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보법 위반 혐의 박정근에 대한 중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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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5일 06: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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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근이 압수수색을 당하기 3개월 전인 9월 18일. 나는 성동구 성수동 모처의 사우나에서 박정근과 함께 알몸으로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욕탕에 둘러 앉아 "으어~" 소리도 내고 서로 고추의 크기를 가늠하며 깔깔거렸다. 마침 날도 좋아 근처 서울숲에 들러 산책도 하고 마트에서 술과 안주거리를 사다 내 방에서 마시고 뒹굴거렸다.

    내 친구 박정근

    그렇다. 나는 박정근의 친구이고, 박정근은 나의 친구이다.그리고 3일 후인 9월 21일 아침, 박정근은 법원의 허가를 받은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게 된다. 급박한 말투와 트위터 계정이 보호계정으로 변경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 트위터에서 낄낄대던 박정근의 농담이 아니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seouldecacence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가게와 집이 압수수색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잠시 피시방으로 나왔고 가게 하드는 현재 복사중입니다. 제방에 있는 몇몇 자료들은 압수되었습니다. 핸드폰도 압수되었습니다. (2011년 9월 21일 오후 2시경)"

       
      ▲박정근씨가 트위터에 올린 글.

    이후의 과정은 알려진 바와 같다. 트위터에서는 국가보안법을 규탄하는 메세지가 계속되었고, 박정근의 프로필 사진을 인용하고 변경하여 사람들은 자신의 프로필 사진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박정근은 수원 모처에 있는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게 되었으며, 박정근의 친구와 몇몇 이들도 사건에 연루되어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게 되었다. 9월 21일 압수수색으로 시작된 경찰조사는 11월 15일 추가 조사를 마지막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글은 압수수색부터 추가 조사까지 56일간의 박정근 관찰기이다.

    사건이 발생한 9월 21일. 박정근은 강한 둔기로 맞은 듯 고통을 호소하기 이전의 ‘이게 무슨 일인가’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박정근이 운영하는 조광사진관에서 만난 아버지와 주변인들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박정근 패닉의 전조였다.

    불면을 호소하다

    사건이 발생한 그날 저녁 박정근과 술국에 머릿고기를 먹으며 소주를 한 잔 했지만 박정근은 아무 말도 없었다. 며칠 지나 내 방에 사람들이 모여 사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변호사를 알아보고, 압수수색 또는 경찰조사를 받은 경력(?)이 있는 이들이 앞으로 진행 될 사태들에 대해 조언을 건네기 시작했다.

    박정근은 담담하게 사태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챙겨야 할 것들을 추스리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몇가지 소소한 사실이 술자리를 통해 밝혀졌는데 21일 오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기 직전 박정근은 연인과 이별하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압수수색을 받게 되었던 것이었다. 몇일 후 박정근은 할머니 상을 치르게 된다.

    10월이 되었고, 박정근은 불면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압수수색으로 털린 자신의 방과 사진관에 가는 것을 꺼리기 시작했다. 내 방에 눌러붙어 3일, 4일씩 술을 마시고 잠을 청하다 조사를 받는 날 수원으로 향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다.

    당시 내 여자친구는 암시장에서 자신이 몰래 구한 리튬을 박정근에게 주는 것이 어떠하냐고 제안했지만, 내가 판단할 바는 아니었다. 그리고 10월 중순이 되자 박정근은 친구에게 조언을 얻어 정신과에 가서 진단 및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박정근 스스로는 압수수색에 의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라 생각했었지만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가 정신과 의사의 진단명이었다. 24살, 국가보안법 위반, 이별, 급성스트레스성 장애, 불면, 우울. 이것이 박정근을 이루고 있었다.

    내 방에 박정근이 찢은 약봉지와 맥 딜리버리에서 시킨 빅맥 포장지가 쌓이기 시작했다. 박정근은 내방에서 술을 한 잔 마시고 빅맥을 씹은 후 약을 먹고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나는 불편했지만 표현할 수 없었다. 박정근은 국가에 의해 얻어 터진 환자였다.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박정근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다. "집에 가면 잠들 수 없다.", "자꾸 압수수색 받던 날이 생각난다.",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난다.", "사상의 자유란 도대체 무엇이냐?" 분노한 박정근은 경찰조사 받기 이전과 마찬가지로 북한 관련 농담을 트위터에서 발언하고, 자신의 상황을 호소했다.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

    그러나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이는 국가권력과 박정근의 관계에 있어서도, 급성 스트레스성 장애와 박정근의 관계에 있어서도 별 다른 호전을 가져오지는 못했다. 박정근은 친구들과 모여있을 때, 성욕 감퇴와 발기부전을 이야기했다.

    웃겼지만, 너무 웃겨서 눈물이 찔끔찔끔 나는 농담이자 호소였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나는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함께 박정근과 놀았다. 우리는 술을 마시고 뒤엉켜 웃고 국가보안법과 쿠엔틴 타란티노와 사상의 자유와 대한민국의 현실과 재팬 로망 포르노에 대해 대충 이야기했다. 그것이 필요했다.

    지금 돌이켜보건데 박정근에게 필요했던 것은 24살의 혈기왕성하고 뜨겁고 포근한 섹스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점점 피폐해져 갔고, 정신과에서 처방한 강한 약이 없이는 잠들지 못했으며, 잠들더라도 계속 잠꼬대를 웅얼거렸고, 잠에서 깨면 총 천연색의 생생한 꿈 내용을 트위터에 적어내리기 바빴다. 그렇게 10월이 끝났다.

    10월 말에 끝나기로 한 경찰조사는 추가로 11월 15일까지 연장되었다. 조사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박정근이 트위터에 끝없이 던진 북한 관련 농담들과 "김정일 만세"류의 글들이 문제가 된 듯했다. 그것이 박정근의 사상의 자유인 듯싶어 뭐라 할 말이 없었다.

    매일 밤 스즈키 세이쥰의 영화를 틀어놓고, 빅맥세트 그것도 프렌치 프라이와 콜라를 라지로 시켜 우적거리며, 정신과에서 처방한 알약을 한웅큼씩 삼켜야 잠드는 박정근을 관찰했다. 진실로 – 저따위 인간이 간첩이라면, ‘북괴’의 사주를 받아 조선로동당을 찬양/고무하는 인간이라면, 북한의 대남 관련 부서는 얼마나 무능한 것인가. 한숨이 나왔다.

       
      ▲출석요구서를 들고 있는 박정근씨.

    박정근은 종료된 경찰조사 이후에도 이어질 검찰조사에, 검찰조사 이후에도 남아 있는 법원에서의 멍청이 공방전에 불안과 피로를 느낀다. 약을 입안에 털어넣고 잠든 박정근과 점차 줄어가는 약봉지를 바라보며 이 모든 고통이 법원의 냉혹한 형 선고로 흐지부지 될 것이라는 불안이 찾아온다. 맙소사. 국가보안법 위반은 불고지죄 말고는 벌금형도 없다.

    아직 박정근 관찰기는 끝나지 않았다. 따라서 이것은 중간 보고서이다. 또다시 박정근은 느물거리며 전화를 걸어 내가 아닌, 내 방에 별 일은 없는지 물어 볼 것이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케 한 병과 재팬 로망 포르노를 들고 내 방으로 미끄려져 들어 올 것이다.

    지겹다. 난 언제쯤 이 모든 일이 끝날 것인지 모르겠다. 박정근이 정말 북한을 찬양하는지 아닌지, 그가 진실로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는지 아닌지는 나의-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박정근이 빨리 집에 가서 잤으면 좋겠다. 아침에 일어나서 사진관에 찾아오는 손님을 말갛게 웃으며 맞이했으면 좋겠다. 나도 내 방에서 여자친구랑 단둘이 야하게 뒹굴거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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