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거부’ 운동을 지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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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4일 04: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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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김예슬 씨가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자보를 붙이고 자퇴를 한지도 어느덧, 일 년 반을 넘겼다.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서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다. 그러나 작지만 균열은 시작되었다." 지금, 균열은 더 커지고 있다. 그리고 그 균열은 또 다른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질문이 필요 없는 시절

    나는 서울에 있는 작은 대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지극히 평범하고도 진부한 이름이다. ‘대학생’, 왜 우리는 이 흔한 이름을 얻으려 십년이 넘는, 혹은 그에 가까운 시간 동안 똑같은 것에 목을 매야 했던 것일까.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지겹도록 들어왔었다. "대학은 나와야지. 좋은 대학교 나와야 돈도 많이 벌고 살지.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한다."는 어머니의 말씀들. 그리고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에서까지 배워온 것들도 오직 ‘대학’을 위해서였다. 나는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학생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생이 된 후까지, 나는 열심히 공부하면 소위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렇게 나는 오늘의 행복을 먼 미래로 유예하고,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두꺼운 문제집과 책상에 파묻혀 있어야 했다.

    ‘왜’라는 질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필요하지도 않았다. ‘남들이 다 하니까,’ ‘당연히.’ 아마도 뭐 그런 대답들이 돌아오겠지. 그렇게 이유도 알 수 없는 일을 하기 위해 나는 ‘남들보다 더’ 시험을 잘 보려 발버둥쳤고, 남들보다 잘나 보이기 위해, 있어 보이기 위해 몇 백자에 내 삶을 구겨 넣었고, 포장했다. 난 내가 ‘합격’함으로써 다른 이가 불합격되었을 거란 당연한 사실을 알고도 외면한 채, 그렇게 기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와는 뭔가 다르겠지, 생각했던 대학생활에 대한 내 기대는 처참히 무너졌다. 단지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억압이 내게 허락되었을 뿐. 게다가 그 자유 역시, ‘술과 담배를 살 수 있는’ 자유지, 진정 내가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자유나,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자유 따윈 아니었다.

    모두 스펙과 토익 점수, 학점에 목을 매고, 과제와 알바에 쫓겨 꿈을 꾸거나, 생각하고 고민할 시간조차 우리에겐 없었다. 수능 점수에 맞춰, 취직이 좀 더 잘되겠지 싶어 들어왔던 학과에서는,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수업이 하루하루 학교에 다니는 것을 힘들게 했다.

    술과 담배를 사는 자유 말고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니가 선택한거잖아.” 그래, 내가 선택했지. ‘점수에 맞춘, 취직 잘 되는’ 전공. 그런데 누가 이 선택을 ‘하게 했는지’ 생각해보라.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지 못하게 한 건, 대학을 배움을 위한 곳이 아닌, 취직을 위한 곳이 되게 한 것은, 바로 이 사회 아닌가.

    술과 학번의 권위가 ‘문화’란 이름으로 지배하는 대학교, 스펙과 학점만이 전부가 되어버린 대학교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배워야 한다는 말일까. 대체 무엇을 배우기 위해 매년 천만원에 가까운 돈―일년에 가까운 시간을 노동만 해야 겨우 벌 수 있는 돈―을 대학교에 바쳐야 한다는 말인가. 그 흔한 ‘대학생’이란 이름을 얻으려, 우리는 왜 그리 많은 것들을 희생해야 하고, ‘나중에’ 존재할지조차 알 수 없는 행복을 뒤로 미뤄야만 하는가.

    우리는 이 고리를 끊어내야만 한다. 여기서 끊어내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서 살아갈 수많은 이들이 나의 불행과 나의 절망을 반복해야만 할지도 모른다. 이 고리를 끊자. 이 고리를 끊어내려는 모든 거부를 지지한다. 어떤 이들은 나는 왜 거부하지 않느냐며, 나를 비겁하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래, 어쩌면 나는 비겁한 놈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그들을 지지하며, ‘여기에서’ 그들과 함께 싸워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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