국 투자자에게 넘겨주나

    물가와 선거를 의식한 ‘저렴한 전기요금’과 일부 수출 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은 에너지 가격 구조의 왜곡을 초래했다. 싼 전기요금은 전기 과소비를 부르고, 높은 환율에 세금이 절반인 석유 가격 구조는 국제 유가 하락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상승하는 ‘괴상’한 흐름이 연출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물가나 선거 등을 감안할 때 전기 요금을 대폭 인상할 수도 없고, 유류세를 줄여 세수가 감소하는 것을 방치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도저도 할 수 없는 에너지정책의 총체적인 실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못난 정부’라도 우리나라 정부가 에너지가격 등 공공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맞다. 정부는 ‘에너지복지’를 실현할 주체이고, 전기와 같은 에너지는 생활 필수재이기 때문이다. 전기 등 에너지가격을 미국인 투자자가 좌지우지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한미FTA는 이 같은 우려를 가능하게 만드는 협정이다. 한미FTA에 반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다.

    왜곡된 에너지 가격체계를 바로 잡고 전기요금을 적정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가정용 전력은 비싸고 산업용은 저렴하게 공급하는 경제주체 간 교차보조금 제도를 없애고 누진율을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사회는 지난 9월 15일 초유의 정전대란을 겪었다. 또한 올 겨울 한파가 닥칠 경우 또 다시 전력피크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부의 역할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넘겨주는 정부에게 희망은 없다. 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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