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장이 누군지, 언제 잘릴지 모른 채"나쁜 일자리 추방 국민운동 벌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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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4일 02:3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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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11월 20일 일요일 아침 9시 울산 농소초등학교 강당. 밤샘 특근을 마치고 졸린 눈을 비비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다. 지난 해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싸웠던 25일 공장점거 파업 1년을 맞아 열리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일요일 아침에 여기까지 와서 조합원들 감시하고 이게 뭐하는 짓입니까? 당장 돌아가세요.”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2공장 이진환 대의원은 학교 뒤편에서 몰래 감시하고 있던 관리자 4명을 발견하고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가 조용히 사라졌다.

    협박과 회유 넘어 다시 모인 현대차 비정규직

    현대차 원하청 관리자들의 협박과 회유, 미행을 뿌리치고 300여명의 조합원들이 강당을 채우자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25일 파업을 담은 영상은 조합원들에게 그날의 감격을 떠올리게 했고, 비정규직과 연대하다가 구속됐던 정규직 조합원이 새 노조의 비정규직부장으로 인사하자 열화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8명 구속, 104명 해고, 1100명 징계와 손해배상 청구라는 사상 최대의 탄압, 정규직노조의 외면, 비정규직지회 비리 문제로 쓰러졌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용기를 내고 다시 싸움을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정규직노조 집행부가 바뀌고,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소중한 힘이 되고 있었다.

    “사실 오늘 총회에 100명도 나오지 않을까봐 걱정했는데 300명이나 모여서 너무 좋습니다. 많이 위축되기는 했지만 이제 1공장에서 식당 선전전을 진행하는 등 다시 시작하고 있어요.” 1공장의 한 비정규직 조합원의 얼굴이 모처럼 밝게 빛났다.

    비정규직의 해고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3공장에서 60여명이 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해고 위협에 처해 있다. 회사는 자동화, 신차 생산, 물량을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비정규직을 공장 밖으로 내몰고 있다.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싸워야 하는 상황이다.

    “희망버스가 현대차 비정규직에 왔으면 좋겠어요”

    지난 11월 11일 전주에서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해고자와 정직자 50여명을 만났다. 전날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이 309일 만에 ‘살아서’ 땅을 밟았고, 희망버스를 함께 고민했던 사람들은 수배중인 송경동 시인, 정진우 비정규실장과 함께 기쁨의 술잔을 밤새 나누었고, 아침 일찍 전주로 향했다.

    희망의 버스에 올랐던 현대차 전주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여러 조합원들이 이제 희망버스가 비정규직 문제의 상징인 현대자동차로 왔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한 조합원은 “지난 해 25일 점거파업 때 희망버스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겠어요?”라며 아쉬움과 기대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이웅화 비대위원장도 “우리 조합원들이 다시 뭉쳐 싸워서 희망버스가 현대차로 달려와 전국 850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진짜 희망을 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리해고의 상징인 쌍용차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자살을 하지 않기 위해, 비정규직의 상징인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안정된 일터에서 일하기 위해 희망버스가 앞으로도 계속 달려가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있다.

       
      ▲비정규직 희망 버스를 타고 전국순회 투쟁을 벌이는 중 군산조선소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는 노동자들.  

    재벌은 돈방석, 노동자들은 나쁜 일자리

    지난 7월과 10월 금속노조 비정규투쟁본부는 ‘비정규직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전국의 주요 도시와 공장을 순회했다. 이들은 비정규직이 80%인 STX조선, 생산현장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채운 현대중공업 울산공장과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야만의 공장’을 돌아보았다.

    국민의 세금과 정부의 지원으로 재벌들은 매년 수조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수백억원의 주식배당금을 챙겨가면서, 정규직 중심의 안정된 일자리가 아닌 비정규직이라는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고 있었다.

    고용노동부의 ‘2010년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현황’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1939개 사업장 132만 6천명 중에서 사내하청 노동자가 15.1%였다. 하지만 재벌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는 자동차는 16.3%, 철강회사는 42.7%였으며, 세계 1위라는 조선소는 무려 61.3%가 사내하청 비정규직이었다.

    현대차 비정규직 해고자인 최상하 조합원은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며 “현대차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넘어 비정규직 없는 공장,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 다 같이 촛불을 들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나쁜 일자리 양산의 전형

    현대중공업은 탐욕의 재벌이 어떻게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지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2008년 현대중공업은 지방정부와 투자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군산조선소를 짓기 시작하면서 “신규 일자리만 1만1000여 개가 생기고 협력사 직원까지 합한 연간 인건비가 500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4년이 지난 2011년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는 24개 사내하청 270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4년 동안 현대중공업이 신규 채용한 정규직 노동자는 단 48명뿐이었다. 즉,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모든 생산공정은 비정규직으로 채워진 ‘정규직 0명 공장’이었다.

    군산조선소는 “올해 20척을 수주할 경우 6500여 명의 인력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 사내하청 비정규직 3천여명을 더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270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연봉 2500만원을 받으며 사장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언제 잘릴지 몰라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조차 만들지 못하면서 침묵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군산조선소에 민주당의 지방정부는 각종 세제혜택은 물론 200억원의 특별지원금까지 갖다 바쳤다. 이명박 정부와 정몽준 회장의 소유한 현대중공업, 민주당 지방정부의 일자리 창출 공약이 사기라는 것이 밝혀지자, 뒤늦게 전북 군산시의회가 나섰다.

    뒤늦은 군산시의회 특별결의문

    군산시의회는 10월 14일 본회의를 열어 “시가 현대중공업 유치를 위해 각종 행정지원은 물론 세제혜택,고용보조금 등을 지원했지만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50여개 협력사와 1만1000여명의 신규 고용 등 총 3만5000여명의 인구 유입을 전망했지만, 조선소가 들어선 2009년부터 지금까지 군산지역에서 채용한 정규직 직원은 48명에 그쳤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500여명의 정규직 중에서 군산지역 현지 채용 인원은 149명이라고 주장하며 “사내협력 업체 24개사와 사외협력 회사 직원 등을 합치면 총 5000여명의 일자리를 창출, 유지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현대중공업 스스로 정규직은 소수의 관리자들뿐이고 생산현장은 2700여명에 달하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비정규직 공장’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정규직 0명 공장’은 기아자동차 서산의 모닝공장을 시작으로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경총 이희범 회장의 소유인 STX중공업, 현대모비스 8개 공장, 현대위아 3개 공장 등 전국으로 번져나가고 있다.

    비정규직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주범은 재벌이고, 이를 거들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권과 민주당 지방정부다. 재벌의 후원을 받는 국회의원들은 나쁜 공장, 나쁜 일자리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결국 노동자와 시민들이 나서서 나쁜 일자리를 추방하고, 정규직 중심의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어내야 한다. 탐욕의 재벌이 저지른 부당한 정리해고에 맞서 노동자 시민이 연대해 승리한 희망버스처럼, 전국 곳곳에서 나쁜 일자리와 나쁜 기업을 추방하는 국민운동을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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